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67화
17. 괜찮네, 진행해 (3)
여자는 이 일이 정말 필요한지 한껏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하지만 가늘어진 눈꺼풀 틈의 눈은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님, 방송 너무 잘 봤어요.”
식상하다.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은 말이다. 사실 칭찬도 아니다. 난 방송인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출연하는 프로가 있지도 않다.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비슷한 업무 경험 있으신가요?”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딱딱한 말투가 나갔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까지 둥글둥글했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게 사는 중이었는데.
눈앞의 여자, 정영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생각해 보면 면접 지원자가 아는 사람이라고 아이러니할 것도 없다. 강인나나 숙모처럼 같이 일을 해야 아이러니지.
“제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장사도 했었고.”
“건강원 일도 해보셨나요?”
“딱 건강원만 안 해봤네요. 그래도 과일은 판 적 있어요. 음식점에서 일한 적도 있었고. 손질은 기가 막히게 하죠.”
정영신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지금 눈앞의 정영신만 해도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정영신이 방금 말한 음식점. 예전에 내가 잠시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당시 정영신은 소위 말하는 ‘주방 이모’ 중 하나였는데, 사장이 없을 때면 감투질을 해댔다. 자신의 일을 떠넘기고, 언제나 신경질적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직원으로 두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방송으로 보니까 과일 손질해서 기계 돌리면 되는 거던데, 맞죠?”
“예, 뭐…… 기본적으로는 그렇죠.”
“그럼 어려울 것도 없겠네. 조건도 저랑 딱 맞더라고요.”
“그렇군요.”
애써 웃어 보였다.
면접 지원자들 중에서 구직에 실패한 뒤에 나와 행복 건강즙에 좋은 감정을 가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짜증 살짝 내고 끝인 거랑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거랑은 다르다.
여기서 내가 싸가지 없게 굴면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서 나쁜 말을 하고 다닐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모든 지원자들에게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한다.
“언제부터 출근하면 돼요?”
“……만약 같이 일하시게 되면 제가 따로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아, 그렇구나. 제가 이번 주부터 바로는 출근 못하거든요.”
속으로 ‘그쪽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정영신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가게에 맨날 계세요?”
음식점에서 일할 때의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린 듯하다.
“그건 왜 물어보시죠?”
“그냥요. 워낙 바빠 보이셔서.”
“자주 있는 편입니다.”
“그러시구나. 사장은 그런 맛에 하는 게 아닌데.”
나는 눈썹을 한 번 들썩이고는 물었다.
“그럼 어떤 맛에 하는 건가요?”
“당연히 돈 세는 맛에 하죠. 사업자가 왜 좋아요. 잘 되기까지가 힘들지만, 한 번 잘 되면 잠깐 들러서 돈만 챙겨 가면 되잖아요. 남는 시간에 골프나 치러 다니고.”
다소 당황스러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하하……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직접 열심히 일해야 돼서요.”
적당히 대꾸하고 웃어 보였다.
“약아야 돼요.”
“예?”
“사장님도 돈 벌려면 더 약아야 돼요. 건강상담 무료로 하고 그런 것도 줄이시고. 제가 장사 선배라서 알거든요.”
“아, 예.”
“아무튼 제가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드릴 수 있어요. 나중에 제가 가맹도 하나 하고, 얼마나 좋아요?”
같이 일을 하기로 하지도 않았는데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내가 처음 보는 여자를 두고 결혼하고 애 낳고 노후대비 걱정하는 격이다.
그러다 이해가 됐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망각하고 있었다.
정영신은 예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성을 고려하기 시작하니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장담하건대, 정영신은 취직이 되지 않는 순간부터 나와 행복 건강즙을 욕하고 다닐 사람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욕을 먹을 거면 계속 앞에서 헛소리를 하게 놔둘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기억 안 나세요?”
무심코 말을 던졌다.
아니, 하고 싶어서 했다.
너무 싫어서.
과거에 크게 터진 사건은 없었어도 단 한 번도 친절한 적이 없었다. 최저시급이 약 3천 원이었던 그 시절, 정영신 때문에 일만 더 빡세게 했던 걸 생각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네? 저희가 구면이던가요?”
정영신은 여전히 기억을 못하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아까 말씀하신 음식점, 화로구이집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 맞는데…….”
“10년도 더 돼서 기억이 안 나시나보네요. 그때 거기 계실 때, 저도 아르바이트 했었거든요.”
“아…….”
정영신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저 표정을 보니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에 나도 논란에 얽히면서 느끼기도 했고.
어쩌면 정영신은 나를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할 거라 여겼을지도.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아무튼 그럼 이것도 인연이네요?”
정영신이 활짝 웃으면서 눈썹을 치켜들었다. 동의를 강요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걸 깔끔히 무시했다.
“그렇다고 해야 될까요?”
“그럼요, 엄청난 인연이죠.”
모르는 것처럼 넘어가라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지은 죄는 많아도 나하고는 큰 트러블이 없었다고 생각해서 괜찮다고 여기는 건지.
“정영신 씨한테는 그렇게 생각되시나보네요.”
“그런…… 거 같은데.”
“아무튼 다음 지원자 분을 또 만나야 돼서요. 면접은 이만 마치도록 하죠. 내일 오전 11시 전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아주 폭발하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들어가세요.”
나는 일어나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꾸벅여 보였다.
“연락주세요.”
“예.”
정영신은 나가면서도 꽤나 꺼림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본인도 면접에서 떨어졌음을 느끼고 있겠지.
소소한 복수와 권력의 맛을 봤다.
시원하긴 한데, 그리 달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이 인체에 필수인 것처럼,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6
며칠 뒤였다.
내일 오후에는 나도혜와 부동산 업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전에 만나야 될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강인나.
나도혜와 함께 진행하는 사업들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은 건강 주스 관련 사업이었다.
행복 건강즙 2호점은 나도혜의 투자 없이 진행되는 것이니 엮여 있기는 하지만 별개로 봤다.
현재 행복 건강즙 1호점과 2호점에서 일할 직원들은 대부분 모집을 마친 상태였다. 2호점의 경우 향후 매출에 따라 직원들을 늘려야 될 수도 있었다.
건강 주스 전문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할 때 가능하면 카페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을 할 생각이었다.
강인나의 집에 다다랐다.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는 철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철문너머로 고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누구시죠?”
“건희.”
“어, 왔어?”
문이 열렸다.
고모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얼른 들어와.”
“이거…….”
나는 음료수와 몇몇 생필품들이 담긴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있었다.
“히이…….”
고모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뭘 그렇게 많이 사왔어?”
“그냥 이것저것. 필요할 거 같은 것들.”
음료수 박스에는 현금 100만 원이 든 봉투도 함께 넣어뒀다.
고모의 성격상 그냥 주려고 하면 잘 안 받으려 할 테니 일단 손에 쥐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인나는?”
“아직 자고 있어.”
“이제 11시인데?”
놀라면서 말하는 순간 금세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다. 일을 쉬는 날이면 술 먹고 자빠져서 하루 종일 잠으로만 보냈던 게 하루 이틀이던가.
강인나는 술도 먹지 않고, 주말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20살 때를 생각하면 녀석은 양반이었다.
“감기는 완전히 다 나았지? 어제도 잔기침이 좀 남아 있던데.”
“이제 괜찮아. 어젯밤에는 기침 안 하더라고. 나도 인나한테 옮아서 감기 기운 있었는데 네가 알려준 방법대로 하니까 금방 뚝 떨어지더라.”
나는 씩 웃었다.
“그럼, 당연하지.”
“앉아 있어. 인나 깨우고 올게.”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이닝복 차림의 강인나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왔어……?”
“가서 세수, 양치하고 와. 잠 좀 깨.”
“응…….”
녀석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좀비처럼 움직여 화장실로 들어갔다.
고모는 그런 강인나를 보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아주 잠귀신이 따로 없어.”
“옛날부터 잠 많았잖아.”
“그러니까, 아주 신기해 죽겠어. 쟤는 안 깨우면 하루 종일도 잔다니까.”
“고모도 그러잖아.”
“내가 뭘 그래?”
“인나 정도는 아니어도 잠이 없는 편은 아니지.”
고모가 눈을 흘겼고, 나는 하하 웃었다.
“밥은 먹었어? 밥 차려줄까?”
“에이, 됐어. 아침 먹었어.”
“그래애? 요즘 잘 챙겨먹고 다니는 거 같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래?”
“얼굴이 아주 좋아졌어. 딴 사람 같다 야.”
“얼마 전에도 봐놓고는 뭘…….”
“아니야, 진짜 날이 갈수록 달라져. 딴 사람 같아. 화면빨도 잘 받고.”
나는 피식 웃었다.
“여러 가지 신경 쓰니까 피부도 좋아지긴 하더라고.”
“그러니까. 지금은 아주 부티나. 옛날에는 빈티 났는데.”
“누가 빈티가 났다고 그래? 내가 실제로는 가난해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니야, 너 그랬어.”
“뭐 그럼 고모는 부잣집 사모님 같은가?”
고모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난 그렇지.”
“차암나…….”
“아무튼…… 너 잘 돼서 좋다.”
“좋긴 뭘…….”
“왜 안 좋아. 우리 가게 오는 손님들한테도 맨날 자랑하는데.”
내가 고모의 아들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모와 조카 사이보다는 가깝다. 기본적으로 가족이다. 서로가 잘 되는 걸 진심으로 기뻐해준다는 게 좋다.
그래서 고모도 더 잘 되도록 도와볼 생각이었다. 잘 되면 손바닥이 부어오르도록 박수를 치며 기뻐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인혁이가 안 보이네?”
올해 중2인 고모의 아들은 아직까지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응, 친구들 만난다고 나갔어.”
“그래? 운이 없네.”
“왜 운이 없어?”
“있으면 용돈이나 좀 주려고 했거든.”
고모가 인상을 찡그렸다.
“용돈은 무슨 용돈이야, 지금 네가 써야 되는 돈이 얼만데.”
“그래도. 5만 원짜리 한 장 정도는 줄 수 있잖아.”
“됐어, 너나 써.”
그렇게 수다를 떨던 중에 강인나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정말로 세수와 양치만 한 듯했다. 헤어밴드를 해서 이마를 까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의 모습이 은근히 보여서 귀여웠다.
“오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일찍은 무슨 일찍이야, 벌써 점심 때 다 되어가는데.”
“그런가?”
“아무튼 여기 와서 앉아봐.”
분위기가 단번에 확 바뀌었다.
고모와 강인나는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다.
“내일…….”
말을 꺼내는 찰나에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아, 미안. 전화 좀.”
내가 휴대폰을 들며 말하자 고모와 강인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보세요?”
수화기너머로 숙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네, 숙모. 무슨 일이세요?”
―별건 아닌데, 말해둬야 할 거 같아서.
“뭔데요?”
―행복 건강즙 있잖아.
“예, 있죠. 이제 2호점까지 있잖아요.”
내가 장난을 툭 던지자 숙모는 피식 웃고는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조금 생겨서.
“무슨 문제요? 몇 호점이요?
―전부. 미라클 헬스케어랑 네 욕을 엄청 해.
“지금요? 검색어에 올랐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맘카페에 글이 올라왔더라고.
이제 이런 일이 일어나도 크게 놀랍지가 않다. 언제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검색어에 오른 것도 아니고, 인터넷 카페에 글이 올라온 정도라면 큰 문제도 아니었고.
“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
무슨 이유인지 알 것 같았다. 예상되는 상황이 있었고, 예상되는 사람도 있었다. 나름대로의 대비책도 세워둔 상태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