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50화
13. 재회 (3)
약간 의심이 들었다. 숙모와는 가끔 안부를 묻는 수준으로 지내며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가깝다고 하기도 어려웠으니까.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뻔히 예상되는 전개가 있었으니까.
숙모는 멋쩍게 웃었다.
“그냥…… 잘 지내나 해서. 잘 지내는 거 같네.”
“생각해 보니 가게 오픈한다고 말씀도 못 드렸었네.”
“정신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
“방송 보셨어요?”
“그랬지. 텔레비전 켜놓고 설거지하는데 갑자기 애들이 티비에 건희 형이 나온다는 거야. 그래서 봤더니 진짜더라고.”
“저도 찍고 나서도 얼떨떨하더라고요.”
“고생 많이 했는데 잘 돼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숙모는 석류즙을 한 모금 먹더니 웃으면서 눈을 살짝 감았다.
“시다.”
“앗, 다른 걸로 드릴까요?”
“아니야. 신데, 맛있어.”
“그럼 다행이고요.”
“언제 이런 기술을 익혔어? 진짜 대단하다.”
“그냥 어쩌다보니…….”
잠시 적막이 흘렀다.
간식거리나 가져다주면서 인사만 하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숙모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괜히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석류즙만 홀짝거렸다.
석류즙은 시간을 그리 많이 벌어주지 못했다. 금세 바닥을 보였고, 이내 숙모는 잔을 내려놨다. 그러고는 잠시 양손으로 붉은 흔적만이 남아 있는 잔을 쥐고 있었다.
평소 같지 않았다. 나도 그랬고. 뭐라도 말을 해야겠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이 어색한 공기를 공유하며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숙모는 무언가 부탁할 게 있었고, 그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결정권은 내게 있었다.
나보다 한참 위인 숙모 입장에서, 이제는 사실상 가족관계도 아닌 우리 사이에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 더군다나 숙모 성격이면 더욱.
이혼할 때도 작은아빠에게서 무언가를 원치 않았다. 뜯어갈 것도 없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양육비조차 원치 않았다. 내가 데려가서, 내 힘으로 키우겠다고.
작은아빠는 자신의 아이들이기도 하다며 합의를 끌어내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고 있긴 하지만.
이런 숙모이기에 더욱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도 쉽지 않다. 어떤 부탁이든 무작정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고, 거절하기에도 애매하다.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이었다.
숙모가 잔에서 손을 떼는 동시에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만 가볼게.”
“네? 바로 가시게요?”
“응, 너도 할 일이 있잖아. 내가 시간 너무 뺏으면 안 되지.”
조금 있으면 건강상담 예약을 한 사람이 올 시간이긴 했다. 조금 서두르는 사람들이라면 벌써 도착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숙모는 생긋 웃어 보였다.
“일 힘내고, 건강관리 잘해. 바쁘다고 일만 하다가 건강 해쳐.”
“저야 건강하죠.”
“나중에 보자. 잘 돼서 기뻐.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감사합니다.”
숙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짜로 몸을 돌리려고 했다.
분명히 무언가 부탁을 하러 온 걸 텐데. 아마도 돈이겠지. 건강상담이라면 진작 얘기를 꺼냈을 테지. 돈 말고 다른 부탁이랄 게 있을 것도 없었고.
방송까지 탔으니 자금적으로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생각 이상의 매출로 여유가 생기고 있기도 했지만.
하지만 숙모는 성격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가는 듯했다. 그런 불편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 걸로 보였다.
숙모가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따랐다.
갑자기 옛날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엄청나게 어려운 시절에도 나를 볼 때면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건네려고 하고, 간식거리라도 손에 쥐어주던 숙모의 모습들은 내 기억 속에 너무나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숙모.”
내가 목소리를 내자 숙모가 몸을 돌렸다.
후회할지도 몰랐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돈이란 게 한 번 내 손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게 하기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돈을 못 돌려받고, 독촉도 못해서 속앓이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촌동생들의 엄마였다. 할머니에게는 마지막까지 좋은 며느리였다. 장례식이 머릿속을 스쳤다. 계속해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음식들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우는 등 쉬지를 않았다.
“그냥 가셔도 돼요?”
내가 묻자 숙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
“그냥 오징어만 주려고 오신 건 아닐 것 같아서요. 뭐 할 말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에요?”
“그게…….”
“편하게 말씀하세요.”
나는 입가에 미소를 한껏 머금어 보였다.
“다시 앉을까요?”
“그래.”
그렇게 다시 마주앉았다.
숙모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물렁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피식 웃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제야 숙모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사실…… 부탁할 게 좀 있어.”
“네, 말씀하세요.”
“그게…….”
숙모는 테이블에 대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정말 너무 미안하다.”
“미안할 일인지 아닌지는 말씀을 하셔야 알죠.”
“응, 들어만 봐. 꼭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고. 사실 부탁 이전에 일단 물어보는 거니까.”
“뭔데요?”
“혹시…….”
숙모는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직원 더 안 필요해?”
“네?”
“지금 가게 많이 바쁘잖아? 그리고 너는 따로 건강상담도 해야 되고…….”
숙모가 말을 하던 중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강인나가 뭔가 한가득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돌아온 것이었다.
“어? 숙모!”
녀석은 바로 양팔을 벌리고 숙모에게로 뛰어들었다.
“웬일이야아아아아아.”
숙모는 웃으며 강인나의 등을 두들겼다.
“너무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니까아아아아.”
“그런데 너는 여기 웬일이야?”
“나? 나 여기서 일해.”
“그래?”
숙모가 살짝 놀란 듯 강인나를 바라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일 잘해요.”
“그치, 잘하겠지. 인나가 좀 똘똘한가.”
강인나는 그제야 숙모에게서 떨어져서는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내려놨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잔뜩 사왔어? 너 마실 거랑 과자 산다며.”
“아, 이거? 오늘따라 사람들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더라고.”
“챙겨줘? 누가? 뭘?”
“동네 사람들.”
워낙 구김이 없고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지 시장 사람들하고 벌써 친해져 있었다. 그래서 녀석이 지나가는데 이것저것 챙겨준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중에 즙이라도 조금씩 돌려야겠네.”
강인나는 숙모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런데 숙모는 웬일이야?”
“어? 그게…….”
내가 말을 가로챘다.
“잠깐 오빠랑 할 얘기 있어서 들르셨어.”
“그렇구나.”
“조금 이따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면 되겠다.”
나는 숙모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괜찮으시죠?”
“응? 어, 그래. 그러자.”
그때 또다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50대 남자였다. 건강상담을 예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아, 아직 상담이 안 끝났습니까?”
숙모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가…….”
숙모는 말끝을 흐렸다.
그때 강인나가 활짝 웃으며 목소리를 냈다.
“가족 분이 잠깐 들르셔서요. 건강상담 받으러 오신 거 맞죠?”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녀석은 자연스레 손님을 상담실로 안내했다.
나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미소를 장착하고 중년 남자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숙모와 잠시 눈을 마주치며 입 모양으로 “잠시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건강상담은 약 5분 만에 끝났다. 남자는 평균보다 조금 높은 혈압과 위염 증세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때도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나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사실 여기 예약도 저희 어머니께서 하셨습니다. 여기서 상담을 받으신 다음 알려주신 걸 꼬박꼬박 지키셨는데, 건강이 너무 좋아졌다고, 저도 꼭 가보라고 하셔서…….”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건강에 있어서 워낙 성화이신지라.”
“잘 오셨습니다. 위염은 식습관에 따라 재발하기도 쉽고, 혈압의 경우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평생 약으로 조절을 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병원에서도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잘 지키시면 걱정하실 일 없으실 겁니다.”
“예,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말 그냥 가면 되나요?”
“그럼요.”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럼 즙이라도 하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일부러 구매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걸 바라고 이걸 하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요, 아니요, 위염에 양배추 좋다고 하셨잖습니까. 양배추즙은 제게 필요한 거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네, 그럼 한 상자만 드셔보시고 괜찮으시면 뭐 저희 쪽에서든 어디서든 믿을만한 곳에서 주기적으로 드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아침에 입 헹구시고, 미지근한 물 한 잔 드신 다음, 공복 상태에서 한 팩 드시면 좋습니다.”
그렇게 양배추 한 상자 판매로 건강상담을 마쳤는데, 남자가 가기 전에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명함을 받아들었다.
[으라쌰 식자재 대표 : 이일우]
나는 명함을 챙기며 물었다.
“식자재 마트 운영하시는 거예요? 여기서 위치가 좀 가깝나요?”
“매장에 방문하셔서 구입도 가능하긴 한데, 온라인 판매 위주입니다. 업자 분들이야 직접 오셔서 대량으로 구매하시기는 하지만요. 뒤에 보시면 홈페이지랑 약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뭐 구입하실 거면 홈페이지로 물건 고르신 다음에 저한테 연락 주십시오. 그럼 바로 이쪽으로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함께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이일우는 나와 인사를 나누고는 강인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숙모와 눈을 마주치며 조심스럽고도 점잖게 인사를 건넸다.
“가보겠습니다.”
“아,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아, 네.”
그렇게 이일우가 가게를 나섰고, 강인나가 양손을 얼굴 쪽으로 가져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뭐야아아아.”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내색치는 않았다.
“뭐가 뭐야.”
강인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능글맞게 웃었다.
“숙모 아직 안 죽었다아.”
“어?”
“방금 전에 아저씨, 숙모한테 완전히 푹 빠졌던데.”
“얘는 어린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누가 봐도 그랬다니까? 진짜야. 오빠도 알 걸? 그치?”
강인나가 내게 동의를 구하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시끄럽고, 가서 일해. 오빠 숙모랑 할 얘기 있으니까.”
“재미없어.”
“재밌기만 하면 일이 아니지.”
나는 강인나의 머리를 헝크러트리고는 상담실로 향했다.
“에이, 씨.”
강인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곧장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숙모는 자연스레 상담실로 따라 들어왔다.
“정신없죠? 2시부터 6시까지는 20분마다 건강상담 손님들이 와서요.”
“그러게.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어? 그런 재주가 있는지도 몰랐고.”
“아직 많이 모자라죠. 치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담을 통해 식단 조절이나 생활습관 조절 정도니까요. 헬스 플래너? 그런 거라고 봐야죠.”
“가게 운영하는 것만 해도 바쁘고 힘들 텐데 대단해.”
숙모 나름대로 소심하게 뜻을 내비친 걸로 보였고, 그걸 바로 물었다.
“아까 가게 바쁜 거 말씀하시다 말았잖아요. 계속 이어서 말씀하세요.”
“아, 그거……. 다른 게 아니라,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은가 해서.”
“일손이요? 뭐…… 항상 바쁘다보니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인나 말고 하나 있는 직원이 조금 아파서 무리하면 안 되기도 하고요.”
“그래? 잘 됐…….”
숙모는 아차 싶은 듯 금세 침울해져서는 말을 이었다.
“다는 건 아닌데…….”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숙모,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주세요. 그러기로 했잖아요.”
“그치, 그랬지. 진짜 말할게.”
그녀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혹시 사람을 구하면 나를 써줬으면 해서.”
“숙모를요?”
“응……. 역시 어려우려나?”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중간부터는 어느 정도 감을 잡긴 했다. 그런데 진짜 취업 부탁일 줄이야. 당연히 돈을 빌리러 온 거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정도는 빌려줄 마음도 있었고.
할머니는 숙모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작은아빠와 숙모가 이혼했을 때도 그 누구보다 슬퍼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그런 숙모를 챙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숙모 일하시지 않아요?”
“요즘 경기가 워낙 어렵고, 최저임금 비싸다고 근무시간이 많이 줄었어. 같이 서빙하던 아줌마 하나는 아예 잘렸고. 이제 저녁에 5시간만 일하거든. 나 일 시켜주면 진짜 잘할 수 있어. 시간도 여기에 맞출게. 돈 조금만 줘도 돼.”
숙모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큰 애가 학원 보내달라고 그러고, 작은 애도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해서 일이필요한데……. 내가 할 만한 일이 잘 없더라고. 나 진짜 열심히 할게.”
“숙모야 워낙 꼼꼼하시고 부지런하신데다가 손재주도 있으시니 자격이야 충분하시죠.”
“그래? 그럼 혹시 내가 일할 자리가 있을까?”
“잠시만요, 제가 이것저것 확인을 좀 해봐야 돼서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어, 어.”
숙모가 일할 자리를 만드는 정도야 어려울 게 없었다. 마침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이기도 했고.
목적이 있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긴 했지만, 이런 거라면 아무 상관도 없었다. 문제는 숙모가 작은아빠와 남남이라는 것이었다.
상담실을 빠져나온 나는 주방 구석에서 작은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삼촌, 바빠요?”
―왬마.
“다른 게 아니라…….”
나는 숙모가 찾아온 얘기부터 취업을 원하는 것까지 얘기했다. 작은아빠는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거지.
“그래도 되나?”
―어차피 보기 싫어도 애들 때문에 보는 사람이잖아.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 나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아무튼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네, 네. 들어가세요.”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상담실에 들어섰다.
숙모는 기대감으로 가득한 두 눈을 반짝였다.
차마 그걸 저버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내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숙모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가능해요.”
“정말?”
“네. 하지만 근무시간 같은 건 제가 이것저것 많이 고려를 좀 해봐야 될 거 같아요. 그리고 하시게 되면 바로 정직원은 아니고, 수습기간이 조금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리고 일도 생각보다 더 고될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맡겨만 줘.”
얘기를 하다 보니 또 건강상담을 예약한 사람이 왔다.
숙모와는 이따가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일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내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게 풀린 느낌이었다.
6
늦은 밤이었다.
숙모와는 저녁식사를 함께하지 못했다. 현재 일하는 곳에서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찾은 탓이었다.
내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더 얘기할 예정이었다. 내가 세부적인 사항들을 결정한 뒤 전화를 하기로 했다.
사실상 숙모도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다고 볼 수 있었다. 계속하게 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였지만.
나는 이런저런 고민들 때문에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숙모와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업을 꾸려나가며 필요한 것이나 개선될 점 그리고 노우민의 어머니인 김현자의 치료에 대한 것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했는데도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확신이 흔들리고 자꾸만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알려주며 좋을 텐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에너지 소모를 느끼며 잠에 들 즈음이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정수리부터 잡아당기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를 만난 뒤 현실로 돌아올 때 느끼는 그 감각이었다.
곧 할아버지와 마주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