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5화
18. 대표 (4)
이지나는 나와 눈을 마주치다가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민희재는 마지막까지 정효원이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왔다.
정효원은 자리에 앉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말을 꺼냈다.
“혼자 오셨어요?”
“네…….”
“뵙자마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실례일 수도 있지만, 보호자 분이 함께 다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정효원이 생긋 웃어 보였는데, 보랏빛의 갈라진 입술만 눈에 들어왔다.
“그럴 여건이 안 돼서요. 아직은 혼자 다닐만해요. 멀리 다닐 때는 요즘 콜택시도 잘 돼 있으니까…….”
“네……. 그러시다면 다행인데…….”
나는 괜히 책상에 시선을 뒀다가 다시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럼 발병 시기와 거친 치료들 그리고 현재 상태까지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정효원은 조금 놀라며 민희재에게로 시선을 옮기고는 소곤거리듯 물었다.
“네가 얘기했어?”
“아니.”
민희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효원은 다시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하긴, 딱 봐도 환자 같죠?”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는 직장암 4기입니다. 1년 반 전에 알게 됐어요. 수술도 했고, 항암은 7차에서 포기했고요. 수술할 때 전부 도려내긴 했는데, 재발한 상태에요. 다니던 병원에서는 호스피스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정효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직장 대부분을 잘라낸 걸로 아는데 거기서 또 재발했고, 30%밖에 안 남은 간에도 재발한 상태에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인공항문이나 배변주머니는 안 달았다는 정도인 거 같아요. 이제는 그런 문제가 아니지만…….”
나는 심각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여전히 정효원을 봤을 때는 아버지가 전해준 민간요법이 가장 강하게 떠올랐다.
“살고 싶지만…… 그건 힘들다는 거 알아요. 그냥……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즐겁게 있다가 가고 싶어요. 가능한 오래 살 수 있다면 더 좋고요.”
정효원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의지가 꽤나 꺾여 있었다. 적어도 살아남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랬다.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생존하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 했다.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고 싶네요. 아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알려드리는 것뿐이죠. 전적으로 효원 씨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혹시 압니까? 기적이 일어날지.”
정효원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이 없을 텐데 말이죠.”
“기본적인 것들은 이따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효원 씨와 희재 씨 두 분 모두 공통되는 것들이거든요. 기본적인 관리법들에 가까울 겁니다. 아마 대다수는 이미 알고 계신 것들도 있겠지만요.”
나는 머릿속의 민간요법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것 역시 희재 씨도 복용해도 좋습니다. 핵심은 알루미늄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은 베이킹 소다와 메이플 시럽입니다.”
“베이킹 소다랑 메이플 시럽이요?”
“네. 적어드릴 거지만 그래도 잘 들으세요. 일단 물 한 잔을 데웁니다. 너무 뜨겁지 않게요. 한 65도 정도. 그리고 베이킹 소다를 티스푼으로 한 숟갈 넣어 잘 풀어줍니다. 그리고 메이플 시럽을 티스푼으로 세 숟갈 넣습니다. 그리고 전부 잘 섞은 뒤 식전 30분에 마시면 됩니다. 이걸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드세요.”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이건 첫 날 기준입니다. 다음 날은 한 번에 베이킹 소다 두 숟갈, 메이플 시럽은 여섯 숟갈 넣으세요.”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먹으면 되나요?”
“아니요, 셋째 날은 또 다릅니다. 양은 같으나, 이때부터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드십시오.”
정효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아요. 워낙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느라 그건 해본 적이 없지만요.”
“이건 단순히 연명만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 완치를 바라고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효원 씨의 의지가 중요하고요.”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직 설명이 안 끝나서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죄송은요. 베이킹 소다는 소디움 바이카보네이트가 100%인 것으로 구입하셔야 하고, 메이플 시럽은 유기농 제품으로 B등급을 구입하셔야 합니다. B등급이 A등급보다 단맛이 덜하고 걸쭉하며 향이 진합니다. 씁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A등급도 괜찮긴 한데, 색이 어두운 것을 고르세요.”
“네, 꼭 그것들로 구입할게요.”
“이게 원리는…… 베이킹 소다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인데요. 메이플 시럽을 더하는 이유는 암세포가 베이킹 소다만 넣어주면 흡수를 하지 않습니다. 암세포가 좋아하는 게…….”
“당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메이플 시럽의 단맛으로 암세포를 속이는 거죠. 기왕이면 몸에 안 좋은 설탕보다는 유기농 메이플 시럽으로 대체하는 거죠. 메이플 시럽 대신 꿀 같은 걸 사용할 수도 있긴 한데, 가능하면 제가 말씀드린 것들 그대로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정효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럴게요.”
“이게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의미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암이 기관 내에 제한돼 있는 경우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간의 경우 직접 접촉되지는 않아 치료 효과가 얼마나 될지 모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고 아예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직장암을 잡아준다면, 전체적인 신체의 컨디션이 올라가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면, 간도 기대해볼 수 있겠죠.”
“그렇겠네요.”
“간의 70%를 절제하셨다고 했죠? 그러고도 이렇게 지내실 수 있는 건 간의 재생능력이 뛰어나기 때문 아닙니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노력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민희재와도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말했다.
“아까 희재 씨도 이 요법을 쓰셔도 좋을 거라고 했는데요. 희재 씨의 경우 현재 수술과 항암이 잘 돼서 암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시잖아요?”
“네, 맞아요.”
“딱 다음 정기검진까지만 해보세요. 그리고 다음 검진 때 깨끗하면 베이킹 소다와 메이플 시럽 복용은 멈추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관리법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운동…… 너무너무 힘들어도 하셔야 합니다.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체의 기능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리고 체온을 올리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요.”
정효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암세포가 열을 싫어한다더라고요.”
“맞습니다. 아마 해보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체외에서 열을 쬐는 걸로는……. 글쎄요,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직접 운동을 해서 체온을 올리는 것보다는 효과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열심히 움직일게요.”
“그리고 드시면 좋은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늘, 현미, 퀴노아, 브로콜리, 양배추, 무, 케일, 생양파, 등을 드시면 좋은데요. 전부 유기농으로 드시고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피해야 할 것들은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래도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제된 설탕이나 탄수화물은 무조건 피하셔야 합니다. 과일도 당분이 높은 것은 안 좋습니다. 설탕이 든 탄산음료 같은 건 독이라고 생각하시고요.”
여기까지였다.
그 외에 몇 가지 질문을 받았고, 최대한 상세히 답변을 해줬다.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머지는 환자 본인에게 달려 있었고,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정말 감사합니다.”
민희재가 고개를 꾸벅였다.
“그런데 정말 그냥 가면 돼요? 뭐라도…….”
정효원은 무료로 상담을 받고 가는 게 마음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민희재도 곧바로 지갑을 꺼내들었다.
“즙이라도 좀 사갈게요.”
나는 웃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전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아니, 그래도…….”
“나중에 필요하신 거 있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하세요. 그게 무겁지도 않고 편하시잖아요. 가격도 같습니다.”
“그럼……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건강상담을 마쳤다.
건강상담을 시작한 이후로 암환자를 그리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암 치료를 전문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막상 암환자와 건강상담을 하게 되더라도 난감할 따름이었다. 자신이 없었으니까. 암을 비롯하여 위중한 병일 경우에는 핵심이 되는 민간요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것들은 전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관리법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민간요법이 떠올랐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진심으로 정효원이 완치되길 바랐다. 민희재도 지금처럼 계속 정밀검사에서 이상이 없길 바랐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기도 하지.
어쩌면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급하게 민간요법을 전해준 것일지도.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그리고 아빠가 떠올랐다.
그러다 한 사람이 생각났다.
8
“아이고, 이 밤중에 무슨 일이래유? 갑자기 오신다고 해서 놀라가지고…….”
이필순 할머니가 나를 맞이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즙과 약소한 선물들을 건넸다.
“이거 별건 아니지만…….”
“하이고, 또 뭘 이렇게 잔뜩 사오셨어유. 안 그러셔도 되는디. 얼른 들어오셔유, 밥 차려드릴게.”
“아니요, 아니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밥 먹고 왔어요.”
진짜로 먹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밥까지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당일에 갑자기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노우민의 어머니인 김현자가 생긋 웃어 보였다.
“죄송은요, 감사하죠.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뵈려고 했는데.”
“요즘은 좀 어떠세요?”
“비슷비슷해요. 그래도 요즘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에요. 운동도 꾸준히 하는 중이고요.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로 이렇게 오셨어요?”
“그냥 어머니 한 번 뵈려고 했죠.”
김현자를 볼 때는 반짝이는 민간요법이 없었다. 정효원을 봤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정효원에게는 베이킹 소다와 메이플 시럽을 사용하는 민간요법이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에 김현자에게는 딱 맞는 민간요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 민간요법이 특별한 건 맞지만,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나는 김현자와 약 20분 정도 더 대화를 한 뒤 다시 서울로 향했다.
9
또다시 월요일이 돌아왔다.
휴일이란 게 거의 없다시피 계속 지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잠깐 멈추고 싶었으면 이렇게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지.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해서는 하는 거였고, 그 결과물이 계속 나와주니 하는 맛이 났다.
행복 건강즙 1호점은 현재 포화 상태였다.
나와 노우민, 강인나, 숙모, 이지나 그리고 3명 더.
이제는 내가 거의 들를 일이 없었다.
건강상담이 있을 때만 상담실을 사용할 뿐이었다.
숙모는 조만간 2호점에서 새로운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할 예정이었고, 강인나도 곧 카페 오픈에 집중을 할 예정이었다.
노우민은 당분간 1호점에 더 출근할 예정이었다. 일의 체계가 완전히 잡힐 때까지는 녀석이 1호점을 책임지는 셈이었다. 조만간 녀석과도 함께 새로운 가게를 할 예정이었기에 조금씩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전에 내가 행복 건강즙 2호점과 온라인 건강 주스 판매 그리고 카페 웰웰의 자리를 잡아야겠지만.
게다가 작은아빠와 한식 전문점 준비까지 해야 됐다.
상담실에 앉아 해야 할 일들을 쭉 적어놓고 하나씩 체크하던 중이었다. 내 글씨들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프린트를 한 것보다도 가독성이 좋게 느껴졌다. 악필 중의 악필이었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삶을 살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나씩 체크를 하다가 중요한 것 하나를 아직까지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차.
매번 차로 이동할 일이 있으면 렌트를 하고 있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다.
“어떤 걸로 뽑지……?”
자동차 영업을 하다가 일진 논란까지 일으켰던 안영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새끼……. 그 지랄만 안 했어도 한 대 팔아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한테 사면 샀지, 걔한테는 안 샀겠다.”
나름대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일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위한 선물을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까.
그러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정효원이에요. 지난 주에 상담 받았던…….
“아, 네. 안녕하세요. 좀 어떠세요?”
―그것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너무 좋아서요!
정효원의 힘 있는 목소리에 당황했다.
“그래요?”
―네! 이렇게 밥을 많이 먹어보는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에요. 너무 좋아졌어요. 자고 일어날 때도 개운하고요. 너무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하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계속 베이킹 소다 요법 유지하시고, 제가 알려드린 관리법들도 잘 실천하세요. 잘 드시고, 운동도 하시고요.”
―네, 네. 그래야죠.
“벌써 효과를 몸으로 느끼신다니 너무 기쁩니다. 분명히 완치까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조만간 한 번 찾아뵐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죄송은요, 안 그래도 생각 많이 했는데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감사하죠.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네, 푹 쉬시고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입가에서 미소를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잘 됐네.”
다시 할 일들을 체크하던 도중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네, 들어오세요.”
강인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빠, 밖에 그 대표님 오셨어.”
“대표님? 어떤 대표님?”
“그 있잖아, 멀쩡하게 생긴.”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누군지도 안 물어봤어?”
강인나는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게?”
“에라이……. 내가 나가볼게.”
상담실 밖으로 나서자 말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바른 농부단 대표 엄현석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잘 지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