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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54화 (54/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54화

15. 누구나 과거는 있다 (1)

1

시간은 절대 멈추는 법도 없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제나 그 일관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대하느냐는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내가 느끼는 시간도 많이 달라졌다.

전보다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때가 종종 있었다.

당연히 나의 세월이 훅 지나가길 한 것은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지겨운 야근이 빨리 끝나길 바랐고, 얼른 시간이 지나 월급날이 오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아쉽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일요일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하는 만큼 벌어서, 온전한 내 것인 무언가를 꾸려나가서 그런 듯하다.

빠르게 흘러간 시간을 나타내듯 날씨는 꽤나 시원해져 있었다. 완연한 가을이었다.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회사 이름도 완료했다.

미라클 헬스케어.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려보고 있었다. 아직은 김칫국 마시는 것일지는 몰라도 일단 목표는 모회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행복 건강즙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하지만 작은아빠의 ‘무슨 다단계 회사 차리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상처였다. 나 역시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더 분했다.

하지만 변경치는 않았다.

내 삶에 기적처럼 찾아온 일이기에 미라클보다 좋은 표현은 없다고 여겼다.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해주고, 난치병이나 불치병도 기적처럼 낫길 바라고.

‘일의 달인’ 촬영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촬영 과정이 ‘세상에 이런 일도’의 간단한 버전과 같아 어려울 게 없었다.

시청률도 평소보다 1.5% 정도 높게 나왔다.

작가의 말로는 이미 방송을 탄 적이 있는데다가 아이튜브에서도 화제가 된지라 시청률이 평소보다 잘 나온 거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딱히 그리 생각지 않지만, 어쨌든 잘 됐다니 기분이 좋았다.

내일이면 ‘우리는 몸신이다’ 촬영이었다.

그렇다고 오늘이 달라질 건 없었다.

평소처럼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사장님은 카운터에 계세요. 이런 건 제가 해야죠.”

과채류 손질을 거들려고 하자 노우민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너 손목―”

녀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허리를 잘랐다.

“싸장님, 저 이제 강철 손목입니다. 일을 줄이니까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너무 좋아졌어요. 알려주신 손목 강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그리고 여기 숙모님께서 저보다 일을 더 잘하셔서 진짜 사장님 도움이 안 필요해요.”

보통 자신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여자를 대상으로 친근하게 부를 때 이모라고들 하지만, 나한테 숙모라고 노우민도 호칭을 숙모로 하고 있었다.

숙모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보탰다.

“진짜 그래. 사장님은 더 중요한 거 하세용.”

나는 멋쩍게 웃어 보이고는 괜스레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주방에서 나왔다.

뭐가 어찌됐든 노우민과 숙모가 잘 맞아서 다행이다. 둘 다 항상 즐겁게 일하는 듯하고. 일의 속도나 제품의 품질도 내가 직접 할 때와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

이따금씩 체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방에서 할 일이 사라져버렸다.

카운터도 이미 자리가 차 있었다.

강인나가 컴퓨터를 붙들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일하고 있지.”

주문이 제법 많이 들어왔는지 녀석의 손은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였다.

“그렇구나. 매출은 어때?”

“장난 아니야. 방송 나간 거 효과 톡톡히 보고 있어.”

“그래? 잘 됐네. 아, 이따 저녁은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무거나.”

“종목을 딱 골라야지.

“오빠, 나 집중하고 있으니까 말 시키지 말고 저쪽으로 가 있어. 응? 네? 실수하면 안 되잖아요? 그쵸?”

녀석은 씩 웃어 보였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진짜 광기가 서린 조커 같아서 뒷걸음질 쳤다.

“어…… 그래. 열심히 해.”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다 자그마한 테이블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짜 다른 일에도 손을 댈 때가 된 듯했다.

상상도 못한 속도로 자리가 잡혔다.

보통 사장이 손을 떼면 가게가 망한다고들 하던데, 손을 대려고 하면 다 저리 가라고 하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행복함이 묻어나는 헛웃음.

나는 노우민과 숙모가 대화하는 목소리 그리고 강인나가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믿음직한 사람들이다.

사업 확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얘기를 해놓은 상태.

자본금이 모이기만 기다리면 됐다.

매출이 지금처럼만 유지돼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몸이 편한 게 얼마만인지.

그래도 머리는 쉬지 않았다.

메모지에 이것저것 끼적여가며 생각들을 풀어놓는 중이었다.

딸랑딸랑.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오정득이었다.

“여어.”

양손에 쇼핑백을 잔뜩 든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뭘 그렇게 잔뜩 가져왔어?”

“빈손으로 오면 쓰나.”

“너 자주 그랬잖아.”

“에이 씨. 김새게 그럴래?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뭔데?”

“별건 아니고, 그냥 간식거리랑 생필품 같은 거 이것저것.”

“갑자기 뭐 이런 것들을 사왔어?”

오정득은 주변 눈치를 살피다 내게만 들리게 소곤거렸다.

“다른 사람들 좀 챙겨주려고.”

굳이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 형편이 썩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오정득은 그게 마음이 쓰였는지 일부러 이것저것 챙겨온 듯했다.

“잘했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무슨 일로 왔어? 일 안 해?”

“어, 나 회사 나오기로 했어.”

“뭐?”

“개인 사무실 차리려고.”

나는 눈을 꿈벅거리다 말했다.

“진짜로?”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요즘 개인 사무실들 영업 발로 뛰어야 되는 수준이라던데. 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다 숨통 트일 곳이 있으니 나오는 거지. 준비도 안 하고 그냥 때려치겠냐?”

“그러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오정득이 눈을 흘겼고,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그 얘기하려고 온 거야?”

“것도 그렇고, 너 난리도 아닌 거 같더라.”

“그건 무슨 소리야?”

“너 티비 나오고 그런 거 동창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거 같더라고.”

“그래?”

“반응이 뭐 이리 미적지근해?”

“아이튜브 조회수만 100만이 넘었으니 그중에서 나 아는 사람도 당연히 있겠지.”

나는 팔짱을 끼며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좀 신선한 뉴스 없어?”

“없어. 내가 뭐 신문이냐? 뉴스 갖다 주게.”

“하여튼 싸가지하고는…….”

“아무튼 조심해.”

“뭘 조심해?”

“너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 아냐. 그것도 장사 잘 되는 거 훤히 드러냈고. 남 잘 되는 꼴 못 보는 사람들 많다. 그러니까 조심해라.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돼.”

사뭇 진지해진 오정득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걸 이제야 말하냐? 아이튜브랑 방송 나간 게 언젠데.”

“아무튼.”

“조심하고 있지 당연히.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러다 잠시 집중해서 오정득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스트레스와 피로가 많이 오른 게 보였다.

“너 컨디션 안 좋아?”

나의 물음에 오정득은 괜찮다는 양 웃어 보였다.

“아니? 전혀.”

“아닌데? 스트레스도 많아 보이고.”

“그냥…… 그래도 몇 년 동안 다닌 회사 나오려니까 싱숭생숭하잖아. 그리고 인수인계 하느라고 정신없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

“이따 즙이나 좀 가져가라. 아침마다 챙겨먹고.”

“난 귀찮아서 잘 안 먹게 되더라.”

“귀찮다가 아프지 말고 챙겨먹어.”

“알았어. 즙은 안 줘도 돼. 예전에 나한테 준 거 아직 많이 남았어.”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게 아직도 많이 남았어? 이제 꼭 챙겨먹어라.”

“알았어, 무슨 시어머니처럼 잔소리하네.”

“그래, 계속 그러면 쥐 잡듯이 잡아줄게.”

그때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시선이 곧장 문으로 향했다.

예약된 건강상담도 없고, 딱히 올 사람도 없었다. 인터넷 주문이 활성화되고 난 다음부터는 직접 사러 오는 사람도 적다. 특히나 저녁에는 더욱.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셔츠에 정장바지를 입은 퉁퉁한 체격의 30대 중반 남자였다.

“어서 오세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

오정득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낯빛이 썩 좋지 않았다.

“오랜만이다.”

남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구……?”

내가 미간을 좁히며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자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못 알아보는 거야? 나 기억 안 나? 나야, 안영기.”

“안영기?”

그제야 낯이 익기 시작했다.

안영기.

마른 체구였던 옛날과는 달리 후덕해져서 못 알아봤다.

내가 아는 안영기라면 하나뿐이다.

싸가지 밥 말아먹은 양아치.

2

“방송에서 봤을 때랑 또 다르네? 뭐가 많이 붙어 있고?”

안영기는 주스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가게 안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어, 자격증도 이번에 새로 따고 그런 거라.”

“그래? 이야, 자격증이랑 수료증이랑 뭐가 많네. 이 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전부 다 필요한 건 아니고.”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잖아? 너랑 나랑 꼴찌를 다퉜었는데, 어떻게 이런 건 다 땄대?”

“그냥…… 노력했지 뭐.”

굳이 찾아왔는데 나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주스도 대접하면서 일단 마주앉았다. 온 목적이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특별히 뭐가 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지라 행동에 조심할 필요도 있었다.

학창시절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녀석도 아직까지 양아치는 아니겠지.

사실 안영기가 양아치인 걸 사실이지만, 나와 사이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녀석은 내게 잘했다.

자신의 무리에 나를 끌어들이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었지. 당시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위 말하는 일진에 속할 수 없었다.

일단 일진들 중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이 대다수였고, 그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러 다닐 여유도 없었다. 삥이나 뜯고 다니기도 싫었고. 말이 삥 뜯는 거지, 성인이 돼서 그러면 강도 아닌가.

“그나저나 정득이도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 둘이 아직까지 연락하는 줄은 몰랐어. 나한테도 연락 좀 하지.”

안영기가 웃으며 말했지만, 나와 오정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친하지도 않은데 부를 리가 없지.

“정득이, 오랜만이다?”

안영기는 실실 웃으며 말했지만, 오정득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러게.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

“야, 오랜만에 보는데 왜 이렇게 얼굴을 굳히고 있어? 친구끼리 이러기야?”

“친구? 누가 네 친구야?”

오정득이 인상을 팍 찡그리자 안영기도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를 거뒀다.

“야……. 왜 그래?”

“넌 웃음이 나오나보지?”

“너 설마 옛날 일 때문에 그래? 그거 벌써 15년도 넘은 일이잖아. 야, 그때는 어렸잖아. 장난 좀 심하게 쳤던 거고.”

“장난? 그게 장난이었냐? 장난은 웃겨야 장난이지. 난 하나도 안 웃겼어. 지금도 안 웃기고.”

“야…….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러냐? 웃자, 응? 오랜만에 봤는데.”

“안 웃기다니까.”

안영기는 고개를 잠시 옆으로 돌리고는 입을 살짝 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을 보니 적잖이 열이 받은 듯했다.

“알았다. 내가 옛날에는 미안했다. 응?”

녀석이 사과를 건넸다.

의외였다.

역시 세월은 사람도 변하게 만드는 건가.

오정득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득이는 왜 여기 있어? 놀러온 거야?”

안영기가 내게로 시선을 옮기고 물었다.

나는 오정득의 눈치를 살피고는 대답했다.

“세무 관련된 일 좀 봐주고 있거든.”

“그래? 경리? 공부 잘하지 않았나?”

“회계사.”

“회계사? 근데 이 가게 세무 업무를 봐준다고?”

“응.”

“하긴, 장사 잘 되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나?”

안영기는 다시 실실 웃으며 오정득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다시 말했다.

“정득이 잘 나가는데.”

오정득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영기가 표정을 확 굳혔다.

“너 아까부터 계속 왜 그래?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이제 잘 지내보려고 그러는 거잖아. 어? 사람이 말을 하면―”

내가 말허리를 잘랐다.

“됐어, 그만해.”

“어? 아니, 그게 아니라―”

“됐다고, 말하기 싫다잖아.”

“야, 너 같으면 안 섭섭하겠어? 아무리 옛날에 실수한 게 있어도 그렇지, 대놓고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는 경우가 어디―”

나는 인상을 팍 구겼다.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해.”

“어? 아니, 그래도…….”

“적당히 하라고.”

안영기는 내게도 빈정이 상한 듯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딱히 인상을 구기지도 않았다.

그저 지그시 두 눈을 쳐다봤다. 이내 안영기는 쭈글해져서는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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