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68화
17. 괜찮네, 진행해 (4)
―별의별 말이 다 있더라고.
숙모는 앞부분을 조금 읽으려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다. 내가 문자로 링크 보내줄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응, 괜히 좀 미안하네. 이런 건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너무 악의적이더라고.
“아휴, 말씀 잘해주셨어요. 알아야죠.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조치를 취해야 하고요. 감사해요.”
―그럼 다행이구.
“그런데 약간 의외네요. 의외랄 것도 없나 싶기도 한데.”
―뭐가?
“맘카페…… 가입돼 있으신 거 아니에요?”
―아, 난 또 뭐라고. 그렇긴 하지.
“그게 조금 의외였어요.”
살짝 웃음 섞인 목소리를 내자 숙모가 변명하듯 말을 늘어놨다.
―맘카페 가입자라고 다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아, 그럼요. 알죠. 숙모만 봐도 알 수 있죠. 어디나 그렇죠. 이상한 사람들은 이상하고, 괜찮은 사람들은 괜찮고.”
―그러니까. 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이것저것 공동구매나 할인 정보나 이것저것 보려고 들어가는 거야.
“이상하게 볼 리가 없죠. 이상한 걱정하지 마셔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연락드릴게요.”
―그래, 일부러 쉬는 날 뺀 거 뻔히 아는데 미안해.
“에이, 감사하다니까요. 이상한 걸로 미안해하지 마세요. 숙모도 푹 쉬세요. 식사 잘 챙기시고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얘기를 듣고 있던 고모는 걱정 반 흥미 반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맘카페가 왜? 뭔데?”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가게 욕이 좀 올라왔나봐.”
“그래? 왜? 뭐 잘못한 거 있어? 즙에 이상이 있었나?”
“글쎄. 일단 봐야 알 것 같아.”
강인나는 화가 난 듯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숙모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바로 링크 접속을 했는데, 가입한 회원만 볼 수 있는 글이었다.
“봐봐.”
강인나는 어느새 옆에 바짝 붙어서 휴대폰을 응시했다. 그리고 곧장 고모를 향해 손짓했다.
“엄마, 엄마 아이디로 가입하자. 빨리. 뭐라고 썼는지 보게.”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자신의 일인 양 화를 내는 강인나의 모습이 힘이 됐다. 가족이니까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가족이라고 다 그런 게 아님을 알기에. 더군다나 친가족도 아니었고. 내게는 친동생이나 다름없었지만.
곧장 고모의 명의로 카페에 가입했다.
“아, 씨 진짜.”
강인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냈다.
글을 읽으려면 활동 조건이 붙었다.
“내가 숙모한테 아이디 잠깐 빌려야겠다.”
“아니야, 가입인사하고 댓글 10개만 달면 돼.”
강인나는 곧장 휴대폰 화면 위로 두 엄지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불꽃이 튈 기세였다.
곧 닉네임 ‘복실맘’이 남긴 글 전문을 볼 수 있었다.
[요즘 행X 건강즙이라고 유명하죠~? 방송에도 몇 번 나온 집~~~ 얼마 전에 거기 갈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네요... 제가 나이가 좀 있다 보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해서 즙 좀 좋은 놈으로다가 먹으려고 했죠.
그래서 멀끔하게 생긴 사장님한테 상담을 부탁드렸죠~ 그런데 방송하고는 좀 다르더라구요?? 일단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던 사람이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대요?
오히려 조금 딱딱한 느낌? 사람들 건강 위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딱딱해서야 스트레스 받아서 오히려 건강 나빠질 듯... ㅠㅠ
사장님이 덩치도 좋고 어떻게 보면 조금 무섭게 생긴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여자인 저로서는 위압감마저 느꼈네요... ㅠㅠ
그래도 기왕 거기까지 간 거 즙 두 박스 골랐는데, 계산하고 멀뚱멀뚱 서 있더군요.
아니, 보통 샘플 같은 거 껴주지 않나요? 박스도 쓸데없이 과대포장이라 공간도 남는데~ 낭낭하게 좀 담아주면 좋을 텐데~ 인심 박하더라구요~~~
여러 가지로 별로 추천할 곳은 아닌 것 같아요~ 젊은 사장이 나이도 많은 직원들 부려먹는 것도 보기 안 좋고요...
요즘 젊은 사장들은 다 이런가요...?
아무튼 기대 많이 하고 갔다가 실망과 상처만 남았네요~~~ 각성하시길~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아서 힘들게 갔는데 맘이 퐈악 상해부렀스ㅠㅠ~~~]
“나 참, 씨발…….”
고모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욕을 내뱉었다. 그만큼 골 때렸다.
아차 싶어서 고모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에 내가 상스러운 말을 하면 나무라던 고모였지만, 이번만큼은 이해한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인나는 입술을 실룩이며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아니, 누가 이딴 글을 올린 거야?”
약간의 흥미를 보이던 고모도 금세 심각해져서는 미간을 잔뜩 좁혔다.
“왜 이런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에 강인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혹시 나 없을 때 온 손님들 중에 의심 가는 사람 있어? 즙 두 박스 사간 사람.”
“없어.”
“확실해?”
“확실해. 요즘 가게에 직접 와서 사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그것도 그렇다.”
고모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일단 확실히 알아봐야지.”
“알아본 다음에는?”
“우리한테 문제가 있으면 사과한 다음 고치면 되는 거고, 만약에 거짓말을 한 거라면 확실히 조치를 취해야지.”
나는 괜찮은 양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원래 하려던 얘기가 이게 아닌데, 일단 이것부터 좀 알아봐야겠네. 괜찮지?”
“그럼 당연하지. 빨리 알아봐.”
행복 건강즙에서 누군가에게 더 물어볼 사람이라고 해봐야 노우민밖에 없었다. 내가 녀석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였다.
“찾았다!”
강인나가 소리쳤다.
“뭘 찾아?”
나의 물음에 강인나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녀석은 맘카페에 글을 남긴 ‘복실맘’이란 닉네임을 토대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누군지 밝혀냈다.
복실맘이라는 닉네임은 주로 맘카페 그리고 중고거래와 반려동물 관련 카페에서 활동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불평불만 글이 뭐 이렇게 많은지 상습범이었다.
중고거래 카페에는 연락처가 나와 있었고, 반려동물 카페에는 이름을 밝힌 상태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정영신이었다.
교과서적인 진상이었다. 아니, 그걸 뛰어넘었다.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전부 날조를 할 줄이야. 인성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니.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어쩌면 잘 됐다. 교묘하게, 애매한 말들을 덕지덕지 붙이며 사실을 섞었다면 대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자체가 별로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리 예상도 했고 대처도 돼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고소해야 되는 거 아니야? 명예훼손 같은 걸로?”
강인나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고모도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귀를 기울였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무엇보다 잘못한 게 없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괜찮아.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잘 수습하는 데 집중해야지.”
“어떻게 할 건데? 응?”
“아직 생각 중이야. 여러 가지 옵션들이 있거든. 결정하면 말해줄 테니까 이제 원래 하려던 얘기로 넘어가자.”
강인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야…….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지.”
“일단 하나만 얘기해줄게. 복실맘, 이 정영신이라는 사람은 우리 손님이 아니야. 손님이었던 적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 전에 면접 왔던 사람이거든.”
“근데 이렇게 해놨다고?”
“응, 면접 떨어졌다고 이러는 거 같네.”
고모가 기가 막히다는 듯 ‘하’ ‘차’ ‘참나’ 같은 말들을 수차례 내뱉었다.
“뭐 그런다니?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요즘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요. 자기 애 먹일 거 공짜로 달라는 거 안 줬다고 맘카페에 글 올리고, 자기가 운전 이상하게 해놓고 학원 차한테 도리어 운전 그 따위로 하지 말라고 난리 치면서 맘카페에 글 올려서 난폭운전 무서워서 애들 보내겠냐고 여론몰이하고.”
나는 인상을 팍 찡그린 채 말을 이었다.
“얘기를 하다보니까 갑자기 확 열받네? 요즘은 맘카페 활동하면 아주 권력이야. 아예 대놓고 카페에 글 올린다고 협박을 한다니까? 그 지역 상권에 영향력이 크다보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거든.”
강인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아.”
“그러니까. 그래서 멀쩡한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욕먹는 거고.”
나는 인상을 팍 찡그린 채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지금 더 중요한 일이 내일 있으니까.”
“응, 알지.”
“마음은 굳혔어?”
“나야 당연히 하고 싶지.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커피나 주스 만드는 건 할 수 있는데, 가게 운영을 한다는 게…….”
내가 피식 웃었다.
“너 혼자서 하는 거 아니라니까.”
“알지, 아마 그 나도혜라는 사람 쪽에서 뽑는 사람이랑 같이 하게 될 거라며. 근데 내가 점장인 건 마찬가지잖아. 가게 하게 되면 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일 텐데.”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어?”
“응?”
“너 시장에서 나이 훨씬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들하고도 잘 지내잖아.”
“일하는 거랑 같나.”
“오히려 낫지. 네가 제일 높은 직위인데. 그러니까 걱정할 거 없어. 하면 되지. 열심히 하면 돼. 자리 잡을 때까지는 나도 자주 들러서 도와줄 거고. 알지? 내가 사장이야 인마.”
“알아, 누가 모른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보다 먼저 걱정해야 되는 건 내일이야.”
“내일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냥 가게 보러 다니는 거 아니야?”
“그 나도혜 원장 지분이 크단 말이야. 그래서 네가 점장으로 있는 것에도 관여할 수 있어. 내가 널 쓰겠다고 하면 쓸 수 있지만, 시작부터 틀어져서 좋을 거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강인나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그렇지.”
나는 곧장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들었다.
“이게 뭐야?”
강인나는 카드를 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로 옷 한 벌 사.”
“옷? 웬 옷?”
“네 옷들이 이상하다는 건 아닌데, 내일은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이는 걸로 입으라고.”
나는 고모를 보며 씩 웃었다.
“고모도 같이 가서 애 옷 좀 골라줘. 고모도 옷 한 벌 뽑으시고.”
“그럴까? 히히.”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간만에 모녀가 데이트 좀 하십쇼.”
강인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한도는 얼마아?”
“명품 사면 죽는다.”
“내가 그런 걸 사겠어?”
“요즘 고등학생들도 100만 원짜리 티셔츠 입고 200만 원짜리 가디건 입고 그런다고 뉴스 나오더라고.”
“난 안 그래. 다 그냥 브랜드 값이지, 쓸데없어.”
고모가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우리 인나는 보세 입어도 명품 같아서 괜찮아. 옷이 중요한가? 모델이 중요하지. 괜히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안 된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잡담으로 이어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인나 내일 늦지 말고. 알았지?”
“안 늦어.”
고모가 물었다.
“너도 같이 가지? 같이 밥도 먹고, 영화라도 한 편 보면 어때? 너도 좀 쉬면서 해야지.”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려고 했는데, 가만히 놔두지를 않네.”
고모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너무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해결해.”
“걱정 마셔요.”
강인나는 큰 눈 가득히 분노를 불태웠다.
“콩밥 먹여, 콩밥.”
“이런 걸로 무슨 콩밥이야. 그런데…… 그냥 넘어가지는 않으려고.”
고모는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아무튼 여러 가지로 고맙다. 우리 인나도 계속 도와주고…….”
“도와주는 거 아니야. 인나가 잘해서, 오히려 내가 도움 받고 있지.”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진짜 가봐야겠다. 연락드릴게.”
나는 강인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다시 말했다.
“너는 늦지 말고.”
“알았어, 벌써 몇 번째야. 가게 갈 때도 지각 한 번도 안 했잖아.”
“그만큼 중요하니까 하는 말이지. 그럼 간다.”
그렇게 고모 집에서 빠져나왔다.
원래는 집에 가서 좀 쉬려고 했는데 정영신이 일을 벌여준 덕분에 다시 가게로 향했다.
7
―아무튼 제가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드릴 수 있어요. 나중에 제가 가맹도 하나 하고, 얼마나 좋아요?
녹음기에서 정영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게 녹음은 완전히 생활화됐다.
이미 녹음 덕분에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으니까.
가게 내부에는 CCTV도 있다.
강인나가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정영신의 신상도 오픈돼 있는 상태였다.
과거에 일했던 고깃집도 아직까지 영업 중이었다.
정영신은 아마추어도 못 됐다.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질 수가 없었다.
이 정보들만 풀어놔도 여론이 확 넘어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악의적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했는데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냥 넘어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남의 밥그릇을 걷어차놓고 그냥 넘어가길 바라면 안 되지.
전화를 걸었다.
곧 수화기너머로 나도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혹시 내일 뵙는 거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저기 그때 말씀하신 거 가능한지 여쭈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어떤 거요?
“변호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