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82화
20. 인지도 (1)
1
가게 안.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이일우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드리운 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의 앞에 커피 한 잔을 내놓았다.
“어이쿠, 잘 마시겠습니다.”
“예, 즙이나 주스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나는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쇼핑백을 뒤적거렸다. 정효원이 준 선물들 중 간식류가 제법 돼서 적당한 것을 꺼내들었다.
“쿠키 드시죠?”
“엇…… 그건 아까 애인 분한테 선물 받으신 거 아닌가요?”
나는 하하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애인이 아니고 고객님이 주신 겁니다.”
“그래도 선물인데, 갑자기 찾아온 저하고 드셔도 되는 건가요?”
“그럼요, 사장님이 저한테 손님이시잖습니까.”
그렇게 이일우와 마주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하고 따로 얘기를 하시려는 이유가……?”
이일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일단…… 이게 조금 실례가 될지도 모르나, 먼저 말씀을 하셨으니 그냥 얘기하겠습니다.”
“네, 편히 말씀하십시오.”
“저희 숙모에게 관심이 있으신 듯한데…….”
“앗.”
이일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여자 분이 숙모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랬군요…….”
반짝이던 그의 눈빛에 불이 꺼져가는 게 보였다.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불씨가 다 꺼지기 전에 부채질을 했다.
“저희 작은아버지와 이혼하신 지는 좀 되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일우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알기 쉬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럼 숙모 관계가 아니지 않나요?”
“다른 호칭으로 넘어가기도 애매하더군요. 숙모도 그게 편하다고 하시고. 엄밀히 말해서 아무 관계도 아니긴 하겠지만요.”
“그렇군요. 하긴, 하나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전부 그래야 되는 것은 아니죠.”
“저희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아직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어…….”
이일우는 또 당황하는 듯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더니 이내 확고한 목소리를 냈다.
“아메리칸 스타일. 서양 감성이시군요. 요즘 한국 사람들도 많이들 그런다던데. 헤어져도 친구로 지내고 그런…….”
“하하핫.”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두 분 사이에 자녀가 둘 있어서요. 따로지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시는 거요.”
“아아, 그렇군요. 하하, 제 생각이 너무 앞서갔나봅니다.”
이일우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런데 숙모님하고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것 같지 않은데, 작은아버지도 젊으신가봅니다.”
그는 숙모를 40대 중반쯤으로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 나이도 위로 보고 있을지도. 각종 관리법으로 피부가 많이 좋아졌는데도 그렇게 보이나?
개인적으로 신경 쓰이는 부분은 묻어버리고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혹시 사장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저요? 저 쉰하나입니다.”
“저희 숙모는 쉰셋이십니다.”
“정말입니까?”
이일우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확실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문제가 되나요?”
“아니요, 너무 젊어 보이셔서요. 저는 많아야 40대 중후반쯤으로 봤거든요.”
“동안이시긴 하죠.”
“엄청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쭈겠습니다.”
“예?”
“저희 숙모에게 관심이 있으신 거죠?”
“……예, 그렇습니다.”
이일우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내가 물어보거나 할 문제는 아니었다. 당연히 숙모가 결정할 문제였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이 전부 그랬다. 이일우의 연락처나 하나 받아두고 숙모에게 전달해주는 게 전부여야 했다.
세 가지 마음이 하나로 뭉친 탓이었다.
하나는 숙모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가족이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더 이상 아무 관계도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그랬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연결되는 오지랖이었다. 이일우가 영 아니다 싶은 사람이라면, 숙모에게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이일우가 좋은 사람이라면, 숙모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숙모도 작은아빠도 다른 배우자를 만나 각자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세 번째는 개인적인 비즈니스와 묶인 것이었다.
사적인 이야기와 비즈니스를 동일선상에 두면 안 된다. 실제로 영향을 미치게 할 생각도 없다.
단지 이야기의 물꼬를 터볼 요량이었다.
“실례지만, 사장님께서는 현재 가족 관계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이일우는 당연하게도 내 의중을 알아채고는 대답을 내놨다.
“저는 평생 총각이었습니다.”
평생 총각이었던 이유야 다양하리라. 거기서 더 이상 무언가를 캐묻지는 않았다.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그러시군요. 그럼 두 분이 만나보시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되겠네요.”
이일우는 확실히 밝아진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중요한 부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희 숙모가 사장님과 만나볼 마음이 있다면 말이죠.”
“예, 그렇죠. 당연한 거지요.”
이일우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빼들었다.
“제가 이렇게 찾아뵌 이유는 그저…… 명함 한 장만 전달을 부탁드리고자 한 겁니다.”
나는 명함을 받아들며 씩 웃어 보였다.
“두 번째 받는 거네요. 뭐, 이번에는 최종 수신인이 따로 있지만요.”
“하하, 그렇지요.”
“그런데 왜 직접 전달하시지 않고 저에게 오셨는지 그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사실 가게에 몇 번 찾아왔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예, 그때마다 대표님도 자리에 안 계셨고, 숙모 분도 안 계셨죠. 그렇게 세 번 왔다가 참지 못하고 물어봤죠. 그 여자 분은 어디 계시냐고. 그러니 카운터에 계신 여자 분이 저를 조금 수상하게 보시면서 알려줄 수 없다더군요.”
이지나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하지. 아니, 사사로운 일들로 하나하나 내게 말하기가 애매해서 안 했을지도.
“그래서 이렇게 사장님이 계실 때에 맞춰서 찾아뵙게 된 겁니다. 아마 일은 그만두신 것 같은데…….”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지금도 저랑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까? 가게 주방 쪽에 계셔서 제가 못 본 걸까요? 물어봤을 때는 그냥 가라고 해서 제대로 확인은 못 했지만요.”
“다른 가게에 계십니다. 그나저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 명함은 꼭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일우가 활짝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고요.”
“저야 그냥 명함 한 장 전달하는 것뿐인데요 뭐.”
알기 쉬운 만큼 좋은 사람인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잠깐 마주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지만.
이제는 개인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알아볼 시간이었다.
“숙모와 관련된 이야기는 별개로 저 개인적으로 사장님께 여쭈고 싶은 게 좀 있는데요.”
“예, 말씀하십쇼.”
“식자재 유통업체 운영하고 계시잖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주로 어떤 걸 다루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웬만한 건 다 다룹니다. 국내산보다는 수입산이 주를 이루긴 하는데요, 대부분 미국이랑 유럽 쪽입니다.”
“오, 그렇군요.”
“예, 예. 뭐 공산품부터 유기농 식품이랑 냉동이랑 이것저것 전부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그걸 감추지 않고 얼굴로 드러냈다.
“그럼 음식점 같은 곳에도 납품하시겠네요?”
“물론이죠.”
“사장님하고 저하고 거래가 시작될 수도 있겠네요.”
2
웰웰과 다온에서 사용할 식자재가 해결됐다.
이일우의 으라쌰 식자재 유통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사실 웰웰과 다온에서 들일 식자재는 거의 없었다.
이는 깔아두는 것에 불과했고, 내가 장기적으로 보는 것은 차후에 노우민과 함께 운영할 퓨전 음식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양식 느낌의 메뉴들이 많을 것이었기에 각종 향신료나 무조건 수입품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은 거래처가 필요했다.
숙모와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이일우는 일전에 내게 건강상담을 받았을 때도 따로 배달까지 해주겠다며 좋은 제안을 해왔었다.
아예 거래를 트면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제품들을 저렴한 값에 공급해줄 곳이라 생각됐다.
걱정이 되는 부분이라면 한 가지였다.
이일우와 숙모의 관계였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었다. 좋은 쪽이라면 좋겠지만, 나쁘게도 될 수 있는 거였으니까.
우웅.
휴대폰 진동이 한 번 채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나야.
숙모였다.
양반은 못 된다.
이미 이일우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늘어놓았고, 명함도 건네준 상태였다.
허락도 없이 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숙모가 좋게 받아들엿다.
“네, 숙모. 어쩐 일이세요?”
―나 방금 그 이일우라는 사람하고 커피 마시고 왔어.
점심시간이었다.
“방금요?”
―응, 연락 한 번 시작했더니 바로 오겠다는 거야. 그래서 금방 일해야 돼서 몇 번 거절하다가 계속 오겠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지.
“그래서요?”
―진짜 한 20분? 커피만 마셨어.
“어땠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웃음을 묻혔다.
―나보다 두 살 어리더라?
“네, 맞아요.”
―뭐…… 사람은 진솔해 보이고 괜찮은 것 같더라고. 인물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고.
“네, 괜찮은 사람 같더라고요.”
―그런데 요령은 없더라.
“왜요?”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자기가 평생 결혼 안 하고 혼자 산 이유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야.
나는 조금 당황하며 물었다.
“왜 평생 혼자 살았대요?”
―예전에 20대 후반에 결혼할 여자가 있었대. 그런데 여자 쪽 집안에서 엄청 반대를 했다는 거야. 가난하다고. 결국 그렇게 헤어졌고, 여자는 세 달도 안 돼서 돈 좀 있는 남자랑 결혼을 했다더라고.
“저런.”
―그때부터 악에 받쳐서 일만 했대. 너무 서러워서, 가난이 싫어서 이 악물고 일만 했다더라고. 그러다 좀 먹고살만해지니 마흔이 다 돼 있더래. 선도 여러 번 보고 했는데, 거기서 서로를 보는 사람은 없더래. 서로의 조건만 따지고 있지.
“그쵸, 그런 경우 많죠. 요즘도 그렇잖아요. 뭐, 결혼은 현실이라지만…….”
―그렇지.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더래. 그냥 나이 찼다고, 남들 다 한다고, 조건 맞춰서 그냥 결혼하고 싶지는 않더래. 절대 행복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냥 혼자 평생 어머니 봉양이나 하면서 살 생각이었대. 그러다 날 보고 첫눈에 반했다나?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숙모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숙모도 여자였다. 아니, 그 말을 할 때만큼은 소녀가 됐다.
―그래서 말이지…….
숙모는 이일우와 만났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감정까지 쭉 늘어놨다. 나는 적당한호응을 하며 계속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은 고작 20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숙모가 나와 통화를 하는 시간은 벌써 20분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평소에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며 전화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그럴 일이 없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치 내가 숙모가 된 것처럼 신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가에 깊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숙모는 예전부터 신체적으로 건강했다.
하지만 요즘 숙모는 내게 취업을 시켜달라며 처음 찾아왔을 때보다 확실히 얼굴이 밝아진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직접 보지 않아도 얼굴이 얼마나 밝아져 있을지 느껴졌다.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게 정신적인 건강임을 새삼 깨달았다.
행복이란 건 참으로 좋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무엇보다도 쉽게 퍼질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