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52화
14. 확실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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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원래는 휴일이다.
휴일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은 없다. 언제나 가게 일을 봤다. 재료 손질이라도 했고, 그것마저 없으면 뒷정리와 청소라도 했다.
지난 주 이후로 두 번째 가게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일요일이었다.
렌트한 차를 타고 김현자를 만나러 가는 길.
지난번과 차이가 있다면 노우민 그리고 녀석의 동생 3명 중 2명이 차 뒷좌석에 함께하고 있었다.
21살짜리 동생은 군복무 중이었고, 뒷좌석의 두 여동생은 각각 20살과 17살이었다.
둘 모두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다. 20살짜리는 고등학생 같았고, 17살짜리는 중학생 같았다. 그래서 더 귀엽기도 하고, 사정이 딱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아직 애들 같은데 벌써 철이 들어버렸으니까.
노우민의 동생들답게 예의바른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그전에 김현자의 자식들이고, 이필순 할머니의 손녀들이기도 했고.
이필순은 처음부터 딱 정감 가는 시골 할머니 같았다.
김현자는 비록 첫인상부터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을 열고 난 뒤에는 좋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홀몸으로 자식들을 이렇게 훌륭히 키워냈으니 그것만 봐도 짐작이 된다.
난 아직도 김현자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닫혔던 마음을 열고, 사과를 하며 따뜻하게 대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니까.
겪어봐서 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식이자 나의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돈을 버는 요령은 없었지만, 누구에게 피해 한 번 끼치지 않고 가족에게는 다정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참된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죽음을 앞두고는 많이 변했었다. 간병을 하면서 때로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기도 했고, 미워지는 순간마저 있었다. 내게 남기는 것이라고는 마지막 화뿐이었으니까.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그 순간에는 지난날의 다정함을 조금도 기억할 수 없었다. 이따금씩 떠올려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왜 저렇게까지 변했나’ 같은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알 것 같았다.
얼마나 한이 되고 두려웠을까.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 몇몇은 환자가 가기 전에 마지막에 뒤바뀌는 것은 정을 떼려고 그러는 거라고.
진짜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변하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말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간병을 하는 사람은 견딜 수가 없으니까.
“사장님, 저쪽으로…….”
노우민이 길을 가리켰다.
나는 피식 웃었다.
“네가 안 알려줘도 네비게이션이 알려준다.”
“아, 그렇죠.”
“저번에도 와봤고.”
“그러게요.”
녀석은 동생들과 함께 차를 얻어 타고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게 마냥 어색하고 미안한 모양이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도 않았고, 무언가 도움이라도 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래봐야 실질적인 도움이라고는 물병 뚜껑을 열어준 정도가 전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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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셔도 되는데.”
나는 밥상머리 앞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휴, 어떻게 손님이 왔는데 아무것도 안 내놓는대유?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유.”
“상다리가 휘겠는데요?”
“아유, 얼른 드시기나 해유.”
이필순 할머니는 얼른 수저를 들라는 듯 손을 저었다.
각종 나물 반찬과 구수하고 쿰쿰한 청국장, 생선구이 그리고 고기구이와 각종 쌈까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나는 김현자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다시 말했다.
“어머니, 식사 잘 하셔야 합니다.”
“네, 입맛 없어도 챙겨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는 고기구이 외에는 골고루 챙겨먹었다.
청국장이야 특성상 맛이 제법 강했지만, 다른 음식들은 전체적으로 싱거웠다.
밥상에서 김현자의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이필순 할머니의 딸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노우민과 다른 두 녀석도 곧잘 먹었다.
“선생님, 팍팍 좀 드세유.”
이필순 할머니의 말에 나는 웃어 보이고는 밥을 한 술 크게 떴다. 그리고 나물과 청국장 등을 골고루 맛보는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음식 하나하나가 최고의 진미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정겨움이 담겨 있었다.
왠지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하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울어요?”
노우민의 막냇동생이 물었다.
“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이번에는 셋째가 목소리를 냈다.
“눈이 촉촉해요.”
“어?”
스스로도 느껴졌다. 민망함에 애써 미소를 크게 머금어 보였다.
“울긴 왜 울어. 슬픈 일이 없는데.”
“정말요? 눈이 빨간데.”
“피곤해서 그래.”
노우민이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돌아갈 땐 제가 운전할까요?”
“내 이름으로 렌트했는데, 네가 운전하다가 접촉사고만 나도 골치 아파진다. 그리고 그냥 눈이 피곤한 거야.”
대충 얼버무리는데, 이필순 할머니가 모두를 나무랐다.
“아, 선생님 식사하시는데 왜 자꾸 쓸데없는 말들을 하고 그려? 밥 먹을 땐 말이여, 입을 밥 먹는 데만 써야 하는 거여.”
김현자는 피식 웃으며 식사를 했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게 행복해 보였다. 그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이런 부분도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으니까.
노우민과 두 동생을 데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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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떠세요?”
방에서 김현자하고만 마주앉아 있었다.
“컨디션이 조금 좋아진 것 같아요. 확실히 억지로라도 챙겨먹으니까 힘이 더 나는 거 같고요.”
“무조건 잘 드셔야 돼요. 그래야 몸이 이겨낼 힘을 가집니다.”
“그래야죠.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당분을 비롯해서 너무 자극적인 음식들 그리고 튀긴 거는 피하시고요. 채식 위주이긴 하지만, 섬유질도 필요 이상으로 먹으면 좋지 않거든요. 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져서 영양분 섭취량이 줄어들어요.”
김현자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건 전혀 생각 못했네요.”
“뭐, 어디까지나 너무 많이 드셨을 때의 얘기니까요. 지금 어머님께서는 드시는 양을 늘려야 할 때이니 크게 걱정하실 건 없을 듯합니다.”
“그러게요. 한 끼 먹으면 다음 끼니는 거르고 싶어지니…….”
“절대 거르시면 안 됩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지난주보다 조금은 혈색이 좋아졌다. 푹 꺼진 볼도 조금은 올라온 모습이었다.
하지만 암이 호전됐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래도 작은 희망이 보였다.
몸이 조금은 나아진다는 증거를 들이미는 것이었으니까.
여전히 다른 질환들을 다룰 때와는 다르게 핵심이 되는 치료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들이 떠올라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새로 전수받은 서양 민간요법 덕분이었다.
대부분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재료가 겹쳤으니까.
조리방식 또는 섭취방법의 차이 정도였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주변에 혹시 사우나가 있나요?”
“사우나요? 좀 걸려요. 시내까지 가야 되니까. 그런데 사우나는 왜요? 사우나 가시게요?”
“제가 가려는 건 아니고요. 어머니께서 주기적으로 찜질을 하셔도 좋으실 듯해서요.”
“찜질이요?”
“네. 핀란드에는 ‘사우나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불치병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돈데요. 과한 찜질은 좋지 않지만, 적당히 이용해주면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김현자는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예전에 무슨 온열요법인가 받으라고 하는 요양원 사람이 있긴 했는데…….”
“그래요?”
“네. 그런데 너무 비싸서 안 한다고 했죠. 거기 요양원에서 지내는 비용에 온열요법 비용에 다해서 한 달에 300만 원이 넘더라고요. 말도 안 되죠. 그나저나 진짜로 사우나가 효과가 있다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장담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될 것도 같긴 한데. 왜 암세포가 특정 온도 이상에 노출되면 사멸한다고, 암이란 게 체온이 낮을 때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런 말이 있긴 하죠. 정확히는 체온이 42도 이상이 되면 암세포가 증식을 못하고 사멸하게 된다고. 그런데 문제는 체온이 40도 이상이 되면 뇌의 단백질에 변성이 일어나서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들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요.”
“그럼 사우나도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장시간 고온에 노출되면 체온도 상승하겠지만, 적은 시간으로 체내의 온도까지 상승시키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면 또 암세포 죽이는 데는 효과가…….”
“한 가지라도 더 해보는 겁니다. 변칙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거죠.”
김현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효과만 있다면 뭐든 할 텐데 말이죠.”
“벌써 효과를 조금씩 보고 계시잖아요. 컨디션이 좋아지셨죠? 분명히 더 나아지실 겁니다. 사우나는 위치도 멀고, 처음부터 부담되실 수도 있으니 반신욕 정도로 하시면 좋을 듯해요. 반신욕이야 여러 가지로 효과가 좋기도 하고요.”
“반신욕……. 좋을 것 같네요.”
“딱 30분만 하세요. 하시면서 미지근하거나 적당히 시원한 느낌이 드는 물을 드시고요. 차도 좋고요. 왜 외국영화 보면 반신욕하면서 샴페인 같은 거 마시고 그러죠? 그런 기분 내보세요.”
김현자가 생긋 웃었다.
“좋을 것 같네요.”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지금 서울로 출발해야 초저녁쯤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럼 말씀드린 대로 꼭 하시고요. 궁금하신 거 있을 때 또 연락주세요.”
“네, 그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벌써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나는 양손을 내저었다.
“어휴, 그런 말씀 마세요. 은혜는 무슨.”
“은혜죠.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분명히 좋은 일 생기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께도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고마워요.”
김현자가 활짝 웃어 보였다.
처음 봤을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에게, 모든 사람들이 항상 밝은 미소를 짓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
“너네는 아까 그렇게 먹고도 또 먹냐?”
노우민은 두 동생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서울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되었고, 바로 보내기가 괜히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에 왔다.
내가 감자튀김 하나를 케첩에 푹 찍어먹자 양손에 햄버거를 쥔 노우민의 막냇동생이 물었다.
“이런 것도 드시네요?”
“응?”
“햄버거랑 감자튀김이랑 콜라요.”
“먹으면 안 돼?”
“맛없는 나물 같은 거만 먹으라고 할 거 같았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건강상담하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자주는 안 먹지.”
감자튀김을 하나 들어 보였다.
“특히 이 감자튀김이랑 콜라가 몸에 정말 안 좋아. 사실 햄버거 자체도 호밀빵 같은 거랑 채소 많이 넣고, 소스 잘 골라서 한 다음 패티도 고기 질이 좋은 걸로 만들면 건강식이지.”
“맛있겠다…….”
천진한 한마디에 절로 웃음이 났다.
저런 동생이 있으면 열심히 안 살래야 안 살 수가 없겠구나.
내게도 동생이 있긴 하지.
강인나.
친동생이나 다름없다. 사촌들 중에 유일하게 가깝기도 하고. 녀석은 쉬는 날에 뭐 하려나? 고모는 뭐 하고 있을까.
작은아빠 가게는 잘 되나 모르겠네. 규모는 작아도 나름대로 손님들은 좀 있는 것 같던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물다가 가족이었던 숙모가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패스트푸드점을 빠져나왔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다음에 뵐게요.”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노우민의 동생들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다음에 보자.”
그렇게 동생들이 먼저 가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노우민과 눈을 마주쳤다.
“동생들이 되게 착하네.”
“착하긴 하죠. 사고뭉치들이라 그렇지. 공부도 더럽게 못 해가지고…….”
“그래? 잘할 거 같은데.”
“큰 녀석은 그래도 전문대이지만 장학금 받으면서 잘 다니는데, 막내가 문제에요. 완전 빡대가리라니까요.”
“건강하고 착하기만 하면 됐지 뭐. 자기 하고 싶은 거 분명하고.”
“그건 그래요.”
“커피나 한 잔 마시러 가자.”
“예.”
잠시 둘이서 얘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앞에 각자 마실 것을 하나씩 놓고 마주앉았다.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아닙니다.”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저희가 사장님 시간을 뺏은 거죠. 일요일 딱 하루 쉬시는데, 그날마저…….”
“됐고. 아무튼…… 내일부터 알지?”
“네, 네. 숙모님께서 같이 근무하실 거라고.”
“그래. 그래서 너한테 할 말이 있다.”
노우민은 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떤……?”
“네가 교육 맡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