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6화
19. 줄 세우기 (1)
1
달칵.
상담실 문을 닫고 엄현석과 마주앉았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엄현석이 눈치를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가게에 없을 때도 많아서…… 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라 다행이네요.”
“하하, 제가 운이 좋았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는지……?”
“지나가다 들렀습니다.”
“예?”
엄현석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하하 웃었다.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대표님 뵌 지도 오래되고 해서 이렇게 찾아뵀습니다. 사실 안 계시더라도 이것만 좀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는 처음에 들어올 때부터 황금색 보자기로 꽁꽁 싸매놓은 직사각형의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앉을 때도 그것을 두 다리에 얹고 있었다.
안 그래도 뭔지 궁금하던 찰나였는데, 엄현석이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크기만큼이나 묵직한 소리가 났다.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엄현석이 보자기를 벗길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텅, 덜컹.
엄현석이 보자기를 요란스럽게 풀었다. 그는 낑낑대며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이게…… 잘, 안…… 풀리네요.”
그는 좀 더 보자기와 씨름을 하다가 벗기는 데 성공했다.
안쪽에는 스티로폼 박스가 들어 있었다.
먹을 건가?
엄현석이 스티로폼 박스에서 무언가를 빼려고 낑낑거렸는데, 이번에도 잘 되지 않는지 탈탈탈 흔들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스티로폼 박스에서 나온 것은 마감이 깔끔하게 된 나무상자였다.
“그게…… 뭔가요?”
내가 묻자 엄현석은 실실 웃으며 나무뚜껑을 열었다. 안쪽에는 하얀 포장지와 솔잎 그리고 송이버섯들이 곱게 담겨 있었다. 송이 특유의 향이 진하게 퍼졌다.
“이건…….”
가까이서 송이버섯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실제로 본 적은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마도 실제로는 처음 보는 듯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질이 좋은 것은 처음이었다.
“어후……. 이거 엄청 좋은 건데요?”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능력 덕분인지 한눈에 품질을 알 수 있었다.
엄현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씩 웃었다.
“역시 대표님께서는 바로 알아보시네요. 1등급까지는 아니지만, 2등급에 놓기에는 아까운, 그런 거라고 합니다.”
송이 중에 비싼 것들은 kg당 1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눈앞에 있는 송이도 kg에 100만 원은 나올 품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송이를……?”
“선물입니다.”
“예?”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것도 제가 선물을 받은 겁니다.”
“예에? 그걸 왜 저한테 주십니까?”
“아시다시피 바른 농부단에 속한 농부들 수가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이런 불경기에도 전체적으로 호황을 누렸죠. 양파 하시는 분들은 가격 폭락 때문에 고생 좀 하셨지만…….”
그는 다시 웃어 보이며 다시 말했다.
“아무튼, 다른 사장님들께서 제 덕분이라고 선물을 보내주셨더라고요. 괜찮다고― 괜찮다고― 해도 끝내 보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귀한 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대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타이밍에 왜 제가 생각이 나셨어요? 그리고 갑자기 대표님이 저를 대표님이라고 하시니까 괜히 이상하네요.”
“전에도 그랬지만, 이제 진짜 기업을 꾸려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뭐 호칭이야 이거나 저거나 그렇다 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표님 소리가 들으면 괜히 좋더라고요. 제 기준으로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엄현석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제가 감투질하고 그런 거 아닌 건 아시죠? 그럴 힘도 없지만요.”
“그럼요, 알죠. 그러신 분 아닌 거.”
“아무튼…… 제가 대표님께 어떻게든 감사 표시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른 농부단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던 것도 대표님 덕이고요.”
“아휴, 무슨 말씀을. 바른 농부단은 원래 잘 되고 있었잖습니까.”
“계속 성장세이긴 했죠. 하지만 대표님을 만나고, 함께하게 되면서 진짜 차원이 다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주문하시는 양 자체도 엄청나서 그 매출도 상당하고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건 제가 감사드릴 부분이죠. 유기농 채소랑 과일을 그렇게 싼값에 넘겨주시는데.”
“그렇다고 저희 쪽에서 손해를 보고 넘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버리는 상품 없이 다 판매할 수 있으니 이득을 보고 있는 거죠. 그래서 감사한 게 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지금 준비하시는 곳들도 저희 쪽과 계속 거래를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요, 항상 믿을 수 있는 상품들을 보내주시니 당연한 거죠. 계속 이렇게 함께 잘 되면 좋겠네요.”
“네, 저도요. 그래서 이렇게 약소하지만 선물을…….”
“그런데 이건 대표님께서 받으신 선물인데, 그걸 저한테 주셔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그전에 다 여쭤보고 왔습니다. 근데 다른 사장님들께서 저한테 1kg를 더 보내셨지 뭡니까. 저도 먹어봐야 한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을 좀 이상하게 드렸나요? 절대 제가 받은 걸 대표님께 넘기고 그런 건 아니에요.”
엄현석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뜻으로 말했던 건 아닙니다.”
“충분히 오해하실 수 있는 부분이라서, 제가 괜히 찔려서 이러는 거 같네요. 하하하하.”
“이거 참…… 힘들게 가지고 오셨는데, 안 받기도 그렇고…….”
“당연히 받으셔야죠. 아니, 받아주십쇼. 성의입니다.”
“그런데 이건 양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내가 송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2.5kg입니다.”
“2.5kg……. 어휴. 이 귀한 걸 제가 진짜 받아도 되는 건지…….”
“대표님 드리려고 가져온 거라니까요. 제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주십쇼.”
“전 다른 걸 딱히 준비한 게 없는데…….”
“제가 갑자기 불쑥 찾아왔으니 당연하죠. 그리고 제게 이미 선물을 주신 셈이죠. 처음에 제가 찾아뵀을 때도 문전박대하지 않으시고 얘기를 전부 들어주셨잖아요. 계약도 해주시고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미소를 짓다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문전박대도 당하셨나요?”
“어휴, 많이 당하죠. 결국은 영업이었잖습니까. 아무리 예의를 갖추고 노력해도 싫어하는 분들은 싫어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영업이 거의 없어졌어요.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뭐가 다 제 덕분이라고…….”
“엄밀히 말해서 대표님 덕분 맞습니다.”
엄현석이 갑자기 단호히 말해서 조금 당황했다.
나는 살짝 헛웃음을 치며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지?”
“방송 효과도 엄청났거든요. 덕분에 바른 농부단 가입 문의도 많았고요. 전부 가입으로 이뤄지지도 않았고, 저희와 비슷한 형태의 그룹을 만드는 단체들도 생겨나기도 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로 의미가 참 깊었습니다. 실제로 바른 농부단과 함께하는 농부와 업체가 늘어났고요.”
“잘 됐네요. 잘 됐습니다.”
“그러니 이건 꼭 받아주세요. 맛있게 드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대표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예, 그래야죠. 저 딱 봤을 때 큰 이상은 없어 보이죠?”
나는 잠시 집중해서 엄현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공기 좋은 곳에서 매일 고된 운동에 가까운 농사를 지어서인지 건강에 아무 이상도 없었다.
“네, 혈색도 굉장히 좋으시고 크게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아요. 혹시 뭐 걱정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전혀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요.”
“건강하십니다. 계속 건강 잘 지키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 저 송이버섯에 대해서 조금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네, 말씀하세요.”
“송이는 어디에 좋습니까?”
“송이요? 일단…… 독버섯은 당연히 제외하고, 버섯 자체가 몸에 좋죠. 칼로리도 낮고, 각종 영양소도 풍부하고, 식이섬유도 꽤 많이 들어 있고요. 버섯에 함유된 에르고스테롤은 햇빛에 의해 비타민D로 바뀌어서 장내의 칼슘 흡수도 돕습니다.”
“오…… 그렇군요.”
“비타민D가 굉장히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실내 활동이 길어진 현대인들의 경우 다수가 비타민D 결핍을 겪고 있죠. 뭐, 대표님께서야 농사를 지으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지만…… 아니,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네요.”
엄현석이 의외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가요?”
“예, 농사지으실 때 보통 모자 큰 거 써서 햇빛 다 막잖습니까? 거기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실 때도 있고,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실 거고…… 팔토시 끼거나 기능성 긴팔 입지 않으시나요?”
“그렇긴 합니다.”
“햇빛을 제대로 받아야 비타민D 수치가 올라가거든요. 면역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심혈관 질환이나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얘기가 조금 다른 길로 샜는데…….”
나는 괜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하나만 봐도 버섯이 그만큼 몸에 좋다는 얘기죠. 사실 비타민D 섭취만을 위해서라면 버섯보다는 영양제 하나만 먹어줘도 되는 거지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자연에서, 자연식으로 얻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말이죠.”
“네,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송이버섯도 워낙 귀하고 해서 향과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사치스러운 식품인 느낌이 강한데요. 효능도 뛰어납니다. 일단 항암효과와 면역력 증강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수많은 버섯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요. 균사체에 있는 다당류 성분인 글루칸이라는 물질이 있는데요, 그게 이러한 효과들을 냅니다.”
엄현석이 실실 웃었다.
“이야…… 대표님은 뭐 모르시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있죠. 몇 가지 더 대표적인 효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버섯의 구아닐산이라는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합니다. 여러 가지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주죠.”
“오호…….”
그는 그냥 물어본 건 아닌지 필기를 해가며 듣고 있었다.
듣는 사람이 저 정도 반응을 보이면 내 입장에서도 얘기를 할 맛이 난다.
“철분이 많아서 빈혈도 예방하고, 임신기와 수유기에도 좋죠. 피부미용에도 좋고, 소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이 정도가 대표적인 효과들입니다.”
“이야……. 괜히 비싼 게 아니군요.”
엄현석의 감탄에 나는 왠지 모르게 곤란한 미소가 나왔다.
“분명히…… 송이버섯의 효능이 훌륭한 건 맞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훨씬 저렴한 대체제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래도 몸에도 좋고 맛도…….”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하하 웃으며 다시 말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송이버섯을 먹어본 적이 없네요.”
“그래요?”
“예, 사장님은 많이 드셔보셨나요?”
“아니요.”
“그래도 드셔본 적은 있으시죠?”
“없네요.”
“없으세요?”
이론적으로 송이버섯이 어떤 맛과 식감을 지녔는지는 알고 있지만, 진짜로 맛을 본 적은 없었다.
“지금 시간 어떠세요?”
나의 물음에 엄현석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시간이요? 뭐…… 다른 일정이 특별히 있지는 않은데…….”
“그래요? 식사는요?”
“아, 식사요? 대표님은요? 식사하셨나요? 이제 점심 때라 못 하셨죠? 같이 식사하실래요?”
“좋죠. 그러고 싶어서 물어본 거기도 하고요.”
“그럼 어디로 가실까요? 제가 이 주변은 잘 모르는데, 근처에 괜찮은 곳 있나요?”
“그냥 여기서 드시죠.”
“여기서요?”
엄현석은 조금 당황하는 것 같더니 생긋 웃어 보였다.
“그것도 좋죠. 저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귀하신 손님이 귀한 선물을 가지고 오셨는데 아무거나 대접할 수는 없죠. 그럼 같이 식사하시는 겁니다?”
“예, 좋습니다.”
“혹시 저희 직원들도 같이 먹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안 될 거 있나요.”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우민아.”
“네에에에.”
노우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실 문이 열렸다.
“부르셨습니까?”
녀석은 들어와서는 테이블 위에 있는 송이버섯을 힐끗 쳐다봤다. 살짝 놀란 느낌이었다.
“저기 앞에 정육점 가서 고기 좀 사올래?”
내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고기요?”
“응, 소고기로.”
“얼마나 사와요? 부위는요?”
“부위는 알아서 이것저것 사오고, 우리 직원들 다 먹고 조금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고기는 끊기면 안 된다.”
노우민이 씩 웃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근 정도는 네가 요리할 걸로 사와.”
“요리요? 제가요?”
“그래.”
“알겠습니다.”
“더 필요하면 더 사도 돼. 아끼려고 하지 말고.”
“네! 그런데 어디 걸로 사올까요?”
“한우, 미국산, 호주산 이것저것 다 사.”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녀석이 곧장 상담실을 나갔고, 엄현석은 눈가에 주름이 가도록 활짝 웃었다.
“이야, 소고기 먹는 겁니까? 소고기 사주는 사람은 조심하라던데.”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다더군요.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래요.”
“푸하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잘 보이고 싶어서 대접하는 거니까.”
“에이, 또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아무튼 실컷 먹어보죠.”
그리고 송이버섯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놈이랑 같이요.”
“송이요?”
“네, 저희 둘 다 못 먹어봤잖습니까. 오늘 실컷 먹어보죠. 1kg 정도면 다 같이 먹기에 충분하겠죠?”
“어휴…… 저야 좋기는 한데…… 그래도 선물로 드린 귀한 거를 혼자 드시지 않고…….”
“나눠먹어야 더 맛있고 좋죠. 워낙 많이 주셔서. 이번 기회에 대표님이랑 직원들한테 점수도 좀 따는 거죠.”
앞으로 계속 함께 갈 사람들이었다. 송이버섯과 소고기를 먹을 자격 정도야 차고 넘쳤다. 먹는 것에 무슨 자격이 있겠냐마는.
앞으로 카페 웰웰과 온라인 건강 주스 사이트 그리고 음식점들을 운영하게 되면 엄현석을 포함한 바른 농부단과의 거래 규모는 더 커질 예정이었다.
이것도 접대고 영업이다. 엄현석이 먼저 다가왔으니 세상에서 제일 쉬운 영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