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45화
11. 시도 (3)
엄현석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칼답장이 이어졌다.
[네! 그럼 추석 끝나자마자 연락드리겠습니다! 평온한 연휴 되세요!]
문자를 마치고 고개를 드는데 작은아빠가 젓가락을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핀잔이 날아왔다.
“밥상머리 앞에서 핸드폰은…….”
나는 웃음기와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일 때문에 연락한 거야.”
“일이라고 해봤자 추석 안부인사 아니냐? 밥 먹을 땐 밥만 먹어 인마. 애들도 있는 자리에서 네가 핸드폰 붙들고 있으면 뭘 배우겠냐? ‘아, 나도 밥 먹을 때 핸드폰하면서 먹어도 되나보다’ 이러지.”
“바른 농부단 대표하고 연휴 끝나자마자 만나기로 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그게 밥 다 먹은 다음에 문자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 급한 거 아니잖아? 밥 먹는 중에는 웬만하면 전화기 만지는 거 아니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야 되냐?”
작은아빠는 특유의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갈굼을 이어나갔다.
“꼰대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전에 기본이 뭔지 알아야 돼. 알아? 기본을 지켜야―”
그때 고모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입 좀 가만히 놔둬. 너나 밥상머리 앞에서, 그것도 명절에 꼰대질이나 하지 마.”
“이게 왜 꼰대질이야. 해줘야 할 말이니까 해주지.”
“듣기 싫으면 꼰대질이지.”
고모는 강인나와 강인혁 그리고 내게 동의를 구하듯 시선을 쭉 돌리며 말했다.
“안 그래? 니네 작은아빠 웃겨 아주, 그치이?”
작은아빠는 자세를 틀며 왼팔을 왼쪽 무릎 위에 걸쳤다.
“차암나…….”
고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핀잔을 줬다.
“똑바로 앉아.”
강인나는 지금 상황이 마냥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박수를 가볍게 쳤다.
“밥 먹다가 폰질한 제 잘못이니 이제 식사들 하시죠. 다 체하겄어.”
그렇게 다들 웃으며 다시 식사하는데, 강인혁은 소심하게 피식피식 웃는 것 외에는 말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강인혁의 원래 성격이 조용조용하고 낯을 가리냐고 묻는다면 그런 편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녀석도 활발한 중2였다. 고모와 강인나에게 들으면 꽤나 까불거리는 여느 사춘기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작은아빠와도 곧잘 대화하고 그랬다.
지금 강인혁이 조용한 가장 큰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내가 어색한 거다. 문제는 나도 녀석이 어색하고. 그래도 사촌동생인데 지금보다는 더 가까우면 좋을 텐데.
원래도 소중한 가족들이었지만, 근래 들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낀다. 강인혁도 내게 가족이고.
삼촌뻘인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괜히 또 어쭙잖게 말을 걸면 어색한 공기만 흐를 것 같아 쉽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다 같이 치웠다. 강인나는 기특하게도 설거지를 도맡았다.
작은아빠가 나를 힐끗 보며 물었다.
“영화 예매했냐?”
“지금 하려고.”
“다 같이 보기에 뭐 괜찮은 거 있냐?”
“이거 괜찮을 거 같은데.”
매번 명절에 맞춰서 개봉하는 한국영화를 골랐다. 항상 대박은 아니어도 중간은 간다. 특히나 나이대고 취향이고 다 다른 가족들이 같이 보기에는 괜찮았다.
명절에 다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일종의 전통이 됐다.
수년 전부터 작은아빠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흩어지느니 문화생활이라도 같이 하자면서 시작됐다.
좋은 듯했다. 누구 하나 지루해할 사람도 없었고.
할머니도 영화 구경을 간다며 좋아하곤 했던 게 기억난다.
얼마 전에 할머니를 만났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켜보고 계시죠? 이 말도 들릴지 모르겠네요. 저희를 지켜보고 계시면, 영화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몰라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의외로 요즘 나오는 영화들도 재밌게 보셔서 좋았는데.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시 할머니는 영화가 재미없었을 수도 있겠다고. 우리에게 맞춰줬던 걸지도. 그냥 가족끼리 다 같이 어디엔가 가고,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의의를 뒀을 듯하다. 할머니는 그런 분이었으니까.
나도 나름대로 배려한 부분이 있었다. 할머니는 달달한 카라멜 팝콘을 좋아했다. 사실 나는 그냥 일반적인 고소한 맛이 더 좋았지만, 언제나 함께 달달한 카라멜 팝콘을 먹었다.
지금 같았으면 그냥 두 가지 맛을 전부 샀겠지만, 그때는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던 시절인지라 카라멜 팝콘 하나만 샀다.
500원을 추가해서 하나에 두 가지 맛을 담는 방법도 있긴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500원도 아까워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도 똑같이 카라멜 팝콘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팝콘에 손이 더 갈 것 같기도 했다. 배려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만큼 소소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가족이었다.
작은아빠는 옆으로 누워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물었다.
“영화 시간 언제냐?”
“한 20분 있다가 출발하면 될 거 같은데?”
“그래?”
그는 자연스레 리모컨을 쥐어들고는 티비 채널을 돌렸다.
강인나와 고모는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인혁이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녀석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보면 목 아파.”
“네? 응? 어…….”
작은아빠와 나의 나이 차이보다 강인혁과 나의 나이 차이가 훨씬 더 많이 났다.
그래도 형과 동생이라고 말을 편히 하라고 한 지 오래였다. 강인나도 내게 반말을 하는데 녀석만 존대를 하면 더 거리감이 느껴질 것 같기도 했고. 여전히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 있긴 했지만.
그나저나 경추와 척추 건강을 생각해서 자세를 말해준 건데, 녀석의 입장에서는 그저 지적처럼 느꼈을지도.
“그나저나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었어?”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아, 그냥 아이튜브.”
“그래? 무슨 채널 보는데?”
“그냥 이거.”
게임 채널이었다.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아도 알고는 있었다.
“오, 형도 이거 알아.”
“그래?”
“그럼. 다른 채널은 뭐뭐 봐?”
강인혁은 자신이 구독한 채널들을 보여줬다. 대부분 게임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게임 채널만 봐?”
“그냥 가끔 재밌어 보이는 거 추천 뜨면 보고 그래요. 거의 게임만 보긴 하는데.”
“그래? 형도 얼마 전에 아이튜브 나왔거든.”
“진짜? 형도 아이튜버야?”
“아니, 그냥 게스트로 나왔어.”
“어떤 게스트? 게임?”
나는 피식 웃었다.
“게임은 아니고, 커플 아이튜버인데, 그래도 조회수 꽤 찍혔어.”
“그래요? 봐봐요.”
곧바로 가예림과 김성환의 아이튜브를 검색해서 보여줬는데, 생각 이상의 반응이었다.
“오! 나 김성환 이 사람 아는데! 우와! 조회수 100만 넘었네요?”
“뭐…… 영상 자체는 너한테 그렇게 재미는 없을 건데, 그래도 조금 신기하긴 하지?”
“신기한 정도가 아니죠. 우와, 대박!”
녀석은 곧장 영상을 틀어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단숨에 우리 사이에 있던 벽을 허물 수는 없겠지만, 그 높이가 조금은 낮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6
“영화 재밌었다.”
강인나가 방실방실 웃었다.
“그래? 난 그냥 그렇던데.”
작은아빠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넌 어땠어?”
내가 묻자 강인혁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았어요.”
그때 내 옆으로 고모가 휙 지나갔다. 유난히 빨리 걸어 앞장서는 고모를 보고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해?”
“급하니까 그렇지.”
“어?”
“신호 왔어, 빨리!”
걷는 폼을 보니 화장실이 급한 듯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극장에서 화장실 다녀오시지.”
“줄, 줄, 길어, 너무 길었어.”
“나 참…….”
빠르게 가는 고모를 본 작은아빠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었다.
“먼저 가서 어떻게 들어가려고?”
짤랑짤랑. 작은아빠가 열쇠를 흔들어 보이자 고모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얼른 넘기라는 듯 손을 파닥거렸다.
그렇게 열쇠를 받은 고모는 경보 수준으로 먼저 가버렸다.
작은아빠의 집에 도착했을 때, 고모에게서는 조금 전의 다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 편한 얼굴로 음식을 하는 중이었다.
이게 명절마다의 코스였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영화를 본 다음에는 또 점심을 먹고, 얘기를 좀 나누다가 헤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담백하지만 실속 있고 편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기 전, 나는 강인나와 강인혁에게 5만 원짜리를 한 장씩 내밀었다.
“용돈.”
강인나는 언제나처럼 넉살 좋게 곧장 받아들었다.
“아싸! 땡큐 오빠!”
고모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얘 가게에서 일하는데 뭘 또 용돈을 줘.”
“명절에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안 그러면 애들은 재미없어. 옛날에 내가 고모랑 삼촌한테 받았던 거 이런 식으로 갚는 거지 뭐.”
그제야 강인혁도 고개를 꾸벅이며 돈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작은아빠에게도 따로 봉투에 담은 10만 원을 내밀었다.
“이거 애들 용돈.”
“그냥 너 써. 걔네 안 줘도 돼. 내가 챙기니까.”
“에이, 그래도. 여태 용돈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는데, 이번에 얼굴은 못 봤어도 이렇게라도 줘야지.”
“그래 그럼.”
나는 곧바로 품에서 봉투를 2개 더 꺼내들어 고모와 작은아빠에게 건넸다.
“이건 고모랑 삼촌 선물.”
당연히 이번에도 현찰이었다. 지금까지 받은 도움에 비하면 각 20만 원씩밖에 안 돼지만, 나름대로 마음 표시였다.
작은아빠는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벌써 이런 걸 준비하냐? 지금 돈 들어갈 일 많을 텐데. 됐어, 인마.”
“그 정도는 괜찮아요. 받아주십쇼.
고모가 피식 웃었다.
“이야아, 많이 넣었는데? 이제 건희한테 용돈도 다 받고 좋다. 응?”
돈이란 게 참으로 재미있었다.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돈을 쓰니 더 좋았다.
나는 가족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내가 잘 돼서 다들 호강시켜줄게!
7
추석 연휴가 지나고였다.
―네, 그럼 토요일에 뵙죠.
“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엄현석과 통화를 마쳤다.
바로 만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노우민과 강인나에게만 가게를 맡겨둘 수가 없었다.
잠시 몇 시간을 비우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엄현석과 몇몇 농장들을 들르기 위해서는 하루를 통으로 비워야 했으니까.
이미 예약을 받은 건강상담도 걸렸다. 내가 예약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다들 건강상담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비웠을 텐데.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은 휴무일로 잡았다. 쉬는 날인 일요일도 있었지만, 바른 농부단 사람들도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 하나 때문에 일요일에 쉬지 못한다면 그런 민폐가 없을 테지. 농사라는 게 특별히 쉬는 날을 가지기란 쉽지 않겠지만.
건강상담 일정도 약간의 조율을 가졌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토요일은 격주로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격주로 하더라도 사정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영업시간 외에도 따로 만나서 건강상담을 받았으니, 상담을 하는 횟수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여느 날처럼 노우민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내가 잠시 뒷정리를 하는 사이에 노우민은 식사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밥만 새로 해서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서 먹는 편이었다. 추가해봤자 달걀 프라이 정도였고.
그런데 오늘은 노우민이 토마토 파스타를 해주기로 했다.
나는 대야들을 치우며 웃었다.
“기대해도 되냐?”
“그럼요! 제 전공 아닙니까?”
녀석은 능숙하게 스파게티면을 삶는 와중에 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스파게티면 벽에 던져봐야 되는 거 아니냐?”
내가 묻자 노우민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왜, 면 잘 익었나 벽에 던지고 그러잖아. 잘 익었으면 벽에 딱 달라붙고, 안 익었으면 떨어지고. 옛날에 영화에도 나오잖아.”
노우민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잘 모르겠어요.”
“그래? 몰라? 그 영화 못 봤어?”
“네, 몰라요.”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9살 차이면 적지는 않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그렇게 노우민을 힐끗 보는데 문제가 생겼다.
언제나 건강한 노우민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에게서 질환 몇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한 번에 터진 듯했다. 아마 그전에 여러 가지 증세는 있었겠지.
분명히 괜찮아 보였는데. 일반적으로 겉으로 전조증상이 드러나지 않아도 내 눈에는 안 좋은 곳이 보이기도 하고.
워낙 건강한 체질이라 몸이 잘 버텨주다가 갑자기 몰려온 듯했다.
그 순간 프라이팬을 튕기며 재료를 볶던 노우민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엇.”
녀석이 프라이팬을 놓치고 말았다.
땡, 때대대대대댕. 바닥에 떨어진 프라이팬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볶아지던 재료 일부와 기름 조금만 바닥에 튄 수준이었다.
나는 황급히 달려갔다.
“괜찮냐? 안 다쳤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치울게요.”
“아니야, 놔둬, 놔둬.”
“죄송합니다.”
“이런 걸로 뭘 그렇게 죄송해. 그리고 아픈 곳이 있으면 있다고 말을 했어야지.”
“네? 아뇨, 딱히 아픈 곳은 없는데…….”
나는 프라이팬을 다시 올려놓은 뒤, 빠르게 바닥을 치웠다. 노우민은 계속 옆에서 도우려고 했지만, 내가 의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됐어, 내가 할게. 저기 가서 앉아 있어.”
“아니, 그래도…….”
“야야, 얼마나 더러워졌다고. 걸리적거려서 시간만 더 오래 걸려. 앉아 있어.”
“네, 진짜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바닥을 싹 치우고는 노우민과 마주앉았다.
녀석은 죄인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그래.”
“제가 괜히 일만 만든 거 같아서…….”
“야, 밥하다가 그런 거잖아. 그리고 평소에 잘해주고 있잖아. 별것도 아닌 걸로 너무 그러지 마라.”
“죄송…….”
녀석은 나의 눈치를 살피고는 다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왜 말을 안 했어?”
“네? 무슨 말이요?”
“아픈 거. 내가 맨날 하는 게 뭐냐, 사람들 건강 살펴주는 거잖아. 말을 했어야지.”
나는 안쓰러움에 인상을 찡그리며 노우민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