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84화
20. 인지도 (3)
“자, 지금도 좋기는 한데, 한 번만 더 가죠.”
사진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혜는 깜짝 놀란 듯 둔 누을 휘둥그레 떴다.
“또요? 충분한 거 같은데?”
“모델이 이렇게 좋은데, 충분히 더 좋은 사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가시죠.”
“대체 얼마나 찍으시려고…….”
“얼른요!”
“알겠어요.”
나도혜는 투덜거리면서도 걸음을 옮겨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작가는 열정이 넘쳤다. 자기 일에 욕심이 있는 게 느껴졌다. 모델 입장의 나도혜로서는 조금 피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동대표 입장의 나도혜로서는 사람을 제대로 고른 셈이었다.
“좋아요오오오오! 끝내줍니다! 더 환하게에에에!”
사진작가의 목소리와 카메라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던 와중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강인나가 쭈뼛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은 타이트한 원피스 차림에 과즙을 머금은 듯한 볼터치로 풋풋한 모습이었다.
“어떤 거 같아? 이상하지 않아?”
“보기 좋은데, 왜?”
“그래? 어색해서. 볼도 무슨 열나는 애 같고.”
“예뻐, 예뻐.”
“진짜 괜찮겠어?”
강인나는 아직 촬영 중인 나도혜를 힐끗 보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원장님은 워낙 멋지신데, 나를 모델로 쓰는 건…….”
“타겟이 다른 거지.”
“어?”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잖아. 분명히 괜찮다고 봐.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원장님도 너를 쓰는 게 괜찮겠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때 사진작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요오오오오오오! 도혜 씨는 여기까지이이이!”
나도혜는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강인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빠르게 다가왔다.
“인나 씨, 너무 예쁘다.”
“네? 그건 좀……. 원장님은 진짜 멋지시네요. 우와……. 작아지는 기분이에요.”
“나보다 키도 훨씬 크면서 무슨.”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정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그랬겠어요?”
“네? 아, 당연히 그런 건 아니겠죠. 그냥 모든 게 어색해서.”
사진작가가 씩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 일할 맛이 나네요! 예쁜 언니들 찍을 때가― 어머, 실례.”
그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강인나에게 손짓을 했다.
“자, 자. 빨리 하죠. 시간은 금이에요.”
“아, 네, 네.”
나는 강인나와 사진작가가 촬영을 하러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혜와 눈을 마주쳤다.
나도혜는 사진작가를 슬쩍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자 좋아하는 분이라.”
“아하.”
왜 남자인 그가 언니라는 호칭을 쓰는지 조금 의아했는데 단번에 이해가 됐다. 어쩐지 패션이 심상치 않더라니. 게이들도 각자의 색깔이 있는데, 사진작가는 끼를 부리는 타입인 듯했다. 단순히 일에 대한 열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의 성향이었다.
적어도 지금 일에 있어서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활달한 모습이 득이 됐다. 다그치지 않고 다소 재미있고 업된 목소리를 높이니 덩달아 강인나도 금세 적응하고 촬영에 임했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강인나를 보며 씩 웃었다.
“잘 할 거면서.”
5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매일이 짧게 느껴져 아쉬웠고,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일에 대한 것들을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됐다.
여전히 집은 월세 30만 원에 관리비 1만 원이 붙는 곳이었다.
조만간 전세로 옮길 예정이었다. 집주인이 좋은 사람인지라 입주한 지 수개월 만에 이사를 한다고 하는데도 이해해줬다. 가격에 비해 평수나 위치가 좋아 세입자가 바로바로 들어오는 덕분이었다.
전세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부분이 있었다. 전세로 묶여 있을 돈을 굴리면 그보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굴리는 돈의 단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신축에 풀옵션인 원룸의 전세금을 모으는 것도 2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리의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닌다.
겨울이다.
내일 카페 웰웰이 오픈한다.
겨울에 주스라.
주스 카페를 오픈하기에는 최악이다.
특히나 자영업자들이 제일 힘들다는 요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름대로 이에 대항할 무기는 쥐고 있었다.
우선 강인나가 준비한 수제 과일청.
당연히 바른 농부단과 시장 청과물 가게 사장인 이기철을 통해 공급 받은 유기농만 사용했다.
살면서 청이라는 걸 그리 많이 먹어보지는 않았다. 해봐야 소화가 안 될 때 할머니가 타준 매실청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강인나가 만든 과일청은 단맛이 적고 깔끔했다. 차로 타서 마시면 끝까지 홀짝거리기 좋은 그런 맛이었다.
4계절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주스도 나름대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건 처음부터 생각한 부분은 아니었는데, 카페 웰웰의 50m 안에 헬스장만 2개였고,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는 곳들도 있었다. 피부 관리샵도 있었고.
모든 게 생각처럼 풀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나의 아웃스타그램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이 십여 개, 좋아요가 500개 가까이 찍혔다.
나도혜의 아웃스타그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아요만 수천 개였다.
재미있는 것은 관련해서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강인나의 아웃스타그램 팔로워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나도혜가 웰니스 모델인 자신과 강인나의 사진을 맛보기로 올린 덕분이었다.
모델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SNS 홍보를 통해 마케팅비는 일단 최대한 절감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카페 하나를 오픈하는 건데 크게 마케팅비를 들이는 것도 애매했고.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천에서 수십 명만 단골로 잡아도 가게는 충분히 굴러갔다. 거기에 동네 사람들과 유동인구들이 조금만 유입되면 나쁘지 않았다.
대박을 꿈꾸지만, 처음부터 대박을 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다.
6
다음 날.
카페 웰웰이 오픈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도혜도 오전 진료를 빼고 나와 있었다. 나도 오픈 준비를 도왔다.
점장인 강인나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하나하나 체크하고 또 체크했다. 나와 나도혜가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꼼꼼한 모습이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하긴, 꼼꼼하니까 행복 건강즙 1호점에서 돈 관리를 맡긴 것이기도 했지만.
20대 후반의 남자 직원은 조금 경직돼 있었다. 아무래도 신장개업에 나와 나도혜까지 나와 있으니 더 그럴 수밖에.
키가 크고 훤칠했는데, 얼마 전까지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했었다. 웰웰에 들어온 목적 자체가 2호점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를 뽑은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키가 160cm도 안 되는 23살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싹싹하니 생글생글 잘도 웃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거의 쉰 적이 없다나. 대부분이 서비스업이었고, 그 경력이 티가 확 났다.
솔직히 직원과 아르바이트를 뽑을 때 외모도 상당히 따졌다. 단순히 잘생기거나 예쁜 것을 따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피부였다.
직원들은 곧 가게의 이미지였으니까.
면접을 볼 때는 나도혜와 강인나 그리고 나도 꼭 함께했다.
나는 딱히 질문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지원자들을 유심히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지원자들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었으니까.
피부 건강은 피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속의 장기들에 문제가 있으면 올라오기에.
원래 더 유력한 후보들도 있었다. 빼어난 외모를 가졌거나 이미 건강 주스 카페 혹은 바에서 일을 해본 사람들이 그랬다.
내가 그들을 떨어트렸는데, 흡연자이거나 음주를 즐기는 게 보인 탓이었다.
단순히 흡연과 음주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건강에 유익하지는 않지만, 기호식품이니까. 흡연과 음주를 즐기면서도 장수하는 사람들도 있고.
활발한 소비가 시장경제를 활성화한다. 술은 확실히 그런 걸 부추긴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먹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담배야 대부분이 세금이니 농으로 흡연자는 애국자라는 말도 있으니까.
흡연이든 음주든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카페 웰웰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가능한 모든 위험 요소들을 덜어내고 싶었다.
흡연의 경우 피부가 안 좋아질 확률도 높았고, 건강과 신선함을 메인으로 하는 웰웰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음주도 피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가장 흔한 증상으로 열꽃이 피거나 뾰루지가 날 수 있었다. 일하기 전날 과음을 해서 근무에 지장을 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고.
그렇게 철저히 거르고 걸러서 지금의 남자 직원과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뽑았다
“괜찮은 거 같아.”
강인나가 말했다.
“쿠키는?”
내가 묻자 강인나가 눈을 크게 떴다.
“아, 맞다. 맞다.”
녀석은 손뼉을 한 번 치더니 하나하나 비닐로 소포장한 쿠키들이 담긴 바구니를 앞쪽에 내놨다. 민희재가 만든 무설탕 글루텐 프리 쿠키. 큰 판매량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갖춰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카페 안을 슥 둘러봤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뿌듯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카페를 차리게 될 줄이야. 그것도 강인나와 함께. 나도혜라는 동업자도 있고.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테리어에도 제법 힘을 썼다. 다른 곳에서 돈을 아끼는 대신 인테리어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미담 한의원 전담 업체가 있어서 가격도 제법 합리적으로 할 수 있었다.
통상적인 견적으로는 평당 280만 원 이상이었는데, 200만 원으로 맞췄으니까. 업체에서도 남으니까 맞춰준 거겠지만.
가게 오픈까지 30분.
괜히 테이블들과 의자들을 강박증 환자처럼 각을 잡고 있던 중이었다.
“오빠, 오빠.”
강인나가 호들갑을 떨며 손짓했다.
나는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다른 직원들 있을 때는 호칭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잖아.”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작은 부분들도 하나하나 고쳐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뤄냈고, 이루는 중인 것들은 운이 좋아서였다.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일으킨 기적 아니던가.
내게 있어서 겸손은 미덕이 아닌 의무다.
“아, 맞다. 미안, 미안.”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래?”
“저기, 저기 밖에 봐봐.”
강인나는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으며 눈짓을 했다.
가게 밖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2명이 서 있었다.
“설마 오픈 기다리는 건가?”
“그런 거 같은데?”
“가볼까?”
강인나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나도혜와 남자 직원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도 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밖에 손님들 기다리시는데 조금 일찍 오픈할까요?”
이미 준비는 마친 상태였기에 모두 동의했다.
강인나는 이미 자리로 가서 서 있었고, 내가 가게 문을 열었다.
서 있던 여자 2명이 나를 쳐다봤다.
“기다리고 계시는 거죠?”
두 사람은 곧바로 대답했다.
“네.”
“언제 열어요?”
눈을 가늘게 뜨거나, 양손을 모으는 것으로 밖이 춥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들어오셔도 돼요.”
가게 문 안쪽에 달려 있는 ‘CLOSE’ 푯말을 뒤집어 ‘OPEN’으로 바꿨다.
기다리던 여자들이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였다.
어디에 숨어 있던 건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몰려왔다.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되는데, 마치 좀비들 같았다. 행복하고 건강한 좀비들. 그래서야 더 이상 좀비는 아니겠지만.
말 그대로 문을 여는 순간부터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