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62화
16. 묻고 더블로 (3)
“그건…….”
나도혜는 말문을 열었다가 곧바로 닫아버렸다. 적잖이 고민이 되는 듯했다.
코너에 몰렸다. 몰아놨으면 스트레이트든 훅이든 어퍼컷이든 날려야지,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내가 비즈니스의 달인은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협상’의 형태를 가진 무언가는 많이 겪어봤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삶이 언제나 협상과 선택의 연속이 아니던가.
지난날에 숱하게 많이 겪었던 이런 순간들에 있어서 나의 선택이 항상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행착오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저는 원장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든 존중합니다. 충분히 고민을 해보신 뒤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제가 지금 당장 궁금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처음에 먼저 제안을 주셨을 때처럼, 여전히 저와 사업을 진행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의외로 바로 대답이 나왔다.
하긴, 어떤 얘기든 결코 가볍게 꺼낼 사람이 아니다.
비즈니스라면 더욱.
내가 일진 논란에 휘말렸을 때도 한 발짝 물러나서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다른 방면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관계는 유지했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괜찮겠군요.”
내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나도혜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페와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주스에 대한 권리를 아예 포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해당 음료로 나오는 매출에서만 로얄티를, 당연히 주스 업체도 사장님의 지분이 있을 테니 그걸 제외한 부분을 가져오는 건 어떨까요?”
“그건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단호하시네요.”
“원장님께서 고민을 거듭하신 것처럼 저 역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조율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나도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민하는 것 같더니,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자신 있으신가요?”
“어떤 게요?”
“지금 말씀하시는 사업들을 전부 진행하시게 된다면…… 사장님은 제가 생각했던 규모의 사업체를 가지신 분은 아니게 되네요. 전부 성공시키실 자신이 있으신 건가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계신지…….”
“해봐야 알죠.”
입술에 힘을 줬다. 입꼬리는 많이 올리지 않았다. 눈은 똑바로 마주쳤다.
“장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 사업들을 단순히 돈으로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건강히 살길 바라며 임하고 있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긴 하죠. 물론, 유지가 될 때의 얘기겠지만요.”
“그리고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쥐가 달걀을 어떻게 훔치는지 아십니까?”
나도혜는 조금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뜬금없이 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들어 당황한 걸까.
“쥐가 달걀을 훔칠 수 있나요?”
일단 내 장단을 맞춰줬다. 아무 이유 없이 헛소리를 꺼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되묻지는 않겠지.
“두 마리면 가능합니다.”
“어떻게요? 두 마리여도 쥐가 달걀을 옮기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깨트려서 가져가나요? 아니면 먹어서?”
“아뇨,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훔칠 수 있습니다.”
“그럼 굴려서?”
나도혜는 제법 흥미가 생긴 듯 둥근 무언가를 굴리듯 손을 움직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우선 한 마리가 달걀을 끌어안고 벌러덩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가 달걀을 안고 있는 쥐의 꼬리를 꽉 물고는 질질 끌고 갑니다.”
“그렇게 하면 훔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나요?”
“랫(rat)으로 분류되는 커다란 쥐들의 경우 강아지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훈련도 가능하죠. ‘돌아’ ‘이리 와’ 같은 거요. 손 위에 올려두면 꼬리로 팔을 착 감아 애정표현도 하고요.”
나도혜는 쥐의 꼬리를 연상한 듯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징그러우면서도 귀엽네요.”
“그렇죠?”
“쥐를 키워보시기라도 한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럼 저희가 두 마리의 쥐가 되는 걸까요?”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묻혔다.
“굳이 쥐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예시를 들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도 힘을 합치면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쥐보다 낫잖습니까? 달걀 훔치기보다는 훨씬 어려운 목표겠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니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나도혜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투자하겠습니다.”
“공동 대표가 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럼 세부적으로 조정할 부분이 많겠네요.”
“그렇죠. 제가 가장 궁금한 건 어떻게 운영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행복 건강즙만 해도 엄청 바쁘실 텐데, 결국 각 매장마다 적임자들을 앉혀야 한다는 소린데…….”
“저는 생각해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예. 하지만 그분들이 원장님의 마음에 들지는 모릅니다. 각각 사업들을 진행할 때 따로 미팅을 가져보도록 하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입을 뗐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저도 따로 사람들을 뽑겠습니다.”
“한 자리를 놓고 비교해보자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전부 채용할 수도 있겠죠. 매장의 성격, 규모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조금 망설여졌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까.
최선의 선택을 하고, 일단 사업을 안정화하는 게 우선이었다. 잘 된다면 또 다른 2호점, 3호점이 나올 수도 있는 거였고.
개인적인 계획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나도혜가 억지를 부릴 사람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조율을 하는 과정이었으니까.
“여러 가지로 기대가 되네요.”
긍정을 내비추자 나도혜는 노트북을 덮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저도요. 조만간 계약서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세부적인 사항들을 저희 쪽에서도 준비하겠지만, 사장님께서도 따로 준비하셔도 괜찮습니다. 합의점을 찾아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훨씬 중요한 과정들이 남아 있었다. 투자를 취소하고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었고, 일 자체가 엎어질 가능성도 존재했다. 여전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나도혜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핸드백을 테이블 위로 올리며 말했다.
“저희 중에서 누가 꼬리를 물고 끌고 가는 쥐일까요?”
말에 뼈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성공의 확신에 대해 물었을 때와 같은 대답을 내놨다.
“해봐야 알죠.”
4
월요일 오후 7시 46분.
곧 영업 종료.
평소와 같이 강인나와 마감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나도혜와의 미팅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결국 전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니까.
애초에 나도혜가 먼저 제안을 한 부분이었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나의 다른 사업들을 끌어들인 부분도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흔쾌까지는 아닌가?
성공은 또 다른 기회를 부른다.
스스로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행복 건강즙이 잘 되고 있었다. 거의 매일 내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 중이었고.
그 덕분에 나도혜라는 기회도 찾아왔다.
이미 유명세와 배경까지 빵빵한 나도혜가 행복 건강즙 하나만 보고 이렇게까지 긍정적일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쥐가 달걀을 훔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나?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능력 덕분에 별의별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쏟아진다.
나도혜 역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한다.
그녀 역시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도 했고.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자 하고, 사명감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까지 잘 맞는다면 새로운 사업들이 보다 순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 건강즙 그리고 장소를 물색 중인 2호점, 탕약을 끓여내는 작업, 온라인 전문 건강 주스 판매, 건강 주스 카페 그리고 다른 형태의 음식점들까지.
세부사항들의 조정이 잘 된다면 나도혜와 함께 투자금을 묻고 더블에 더블로 간다.
청소를 하다 말고 아웃스타그램을 켰다.
양미희의 아웃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여전히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어젯밤, 단호하게 ‘개인적으로 커피를 마실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했더니 꽤나 마음이 상한 듯했다.
아니, 빡이 칠대로 친 것 같았다.
[아, 짜증나. 연락하지 마세요.] 라고 답장이 왔으니까.
지가 먼저 연락해놓고 왜 나한테 연락을 하지 말라는 건지.
똑똑한 타입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멍청하지도 않다.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둔 것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언제나 물어뜯을 거리를 찾아 눈을 번뜩이고 코를 벌름거리며 이를 간다.
또다시 사진을 내리면 우리가 사랑싸움이라도 한다는 양 떠들어댈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지.
적어도 둘 사이가 모종의 이유로 나쁘다는 루머가 돌 것은 분명했다.
또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질 수도 있고.
안 좋은 쪽으로 언급되는 건 충분히 경험했다.
두 번 경험해보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 게 썩 좋지는 않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건 없겠지. 아마 양미희도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지울 테고.
“오빠! 핸드폰 그만 보고 청소해!”
강인나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알았다, 알았어.”
“안 그러던 사람이 요즘 아주 SNS에 빠져가지고.”
“안 빠졌어.”
“어제도 게시물 올렸던데?”
“가게랑 즙 사진이잖아. 홍보지, 홍보.”
“오빠.”
“응?”
“즙 사진을 보면 얼마나 본다고. 모델이 있어야지. 즙 들고 셀카라도 찍어서 올려. 인터넷 댓글들 보니까 아줌마들이 오빠 되게 좋아하더라.”
나는 헛웃음을 쳤다.
“아줌마들이?”
“응, 요즘 댓글들 연령대 나오잖아. 30대부터 50대 여자들 댓글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더라고. 그리고 맘카페 같은 데서도 오빠 같은 사람 괜찮지 않냐고, 막 신랑이랑 비교하는 글도 올라오고 그러던데?”
강인나는 유난스러운 아줌마 흉내를 낸답시고 요상한 목소리를 냈다.
“요즘~ ‘우리는 몸신이다’에 나온 강건희 씨 멋지지 않나용~?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어도 제 눈에는 참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우리는 몸신이다’ 보고 나서 강건희 씨 나온 다른 프로그램들도 찾아봤는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멋지더라구요~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업체의 대표기도 하구요.”
“뭐 하는 거야…….”
“무료로 사람들 건강상담도 해주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존경스러운 부분도 있구요. 그에 반해 저희 남편은 쥐꼬리도 안 되는 월급 가져다주면서 집에 오면 퍼질러 잠만 자네요. 자다가 방귀 부륵부륵 뀔 땐 가끔 엉덩이 걷어차버리고 싶습니다. 아무튼~ 다른 맘님들은 어떠세요~?”
나는 피식 웃었다.
“이상한 짓하지 말고 집에나 가.”
“아무튼…… 연예인병 걸리고 그러지 말어.”
“연예인병은 무슨 연예인병이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
“알겠습니당~ 그런데 사장님 너무 멋지시네용~”
“야, 이……!”
강인나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 웃었다.
“그럼 내일 봐 오빠.”
“그래, 조심히 들어가.”
녀석이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목소리를 냈다.
“앗.”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고개를 몇 번이나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왔나보네.
나는 바로 가게 밖으로 나섰다.
노우민과 녀석의 어머니인 김현자와 동생들 그리고 이필순 할머니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