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49화
13. 재회 (2)
“아…….”
김현자는 말문이 막히는 듯 입을 몇 번이나 벌렸다가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두 어머님께 달려 있습니다. 지금처럼 생활하셔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겁니다. 나으실 수도 있겠죠.”
나도 모르게 테이블에 얹고 있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기왕이면 치열하게 싸워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의지가 중요합니다.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드신 걸 압니다. 그래도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나을 수 있을까요?”
“그건…… 하늘만이 알겠죠.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김현자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했다. 그리고 곧 그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금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에요. 하지만 호전되는 경우는 없었죠. 오히려 간수치가 올라간 적도 있고, 위경련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그래서, 조금 무섭습니다. 오히려 더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고요.”
“몸에 무리를 주는 약을 쓰거나 할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어머님을 치료해드린다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하지만 남들보다 건강관리를 위한 것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반드시 치유에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어머님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 해봐요.”
김현자는 이내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거리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해봐요, 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그때 얘기를 듣고 있던 이필순 할머니가 김현자를 끌어안았다.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포기하면 안 돼야……. 애미보다 먼저 가는 자식이 어디 있다니…….”
이필순 할머니가 엉엉 울었고, 김현자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김현자가 낫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4
“제가 말씀드린 것들 꼭 지키셔야 합니다? 꼭이요.”
나는 거듭 강조했고, 김현자는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온화함과 미안함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꾸벅였다.
“꼭 그럴게요. 살아남고 말 거예요.”
“그렇게 되실 겁니다.”
나는 이필순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할머니, 잘 부탁드릴게요.”
“아휴, 제가 잘 부탁드리쥬…….”
“여기 어머님께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셔야 돼요. 일단 기력이 따라줘야 합니다. 지금 몸이 너무 약해지셨어요. 입맛 없어도 무조건 드셔야 합니다. 정말 정 안 먹히면, 건강에 좋은 게 아니어도 일단 드셔야 됩니다. 그래야 싸울 힘이 생깁니다.”
“걱정하지 마세유. 제가 살 찌워볼라니까.”
“그럼 믿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또 찾아뵐게요. 언제든지 궁금하신 거 있으면 연락주시고요.”
“그럴게유. 조심히 들어가세유.”
김현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선생님.”
“그냥 편하게 불러주세요. 저는 선생님도 아니고…….”
“아, 네. 그럼 사장님.”
“네, 그게 낫네요.”
“우민이 잘 부탁드려요.”
“우민이는 엄청 잘하고 있어요. 건강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어머님 본인만 생각하세요.”
“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지쳐서……. 무서워서…….”
나는 김현자의 손을 꼭 잡았다.
“알아요. 저도 아버지께서 투병생활을 오래하셔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저희 아버지는 어머님하고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안 좋으셨어요. 그런데도 6개월 넘게 사셨죠. 지금 어머님 정도면 뭐 몇 년은 거뜬하죠. 제대로 관리하시면 손주들 학교 가는 것도 다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김현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애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손주는 무슨…….”
“그만큼 장수하실 거라는 거죠.”
나는 이필순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할머님도 증손주 보셔야죠.”
“아이구, 나는 이미 다 늙었는데 언제 갈 줄 알고…….”
“오래오래 사셔야죠. 할머님도 같이 관리 열심히 하세요. 또 누군가 같이 하면 힘도 더 나는 법이니까요.”
“알겠슈.”
“그럼 진짜 가보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다.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김현자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4기는 암이 전이된 상태를 뜻한다.
김현자는 대장암으로 시작됐지만, 현재 간에도 상당부분 전이가 됐었고, 폐에도 아직 확신은 못하지만 암으로 의심된다는 소견이 있는 상태.
간의 경우 한쪽으로 몰려 있어서 30% 정도를 절제하여 수술은 한 상태였다. 대장 역시 일부를 절제했고.
이건 수개월 전의 이야기.
PET CT 결과 간과 대장 모두 암이 재발한 상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4차까지 하다가 포기했다. 부작용 때문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고. 딱히 차도를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았고.
4기로 진행돼서 전이가 됐다는 것은 혈관과 림프관을 통해 암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장 큰 암덩어리를 덜어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치료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가 잘 들거나, 다양한 면역치료, 고용량 비타민C 요법 등이 잘 들어서 완치 판정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긴 했다.
하지만 암이라는 놈은 몇 기든 간에 완치를 받는다면 기적이라고 봐야 했다.
현재 국내에서 말하는 완치는 5년 생존율이다. 5년 내에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고도 재발이 될 수 있는 게 암이다.
지독한 놈이다. 진짜 암이라는 것은 암 같다는 표현 외에 더할 것이 없다.
건강한 사람도 매일매일 몸속에서 암세포가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우리의 면역체계가 버텨주면서 암세포를 없애고, 암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커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암은 어떠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반응이다. 결국 몸이 버텨줘야 한다. 그래야 이겨낼 수 있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능력은 민간요법을 이용하여 신체 자체의 방어력을 높이는 거니까.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계속해서 내 마음속을 후비는 것은 김현자를 봤을 때 이렇다 할 치료법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김현자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떠올랐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와 확실히 달랐다. 현재 상태에 확실히 도움이 될 무언가가 떠오르게 마련인데, 그게 없었다.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은 채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어떻게 해야 될까요……?”
5
수요일.
평소와 같은 나날들이었다.
장사는 잘 됐다.
계속 이렇게만 돼도 평생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만간 치렀던 자격증 시험들의 결과들이 전부 발표될 예정이었다. 합격했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격증들을 늘어놓으면 매출에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우리는 몸신이다’와 ‘일의 달인’ 출연을 두고 미팅도 앞둔 상태였다. 사실상 출연을 하기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매출이 조금이라도 더 상승하겠지.
이미 방송 효과를 톡톡히 본 터라 더 효과를 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매출이 뛰어났다.
좀 더 두고 볼 필요는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직원을 늘려야 했다. 그전에 가게 이사부터 해야겠지만.
“사장님, 저 시간돼서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 그래. 3시 55분 되면 슬슬 준비하고 4시에 딱 맞춰서 가라니까. 뭘 또 시간 넘겨서 일하고 있냐.”
“이 정도는 해야죠.”
“그래, 들어가서 푹 쉬어. 밤에 일하는 가게하고는 얘기 다 된 거지?”
노우민이 씩 웃어 보였다.
“네, 그쪽 사장님도 사정을 이해해주시더라고요. 다른 일들도 할 건 많기도 하고요. 근무시간을 1시간 줄이긴 했지만요.”
“그래, 잘했다. 잘했어. 만약에 그 1시간 시급 모자라서 큰일 날 거 같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그 돈 줄게.”
“아니에요, 그걸로 뭐 큰 차이가 나나요. 그전에는 지금보다 못 벌어도 살았는데요 뭐.”
“그래, 말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서 쉬어. 수고했다.”
“저…… 그런데 사장님.”
“응?”
“이번 주에 또 가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괜찮으시겠어요? 사장님도 좀 쉬셔야죠. 필요한 거 말씀해주시면 제가 전해드릴게요. 아니면 아예 전화로 하셔도 되잖아요.”
“아니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그리고 내가 직접 봐야 알아.”
“그럼 이번 주에는 같이 갈까요? 제가 운전할게요.”
“나보다 몸도 약한 놈이 뭔 운전이야. 같이 가는 건 가고. 너도 어머니랑 할머니 봬야지.”
“네, 그럴게요.”
“동생들도 데려오려면 데려와.”
노우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도 돼요?”
“그럼. 네 어머니랑 외할머니 뵈러 가는 건데.”
“고맙습니다!”
녀석이 확 들러붙었다.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렇다고 너무 붙지는 말고.”
“아, 네. 죄송합니다.”
“들어가라. 내일 보자.”
“네,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노우민이 가게를 나갔다.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잠깐 음료수랑 과자를 산다고 나갔던 강인나는 벌써 20분 가까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딸랑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왜 이렇게…….”
아는 얼굴이고, 여자인 건 맞았다. 하지만 강인나는 아니었다. 50대 초반에 눈이 크고 마른 체구의 여자였다.
작은아빠의 전 부인, 내게는 전 숙모인 정민주였다.
“숙모…….”
“오랜만이야. 들어가도 돼?”
숙모는 쇼핑백을 쥔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조심스레 물었다.
“네, 그럼요. 들어오세요.”
나는 손짓을 하며 웃어 보였다.
숙모는 좋은 사람이었다. 작은아빠도 좋은 사람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이혼의 가장 큰 원인 하나는 알고 있다.
경제적 이유였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긴 하지.
언제나 현실의 벽이 압박하고, 걱정에 둘러싸인 채 쉬지 못하고 일하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다 보니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두 사람은 그렇게 갈라서고 말았다.
숙모의 입장에서는 작은아빠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고, 사기꾼이 나쁜 놈이지만, 형편이 나아지려는 찰나에 작은아빠가 사기를 당했으니까.
숙모는 안정적인 걸 원했고, 작은아빠는 이번에야말로 가족들을 호강시켜주겠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한 것이었다.
사기만 당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거…… 별건 아니지만…….”
숙모가 쇼핑백을 내밀었다. 건어물과 견과류 그리고 각종 간식들이 들어 있었다.
“아휴, 뭐 이런 걸 다…….”
“너 간식으로 먹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서 사왔지.”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일단 앉으세요.”
갑작스러운 방문이긴 했지만, 작은아빠가 이혼한 뒤에도 숙모와는 이따금씩 연락을 하는 사이였다. 마땅히 다른 호칭을 쓰기도 애매해서 여전히 숙모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작은아빠 역시 아이들 때문에라도 주기적으로 숙모와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그래서 가끔은 재결합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이거 드세요. 석류즙이에요.”
“아, 고마워. 잘 마실게.”
그렇게 숙모와 마주앉았다.
숙모는 딱히 건강에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자잘하게 관리는 필요했지만.
그나저나 갑자기 왜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