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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83화 (83/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83화

20. 인지도 (2)

―근데…….

한참 동안 10대 소녀처럼 얘기를 하던 숙모의 목소리에 걱정이란 것이 묻어났다.

―네 작은아빠한테도 말해야 되나?

“글쎄요.”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기로 하긴 했는데, 내가 진짜로 누군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거든.

“저는 숙모도 작은아빠도 좋은 분 만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서로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걸 깬 것은 나였다.

“아직 20분밖에 못 봤잖아요. 이일우 사장님하고 숙모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다른 것까지 끌어와서 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숙모가 웃음소리를 냈다.

“왜 그러세요?”

―네 작은아빠 얘긴데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두 분 모두 저한테 너무 소중한 가족이잖아요.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시라는 거예요.”

―그래, 고맙다……. 넌 참…… 예전부터 속이 깊었어.

“깊기는요. 이제 깊어지고 싶어서 삽질 시작한 수준인데.”

―말도 잘해.

나는 피식 웃었다.

“사람 상대할 일이 많아지니 예전보다는 말주변이 좀 생겼죠?”

―예전에도 말은 잘했어.

“문제는 말만 잘했다는 거죠. 다른 말로 입만 살았었다는 거죠.”

숙모가 깔깔 웃었다.

―아무튼 네 작은아빠도 좋은 사람 만나야 할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다들 형편이 좀 나아지니 이제는 좀 누리고 살 수 있겠지. 전부 네 덕분이야.

“무슨 제 덕분이에요. 다 각자 열심히 잘해서 그런 거지.”

―네 덕분이지. 너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딴 생각 못 했을 거야. 삶에 여유가 없으니까. 가난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 사람의 마음을 메마르게 해. 모든 것에 예민해지고. 심적으로 여유가 사라지고, 피해의식이 생기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그래. 그리고 항상 후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무거운 진실함이 느껴지는 말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 애들한테 참 미안하다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건 불행의 확산이 아닐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야 여유가 좀 있었지만, 알다시피 오래 못 갔잖아. 모든 게 무너졌잖아.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도 축복을 받은 게 아니라, 저주를 받으며 시련이 시작된 게 아닌가, 그런…….

“그런 말씀 마세요.”

나의 단호함에 숙모가 조금 당황한 듯했다.

―어?

“작은아빠하고 숙모는 언제나 좋은 분들이셨어요. 두 분은 다른 길을 가게 됐지만, 애들한테도 언제나 좋은 부모님이셨어요. 그러니 그런 말씀 마세요. 애들 봐요, 얼마나 착한지.”

―그치. 우리 애들 착하지. 못난 부모 만나서 다른 애들이 당연히 누리는 건 누리지도 못하고 살았는데도 잘 웃고, 착하고…….

“그러니까 이제 행복해질 일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은 몸도 아프게 해요.”

―알겠어. 그래도 여전히 고민이 된다? 아까 그렇게 신나서 떠들어놓고 이런 말하면 웃기겠지만,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요즘은 이혼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돌싱이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그냥 이혼남, 이혼녀잖아. 이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 거잖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내가 일우 씨하고 좋은 만남을 이어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사람은 총각인데.

“그게 뭐가 문제에요? 너무 김칫국부터 들이키는 걸지도 모르지만, 만약에 이일우 사장님하고 숙모하고 계속 함께하신다고 쳐요. 사람들이 그전에 어땠는지, 두 분이 언제부터 만났는지 어떨지 알 방법이 없잖아요. 문제될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도 참……. 나는 아직 구식이라서 그런지 좀 그래. 마음이 쓰여. 사실 네게 이일우 사장님을 소개 받은 것도 그렇고…….

계속하고 싶은 말이었던 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빙 돌아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숙모도 사람인지라 외로웠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인연의 적극적인 대시에 당황도 했지만 좋았으리라.

하지만 그 안에는 큰 죄책감 비슷한 것 또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제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 뭐?

“사실 그냥 물어본 거예요. 듣기 싫다고 하셔도 할 생각이었어요.”

―뭐야아. 나 참…….

숙모는 짧게 웃었지만, 끝에는 또다시 씁쓸함이 묻어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정도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연히 알지, 정도전. 드라마도 했었잖아.

“그쵸, 그쵸. 숙모가 모르실까봐 그렇게 말했던 건 아니에요. 아무튼…… 예전에 정도전이 서둘러 관가에 나온 날이 있었어요. 그런데 관가에 와서 보니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온 거예요. 그것도 한 쪽은 흰색, 다른 쪽은 검은색으로.”

나는 의자에 등을 편히 기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정도전은 곧 회의가 있는 터라 시간이 부족하니 그대로 회의에 참석했죠. 회의가 끝난 뒤 정도전이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온 걸 본 한 사람이 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왔냐고 물었죠. 그러자 정도전이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뭐라고?

“조금도 머쓱해하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당신 눈에는 이 신발이 짝짝이로 보이냐’고 물었죠. 그러자 대답을 들은 사람은 당황하며 그럼 이게 짝짝이가 아니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재치 있게 받아 넘겼어요. 양쪽을 한꺼번에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만약에 내 왼쪽으로 가는 사람은 오른쪽에 신은 흰 신을 못 볼 것이고,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은 왼쪽에 신은 검은 신을 못 보지 않겠냐고.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아…….

“숙모의 상황도 그렇잖아요. 모든 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삶이 그렇고, 우리 자체가 그렇죠. 하지만 어느 면을 보일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고요. 다른 쪽을 보지 못한 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그치, 맞는 말이다.

“그리고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우선 행복해야지. 그것만 생각하세요. 작은아빠가 그럴 리도 없지만, 다소 껄끄러워하더라도 숙모 마음 가는 방향대로 하세요.”

―고마워.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당연히 그러셔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1분 정도 더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안도와 걱정이 뒤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숙모에게 한 말들은 전부 진심이었지만, 나 역시 작은아빠가 신경이 쓰이긴 했으니까.

3

숙모와는 얘기를 완전히 마쳤다.

그리고 지금 이일우라는 사람이 숙모의 인생에 발을 디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작은아빠에게도 운은 떼놓기로 했다.

얘기를 들은 작은아빠는 잠시 허공 혹은 조금 멀리 있는 바닥을 쳐다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표정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잘못한 걸 고백하고 혼날 준비를 하는 꼬맹이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작은아빠의 말을 기다렸다.

“나 참……. 난 또 뭐라고.”

시큰둥했다.

“그걸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하냐?”

작은아빠의 반응에 나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예 신경도 안 쓰시는 것 같네.”

“나랑 네 작은엄마랑 헤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써야 되냐? 잘 된 거지. 네 작은엄마도 누구 좋은 사람 만나서 자리 잡아야지, 계속 혼자 지내려면 고생스럽지.”

나 참. 참나.

이런 말들이 유난히 귀에 꽂힌다. 숙모와 작은아빠가 자주 하는 말들이라서. 두 사람은 말투마저 닮은 부분이 있었다. 적지 않은 세월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새긴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서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씁쓸하면서도 좋았다.

각자의 행복한 삶을 꾸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삼촌은?”

나의 물음에 작은아빠가 미간을 좁히며 들썩거려 눈썹을 팔(八)자로 만들었다.

“뭐?”

“삼촌도 연애하셔야지.”

장난처럼 끄집어냈으나 진심으로만 뭉친 말이었다. 괜히 껄끄러워서 한 말이기도 했고.

“이제 새로 일 시작하고, 막 바빠지려고 하는데 연애는 무슨. 연애 같은 소리하네.”

“그래도요.”

“일 없다.”

“뭐, 가능성을 너무 닫아놓지는 마셔요.”

“계속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 혼자 산 지가 몇 년인데. 이렇게 살다가 죽을란다.”

“죽을 날 한참 멀었는데 뭐 그런 말을 한 대요. 남은 인생도 충분히 깁니다. 새로 가족을 꾸리고,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여든 먹은 노인네처럼 말하지 말고, 일 얘기나 하자.”

작은아빠는 얘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당장 얘기를 더 이어나가지는 않겠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면 작은아빠도 새로운 인연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숙모도 이일우 혹은 누군가와 잘 이어졌으면 했다.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여야 행복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만 해도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니까. 지금껏 쭉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여도 그게 두렵거나 괴로울 것 같지는 않다.

아내나 자식이란 행복은 없어도 다른 가족들이나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이 깊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가족을 이룬 적이 있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그게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면, 그로 인한 상실감이 생긴다고 확신한다. 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시 가족을 이루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혼자였을 때가 훨씬 행복했고, 누군가와 함께했던 게 너무나 끔찍했을 수도 있긴 하다.

단지 작은아빠의 경우는 그렇다. 작은아빠와 숙모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톱니바퀴였을 뿐, 각자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니까.

서로에게 맞는 인연을 만난다면, 딱 맞는 톱니바퀴를 찾는다면, 서로에게 맞게끔 모양을 다듬을 도구가 있다면, 분명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득 작은아빠의 ‘여든 먹은 노인네’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내가 진짜 노인처럼 말하나?

긍정적인 의미로는 그만큼의 경험이 느껴진다는, 연륜이 있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고루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확실히 능력을 전수 받은 영향이 있는 듯했다.

조금 옛날 사람 같은 구석이 툭툭 튀어나왔다.

전에는 알지도 못 했던 옛날이야기가 입을 통해 술술 흘러나오는 것만 봐도 그랬다.

이런 점이 싫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즐기고 있었다.

스스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더 나아지고 있다고 확신했으니까.

4

작은아빠와 준비하는 다온은 전보다 그 모양새를 뚜렷하게 잡아가는 중이었다.

카페 웰웰과 온라인 건강 주스 사이트 웰니스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은 스튜디오였다.

찰칵, 펑, 찰칵, 펑.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히는 소리가 울렸다.

“자, 좋아요오오오오. 오른손 들어 보시고, 자세 살짝 왼쪽으로오오오. 네에에에, 입가에 미소오오오.”

찰칵, 펑.

“좋아요오오오오. 치아 드러내면서 미소 한 번 더어어어.”

찰칵, 펑.

“좋아요오오오. 자유롭게 가볼까요? 행복하고 건강한 느낌으로오오오. 가벼운 느끼임. 네에, 좋아요오오오오.”

안경을 쓴 사진작가는 넘쳐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말과 표정으로 드러냈다. 사진을 찍는 포즈도 때로는 모델보다 역동적이었다.

웰니스의 홍보를 위해 나도혜가 촬영 중이었다. 그녀는 복부가 훤히 드러나는 상의에 레깅스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채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다.

체지방 감량과 수분 조절에 완벽히 성공했는지 복근은 꽤나 또렷했고, 몸 선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저런 몸매를 가진 사람을 처음 보는 듯했다. 현실에서 보정을 한 느낌이었다.

나도혜가 한의원 원장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전문 모델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주 익숙해 보였다. 원래 자신이 잘하는 일인 양 카메라 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평소의 차분한 느낌일 때는 귀티 나는 31세의 여성 모습 그대로였지만, 지금은 건강미 넘치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복부를 어루만졌다. 살을 빼기 위한 관리법은 수도 없이 알고 있고, 나름대로 운동신경도 제법 있는데. 예전만큼 배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초콜릿 복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건강하기만 하면 되지.

그 누구도 뭐라고 한 적 없는데 괜히 혼자서 합리화를 했다. 그러다가 촬영 중인 나도혜를 힐끗 보고는 다짐했다.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성별에 관계없이 스스로를 잘 가꾼 사람을 보니 왠지 모르게 그런 의욕이 불타올랐다.

사진작가가 주먹을 들어 보였다.

“오케이이이이, 잠깐 쉬었다 갈게요.”

그는 곧장 컴퓨터 앞으로 향했고, 나도혜도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지금 찍힌 사진들을 확인했다.

“대표님, 이쪽으로 좀 와보세요.”

나도혜가 손짓을 했다.

내가 다가서자 나도혜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어때요?”

사진작가가 나도혜의 사진들을 차례로 넘겼다.

나는 사진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요가복이나 운동복 광고하셔도 되겠어요.”

“그래요?”

나도혜가 생긋 웃어 보였다.

복장이 복장인지라 똑바로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아니,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나도 모르게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눈동자가 움직일까봐 애꿎은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쨌든 지금 찍은 사진들만 봐도 나도혜를 모델로 세운 건 탁월한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인지도로 인한 화제성도 확실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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