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4화
18. 대표 (3)
6
몸을 착 감싸는 듯한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던 그곳.
“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것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방을 굳이 살펴볼 필요는 없었다.
분명히 나 혼자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를 내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런 건 또 처음이라 참…….”
다른 걱정은 없었다.
오랜만에 ‘요단 방’에 왔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람.
요단 방은 내가 이곳에 붙인 이름이다.
죽는 것을 두고 요단 강을 건넌다고 하지 않는가.
요단 방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요단 강(Jordan river)에 대해 알아보니 꽤나 흥미로웠다.
요단 강은 죄를 씻는 곳이고, 천국으로 건너가는 곳이며, 복된 처소로 들어가는 통과문인 동시에 하나님의 처소에 이르는 길목이자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곳이라고 한다.
요단 방이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곳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곳이라 여긴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요단 방에서 나를 만날 수 있다.
원래는 단순히 만남의 장소로 여기는 곳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저승으로 가기 전에 들르는 통과문이라 예상한다.
이렇게 자리가 마련돼 있는 건 저승 면접관 같은 것과 마주하기 위함이 아닐까.
당연히 어디까지나 나의 예상이다. 죽고 나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겠지.
“할아버지! 할머니!”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갑자기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대체 왜 여기에 온 거지?
영문을 모른 채 두리번거리다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요단 방.
혹시 나도 이곳을 통해 저승에 갈 때가 된 걸까?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죽은 걸까?
소변이 마려운 느낌과 함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호흡도 금세 거칠어졌다.
두려웠다.
죽는 게 무서웠다.
예전부터 그랬다. 죽는 게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니, 있기는 할까?
나는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평균치보다 높았다. 그러니 건강염려증 따위에 시달렸지.
그러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재회를 한 뒤에는 조금 나아졌다.
현실에 충실하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바르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다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다.
막상 죽음이 다가온 것일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니 전보다 더 두려웠다.
언젠가 죽으리란 것도 알고, 그 다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안다.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잃을 게 많아지니 더 죽기가 싫다.
예전이었다면 지금 상황을 달갑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고통 없이 잠들듯 평온하게 죽은 셈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들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냐마는.
그렇게 혼란과 공포의 가운데서 고개를 바삐 움직이고 눈알만 열심히 굴렸다.
요단 방.
이 따스하고 평온했던 공간이 어둡고 차가운 곳으로 변하기까지는 수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어……?”
―오랜만이구나.
마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십여 년 만에 듣는 목소리지만, 여전히 귓가에 생생했던 그 목소리였다.
“아버지……?”
―그래, 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어디 계세요?”
―지금은 사정이 있어 직접 만날 수가 없구나. 그 사정도 말할 수가 없고. 그래서 이렇게 안부를 묻는다.
“정말……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여기서 바쁘게 잘 지낸다. 네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구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느끼고 있었고, 아버지도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화통화하는 거 같구나.
“그러게요.”
―일은 할 만하냐?
“바쁘기는 한데 재밌어요. 보람도 있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다.
“각각 어떤 토끼들인데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사람들도 돕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게요.”
―편히 앉아 있어.
“그럴…… 까요?”
―그래, 나도 앉아 있다.
아버지가 병을 얻기 전에는 꽤나 친했다. 일반적인 부자지간보다는 훨씬 가까웠다. 호칭 자체도 ‘아버지’보다는 주로 ‘아빠’라고 부르곤 했다. 존댓말을 쓸 때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반말로 편히 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투병생활이 시작된 이후로 언젠가 다정했던 부자간의 대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호칭이 아빠에서 아버지로 바뀌지는 않았다. 아예 호칭을 쓸 일이 없었다. 언제나 무거운 공기에 갇혀 있었고, 딱딱한 대화만이 오갈 뿐이었으니까.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어색함이라는 벽이 서 있었다.
아버지도 그런 어색함을 느끼는지 말이 없었다.
언젠가 아버지와 재회하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더라.
예전에는 그런 생각만 들었다.
원망에 가까운 말.
왜 그렇게 화를 냈냐고.
투병생활이 길어지면서 다정다감했던 아버지는 언제나 화만 냈었다. 나를 보면 언제나 화낼 준비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정을 떼는 거라고들 한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환자의 인성 같은 걸 보호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보호자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으니까. 실제로 간병을 하는 보호자들 10명 중 6명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당시에도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다. 감기몸살만 걸려도 얼마나 짜증이 나고 예민해지는가. 그런데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 있고, 말 그대로 죽을 만큼 아프니 예민해질 수밖에.
그래도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난 뒤에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었다.
‘욕을 먹더라도 좀 더 웃으면서 더 다가서볼 걸’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다고 100% 이해를 한 건 아니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궁금하다.
왜 그렇게 화만 냈었는지.
기회가 왔지만 차마 그걸 물을 수는 없었다.
나는 가만히 천장의 한쪽 구석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맞은편 의자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며 목소리를 냈다.
“항상 부족한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죠?”
―나아졌다 뿐이겠냐. 아주 훌륭하지.
“전부 가족들 덕분이죠. 더 열심히 잘해보려고요.”
―그래, 넌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만 가봐야겠구나. 다음에는 꼭 직접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나는 괜히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여기서 봐야 됩니다? 너무 빨리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면 곤란하잖아요.”
―어이구, 못하는 소리가 없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엄마도 잘 지내죠?”
―그럼. 잘 지내지.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네.”
―곧 가봐야겠구나. 허용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다음에 또 봬요.”
―오늘 이렇게 통화를 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단다.
“어떤 이유요?”
―할아버지가 너한테 전해주라고 한 민간요법이 하나 있거든. 최근에 만난 이탈리아 출신의 의사가 알려줬다고 하는구나.
“의사가 민간요법을요?”
―응, 지금 그걸 전수해주마. 건강 잘 챙기고, 잠 잘 자면서 지내라.
“아, 네. 아빠도 즐겁게 잘 지내고 계세요. 다음에 봬요.”
―그래.
정수리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고생 많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다. 내게 직접 건네는 것보다는 중얼거림에 가까웠지만,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순간 목구멍이 확 뜨거워지며 울컥했다.
“저도요…….”
7
똑똑똑.
노크 소리에 잠에 확 깼다.
“허억.”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가게의 상담실이었다.
잠깐 조는 사이에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온 것이었다.
“사장님?”
이지나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네, 들어오세요.”
열린 문틈으로 이지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건강상담 받는다고 오셨는데…….”
“아, 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엥.”
이지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안내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20대 중반의 여자였다. 마른 체구였고, 마치 옛날 남자 고등학생처럼 기르다 만 듯한 짧은 머리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암환자.
그녀를 보자마자 알 수 있던 점은 직장이 상태가 가장 안 좋았다. 간도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눈을 동그란 모양의 눈을 빛내며 생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앉으시죠.”
나는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여자와 마주앉았다.
“민희재 씨 맞으시죠?”
“네, 맞아요.”
여자의 머리 상태로 봐서는 이미 항암치료를 마친 사람으로 보였다.
“어떻게 오셨죠?”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며 물었다.
“이미 예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암환자에요.”
뻔한 대답을 들었는데도 착잡함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어디부터 얘기할까요? 치료할 때부터? 아니면…… 처음부터 할까요?”
굉장히 무거운 얘기인데도 민희재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마치 지난주에 앓다가 다 나은 감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전부 해주세요.”
“처음에는 화장실에 갔다가 혈변을 봤어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이외에는 아무 증상도 없었고요.”
“그게 언제인가요?”
“작년이요. 이후로 혈변이 반복돼서 병원에 갔죠. 검사를 받았더니 직장암 4기고, 간 일부에 전이가 된 상태였어요. 직장 대부분을 절제하고, 간도 30% 절제했습니다. 이후로는 항암치료를 총 12주 동안 했고요. 항암제와 방사선 둘 다 사용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면 예후가 더 안 좋다고들 한다. 젊은 만큼 암세포 성장도 빠르기 때문이다.
“흠……. 지금 치료를 마치고 얼마나 되신 거죠?”
“수술하고, 항암 12차 마치고, 6개월 뒤에 정밀검사 한 번 받았고, 이제 다음 달에 또 정밀검사 받아야 하니까…….”
그녀는 손가락을 접으며 계산을 하더니 해맑게 말했다.
“한 1년 3개월? 4개월? 그 정도 된 거 같네요.”
“첫 정밀검사 결과는 어땠나요?”
“다행히 그때는 깨끗했어요.”
여러 가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나는 조금 전보다는 비교적 밝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아마 다음 검사 때도 그러실 겁니다.”
“그게 걱정이에요.”
“다시 재발했을까 봐요?”
민희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암이란 게 치료를 마치고 나서 1년차에서 2년차 사이에 가장 재발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다’ 생각하면서 살긴 했는데, 막상 다가오니 겁이 나네요.”
“아무래도 재발을 막기 위해 건강관리법을 알고 싶으신 거겠죠?”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리고 말기 암환자를 위한 관리법도요.”
“벌써 재발했을 때를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줄곧 밝았던 그녀가 어두운 얼굴을 했다.
“제가 상담 예약할 때 둘이서 같이 와도 되냐고 문의드렸었는데…….”
내게 전달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관없는 것이긴 했지만.
“아, 네, 네. 그런데 다른 분은……?”
“이제 곧 도착할 거예요. 차가 막혀서 조금 늦는다고 했었거든요.”
“오시는 분이……?”
“저랑 똑같은 직장암 4기거든요. 암 투병환자들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 저는 예후가 좋았고…….”
“다른 분은 안 좋았군요.”
민희재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래서 같이 여기에도 와보자고 한 거거든요.”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나의 말에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잡은 이지나의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시면 돼요.”
민희재보다 훨씬 마르고 안색이 나쁜 긴 생머리의 여자가 힘겹게 걸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내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도우려는데, 그전에 이지나와 민희재가 도와서 여자를 앉혔다.
“안녕하세요, 정효원입니다.”
여자가 고개를 꾸벅이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듯 번쩍이며 민간요법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일러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