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8화
19. 줄 세우기 (3)
“가게야 이번 달까지만 하고 빼기로 했지.”
작은아빠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벌써요? 그게 됐어요? 요즘 공실도 높은데, 임차인 새로 들어왔어요? 아니면 그냥 안 될 텐데? 임대료 내야 되지 않아요?”
“가게 자체를 뺀다는 게 아니라 나만 나온다는 거야. 국밥집은 다른 사람이 통째로 인수하기로 했어.”
“아, 진짜요. 잘 됐네요.”
“잘 되긴 뭘 잘 돼. 권리금도 못 챙기고, 국밥 기술도 그냥 전수해줬는데.”
“그래요? 어차피 식당 시작하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좀 기다리기엔 좀 그런가?”
“요즘 언제 누가 들어올 줄 알고. 들어온다는 사람 있을 때 넘겨야지. 그래도 이것저것 들어간 돈은 받아가지고 그걸로 빚은 청산했다.”
“그래요?”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크게 냈다.
작은아빠가 진 빚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걸 벌써 다 갚았다니.
나는 함께 식당을 해서 빚도 청산하고 작은아빠가 더 편하게 지내길 바랐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한발 늦었다.
여전히 도움이 될 수야 있지만, 좀 더 드라마틱한 빛을 비추고 싶었다.
“그럼 그걸 평생 달고 사냐? 갚을 수 있을 때 싹 갚아야지.”
“가족들끼리 식사라도 해야겠네.”
“그건 나중에 하면 되고. 우리 같이 할 식당 컨셉은 제대로 정한 거냐?”
“삼촌하고 같이 정해야지.”
“그래도 먼저 제안한 만큼 생각해둔 게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같이 하자고 한 거 아니야? 대충 얘기는 했었다만, 이제 제대로 길 잡고 가야지.”
“음…….”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있기야 있지. 하나는 일단 깔끔한 한식집 스타일인데, 조금 퓨전 느낌으로 가는 게 어떨까 해요. 그렇다고 양식이나 중식이나 일식을 마구 섞는 건 아니고, 전통을 고수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저렴한 한식 부페 생각했어요. 싼값에 싱싱한 채소와 건강한 반찬을 먹을 수 있는 그런 곳.”
작은아빠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무조건 첫 번째로 가자.”
“왜요?”
“두 번째가 말이 좋아서 한식 뷔페지, 함바집 아니냐.”
“뭐, 함바집이랄 것까지는……. 아니, 함바집이면 어떻고.”
“네가 겨냥하는 게 박리다매식 음식장사냐? 아니, 그래. 마진 좀 낮추고 최대한 많은 손님 받는 거야 괜찮지. 근데 지금 네가 하는 거나 준비 중인 것들하고 맞냐 이거지.”
나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너도 알겠지만, 타겟층을 잘 설정해야 돼. 한식 부페로 가면 오피스 상권밖에 없어. 근처 직장인들이 싸게 밥 먹으러 오기 좋게. 뭐, 택시기사들도 좀 올 거고. 가끔 동네 아줌마들도 좀 오겠지. 근데 그런 장사는 한계가 있어. 일단 이미 너무 많아. 그리고 임대료 내면서 할 장사도 못 돼.”
국밥집을 운영하던 작은아빠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지금까지 국밥집을 했기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런 건 차리면 필연적으로 진상도 많이 꼬인다. 반찬이나 채소 같은 거 쌔빌라고 하는 사람들 없을 거 같냐? 무조건 있다.”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래도 그건 너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거 아닌가?”
“문제가 될 것들 중 일부를 말하는 거지. 당연히 문제가 수두룩해. 무조건 비싸게 받자는 건 절대 아니지만, 무조건 싸다고 좋은 게 아니야. 일단 건강 챙기려는 사람들 타겟으로 잡고 있는 거잖아.”
“그렇죠.”
“건강을 위해서라면 지갑을 열어놓는 사람들이야.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질 높고 맛좋은 거 먹으러 오는 거라고. 싸다고 찾아올 거 같냐? 아니, 네가 하는 거라고 올 수도 있기야 하겠지. 근데 그것만 믿고 장사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싸게 맞추려면 음식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작은아빠는 확신에 차서는 열변을 토했다.
“싸고 양 많고 맛있으면서 재료의 품질까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그런 게 어딨냐?”
“그건―”
“우리가 만들어내면 된다는 말 같은 거 하지 마라. 임대료랑 인건비는 어쩌려고? 땅 파서 장사하냐? 박애주의적인 정신도 좋은데, 그럴 거면 사업하지 말고 봉사활동해야지. 그리고 이미 그런 거 하고 있잖아. 장사할 때는 장사만 생각해.”
“흠…….”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들부터 챙긴 다음 다른 것들도 챙기는 거야.”
“예, 그렇죠.”
“네가 하고 싶다면 하는 거지만, 아니라고 보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돈 조금 더 받더라도 제대로 된 거 내야지. 많이 팔리기만 하면 장땡이 아니지. 진짜 건강한 걸 맛있게 먹어서, ‘아, 돈이 안 아깝다’ ‘이 정도면 이득이다’ ‘가성비 좋다’ 라는 말이 나와야지.”
“그럼 한식 부페의 가격을 조정하는 건 어때요?”
나의 물음에 작은아빠가 코웃음을 쳤다.
“인마, 한식 부페에는 중간이 없어. 시장조사 안 해봤어?”
“했죠.”
“아예 싸게 가거나, 아예 일반 부페처럼 운영해서 받을 만큼 받는 거야. 근데 값이 좀 나가는 곳이라고 무조건 퀄리티가 좋냐? 아니거든. 그리고 부페니까 당연히 메뉴 종류 많을 수밖에 없지? 그런 곳들 직접 가서 먹어봐라. 기가 막히게 맛있나. 절대 아니지. 제대로 된 조리사가 아니라, 알바들이 대다수거든. 아니면 신입들이 거쳐 가는 직장 개념이고.”
“삼촌은 꽤나 확고하네.”
“애초에 건강을 강조하면서 부페를 하는 것도 별로지 않냐? 너 예전에 부페 가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뭐냐?”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을 내놨다.
“뭐 먹을까……?”
“그거 말고.”
“글쎄요?”
“본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잖아. 부페 오는 사람들 중 80% 아니, 90% 이상은 과식한다. ‘매일 오는 것도 아닌데, 온 김에 많이 먹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부페의 인식이 그래. 그럼 함바집 개념으로? 그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오겠냐? 하루 종일 운전대 붙잡고 스트레스 쌓여 있는데 맛으로 찾지. 한두 번이야 오다가도 또 자극적인 맛 찾아서 떠나.”
공감이 가고 일리가 있었다.
“제대로 된 메뉴들 갖춘 퓨전 한식이든 뭐든 건강 강조하는 컨셉으로 해가지고, ‘오늘은 이거 먹어봤으니까 다음에는 저거 먹어봐야지’ ‘내일도 와야겠다’ ‘이건 무슨 맛일까’ ‘다이어트 시작했는데 앞으로 점심은 여기서 먹어야겠다’ ‘우리 어머니께서 요즘 입맛이 영 없다고 했었는데, 여기라면 잘 드시겠다’ 그런 생각들이 드는 곳으로 만들어야지. 그게 네가 추구하는 이념하고도 맞는 거 아니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는 말씀입니다.”
“네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 그러니까 무료로 건강상담도 해주고, 서민들도 건강을 챙기면서 맛도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을 원하는 거겠지. 근데, 저렴한 한식 부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거기서 기본 메뉴들 1인 요금에서 몇천 원 비싸다고 큰일 나지는 않아.”
“그래도 점심 손님들 중에서는 1만 원 넘어가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 많을 걸요?”
“그러니까 제일 가성비가 좋은 시그니처 메뉴 중심으로 잡아놓고, 사이드 추가할 수 있는 메뉴 좀 잡거나 세트도 잡으면 되지. 가격은 조금 더 비싸져도 합리적인 값에 양 괜찮고 질 좋은 음식 내놓고.”
“그럼 타겟층이…….”
“건강으로 잡을 거면, 전국에 퍼져 있는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 다 끌어 모을 생각으로 해야지.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의 외식 필수 코스 같은 걸로 만드는 거고.”
얘기를 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그럼 차라리 데이트 코스 느낌으로 만들면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거야 괜찮지. 가족들도 올 수 있고.”
“네, 아예 주류는 안 팔고요.”
“당연하지. 그럴 거면 이런 컨셉의 음식점을 하는 이유가 없지. 뭔가 하나 딱 정하면, 그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돼.”
“아직 메뉴들을 하나하나 잡아봐야겠지만, 가장 저렴한 메뉴 6,000원짜리 하나 놓고…….”
“6,000원?”
“네, 딱 하나만요. 부담 없이 일단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거죠. 미끼 메뉴죠, 미끼 메뉴. 그리고 그 외의 메뉴들은 원가랑 다 따져서 뭐 7,000원부터 시작해서 요리 같은 경우 몇만 원 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죠. 6,000원짜리 먹어봤더니 생각보다 가성비가 너무 좋고 맛있으면 다른 것도 관심이 가지 않겠어요?”
“그건 괜찮네.”
“이렇게 하면 직장인들 싸고 건강하게 점심 먹으러 오기도 좋고, 요즘은 회식문화도 많이 바뀌었으니 요리를 고를 수도 있고, 데이트 코스로도 인테리어만 깔끔하게 잘 뽑으면 저렴하게 식사하려는 학생들부터 돈 좀 쓰려는 커플들도 올 수 있겠죠. 깔끔한 한식 스타일이라 어른들 모셔오기도 좋고, 젊은 사람들 입맛에도 괜찮고.”
“그래, 그렇게 하면 괜찮겠네. 그럼 그 방향으로 가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을 거 같아요. 후식으로 차 같은 거 내주면 데이트 코스나 가족 모임 같은 걸로 더 좋을 거 같고.”
“그건 잘 생각해야 돼.”
“왜요?”
“테이블 회전율이 떨어지게 되잖아. 거기 비비고 앉아서 차 홀짝거리고 하느라 회전율 확 떨어지니까. 그럴 거면 가게 평수 자체가 커야 돼. 웬만한 손님들 다 받을 수 있게. 꽉 차도 여기저기 교차로 계속 빠져서 손님 받을 수 있게. 어디까지나 그만큼 손님이 몰려야 가능한 거지만.”
“그렇겠죠.”
작은아빠는 눈썹을 한 번 크게 들썩거렸다.
“어쨌든 방향성은 괜찮은 거 같다. 타겟층도 너무 고정되지 않아서 접근성도 좋을 거 같고. 제일 저렴한 메뉴를 6,000원으로 잡아서 다른 요리도 너무 비싼 건 무리겠지만, 마냥 싸지는 않지만 가성비 좋은 곳으로 밀면 되니까.”
“아! 그거 어때요?”
“아, 씨. 깜짝이야.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나는 멋쩍게 웃었다.
“갑자기 떠오른 게 있어서.”
“뭔데? 말해봐.”
“6,000원짜리는 점심 메뉴 한정으로 하면 되죠. 그래도 좀 넉넉하게 잡아서 오전 11시나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그리고?”
“저녁에는 좀 더 비싼 메뉴랑 요리 메뉴 위주로 팔아야죠. 그리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약간 휴식 겸 디너 준비로 브레이크 타임 잡고요.”
“브레이크 타임?”
“네, 아침에는 점심에 가장 많이 나갈 6,000원짜리 메뉴 위주로 준비를 제일 많이 해두고. 오후에는 다른 거 보충하고. 아침에 기본적으로 다른 것들도 준비를 하겠지만요. 그러니까 중간에 휴식도 하는 거고. 어차피 그 시간에는 사람들 많이 없잖아요?”
작은아빠가 피식 웃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건지, 아니면 일 죽어라 시키는 건지 헷갈리네.”
“딱히 삼촌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가게가 잘 굴러갈지만 생각했습니다.”
“이 쌔끼…….”
아직 메뉴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기에 갈 길이 멀긴 했지만, 기본적인 컨셉과 틀은 잡혀가는 듯했다.
행복 건강즙이나 곧 시작할 카페 웰웰과 건강 주스 사이트 그리고 후에 노우민과 진행할 음식점하고도 어느 정도 통일감도 유지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름은 정했냐?”
작은아빠가 물었다.
“이름요?”
“그래. 가게 이름. 사실상 브랜드 네임이잖냐, 누구나 꿈꾸는 프랜차이즈까지 생각하는 걸 거 아냐. 그러니까 미라클 헬스케어로 회사 등록한 거고.”
“그렇죠.”
“지금 행복 건강즙이랑…… 다른 데는 이름 뭐야?”
“인나랑 같이 하기로 한 카페는 웰웰이요.”
“웰웰? 뭐 개 짖는 소리야?”
“아니, 그 영어로 웰―웰. 뜻 자체가 좋은 거니까. 말 그대로 좋다는 거잖아요. 웰빙의 웰이기도 하고.”
작은아빠는 조금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난 무슨 동물병원이나 관련 샵 생각난다.”
“이미 정했어요.”
“뭐…… 인나가 거기 볼 거니까, 젊은 애들은 좋아할지도 모르지. 웰웰. 여전히 좀 짖는 거 같기는 한데, 아주 나쁘지는 않다. 좋고 좋은 거라니까.”
그 순간 머리에 스파크가 튀듯 팍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전에 고민하고 있던 가게 이름들을 한 방에 싹 몰아내는 느낌이었다.
“아!”
작은아빠가 인상을 찡그렸다.
“또 갑자기 소리 지르고 난리야. 이상한 놈이네 이거.”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뭘 그렇게 매번 갑자기 생각나냐. 미리미리 좀 생각하지.”
“생각해둔 것들 있었는데, 더 좋은 게 생각났어요.”
작은아빠는 팔짱을 끼며 턱짓을 했다.
“말해봐.”
“다온 어때요? 다온.”
“다온?”
“순우리말인데, 모든 좋은 일이 다 들어온다는 뜻이에요. 퓨전이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한식당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외우기도 쉽고.”
“나도 알아, 인마. 여기저기 ‘다온 뭐뭐’ 많잖아.”
“많은가?”
“제법 있기야 있지. 그래도 문제는 없지. 이름에 특허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여러 군데 있는 것들은 상관없어. 그럼 전국에 ‘원조’ 들어가거나 ‘전통’ ‘본가’ 이런 거는 다 문제되지.”
나는 실실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다온이 괜찮긴 한가 봐요?”
“어, 뜻이 좋잖아. 잘 어울리고, 좀 고급스럽기도 하고. 웰웰하고도 좀 맞고.”
“저도 그런 거 같아요. 그럼 다온으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