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42화 (42/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42화

10. 행복한 인생 (4)

“그려, 우리 강아지.”

할머니가 20대 때의 모습으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나를 강아지라고 불렀다.

거의 20년 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던 시절, 친구들과 지나가는데 할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시 할머니는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양 손수레를 놓고는 ‘우리 강아지’라며 거친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할머니는 이따 저녁 같이 먹게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시 손수레를 끌고 갔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지금은 연락도 안 하는 당시의 친구라던 놈 중 하나가 그랬다. 개새끼냐고.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 개새끼라고 놀렸다. 나는 쿨한 척 웃어넘겼다.

거기까지도 괜찮았다.

오후 7시가 넘어갈 즈음 할머니와의 저녁식사를 위해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내가 먼저 간다는 말에 친구라고 하던 놈 중 하나가 그랬다.

집 지키러 가냐고.

다른 한 놈이 맞장구를 쳤다.

똥개 새끼는 집 지키러 가야지.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 놈 모두 흠씬 두들겨 팼다. 말 그대로 얼굴에 김장을 해줬다.

금세 얼굴이 퉁퉁 부은 두 놈은 내게 싹싹 빌었다. 당연히 더 이상 친구라고 할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다음 날, 할머니는 학교로 와서 내가 흠씬 두들겨 팬 두 놈의 부모들에게 싹싹 빌었다. 거친 나무뿌리 같은 두 손은 맞닿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집에 와서는 할머니 탓을 했다.

나를 강아지라고 불러서 그렇다고, 그래서 애들이 놀렸다고, 다 할머니 때문이라고.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나를 단 한 번도 강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할머니의 거칠었던 두 손은 희고 고왔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와진 그 손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강아지라고 해도 괜찮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고오오오, 왜 울고 그래. 울지 말고 잘생긴 얼굴로 웃는 거 보여줘야지.”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머니 봐서 좋아서 그래. 좋아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입꼬리를 올리는데,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계속 울컥울컥 올라왔다. 이내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는 다 큰 손자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줬다.

한바탕 울고 난 뒤에야 팔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웃어 보였다. 혓바닥 뒤쪽으로는 짠맛이 났다.

“실컷 울었어?”

할머니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응. 오지게 울었네. 살면서 제일 많이 운 거 같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안 울었는데. 아마 그때도 그냥 눈물을 삼켰던 듯하다. 쌓이고 쌓인 게 유전처럼 한 번에 터진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떻게 날 보러 왔어?”

“할미가 우리 강아지 좀 보러 오면 안 돼?”

“안 되는 게 아니라. 하하.”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러 오기 위해서 그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이리 빨리 왔을까? 대체 기준이 뭘까?

나는 그 의문을 담아만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나 보러 왔던 거 알아?”

“알지.”

“나한테 능력 전수해준 것도?”

“그럼, 다 알지. 네 할아버지가 다 말해줬어.”

“그런데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빨리 오니께 싫어?”

“아니, 아니, 너무 좋지. 싫을 리가 없지, 싫을 수가 없지.”

할머니는 활짝 웃었다.

“나도 우리 강아지 이렇게 바로 앞에서 보고, 만져도 보고…… 너무 좋다.”

내 뺨을 쓰다듬는 손이 너무 보드라워 어색했다. 하지만 같았다. 그 따뜻함과 뺨으로 전해지는 촉각 이상의 무언가는 분명히 같았다.

“지금 다 말해줄 수는 없어. 나아아아아아중에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여.”

“나도 여기로 온 다음에?”

“그것보다는 빨리 알 수 있을 거여.”

“그렇구나. 그런데 할아버지랑 같이 오시지 왜 혼자 오셨어?”

“조만간 따로 너 보러 오실 거니께 기다리면 돼.”

“왜 따로 오신대?”

“나중에 할아버지가 말해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씩 웃었다.

“알았어. 할머니 잘 지내고 계시는 거지? 우리 할머니 엄청 미인이셨네. 이렇게 미인이신 줄은 몰랐네.”

할머니는 손을 내저었다.

“아휴, 이상한 소리 말어.”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동네에서나 제일 예쁜 정도였지.”

“하하하하하! 마을뿐이겠어?”

할머니는 너그럽게 웃으며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없구나. 원래 나중에 같이 오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말 좀 전해달라고 해서 빨리 온 거야.”

“무슨 말?”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랴. 그렇게 해도 괜찮대.”

“응?”

“머리 싸매고 죽는 소리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괜찮다고.”

“하고 싶은 대로……?”

“그려, 다 지켜보고 있어. 잘하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지금 하는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하면서 결정하랴. 그러면 된다고. 제일 중요한 게 네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고. 왜 하는지만 잊지 말라고.”

“알겠어요. 꼭 그렇게 한다고 전해줘요.”

“그래. 우리 손자야 알아서 다 잘하지. 이렇게 장하게 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장하기는……. 할아버지랑 할머니 아니었으면 개망나니였지 뭐.”

“으이그! 아서어! 개망나니가 뭐야.”

“할머니가 강아지라며!”

“그래도 개망나니가 뭐여.”

그렇게 잠시 웃음이 쓸고 지나갔고, 파도가 지나간 뒤 평평한 바다가 보이듯 차분한 분위기가 찾아왔다.

“할머니.”

“응, 우리 강아지.”

“그 있잖아요, 그…….”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속에 쌓아두지 말고 다 해. 또 보려면 한참 있어야 돼.”

어쩌면 처음일지도 몰랐다. 아주 어렸을 때 편지 쓰기 같은 걸로 표현해 본 적은 있던 것 같지만.

지금은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강아지라고 너무 불러서 그래? 왜 그렇게 끙끙거려.

“할머니!”

내가 장난스레 목소리를 높이자 할머니가 즐겁게 웃었다. 나도 한바탕 웃다가 서서히 옅은 미소만을 남겨놨다. 그리고 천천히 양손을 뻗어 할머니의 양손을 감싼 뒤 내 얼굴로 가져왔다.

그렇게 손과 뺨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따스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할머니는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구나. 또 보자. 밥 잘 먹고, 잠 푹 자고, 운동도 하고.”

“그럴게요.”

그 순간 위쪽에서부터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그 순간에도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뺨에 대고 눌렀다.

양쪽 눈꺼풀이 들리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앞이 깜깜해졌다.

“허억……. 허억…….”

마치 악몽을 꾸다가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더 이상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잠에 들었던 모텔 침대 위였다.

새하얀 베갯잇은 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할머니…….”

9

―별일은 없고?

수화기너머로 들려온 작은아빠의 물음에 웃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괜찮지. 쉽지는 않은데, 괜찮아. 재밌고.”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래서 언제 나오는데?

“아직 멀었어. ‘일의 달인’은 추석 지나고 작가 다시 한 번 만나기로 했으니까, 빨라야 10월에나 촬영하지 않을까?”

―그래? ‘우리는 몸신이다’는?

“그건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만나서 얘기해봐야지.”

―좋은 기회니까 놓치지 말고 잡아. 좋은 일도 너부터 챙겨가면서 여유가 생겨야 할 수 있는 거야.

“네. 다 열심히 해야죠.”

―세상이 살다보니까 나쁘지만은 않지?

나는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기만 하겠어? 요즘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

―저번에도 말했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좋은데, 요령껏 잘 저어야 돼. 잘못하면 물에 풍덩 빠지는 거야.

“알겠슴다!”

―그래, 또 연락하자.

“예, 들어가세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방송 출연을 하기로 결심했다.

목표를 분명히 했다.

돈을 더 벌자고 나가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유명해져서, 한 사람이라도 더 나를 찾아오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한 가지라도 더 건강을 위한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돈? 돈도 중요하긴 하다. 많은 돈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돈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미 먹고살기에는 충분하다 못해서 넘치는 돈을 벌고 있었다. 좆소기업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밥은 먹고 살았다.

사명감과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됐다. 그럼 돈은 알아서 따라오는 거니까. 따라오지 않는 것 같으면, 거리를 더 벌리면 된다. 돈이 조급해져서 빨리 쫓아오게끔.

10

“아이, 사장님. 이런 거 준비 안 하셔도 되는데.”

박종만은 내가 건넨 즙 선물세트와 한우 세트를 들여다보다가 실실 웃으며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 이제 곧 추석이잖아요. 별건 아니지만 맛있게 드셨으면 해서요.”

“에이, 추석 아직 한참 남았는데. 나도 뭘 준비했어야 됐는데, 이거 참. 언질 좀 주시지.”

“다음 주면 추석인데 뭘 한참 남아요. 의외로 느긋하시네? 무거운 팔에 비해서 손은 가볍게 오셨고.”

내가 가벼운 농을 툭 던지자 박종만은 하하 웃었다.

“아, 미안하게 진짜.”

“농담입니다, 농담. 사장님께서 추석 선물로 기계값 많이 깎아주셨잖습니까. 맨입으로 낼름 받아먹으면 안 되죠. 뭐, 정가였어도 당연히 선물은 드렸겠지만.”

주방의 기계들을 전부 최대 용량으로 바꿨다. 적지 않은 돈이 깨졌지만, 필요한 투자였다. 지금 매출대로라면 기계값 정도는 한두 달이면 건질 것 같았다.

박종만은 양손에 선물세트를 각각 들고는 번갈아 본 뒤 웃었다.

“아무튼 이거 참……. 단백질이랑 비타민이랑 뭐 이것저것 다 챙겨주셨네. 안 그래도 요즘 먹는 게 부실해져서 고민이었거든요. 좀 야윈 것 같지 않아요?”

어깨 아래로 팔 대신 다리를 달고 있는 것 같은 박종만이 그 말을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사장님이 야위었으면 대한민국 사람들 절반 이상은 구호대상이죠.”

어느새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강인나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말을 보탰다.

“팔이 제 다리보다 굵으신 거 같은데.”

“그건 학생이 너무 말라서 그렇지. 이거 나 말고 학생이 먹어야겠다.”

박종만이 한우 세트를 들이밀었고, 강인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몸을 뒤로 뺐다.

그렇게 한바탕 웃다가 박종만이 입을 뗐다.

“아, 그리고 저것들 있잖아요?”

그는 한우 세트 손잡이를 새끼손가락에 건 채로 엄지를 세워 가게 바깥쪽을 가리켰다.

“쟤네들 다 사용기간도 짧고, 관리가 워낙 잘 돼 있어서 괜찮은 값에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처분하는 대로 입금하고 연락드릴게. 아마 3일 내로 나갈 겁니다. 괜찮은 중고 찾는 사장님들이 워낙에 많아서.”

가게 앞에 잠시 세워둔 트럭 뒤에 실려 있는 기존의 기계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네, 네. 어련히 잘해주시겠죠.”

“그럼 다음에는 진짜로 소주 한잔해요.”

“네, 꼭이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박종만은 강인나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학생도 잘 지내고, 추석 잘 보내.”

“네, 안녕히 가세요. 연휴 잘 보내시고요.”

“그래, 또 봐아.”

그는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겨 노우민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갑니다! 수고하세요!”

“아, 네! 들어가십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또 봐요.”

그렇게 박종만이 갔고, 여느 날과 같이 행복한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행복이라는 바다에서 계속 헤엄치고 싶은 마음이엇다.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목표였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거다.

누구나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견디고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말고는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내가 걷고자 하는 행복한 길은 그 어떤 길보다도 행복으로 충만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여 나도 행복하고자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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