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48화
13. 재회 (1)
1
약 10분.
내가 김현자를 붙들고 설득한 시간이다. 김현자가 계속 거절의사를 내비친 시간이기도 하다.
“어머님, 조금만 얘기 나눠보시죠. 이렇게 거절하실 시간에 말씀 나누시는 게 더 편하시지 않겠어요?”
나는 그저 감정에 호소하고 간절하게 굴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스레를 떨었다.
“시간 조금만 내주세요. 아드님을 봐서라도요.”
“아들 직장 사장님께서 오셔서 이러시니까 더 불편하네요. 죄송합니다. 이만 돌아가 주세요. 사람들을 도우시는 분이 제가 상담을 거부한다고 해서 우민이에게 어떤 불이익은 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어머님, 10분, 아니, 5분만 시간을 내주세요.”
그때 뒤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여?”
고개를 돌리자 머리카락 대부분이 흰색에 빠글빠글한 짧은 파마를 한 할머니가 서 있었다. 노우민의 외할머니인 이필순이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님. 노우민 군 외할머니 되시죠?”
“네, 맞는데요. 우민이 친구신가?”
“하하하, 비슷하죠. 저는 지금 우민이 일하는 곳 사장입니다.”
“아이고, 사장님이셨구나. 안녕하세요.”
이필순 할머니는 양손을 앞으로 두며 고개를 꾸벅였다. 나는 덩달아 몸을 낮췄다.
“아이고, 할머님. 말씀 낮추세요. 저 우민이하고 나이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도 않아요.”
9살 차이가 마냥 적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우민이 일하는 곳 사장님이면…….”
이필순 할머니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세상에 이런 일도’에 나온 사장님 맞으시쥬? 그 왜 사람들 건강 살펴주고! 용한 선생님!”
나는 하하 웃어 보였다.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많은 분들이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며 미천하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고오오, 미천은요. 우리 동네 사람들도 다들 봤어요. 우리 동네에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그럼 온 김에 봐드릴까요?”
“진짜로요? 그런데 여기 다 시골 사람들이 돈이 별로 없는데.”
“방송 보셨다면서요. 저 건강상담으로 돈 안 받아요. 아니, 못 받아요. 받으면 잡혀가요, 의사가 아니라서.”
“그래유? 옛날에는 동네 건강원에서 다 진료 봐주고 했는디…….”
“요즘은 그러면 큰일 나요.”
이필순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바쁘신 양반이 여기서 사람들 건강상담해주고 그래도 돼유?”
“그럼요, 그러려고 온 건데.”
“그러려고 왔다고요?”
내가 본론을 다시 한 번 꺼내들려는 찰나였다.
이필순 할머니는 급하게 걸음을 옮겨 김현자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 딸, 우리 딸부터 좀 봐줘유. 우리 딸이 아파가지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다.
“아, 엄마 왜 이래. 난 필요 없어.”
김현자는 팔을 빼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이필순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웃어 보였다.
“일단 할머님이랑 동네 어르신들부터 봐드릴게요. 저기, 우민 군 어머니는 이따 다시 얘기해보죠.”
2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을에 이장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동네 주민 분들께 알립니다. 지금 마을회관 앞에서 무료 건강상담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어디 좀 불편한 곳이 있다거나, 궁금한 게 있으셨던 분들은 마을회관 앞에서 상담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방송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마을회관 앞에서 무료 건강상담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누구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지 마시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료 건강상담을 꼭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방송이 끝났고, 나는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양배추만 잘 챙겨 드시면 쓴물 올라오는 건 확 좋아지실 겁니다.”
“그래유? 그거면 되남? 약 먹어도 안 낫던디.”
“담배도 바로 끊지는 못하셔도 줄이셔야 되고요. 술은 안 하신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당분간 맵고 짠 음식도 피하시고요. 그리고 물은 가능하면 미지근한 게 좋습니다.”
“커피는 괜찮아유?”
나는 가능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커피도 가능하면 피하셔야 돼요. 위장에 자극이 많이 갑니다.”
그때 시간차 공격을 하듯 방송이 갑자기 훅 들어왔다.
―아, 깜빡한 게 있어서 하나 더 알려드립니다. 지그음, 마을회관 앞에서 건강상담을 하고 계신 선생님은 ‘세상에 이런 일도’에 나오신 분입니다. 이상입니다.
나도 모르게 뜨악하며 고개를 숙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에 나온 걸 말해달라는 게 아니라, 의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달란 거였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한 뒤에 상담을 해서 다행이었다. 괜히 나중에 속은 기분이 들면 안 되니까.
건강상담 자체는 무난했다.
노인들이라 꼭 어디 한 군데 이상은 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내 처방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도 바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심이 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경우들도 있었다. 이미 수술을 한 부위들인 경우도 많았고.
따로 예약을 하러 온 게 아니기도 했고, 반 심심풀이로 온 사람들도 있었으며, 괜히 진상 아닌 진상을 피우기도 했다.
“아, 내가 술을 어떻게 끊어어? 40년을 넘게 빠짐없이 마셨는디.”
“그래도 끊으셔야 합니다. 병원에서도 끊으라고 했다면서요. 지금 계속 이렇게 드시면 간이 섬유화가 이뤄져서 아무런 기능도 못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간경화 아시죠? 정확히는 간경변으로 발전할 수도 있어요.”
“벌써 그런데 내가 그걸 무서워할 거 같아?”
“간경변이 더 악화되면 정말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암으로 진행될 수도 있어요.”
노인은 인상을 팍 구기며 역정을 냈다.
“예끼! 이 사람아! 왜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그랴아?”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보통 간경변이 시작되면 원래대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더 이상 간기능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목소리에 힘주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예외는 있다고 믿습니다.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회복되는 경우들도 있고요. 세상에 기적 같은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전 어르신의 간도 다시 많이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관리를 하면 오래오래 사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됐어! 헛소리 집어치워! 에잉, 방송 나왔다길래 좀 재밌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별 재미도 없구만 그래.”
노인이 몸을 돌리기 직전이었다.
“5년 후에는 여기 안 계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조금 독하게 말을 던지자 노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뭐, 뭐야……? 새파랗게 어린 노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노인은 금방이라도 나를 한 대 후려칠 기세였다. 여든 가까운 노인이 때려봤자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 됐다.
그때 다른 노인들이 달려들었다.
“에히이! 어허! 이사람! 왜 이래?”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이. 공짜로 상담 받고서는 왜 행패여?”
“아, 사람들 기다리는데 성절이나 부릴 거면 들어가! 거 성질은 영원히 못 버리는구만!”
“놔아아아아!”
이내 노인은 씩씩거리며 양팔을 마구 휘저어 다른 노인들을 떨쳐냈다.
당연하게도 나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말했다.
“최대한 오래, 편하게, 행복하게 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르신을 위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도요.”
노인은 여전히 얼굴에 화가 묻어 있었지만,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데?”
나는 영업용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풍부한 단백질에 좋은 기름으로 지방 그리고 탄수화물은 적당히 드셔야 합니다. 음식도 조금 심심하게 드셔야 하고요. 짠 거는 안 됩니다. 생선이 참 좋습니다. 고등어 같은 거요. 달걀도 좋고요. 물은 충분히 드시되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얼마나?”
“물은 하루에 1.5리터에서 2리터 정도만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오리탕도 몸보신하실 때 좋으시고, 마늘도 좋고요.”
“잉어나 가물치 같은 것도 좋지 않나?”
“아, 좋죠. 제가 말씀드린 것들 지키시면 일단 배부터 들어가실 겁니다.”
“그려? 안 되면?”
“꼭 될 겁니다. 좋아지실 겁니다.”
“……알았어. 해볼게.”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노인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처음에나 그렇지, 결국에는 해보겠다고 했다.
어쩌면 다들 무서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가 아닌 나라도 희망찬 이야기만을 해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정확하게 검사를 받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자신의 신체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면서 좋은 말을 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단순히 마음만을 편해지게 해주고자 건강상담을 한 게 아니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다.
3
어느새 모든 노인들의 건강상담을 마쳤고, 이필순 할머니의 차례였다.
건강했다.
노화로 인해 약해진 부분들은 있으나, 나이를 고려하면 굉장히 건강한 편에 속했다.
“선생님, 저는 하루하루 몸이 계속 힘들어지네유. 어떻게 하면 좋을까유?”
“특별히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그냥 다 아프지유. 무릎도 쑤시고, 허리도 쑤시고, 옛날에 머리 수술도 해서, 거기가 자주 아프기도 하고.”
“일단 예전에 수술하신 곳은 괜찮아 보여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관절 쪽에 무리가 있으신 듯한데, 그래도 지팡이 없이도 잘 다니시잖아요. 그쵸?”
이필순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기야 하죠.”
“지금 그래도 굉장히 건강하세요. 관리 몇 가지만 열심히 하시고, 운동 주기적으로 해주시면 더 좋아지실 거예요. 지금 조금 힘드신 부분들은 연세 때문에 그래요. 옛날에 고생하셨던 것들 쌓인 거죠.”
나는 입가에만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그런 말이 있어요. 예순부터는 해가 지날 때마다 다르고, 일흔부터는 달이 지날 때마다, 여든부터는 하루마다 다르다고.”
“하이고, 맞아유, 진짜 그래유.”
“아직 여든 안 되셨죠?”
“내후년이면 딱 여든이여유.”
“그전에 열심히 몸 관리해서 최소 100살 이상은 사셔야죠. 그쵸?”
“하이고……. 내 나이면 내일 갈지 모레 갈지 모르는데, 100살은 무슨…….”
“손주들 다 결혼하고 애 낳고 하는 것도 보셔야죠. 안 그래요?”
“알았슈.”
이필순 할머니는 지금도 건강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 해야 되는 것보다 반드시 피해야 될 것들을 위주로 자세히 설명했다.
“현자야, 너도 와서 받아봐. 여기 선생님 아주 용하다.”
이필순 할머니가 손을 저었다.
“아, 나는 됐다니까.”
“그냥 받아봐. 잠깐 앉아서 얘기만 들으면 되잖여.”
김현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장담하실 수 있어요? 제가 완치된다고 확신하세요? 암환자 고쳐보신 적은 있어요?”
나는 가만히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암환자는 처음이었다. 내 능력은 확실히 무엇이든 효과를 극대화시켜 건강관리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당장 생사가 오갈 수도 있는 질환에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 하나 확답이 불가능했다. 헛된 희망을 심어주면 소중한 시간만 낭비하게 하는 거였으니까.
“그쵸? 없죠?”
김현자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냈다.
이 예민함을 이해한다. 그 마음까지 전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간병을 하며 겪어봤기에 알고 있다.
“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여! 좋은 마음으로 왔는데 우째 그런다니?”
이필순 할머니가 나무랐지만, 김현자는 눈시울을 붉힌 채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양손 깍지를 끼고 잠시 테이블 위에 시선을 뒀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김현자와 눈을 마주쳤다.
“무엇 하나 제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4기 암을 이겨낸 분들도 계시죠.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잖아요. 하지만 그만큼 극소수에 불과하기에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거죠.”
마음은 무거웠지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런 기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습니까? 완치를 약속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약속할 수가 없으니까요. 한 가지만 여쭈겠습니다. 병원에서 몇 개월 남았다고 했죠?”
김현자는 당황한 듯 눈알을 살짝 굴렸다가 대답했다.
“6개월이요.”
“남은 기간은요?”
“이제 2개월 지났어요.”
“4개월…….”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말했다.
“저랑 좀 더 노력해보시죠. 조금이라도 가족들과 함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늘려보죠. 혹시 모르죠, 기적이 일어날지도. 진심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부분은 단 하나입니다.”
“시간을 벌어주신다고요?”
“아니요, 적어도 마지막까지 최대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존엄성을 지키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고통이 덜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