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2화
18. 대표 (1)
1
얼굴 전체가 붉다. 특히 양 뺨은 방금 전에 싸대기를 맞은 것만 같다.
“보시다시피 홍조가 너무 심해서…….”
오늘 마지막 건강상담을 받는 젊은 여자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병원은 다 가보셨던 거죠?”
“네, 피부과랑 신경외과, 한의원까지 전부요.”
“뭐라던가요?”
“홍조라고 하는 곳도 있고, 주사라고 하는 곳도 있고……. 공통점은 별다른 해답을 내주지 못하더라고요. 홍조 레이저 같은 것도 전부 받아봤는데,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더니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졌어요.”
“그럼 지금 더 심해진 상태인가요?”
“아니요. 열심히 관리했더니 조금 돌아온 거예요. 레이저 치료 받기 전이랑 거의 똑같아요. 돈만 쓰고 원점으로 돌아온 거죠 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일단 주사도 있고 홍조도 있습니다. 증상은 비슷하지만 구분은 돼야 하거든요.”
“그래요?”
“네, 아마 여러 병원들을 들르셔서 대략적으로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따로 검색도 엄청 해보셨을 거고요.”
“맞아요, 맞아요.”
“일단 주사도 홍조도 대표적인 원인이 모세혈관의 확장인데요. 모세혈관이 확장된 원인은 또 다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위장이 나쁘거나, 모낭충이 많거나, 얼굴에 기름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요.”
여자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저 같은 경우 원인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주사랑 홍조 둘 다 해당된다고 하셔서 참…….”
“일단 홍조 레이저는 받아보셨다고 했잖아요? 이게 기본적으로 혈관 치료를 하는 거거든요. 요즘은 피부 표면에는 자극을 안 주는 거긴 한데……. 아무튼 이미 그걸로는 효과를 못 보셨잖아요? 그러니 더 근본적인 원인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볼 수 있겠죠.”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질환 정도를 좀 정확히 보도록 하죠. 얼굴에 열감도 심하신가요?”
“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빨갛기만 하고 딱히 열감은 없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여자가 뭔가 깜빡했다는 듯이 목소리를 냈다.“
“아, 가끔 열감이 있을 때도 있어요.”
“어떨 때요?”
“이게 병원에서는 연관이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데, 공복이거나 과식했을 때 얼굴에 열이 올라요. 빨개지고. 다른 걸로는 스트레스 받을 때나 갑자기 추워지고 더워지고 그러면 또 그렇고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는 일종의 버릇처럼 됐다. 가만히 뻣뻣하게 있는 것보다는 이러한 제스처를 취했을 때 사람들이 훨씬 더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 동의하고 수긍한다고 여겨서인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벌써 해결책을 얻은 양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도 보인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반대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파진다. 혹은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파지기도 한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다수가 이미 몸으로 겪는 고통으로 인해 마음도 아픈 경우가 많다.
“하실 것들이 참 많아요.”
내가 말하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귀까지 쫑긋 세운 것처럼 느껴졌다.
“우선…… 지금 위가 많이 약해지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복 혹은 과식 때 얼굴이 붉어지는 걸로 봐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헬리코박터균이 위산 분비를 촉진하고, 그게 얼굴을 붉어지게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럼 헬리코박터균이 있는지 검사를 해봐야 할까요?”
“그 부분에 관련해서는 내과에 가셔서 검사를 해보시고, 만약 헬리코박터균이 있다면 치료를 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처방 받은 약만 잘 드시면 되니까요.”
나는 여자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사실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고 무조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요. 보통 위궤양과 같은 관련 질환이 있을 때 치료를 하죠. 하지만 지금 의심되는 문제가 있으시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내과에서 치료만 받으면 얼굴도 나아질까요?”
“장담은 못합니다. 헬리코박터균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으니까요.”
여자의 위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균의 유무까지는 내 능력으로 감별이 되지 않았다.
“일단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전부 알려드릴게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일단 내과에서 검사를 한 번 꼭 받아보세요. 그리고 위에 좋은 음식들을 드셔야 하는데, 당연히 맵거나 짠 것은 피해야 합니다.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도 좋지 않아요. 그리고 양배추는 꼭 따로 드시기 바랍니다.”
“네, 네.”
“그리고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지금 홍조 때문에도 스트레스가 크실 거예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으셔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까요. 거기에만 신경 쓰지 마시고, 즐거운 일을 찾아서 보다 즐겁게 지내세요.”
“노력해볼게요.”
“그리고 여러 가지 버섯들이나, 바나나, 지방이 적은 돼지고기, 달걀, 참치, 오렌지, 브로콜리 같은 것들도 드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당연히 전부 적당량 섭취를 하셔야겠죠? 기본적으로 비타민B가 풍부한 식품들입니다.”
여자는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들어 빠르게 적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당연히 잠도 잘 주무셔야 합니다. 아마 자고 일어난 직후에는 홍조가 덜할 거예요. 맞죠?”
“네, 네. 맞아요. 일어난 직후에는 하얗다가 조금 지나면 금방 붉어져요.”
“규칙적으로 생활하셔야 합니다. 늦어도 자정 전에는 주무세요. 9~10시 정도면 더 좋고요. 그리고 꼭 8시간 이상 주무세요. 최소 7시간 반. 그리고 최대 9시간까지요.”
“네, 홍조만 나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거예요.”
나는 피식 웃었다.
“네, 본인 의지가 중요합니다. 꼭 다 실천하세요. 그리고 세안은 어떻게 하세요?”
“세안이요? 이것저것 해보다가 요즘은 약산성 비누가 순하다고 해서 그걸 써보고 있어요.”
“당분간 물로만 세안해보세요.”
“물로만요?”
“네. 주무시기 전에만 사용하시는 비누 쓰시고요, 아침 같을 때는 물로만 해보세요. 보습은 충분히 잘 해주시고요. 한 2주 정도 그렇게 해보시고, 피부가 약간 완화되는 것 같으면 그때부터는 오일 세안을 해주세요.”
“오일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순한 제품들 많거든요. 1분 정도, 최대 3분 이하로 오일 세안을 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호호바 오일 같은 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보습은 씨벅톤 오일과 비타민K 크림을 사용하시면 호전을 기대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호호바 오일, 씨벅톤 오일, 비타민K 크림.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입에서 술술 나왔다. 할아버지가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저승에서 서양의 민간요법 전문가들과 친목을 도모한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꿈에 나오지 않는다.
원래는 돌아가신 분들이니 못 보는 게 당연한 건데,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를 지켜보고 계심은 틀림이 없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더욱 최선을 다한다.
20분을 거의 꽉 채운 상담을 마친 뒤였다.
“감사합니다. 꼭 말씀해주신 대로 해볼게요.”
여자는 처음 들어올 때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꼭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벌써 좋아진 기분이에요.”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홍조가 생기신 지 벌써 2년이 넘으셨잖아요?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스트레스를 안 받고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네!”
“운동도 꼭 하시고요. 땀을 흘려서 열을 배출해줘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그럴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즙도 꼭 사먹을게요.”
나는 헛웃음을 치며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요.”
“필요하시면 드시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죠. 그럼 들어가세요.”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숨을 돌렸다.
노우민은 이미 퇴근했고, 주방에는 숙모 혼자서 일을 보는 중이었다. 조만간 새로 뽑은 직원 2명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카운터 앞의 컴퓨터를 열심히 하고 있는 강인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조만간 녀석이 하는 일도 인수인계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홈페이지 관리 업무는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기에 꼼꼼하기만 하면 돼서 구인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나는 노트북과 여러 가지 책자들을 펼쳤다. 온라인 건강 주스 브랜드 그리고 건강 주스 카페 웰웰을 위한 것들이었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 시간에 누군가 방문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직접 방문해서 즙을 사는 경우는 드물었고, 있어도 시장에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르는 주부들이 대부분이라 이른 오후에만 왔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얼굴이 상기된 중년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뒤로 따라온 중년 여자는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들어섰다.
가게에서 면접을 보고 나서 맘카페에 글을 올렸던 정영신이었다.
2
중년 남자는 정영신의 남편인 이상엽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분노가 아닌 안쓰러운 그런 구겨짐이었다.
“선생님…… 저희 집사람이 생각 없이 실수를 했습니다. 한 번만 선처 좀 해주십쇼.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나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그러다 정영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가게에 들어선 뒤 사과를 건넨 적은 없었다.
“선생님……! 예? 무슨 말씀이라도 좀……!”
이상엽은 적잖이 답답했는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나는 그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뗐다.
“목소리 낮추시죠.”
“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한 번만 좀 봐주십쇼. 죄송합니다. 예?”
“선생님께서 제게 죄송하실 건 없습니다. 선생님이 잘못하신 문제가 아니니까요.”
정영신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때 이상엽은 눈치를 챈 듯 정영신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이 여편네야! 사과를 드리러 왔으면 무릎이라도 꿇어야지! 잘못을 해놓고 왜 아무 말이 없어? 입술이 붙었어?”
“아, 왜 이렇게 뭐라고 하고 난리야. 나도 미치겠는데.”
정영신은 인상을 찡그린 채 나를 힐끗 보고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사장님……. 죄송해요……. 잘못했습니다…….”
진짜로 미안해서 사과를 하는 걸까? 정말 반성하는 걸까? 그냥 고소를 당해서 저러는 거겠지. 처음에만 해도 맞고소를 한다고 난리를 쳤었고.
여기서 내가 용서를 하면 대외적인 이미지를 챙길 수 있을지도. 계속 밀고 나간다면 카페 웰웰의 개업에도 지장을 줄지 모른다. 고소를 당할 수도 있으니 인터넷에서는 욕하지 못해도 아줌마들끼리 뭉쳐서 불매 운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웰웰의 특성상 남자보다는 여자 고객들이 훨씬 많을 게 분명하다. 그래야 한다. 구매력이 확실히 높은 대상이니까. 이들을 놓친다면 확실히 매출에 타격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어물쩍 넘어갔다가는 나중에 또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다. 여기서 싹을 뽑아내야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무조건 봐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착한 거랑 호구 같은 거는 다르다.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악의적으로 밥그릇을 걷어차려고 한 걸 그냥 넘어간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된다. 망설이는 찰나, 언젠가 작은아빠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어설프게 할 거면 처음부터 건드리지를 마라. 조지려면 제대로 조져라. 아니면 잊어라.
이미 일을 벌였다. 처음부터 입장만 밝혔다면 모를까, 고소를 해놓고 취하하는 건 아닌 듯했다.
칼을 뽑아들었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지금의 논란으로 웰웰에 오지 않을 사람이면 처음부터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온다고 해도 트러블만 만들 진상들뿐이겠지.
마음이 금세 단단하게 굳었다.
“사과는 하시니까, 받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이상엽과 정영신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잘못하신 거니까 그에 대한 벌도 달게 받으십쇼. 진짜 잘못했다고 느끼시면 그 대가도 치르실 줄 아시겠죠.”
내 말이 떨어지자 정영신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아니, 사람이 실수를 한 거가지고 무슨 그렇게―”
나는 정영신의 말허리를 끊었다.
“실수요? 실수라는 건 모르고 한 게, 의도치 않은 게 실수고요. 인터넷에 글자를 쓰면서도 계속 생각할 수 있고, 몇 번이나 수정도 가능하고, 올렸다가도 바로 삭제도 할 수 있는데, 그걸 끝까지 올리면서 마지막까지 댓글로 선동하고 맞고소를 한다고까지 하신 게 실숩니까? 더 할 얘기 없으니 그만 가세요.”
정영신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이상엽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여편네야! 저번에도 이 지랄 내더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내가 그 개 같은 인터넷 좀 하지 말라고 했지? 엉? 저번에도 합의금 물어주고서는 또 이 사달을 내? 네가 그러고도 애한테 컴퓨터 하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냐? 집에 들어오지 마!”
그는 씩씩거리며 곧바로 몸을 틀어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니,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네가 알아서 해! 밖에다 방을 잡든가! 네 엄마 있는 고향으로 가든가! 문 안 열어줄 거니까 집에 올 생각도 하지 마!”
“여보! 여보……!
정영신은 다급히 이상엽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난 뒤에는 흐트러진 의자와 딸랑거리는 종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 나는 지경에까지 이른 듯했다.
그래도 고소를 취하할 생각은 없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내가 봐주면 또 그럴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