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65화
17. 괜찮네, 진행해 (1)
1
미담 한의원 송파지점.
하얀 가운 차림의 나도혜는 지난번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럼 다음 주에 생산장부터 들른 다음 같이 부동산 업자 만나러 가도 괜찮을까요?”
“예,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기로 해요. 그리고 이거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즙 박스를 들어 보이며 생긋 웃어 보였다.
“별 것도 아닌데요 뭐.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건강 주스 카페 위치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광진구, 강동구를 두고 고민했었다.
가장 유력한 두 곳은 송파구와 광진구였다.
상권도 분석하고 돌아보면서 나도혜와 협의를 거쳐야 답이 나오겠지만.
약재상과는 이미 미팅을 마쳤다. 당장은 가장 크면서도 주 공급처가 될 곳만 만났는데, 국내산부터 수입산까지 다양했다.
할머니가 건강원을 운영했었기에 약재는 어려서부터 익숙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래저래 이렇게 생기면 좋은 거고 이렇게 생기면 안 좋은 걸 웬만한 건 구분할 줄 알았다.
건강원 일을 열심히 돕지 않았음에도 알고 있었다. 아마 돈 되는 거라고 하니 귀가 트이고 눈이 뜨였던 듯하다.
지금이야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능력 덕분에 기존의 지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
약재들에 특별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약재를 쓰는 일은 현재로서는 99% 미담 한의원에서 주문을 받는 것들을 달이는 데 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직까지는 순조로웠다. 시작을 했을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생산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행복 건강즙 2호점이었다.
1호점의 경우 현재 거주지에서 가까우니 내가 자주 들를 수 있었지만, 2호점은 JM테크 근처에 위치할 예정이라 매일 갈 수는 없었다.
믿을만한 책임자가 필요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2
“숙모, 잠시 얘기 좀 하실 수 있어요?”
나의 물음에 숙모가 장갑을 벗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왜애?”
“잠깐 상담실로 좀.”
“그래.”
그렇게 상담실에서 숙모와 마주앉았다.
“무슨 일인데?”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무섭게 왜 그래.”
숙모는 웃으면서도 나의 눈치를 살폈다.
“행복 건강즙 2호점을 오픈할 예정이에요.”
“2호점? 진짜? 잘 됐다! 어디에?”
“남양주시에요.”
“아, 진짜? 근데 좀 멀지 않아? 웬만한 데는 버스 한 방에 가긴 하겠지만, 그래도 불편할 텐데.”
“안 막힐 때는 또 차 몰고 가면 금방 가요.”
숙모가 눈을 반짝였다.
“차 사게?”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장님 진짜 출세했다. 멋있다.”
“하하.”
나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2호점은 공장들 많은 외곽 쪽에 차릴 예정이에요.”
“공장지대에? 임대료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크죠. 사실상 대량 생산을 위해서 차리는 곳이라 평수가 커야 돼서.”
“그건 그래. 지금 여기는 기계 한 대만 문제 생겨도 큰일 날 거야. 사실 버거운 상태기도 하고.”
숙모는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런 말하면 좀 그런데…… 직원도 늘려야 할 것 같아. 내가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조금 있으면 주문량 못 따라갈 거 같더라고. 재구매 고객들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예, 맞아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여기에도 직원 하나 더 두고, 2호점에는 많이 둬야 할 거 같아요.”
“그래그래, 지금 너무 바빠서 사장인 네가 쉴 틈이 아예 없잖아. 그나저나 남양주면 우리 집이 딱 가운데나 다름없네?”
숙모는 현재 구리시에 거주 중이었다.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2호점 일 좀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야 당연하지. 너만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건 새로 들어온 직원들한테 알려줄 수도 있고.”
“제가 말씀드리는 건 아예 2호점을 맡아달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에요. 제가 가능한 자주 들르긴 하겠지만, 숙모께서 거길 맡아주셨으면 해요. 급여는 섭섭하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차후 자리가 잡히면 더 인상해드릴 수도 있고요.”
“어? 그게…….”
숙모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생각도 못한 제안이라…….”
“믿을만한 분께 맡기고 싶어서요. 직접 손님을 받을 일은 거의 없을 거고, 생산에만 집중하는 곳이에요. 직원들을 여럿 뽑을 거고, 숙모는 관리직으로 들어가시는 거라 몸이 힘드실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괜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사람들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어떤 면에서는 더 힘드실 수도 있지만요.”
“그렇긴 하겠지. 쉬운 일은 아니지.”
“어떻게…… 생각 있으세요? 생산장이라서 따로 인센티브가 붙지는 않겠지만, 당연히 급여도 많이 올려드리고 보너스도 챙겨드릴게요.”
2호점 자체에서 매출을 올리는 경우는 아예 없을 수도 있었다. 잘 돼도 근처 공장 사람들이 한두 박스 사는 게 전부일 것이었다.
그렇기에 계산은 확실히 하려고 했다. 기본급 자체를 두둑하게 할 예정이었으니 그렇지도 않지만.
“급여는 아무 문제도 안 돼. 단지…….”
“말씀하세요. 최대한 맞춰드릴게요.”
“내가 할 수 있을까?”
“네?”
“평생 누구 밑에서만 일했지, 지시하는 입장이 된 적은 거의 없어서. 해봤자 새로 들어온 아줌마들 일 좀 알려주는 정도지…….”
나는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깜짝 놀랐잖아요. 그게 걱정이셨어요?”
“웃지 마. 진짜 그거 때문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이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할 일만 제대로 하도록 시키시면 되니까요. 그리고 숙모는 착한 경찰이 되실 거고요.”
“착한 경찰?”
“예. 나쁜 경찰 역은 제가 맡을 겁니다. 숙모도 필요하실 때나 원하실 때는 그렇게 하셔도 되지만…….”
숙모는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 한 번을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고 말지, 언쟁은 피하는 그런 사람.
그런 숙모가 누군가를 나무란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최대한 노력해볼게.”
의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나를 믿고 맡겨주려는 거잖아. 그럼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지. 다른 일에도 좀 더 신경 쓰기 위해서 그러는 건데, 계속 신경 쓰이게 하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숙모의 두 눈은 의욕으로 가득 차올라 빛나고 있었다.
나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숙모가 중년에 접어들고, 지금껏 유순한 모습만을 보였다는 이유로 열정마저 미지근할 거라 착각했다.
“정말 나한테 맡길 거야? 나 열심히 해볼게.”
숙모는 결심을 단단히 굳힌 듯했다.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웃었다. 강한 신뢰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애초에 제가 얘기를 꺼낸 거잖아요. 숙모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열심히 할게.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런 부분들 보일 때마다 말해줘. 그럼 다 고칠게.”
“같이 알아가는 거죠. 저도 잘 부탁드려요. 당장 옮기고 그런 건 아니니까, 준비할 시간도 충분해요.”
“응, 열심히 노력할게. 많이 알려줘. 아, 그리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급여는 나중에 올려줘도 돼. 아니, 그게 정상이지.”
숙모는 굳은 결심을 한 듯 꽤나 단호하게 말했다.
“에이, 그래도 생산장 책임자가 되실 건데―”
내가 말을 하던 도중이었다.
“잠깐, 잠깐만.”
숙모는 나의 눈치를 살피고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말 끊어서 미안해. 그런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뭐가 아니에요?”
“그냥 내가 가족이라서, 그래서…….”
숙모가 말끝을 흐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미 한 번 가족이었다.
서류상으로는 관계가 없어도 가족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가족이라고 더 챙겨주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말 한마디에 숙모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렇지. 능력에 맞게, 하는 만큼 맞춰서 줘야지.”
분위기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당연히 일 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초점은 우리가 가족이란 것에 두고 있었다.
아주 높은 벽이 하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말 한마디에 무너질 만큼 얇디얇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완전한 가족이 됐다.
“책임자이신데 다른 직원들하고 완전히 똑같이 드릴 수야 없죠. 그만큼 책임도 따르는 자리니까요.”
“아무튼…… 무슨 말인지 알잖아.”
“네, 그럼요. 잘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네 작은아버지한테는 말씀드린 거야?”
숙모는 전 남편인 작은아빠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알게 되시겠지만, 지금 이 얘기는 숙모한테 처음 하는 거예요.”
“그래? 그래도 괜찮아?”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아요?”
“그렇기야 하지. 이건 네 사업이니까, 누굴 쓰든 네 자유고. 나를 선택해줘서 너무 고맙기도 하고. 그래도 마음이 좀 쓰이네. 큰 기회잖아. 네 작은아빠한테도 이런 기회가 필요할 텐데. 무엇보다 잘하는 사람이잖아.”
“그렇죠. 계속 사기만 안 당하셨어도 지금쯤 사업이 꽤 커졌겠죠.”
“그러니까. 네 작은아빠이기도 하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맡는다는 게 신경이 쓰여.”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이런 걸로 서운함을 느끼거나 하시지 않을 거예요. 제가 언급하기는 좀 그렇지만…….”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계시지만, 서로 위해주시는 게 있잖아요. 애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 마세요.”
조금 다른가 싶었지만 역시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이런 사려 깊은 부분 때문에 더 믿음이 가는 거지만. 직원들도 잘 북돋을 것 같았고.
“알겠어.”
숙모는 이제 괜찮다는 양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맞다.”
깜빡한 게 있었다.
“숙모 시험 하나 보셔야 되는데.”
“시험? 무슨 시험?”
“제가 사장이고, 자주 들르면서 알려드릴 거라 다른 건 다 괜찮은데요. 약초 관리사 자격증은 따셔야 될 것 같아요. 기본 약재들 공부도 좀 하셔야 되고. 과채류야 계속 다루셨지만, 제대로 된 약은 경험이 없으시니까.”
“어려워?”
“충분히 금방 따실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공부하실 수 있게 시간도 조금 빼드릴게요. 하실 수 있으시죠?”
숙모가 생긋 웃어 보였다.
“하라면 해야지.”
이제 겨우 행복 건강즙의 2호점에 대한 일부분만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해결한 것이기도 했다.
3
다음 차례였다.
상담실에서 노우민과 마주앉아 있었다.
녀석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나의 물음에 노우민은 렉이라도 걸린 듯 버벅거렸다.
“아, 그게…… 생각지도 못한 거라서…….”
음식점 중 하나는 노우민과 함께 진행해볼 요량이었다.
녀석은 재능이 있었다. 게다가 노력할 줄도 알았다. 내가 직접 맛을 본 음식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꽤나 값비싼 곳에서 사먹는 것보다 나았다.
“건강한 퓨전 요리로 가보자. 같이 메뉴 개발도 하고. 네가 매니저 겸 셰프가 되는 거야. 사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을 거라 셰프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알바들은 당연하고, 주방 보조랑 다른 직원들도 뽑을 거라서 손목에 무리갈 일도 없을 거다.”
노우민은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져 보였다.
“손목은 괜찮아요. 다 괜찮은데…….”
“그럼 뭐가 문제야?”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실무 경력도 얼마 안 되는 제가 주방을 맡는다는 게 가능한지…….”
“너무 걱정하지 마. 무슨 고급 레스토랑을 하려는 게 아니야. 운영을 하면서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시작은 간편하면서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파는 게 목적이야. 오히려 이 부분 때문에 네가 하기 싫을까봐 걱정된다.”
“아뇨, 아뇨. 좋아요. 다양한 요리들을 내줄 수 있다고 하니까 더 좋아요. 매출에 따라 메뉴를 바꿔볼 수도 있고 좋은 거 같아요.”
마음을 열려 있었다. 그리고 뭐 하나만 툭 던져도 바로바로 나오는 게 녀석의 꿈과 직결되는 일인지라 아이디어도 많아 보였다.
“생각을 조금 해봐야 될 것 같아요.”
“뭐? 왜?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리고 어차피 사장님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하시는 분께서도 동의하셔야 되는 거잖아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네가 요리 맡는 게 아니면 당장은 할 생각 없으니까. 먹어봤잖냐. 그래서 하는 거야. 팔리겠다 싶어서.”
노우민은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기본급이 꽤 올라갈 거야.”
숙모가 맡는 행복 건강즙 2호점의 경우 사실상 생산장이고, 온라인으로 주문이 들어온 것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하지만 노우민과 생각하는 음식점의 경우 말 그대로 장사다. 얼마나 많은 단골들을 잡는지, 입소문을 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오픈 빨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이미 건강식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즙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다. 주스 브랜드와 연계까지 계획에 뒀고, 나도혜의 이미지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처음 손님이 몰렸을 때 그걸 계속 잡아두는 것은 노우민의 몫이었다.
“저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럼 하면 되겠네.”
“하지만 저는 지금 이렇게 사장님하고 일하는 것도 정말 좋거든요. 이제 겨우 일이 익숙해지기도 했고요. 나중에 음식점 같이 하자고 말씀하신 것도, 제가 그냥 요리를 어느 정도 돕는다는 생각만 했지, 메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 기회가 빨리 왔잖아. 왔을 때 잡아야지.”
“하지만 제가 폐를 끼칠까봐…….”
“네가 하고 싶던 일 아니야?”
노우민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녀석은 스스로를 과소평가 중이었다. 좀 더 자신감만 가지면 됐다.
내가 자신감을 불어넣을 방법은 없다. 스스로가 느껴야 한다. 느끼기 위해서는 일단 시작해야 가능하다.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는 없지만, 강력한 동기부여는 가능하다.
“조금 전에 기본급 올라갈 거라고 했지? 왜 그냥 월급이나 급여가 아닌 기본급이라고 했겠냐?”
“네?”
“인센티브도 붙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