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58화 (58/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58화

15. 누구나 과거는 있다 (5)

인터넷으로 사람들의 반응들을 살피던 중이었다.

짧은 진동과 함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장님, 지금 바로 기사 올라갈 예정인데 괜찮으시죠?]

[물론입니다. 빠를수록 좋죠.]

[예,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새로운 기사가 빨리 올라가 여론을 뒤집어야 되는데.

그렇게 이것저것 보고 있다가 양미희와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거기에도 악플이 엄청 달렸겠지?

바로 양미희의 아웃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어?”

나와 찍은 사진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지나쳤나 싶어서 스크롤을 몇 번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지만, 사진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지는 않았다.

열애설까지는 개의치 않았던 듯했다. 어찌됐든 검색어에 오르고, 관심도와 인지도가 상승할수록 이득일 테니까.

하지만 내가 논란의 중심이 되자 곧바로 사진을 내렸다.

손절인가. 아니, 익절일지도.

양미희의 선택이 이해는 된다. 나와 딱히 진짜 뭐가 있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엮이기 싫을 수도 있다.

연예인의 포지션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방송가에 기웃거리는 이상 이미지가 중요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일지 모르는 것이니 당연하다.

그런데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씁…….”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기자에게 연락이 온 건가 했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네, 강건희 씨 번호로 연락드렸습니다.

교양 있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네, 맞습니다. 제가 강건희입니다. 어디시죠?”

―안녕하세요, 저 나도혜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신 것 같더라고요.

“아……. 보셨군요.”

―모를 수가 있나요. 검색어 1위에도 올라갔는데.

“그렇죠……. 하하.”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웃음으로 때웠다. 딱히 웃을 기분은 아닌데.

―다른 게 아니라, 변호사 필요하시면 말씀하시라고 연락드렸어요.

“네?”

―법적인 절차를 밟으셔야 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 지금 당장도 원하신다면 법적인 절차를 밟으실 수 있으시니까요.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제가 비슷한 일로 변호사를 쓴 적이 있거든요. 그분이 이쪽으로는 국내에서 손꼽힙니다.

“비슷한 일을 겪으셨다고요?”

나도혜는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뭐 누군가를 폭행했다거나 그런 건 당연히 아니고요. 명예훼손에 관련된 걸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 네. 당연히 그러시겠죠. 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소개해드릴까요?

“그건…….”

약 1초 혹은 2초 정도 고민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에 필요하게 되면 그때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언제든지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것도 아닌 걸요. 그럼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아, 잠시만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저번에 말씀하신 비즈니스 얘기는 뭔가요? 어떤 비즈니스 얘기인지…….”

나도혜는 특유의 웃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건 이번 일이 잘 해결되시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죠. 어차피 이번 일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함께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무리니까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었다.

뭐가 어찌됐든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니 좋았다.

속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호의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있는 내 이름을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뉴스 기사가 올라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라기보다는 나의 입장문에 가까웠다.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를 늘어놨고, 기자는 그대로 옮겨줬다. 아예 나의 인터뷰 내용 전문을 실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빨랐다.

―이럴 줄 알았다. 사람들은 진실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떠들어대지. 아니, 짖어댄다. 그런 이들을 두고 개돼지라고 하는 것임...

―위에 꼰대 냄새 오지네. 이건 어디까지나 입장 밝힌 거 아님? 이쪽이나 저쪽이나 확실한 물증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 기어 박는다.

―결국 일진은 아니어도 사람 때린 적은 있다는 거네.

―남자들 중에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싸움에 휘말려본 사람들 많을 거다. 이 사람은 자기한테 싸움 건 사람들하고만 싸웠다잖아. 그것도 학생 때가 마지막이고.

―어쨌든 결론은 처맞았다는 놈이 양아치라는 거 아님? 깝치다가 처맞아놓고, 잘 나가는 거 같으니까 배알 꼴려서 구라 친 거잖아.

어느 정도 여론은 내게로 넘어온 듯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에 떠오른 생각이 있어 기자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그렇게 기사 하나 더 내주실 수 있으세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네, 수고하세요.]

나는 이 사태를 벌인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출했다.

일단 기다려야 할 때였다.

내일도 일은 해야 됐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면서도 다짐했다.

안영기, 이번 일은 그냥 못 지나간다.

후회하게 될 거다.

10

“어……?”

푹신한 소파에 앉은 채 깼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맞은편에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내가 반갑게 맞이하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기운차게도 일어나는구나.”

“그럼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넌 좀 어떠냐?”

“저요? 저는 뭐……. 전반적으로 잘 지내고 있기는 한데…….”

할아버지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든지 쉽지가 않지? 좀 잘 된다 싶으니 주위에서 질투도 하고 말이야.”

“보고 계셨군요.”

“알면서 물어서 미안하다.”

“아니요, 사과하실 건 아니죠. 안부 물어봐주신 건데.”

“아무튼…… 원래 세상살이가 그렇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나 두들겨 팼던 놈이 잘 되면 얼마나 배가 아프겠냐?”

“그러게요. 저 같아도 그러겠어요.”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할아버지를 통해서 들으니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웃어 보였다.

“더 심한 꼴도 얼마든지 볼 수 있어. 죽어도 남 잘 되는 꼴은 못 보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리고 질투하는 사람만 있을 것 같으냐? 뭐라도 하나 빼먹으려고 다가오는 놈들부터 해서 별의별 놈들이 다 있지.”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당연히 속이야 상하겠지. 속상할 수밖에. 하지만 거기에만 묶여서 진짜 중요한 걸 놓치지는 말라는 얘기야.”

나는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이고는 씩 웃어 보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볼 때마다 잔소리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내가 여기서 겉모습은 이래도 늙은이잖냐.”

“아니에요, 항상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감사드리고 있어요.”

“됐다. 새삼스럽게 뭘.”

할아버지는 검지로 뺨을 긁적거리다 물었다.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네? 갑자기요?”

“사실 이 얘기를 해주려고 왔던 건데, 다른 얘기들이 먼저 나왔구나.”

나는 피식 웃었다.

“네, 해주세요. 무슨 얘긴데요?”

“사람들이 질투하고 배알 꼴려서 남 앞길 가로막으려고 하고, 뒤에서 붙들고 늘어지는 얘기에 관한 거야.”

“말씀해주세요.”

할아버지는 주먹을 입 앞으로 가져가더니 흠흠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조선 초의 일이었어. 일 없이 노니며 남 참견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이첨지라는 사람이 바다 마을을 배회하다 어부 하나를 발견하고 시비라도 틀 참으로 다가갔어. 마침 대나무 망태기가 옆에 보였지. 그 안에 뭐가 들었‘게’?”

“글쎄요?”

“이미 답은 나왔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게가 들어 있었어.”

피식 웃고 말았다. 고작 이런 개그에 웃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대나무 망태기 안에 게가 가득 들어 있는데 뚜껑이 없었지. 그래서 이첨지가 ‘여보게, 이 안에 게가 전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지. 그러자 어부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어. 해서 이첨지는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뚜껑을 덮어놓지 않는단 말인가.’ 라고 했지. 그러자 어부가 말하기를…….”

할아버지는 마치 어부가 된 양 말했다.

“당췌 조선 게라는 것들은 자기 몸 상하는 것 보다 남 잘 되는 것이 더 걱정인지라, 한 놈이 망태기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다른 놈들이 힘을 합쳐 끌어내립니다. 무슨 뚜껑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할아버지는 나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자 이첨지는 ‘과연 조선 땅에서는 게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하고 감탄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옛날이야기다.”

“엄청나게 공감이 돼서 조금은 씁쓸할 정도네요.”

“옛부터 그랬던 거란다. 대부분의 사람들 성향이 그래. 그러니 마음 편히 먹거라.”

“네, 꼭 그럴게요.”

“아무튼…… 이제 슬슬 가봐야겠구나.”

“봬서 좋았습니다.”

“나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소망 하나를 이뤄서 참 좋았어.”

“소망이요? 무슨 소망이요?”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손주한테 옛날이야기 한 번 해주고 싶었거든. 네가 장성하고 나서야 옛날이야기를 해주는구나. 들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그 순간 눈을 깜빡였다.

“헉!”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상반신을 일으키고 자연스레 천장을 올려다봤다.

“할아버지…….”

11

마음이 많이 물렁해졌다.

자기 직전까지만 해도 ‘안영기를 어떻게 조질까’라는 생각으로만 가득했는데.

이미 안영기의 입장은 상당히 곤란해져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편이 돼 있었고, 안영기를 욕하는 중이었다.

익명의 글 덕분이었다.

나에 대한 옹호는 아니었고, 안영기가 학창시절 악랄했다는 내용을 적나라하게 늘어놓은 것이었다.

소설이라기엔 너무나 디테일한 글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믿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확실한 물증이 없이 어디까지나 글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와중에 안영기 측에서도 나름대로 기사를 냈다.

별 내용은 없었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나와의 만남은 거부한다고.

―또 처맞기는 싫은가 보넼ㅋㅋㅋㅋㅋㅋㅋ

―떳떳하면 만났겠지.

―뭔가 캥기는 게 있으니까 그러겠죠?

―깝치던 양아치가 ‘진짜’한테 당한 사건인가.

그럭저럭 정리는 되어가는 듯했다.

여론은 확실히 내 편으로 돌아서 있었다.

벌써 안영기의 신상 캐기도 이뤄지는 중이었다.

하여튼 네티즌 수사대 무섭다니까.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취소됐던 온라인 주문량이 다시 늘어나지는 않았다. 언제나 꽉 찼던 건강상담도 5건이 비었다.

아직 완벽히 누명을 벗은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안영기에 대한 누명은 벗었더라도 내 이미지가 상했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었다.

덕분에 가게 분위기도 평소 같지 않았다.

노우민도, 강인나도, 숙모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인마. 편하게 얘기해.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아, 괜찮아. 진짜 괜찮다니까? 일시적인 거야.

후식으로 뭐 먹을까요? 맨날 주스나 즙 먹었는데, 간만에 커피 한 잔씩?

일부러 내가 더 쾌활하게 굴었다.

하지만 무언가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정말 나도혜의 말대로 법적 대응이라도 해야 되는 걸까? 있는 자료 없는 자료 싹 다 오픈해서 결백함을 나타내야 되는 걸까?

새벽에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심은 통한다고, 굳이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일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오빠! 오빠 빨리 와봐!”

강인나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뭔데? 또 뭔데?”

내가 다가갔고, 녀석은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검색어 1위는 ‘학교폭력 회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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