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51화
14. 확실함 (1)
1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절 받으세요.”
나는 곧바로 절을 했다. 바닥을 짚은 양손 위로 닿아 있는 이마를 바로 떼지 않았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절을 한 뒤에는 반절을 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너무 좋네요.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실제로 할아버지의 안색이 좋아져 있었다. 심지어 빛까지 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후세계에서 건강의 영향이 있을 리는 없는데.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이야기에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항상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모를 것 같으냐?”
“예?”
“너 허구한 날 그러잖아. 감사하다고.”
“다 듣고 계셨어요?”
“아, 그러엄. 아내가 온 뒤로는 심심할 틈이 없다. 같이 너 보면서 수다 떠는 게 제일 재밌어. 덕분에 요즘 공부를 게을리 하는 거 같아 반성 중이다.”
“두 분 모두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할아버지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아, 그럼 잘 지내지. 신혼 같아. 신혼이나 다름없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결국 이런 날도 오는구나. 죽고 나서도 오래 지나고 볼일이야.”
“하하하하. 나중에는 두 분 모두 같이 보는 날도 오겠죠?”
“아, 그럼. 분명히 그럴 게다. 그날이 너 살아 있는 동안에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제인지보다는 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거죠.”
“그래, 그렇지.”
할아버지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턱을 어루만지다 무언가 신경이 쓰이는 듯 잠시 위로 시선을 뒀다. 그리고 눈썹을 살짝 찡그리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헷갈리지 않으냐? 과연 네가 한 게 옳을까?”
“예?”
순간 뜨끔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건강상담 시간이 너무 적어서 그런가?
너무 사업에 열중하는 모습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있나?
일을 하는 게 뭔가 잘못됐을지도.
그래, 나름대로 노력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잘해야지.
유난히 모나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긴 했다. 내가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고.
역시 암환자를 돕겠다고 나선 것은 주제넘은 짓이었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조마조마하게 만들던 중이었다.
“절 말이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당연한 것처럼 나한테 절을 한 번 했잖냐? 그런데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는 두 번을 하지. 그럼 여기서도 두 번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난 이미 죽었으니까.”
“아…….”
“그렇지?”
“그러게요.”
머쓱함에 뒤통수를 긁적거리다 손을 앞으로 모았다.
“절…… 다시 올릴까요?”
“아유, 됐다. 그럼 총 세 번이잖아.”
“한 번만 더 하면 합해서 두 번이니…….”
“일없다.”
나와 할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대화보다 많은 게 오갔다. 따뜻한 눈빛이 가슴을 꿰뚫고 들어와 마음을 직접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뭐…… 할 말 있느냐?”
“할 말이요? 드릴 말씀이 있긴 한데…….”
내가 머뭇거리자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나도 할 말이 있어서 널 보러 온 거거든.”
“그래요? 저한테요? 어떤 말씀이요?”
“너 먼저 말해보지 그러냐?”
여전히 말을 꺼내기가 껄끄러웠지만, 뜸을 들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알고 계실 테지만…… 제가 최근에 암환자이신 분을 알게 됐습니다.”
“알고 있다.”
“그런데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무슨 확신?”
“제가 그 분을 낫게 할 수 있을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건…….”
할아버지는 말을 꺼내놓고는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살리고 싶으냐?”
“예.”
“왜?”
“네? 왜라니요?”
“어째서 그렇게까지 살리고 싶냐는 말이야.”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죽음 그리고 그에 따른 필연적인 이별은 너무 슬프잖습니까. 제가 아끼는 녀석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그렇구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도 모른다.”
“예?”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는 것보다도 서글픈 그런 미소였다.
“그건 아무도 몰라. 하늘만이 알지.”
“아…….”
당연한 거였다.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걸 바라고, 기대하며, 의지했을지도.
할아버지는 나를 달래주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게 순리인 거야.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거지.”
“예,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소리도 아니다.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너는 많은 걸 가지고 있지 않느냐?”
“예, 할아버지께 전수받은 능력이 있으니 열심히 하면 분명…….”
“그것도 그거지만, 중요한 건 간절함이다.”
“간절함이요?”
“그래. 언제나 예외는 있고, 기적이 일어나게 마련이지. 네가 지금 나와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도 기적 아니겠느냐?”
나는 아랫입술에 잠시 힘을 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래. 그 간절함 그리고 의지가 기적을 빚어내는 법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네 도움을 받는 사람도 강한 의지를 굳혀야 하고.”
“알겠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잖아? 그렇지?”
“예.”
“가고 싶은 길을 걸어라.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미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잖아. 안 그러냐?”
“맞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넌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할아버지는 턱을 살짝 움직이며 웃어 보였다.
“바로 나 자신이야. 스스로도 못 믿는데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 좀 더 스스로를 믿어. 그러면 돼. 안타깝게도 그 암환자분이 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될지는 몰라. 하지만 끝까지 최선은 다해봐야지.”
“예, 끝까지 해보려고요. 설사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보다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하루라도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잘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가 이 말들을 해주려고 나를 찾아오셨구나.
이 감사함을 어찌 다 표현할까.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니 더 바르게 살면, 조금은 그 감사한 마음이 전해지리라.
할아버지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마.”
“예? 하실 말씀이 이거 아니었나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지금까지 줄곧 네 고민 얘기만 듣고, 그거에 대해서만 얘기했잖아.”
“아……. 그렇긴 하죠.”
“내가 할 말은 따로 있어. 잘 들어.”
“네, 네.”
나는 양손을 두 무릎 위에 얹고 귀를 기울였다.
할아버지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하느냐? 언젠가 선물을 주겠다고 했던 말.”
“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가 된 것 같다.”
“엇…….”
“이게 너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른다. 아마 활용하기 나름이겠지. 아마 너라면 잘 써먹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받아보면 알아.”
할아버지는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꾹 눌렀다. 손끝이 닿아 있는 곳마다 찌릿찌릿할 정도로 아팠다.
“억! 할아버지, 머리 부수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해골이 두꺼워서 잘 안 될 거 같은데?”
“장난치지 마시고요.”
“밀린 게 많아. 내가 지난번에는 다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이번에 나름대로 공부도 끝마쳤고, 공력도 쌓여서 다 들어갈 거야.”
그 순간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위로 잡아당기는 듯했다.
“어……?”
머리가 엿가락처럼 쭉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고, 순간 무서운 마음에 다급히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조금만 참거라!”
이내 얼굴도 쭉 늘어났다. 눈앞이 세로로 쭉 길어졌고, 그러다 불이 꺼진 듯 시야가 어두워졌다.
2
지난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면이라도 한 뒤 목이라도 축이고 싶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정신만 돌아왔다가 기절하듯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스스로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줬는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마땅히 팍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가 활용하는 민간요법의 효력이 더 좋아진 걸지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전수받지 않았던가.
능력이 부족해서 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능력을 받았고, 나머지는 얼마나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간절함을 품은 채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세면을 하고는 바로 준비를 마친 뒤 가게로 향했다.
숙모의 고용 문제로 노우민과 논의를 해야 되는데.
평소보다는 가게에 늦게 도착했다. 간밤에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조금은 지치게 한 듯했다.
출근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동안 종소리와 함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노우민이었다.
“어, 그래. 왔어? 아침 먹었냐?”
“못 먹고 나왔어요. 사장님은요?”
“나도.”
“저한테 10분, 아니, 5분만 시간을 주시겠어요?”
현재 시간은 오전 7시 47분.
“너 아직 출근시간 아니야. 13분 남았어. 그 시간동안은 뭘 하든 네 자유야.”
“에이, 사장님, 또 그러신다.”
“내가 뭘 또 그래?”
“선 그으시는 거?”
“선 넘는 것보다는 선 그어져 있는 게 낫지.”
노우민은 이런 내가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
“아무튼 같이 아침식사하시죠. 제가 금방 준비할게요.”
“아침? 뭐 먹게?”
녀석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달걀, 아주 얇게 썬 삼겹살 그리고 둥글고 납작한 빵이었다.
“오늘은 서양식으로 한 번 드시죠.”
“삼겹살? 베이컨이 아니고?”
“이거 제가 어제 밑간 해뒀어요. 베이컨보다 수입 삼겹살이 훨씬 싸거든요. 베이컨이랑 맛이야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고기는 있어야 되니까.”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겹살……? 빵……?”
“저 믿어보세요. 이거 빵 구운 거랑 삼겹살이랑 스크램블 에그해서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 아, 저 토마토 두 개만 써도 되겠습니까?”
“뭐 그런 것까지 허락을 맡냐.”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노우민은 능숙하게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잠시 쉴 겸 커피를 내리며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는데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민아.”
“네?”
“잠깐만 비켜봐.”
“예? 저 손목 괜찮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잠깐만.”
나는 녀석이 서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어져 있는 재료들을 눈으로 슥 훑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토마토를 먼저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잘라 지지면서 달걀을 풀어 함께 스크램블을 했다. 그리고 베이컨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 얇은 삼겹살을 구워냈다.
“오……. 사장님, 원래 잘하시는 메뉴인 거예요?”
노우민의 물음에 나는 프라이팬을 튕기고, 이리저리 휘적거리다 대답했다.
“어……? 어, 어…….”
나의 새로운 능력이었다.
요리가 아니었다. 아주 연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할아버지가 내게 전수해준 것은 서양 민간요법이었다.
이걸 알 수 있는 부분은 토마토와 달걀 그리고 올리브유를 다루면서였다.
기존에 받은 능력으로도 전부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바른 섭취법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양 민간요법으로 들어오면서 이것들을 활용할 더 다양한 방법들이 떠올랐다. 자연스레 서양식 조리법도 덤으로 알게 됐다.
“What the…….”
스스로 놀라움에 중얼거렸다.
영어가 절로 나왔다.
공부와는 척을 지고 살았고, 가방끈도 의무교육만 겨우 마친 나였다.
영어?
‘Hi’ ‘Bye’ ‘Fuck you’ ‘Hell’ ‘Health’ ‘Apple’ ‘Galaxy’ ‘Pen’ ‘Super’ ‘Woman’ ‘man’ 따위의 아주 간단한 것들밖에 몰랐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문장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I am a boy’ ‘You are a girl’ ‘Where are you’가 한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도 영어로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사후세계에서 글로벌하게 지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