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3화
18. 대표 (2)
3
이상엽과 정영신 두 사람이 휩쓸고 간 뒤, 가게가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숙모가 방긋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고생 많으셨어요.”
“응, 새로운 직원들은 언제 온다고 했지?”
“금요일에 한 명 투입될 예정입니다. 순차적으로 총 4명 들어올 거예요.”
“4명이나?”
숙모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숙모도 2호점으로 가시고, 인나도 빠지고, 우민이도 나중에 다른 데로 빠지면 그 정도 필요할 거 같아서요. 1명은 사이트 관리 위주라서 사실 출퇴근도 탄력적으로 시킬 생각이고요.”
“아하…….”
“가게 영업시간 자체도 줄일 예정이에요. 어차피 직접 방문하시는 손님들 적으니까, 저만 오후에 한 번씩 들르는 식으로 하려고요. 새로 오시는 분들이 엄청 잘해주실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인원도 여유 있게 하고요.”
“2호점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숙모 포함해서 10명 가까이 될 것 같아요. 그중에 1명은 미담 한의원 쪽에서 한 번씩 한약사가 들를 예정이고요.”
“엄청 크네.”
“기계 대수도 많고, 다뤄야 되는 게 워낙 여러 가지니까요. 몇 가지 레시피는 겹치게 일을 하겠지만, 그건 만약의 경우 땜빵을 위한 거고요. 대부분 자신이 맡은 특정 분야가 있게 하려고요. 그래야 일도 손에 더 잘 붙고 효율이 좋으니까.”
“그것도 그렇겠다.”
숙모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그럼 내일 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언제나처럼 가게에는 강인나와 둘만 남아 있었다.
“카페 시작하면 왠지 여기가 그리워질 거 같아.”
강인나의 말에 내가 코웃음을 쳤다.
“몇 달이나 일했다고.”
“그래도 느낌은 엄청 오래된 거 같단 말이야.”
“그렇긴 하지…….”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오늘 뭐 또 특별한 거 있나?”
“딱히. 그래서 영업시간 줄이려는 거야. 오후 6시 이후로 가게를 열어놓는 의미가 거의 없거든.”
“그러게.”
“그래도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분명히 있지?”
내가 노트를 꺼내들자 강인나가 생긋 웃었다.
아직 직접 만들어보는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단 레시피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짜보고 있었다.
나도혜와도 따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요일별 음료수 메뉴를 구상했다.
제법 바쁘긴 했지만 충분히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온라인 건강 주스 브랜드와 카페만 두고 진행한다면 그랬다.
하지만 다른 일까지 손을 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승곡선을 그리는 매출은 떨어질 줄 몰랐고, 머릿속에는 구상 중인 것들이 매일매일 떠돌아다녔다.
당장 시작은 아니어도 밑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4
“조심히 들어가.”
“응, 오빠.”
강인나가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하철역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작은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자그마한 국밥집 앞.
작은아빠가 운영 중인 식당이었다.
띄엄띄엄 앉아 반주를 곁들여 국밥을 먹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내가 들어서자 작은아빠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 웬일이냐?”
“그냥 보고 싶어서 들렀죠.”
“보고 싶긴……. 뭐 할 말 있냐?”
“많이 바빠요?”
“보면 모르겠냐?”
작은아빠는 주방 쪽으로 다가가 말했다.
“나 여기 조카 와가지고,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주방을 맡고 있는 중년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다녀오세요.”
작은아빠가 다시 몸을 돌려 가게 밖으로 향하다가 멈췄다. 그리고 카운터 옆에 있는 자그마한 자판기를 톡톡 치며 물었다.
“커피 마실래?”
“좋죠.”
종이컵에 담긴 밀크커피를 각자 하나씩 들고 가게 밖으로 향했다.
호록.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맛이었다. 몸에는 분명히 안 좋은데 이 달짝지근한 맛이 가끔은 그립다. 이거 한 잔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오히려 건강에 좋을지도.
“뭔데, 무슨 일인데?”
작은아빠는 언제나처럼 조금은 툭툭 내뱉듯 물었다.
“요즘 국밥집은 좀 어때요?”
“뭐 비슷하지. 그냥저냥 적자만 면하는 수준이지.”
“삼촌 요리 잘하나?”
“그래도 조리사 자격증은 다 있어 인마. 기술 전수받는다고 돈 써가면서 배우러 다니고.”
“아, 그건 몰랐네.”
“질문이라고 하냐 인마. 괜찮게 하니까 먹는 장사하지. 너 어렸을 때도 내가 이것저것 몇 번 해줬잖아. 너 잘 먹었어.”
작은아빠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뭔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해 인마.”
“이게 삼촌이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는데…….”
“뭔데?”
“삼촌 나랑 일 하나 해볼 생각 없어요?”
작은아빠가 헛웃음을 쳤다.
“뭐, 사람 죽이려고 그러냐? 물어보는 게 뭐 그런 식이냐?”
“좀 이상했나?”
“그래 인마, 엄청 이상했어.”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삼촌이랑 같이 일 하나 시작해보면 좋을 거 같아서.”
“나보고 즙 팔라고?”
“아니요.”
“그럼?”
“음식점.”
“음식점?”
작은아빠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다시 말했다.
“이미 하고 있잖아.”
“다른 거 같이 해보자는 거죠.”
“다른 거 뭐? 그리고 여기 국밥집은 어떻게 하라고?”
“여기 접고 하자는 거죠.”
“이거 접으라고?”
작은아빠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국밥집 간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뭐 어떤 가게를 하자는 건데? 생각해둔 건 있고?”
“있으니까 얘기를 꺼냈죠.”
“말해봐.”
“세부적인 건 같이 잡아가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한식당을 했으면 해서요.”
“한식당?”
작은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야, 한식당은 그냥 차리면 알아서 굴러 가냐? 한식당하려면 너 지금 하는 거 못해.”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사람 쓰게? 사람 쓴다고 다가 아니야. 사장이 자리에 있어야지. 특히 음식 장사는 더 그래.”
“자리 지키면 되죠.”
“다른 사업들은 어떻게 하게?”
“삼촌이 국밥집 접고 올인하면 되지.”
“뭐?”
작은아빠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흘렸다.
“나한테 네 가게 점장하라고?”
“공동 대표죠, 공동 대표.”
“나 이거 가게 빼봤자 손에 남는 거 거의 없어. 내가 어떻게 새로 가게 차려서 너랑 같이 동업하냐?”
“삼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말 꺼낸 거니까 쭉 할게요. 메뉴 개발이나 경영, 마케팅, 투자는 같이 하지만, 운영은 삼촌이 해주셨으면 하거든요. 당연히 삼촌이 직접 운영하니까 수익은 더 가져가실 거고.”
작은아빠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지금 이거 접고 새로 일 벌일 만큼 자금이 안 따라줘.”
“초기 비용은 제가 댈게요.”
“씁…….”
작은아빠의 이마와 미간에 잔뜩 잡히는 주름에서 얼마나 고민이 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네가 초기 비용을 대겠다고?”
“예.”
“그런데 수익 배분은 내가 더 크고?”
“저도 관여는 하겠지만, 직접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건 삼촌일 테니까요.”
“하…… 이거 참.”
나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꽤 오래 고민했고, 승산이 있다고 봐서 제안을 드리는 거예요. 삼촌이 안 한다고 해도 언젠가 꼭 하려는 분야기도 하고요. 요즘 외식이라고 하면 자극적인 게 많잖아요. 치즈 폭탄, 배탈이 날 정도로 매운 거, 피도 달게 될 것처럼 설탕 범벅에 조미료 등등…….”
“그렇긴 하지.”
“사람들이 건강한 음식도 찾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당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경기가 워낙 안 좋긴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잘 되는 곳들은 잘 되고 있고.”
“한식당을 꼭 하고야 말겠다고?”
“네.”
작은아빠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은 무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하는 건 좋은데…… 그런데 갑자기 왜 나한테 같이 하자고 하는 거냐? 혼자서 잘하고 있잖아.”
“삼촌이 평생 요식업 쪽 일을 했잖아. 전문가가 바로 주변에 있는데 혼자 맨땅에 헤딩할 이유가 없지.”
작은아빠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내가 그래도 준프로 정도는 되지. 지금이야 남의 돈까지 끌어다가 코딱지만 한 가게 붙들고 있다만…….”
“그거야 사기 당하고 그래서 그런 거잖아요.”
“그랬지……. 그것도 내 실수라면 실수지만.”
나는 눈썹을 한 번 들썩이고는 물었다.
“어떻게…… 생각 있으세요?”
“생각이야 있지.”
“그럼 하시는 거예요?”
“디테일 잡아보고 괜찮으면 뛰어드는 거지.”
“아, 그거야 당연하죠.”
“그리고 하게 되면, 시작 전에 차용증 쓰고 하자.”
“예? 차용증이라뇨?”
작은아빠는 어느새 식어버린 밀크커피를 들이키고는 말했다.
“당연히 차용증 써야지. 초기 비용에서 50%는 내가 무조건 갚는다. 이자 쳐서.”
“에이, 무슨…….”
“이잉? 당연한 거야 인마. 가족끼리 할수록 이런 거 확실하게 해야지, 안 그러면 서로 서운한 것만 생겨. 이대로 같이 하게 되면 내가 너한테 빚지고 하는 거야. 당연히 빚 갚아야지.”
“아니, 그래도…….”
“그래도는 인마, 확실하게 해야지. 할 거면 제대로, 아니면 딱 말고.”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기다려. 어차피 지금 손님 다 빠지면 마감할 거니까 얘기 좀 하자.”
“그래요.”
이제 겨우 불만 올렸을 뿐인데, 머릿속에는 빨리 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벌써 뚜껑에 손이 갈 것만 같았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누군가는 너무 급한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이미 불에 올린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아마 혼자였다면 그랬을지도.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작은아빠, 강인나, 숙모, 노우민, 나도혜까지.
화구가 여러 개이니 각각 불을 올리면 문제될 게 없었다.
나는 불이 잘 붙도록,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점화기였다.
5
토요일.
작은아빠는 나와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기본은 건강한 한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세부적인 것들은 좀 더 논의를 거쳐야 했다.
우선 국밥집을 정리해야 됐다.
작은아빠는 사업이 시작되면 1원 단위까지 정확히 50%로 갈라서 갚겠다고. 차용증도 반드시 쓰겠다고 했다.
나는 가족끼리 그런 것까지 할 필요 없다고, 믿는다고 했지만, 작은아빠는 완고했다. 가족끼리니까 더 확실하게 해야 된다고.
나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작은아빠에게 돈을 떼일까봐 걱정이 되는 건 아주 조금도 없었다. 만약 그런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작은아빠라면 그랬다. 아마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며 넘겼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확실하게 하는 작은아빠의 태도에 마음이 편해졌다. 더 편해질 것도, 믿음이 깊어질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랬다.
오늘도 역시나 가게에 나와 있었다.
근래 들어서는 즙을 내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러다 상담실에서 나왔다.
카운터 앞에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아담한 체구의 여자가 보였다.
“일은 좀 어때요?”
내가 묻자 키보드를 두드리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어제 인나 씨가 자세히 알려주고 적어주기까지 해서 괜찮아요. 전에도 쇼핑몰 관리는 죽어라 해서 제법 익숙하기도 해요.”
올해로 37세인 그녀는 새로 온 직원인 이지나였다. 앞으로 홈페이지 관리를 주로 맡을 예정이었다. 과거에 여성복 쇼핑몰을 운영했었다고. 쇼핑몰을 접은 지는 꽤 오래 됐고, 출산 이후로 일을 쭉 쉬다가 취업을 한 것이었다.
“어려운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편하게 물어보셔도 돼요.”
“네, 그럴게요.”
오늘은 연습을 위해 특별히 하루 더 나온 것이었고, 다음 주부터는 주5일 근무 예정이었다.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벌써 일처리 속도가 꽤나 빠른 걸로 봐서는 인연이 오래 지속됐으면 했다.
“그럼 저는 상담실에 있을게요.”
“네, 사장님.”
이지나는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방긋 웃어 보였다.
나도 미소로 답하고는 상담실 안에 들어섰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한 번에 벌이니 쉴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펜을 움직이며 생각들을 정리해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꾸벅꾸벅 졸면서 펜으로는 종이 위에 지렁이를 그리고 있었다.
“어우…….”
엄청 졸렸다. 손으로 미간을 누르고, 양쪽 관자놀이를 지압하는 등 잠에서 깨려고 했지만 눈꺼풀에 매달려 있는 잠귀신들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이내 나는 고개가 뒤로 홱 넘어갔다가 앞으로 숙였다가를 반복했다. 눈은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 있었다.
그렇게 눈 감고 상모돌리기를 하면서 익숙하면서도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에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