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34화
8. 사장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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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하고도 인성적인 부분이 아닌 사업에 관해서 나름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아빠와 얘기를 나눴을 때처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의외였다. 연륜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당연히 삶의 지혜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네에서 자그마한 미용실을 운영하는 고모에게 사업적인 부분을 배울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우선 나 또한 동네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운이 좋아 방송도 타고 손님이 몰리고는 있었지만,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능력이 아니었다면 가당키나 했겠는가.
고모는 맨손으로 시작하여 오랜 기간 한 자리에서 계속 미용실 운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두 자녀까지 키워가면서.
새삼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작은아빠와 고모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식들이니까.
대박을 내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장사철학과 신념이 있기에 가능했다.
모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멋진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박을 내지 못하거나, 망한 곳일지라도 업주가 무조건 생각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없어서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결국 성공을 결정짓는 마지막 요인은 운이다.
한 경제잡지에서는 전 세계에서 100위권 안에 드는 부자들을 상대로 성공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에 대해 물은 적이 있는데, 전부 공통적으로 운을 꼽았다.
얼마 전까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만남부터 시작하여 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유산이자 선물인 비현실적인 능력, 작은아빠와 큰고모처럼 나를 생각해주고 진심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가족 그리고 천금을 주고 살 수 없는 건강까지.
나만 똑바로 하면 됐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과채류 손질을 하고 즙을 내렸다.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속도도 더 빨라졌고.
새로 들인 기계들까지 전부 돌아가는 동안에는 한숨 돌리며 쉴 시간도 생겼다. 오늘은 그 시간에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카운터에 설치된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 중에 가게 문이 열리며 오정득이 들어섰다.
“뭐하냐? 게임하냐?”
“게임은 무슨.”
“컴퓨터에 빨려 들어갈 거 같길래.”
“아니, 이거 만들고 있었어.”
오정득이 옆으로 다가와 화면을 확인하고는 “오…….” 하고 감탄사를 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가게 블로그였다. 당장 온라인 쇼핑몰까지 만들 수는 없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바로 사람을 구해서 제작에 들어간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니까.
“근데 블로그로 장사하려고?”
오정득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블로그로는 한계가 있지.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일단 온라인 판매는 오픈마켓에 등록해서 하려고. 내일 바로 신청하게. 택배계약도 알아보고.”
“그럼 블로그는 왜 만들어?”
“제품들에 관해서도 올리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건강상담 때문에 만드는 거야.”
“아, 온라인으로도 예약 받으려고?”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고.”
“왜?”
“아까 고모랑도 얘기해보고, 작은아빠하고도 다시 통화해서 얘기해보고 했는데, 너도 들어봐?”
오정득이 피식 웃었다.
“예에, 말씀해보세요.”
“전화랑 온라인으로 받으면 좋은 게 시간도 조정되고, 하루 인원도 조정이 된단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내가 다른 일도 해야 되는데 계속 전화랑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단 말이야? 접수 받는 사람을 따로 쓸 수도 없고. 무엇보다 100% 노쇼가 발생할 거야.”
“그렇긴 하겠네. 어디에나 많지. 예약해놓고, 취소하고, 갑자기 직전에 못 온다고 하고, 늦게 오고.”
“그렇지. 그래서 내 생각에는 시간대를 딱 정해서, 그때 찾아오는 사람들만 선착순으로 명수 정해서 딱 받는 게…….”
나는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애초에 가게를 운영하는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꾸 상업적인 쪽으로 머리가 굴러간다. 이 죽일 놈의 욕심.
욕심을 전부 버릴 생각도 없고, 버리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부릴 부분에서 부려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건강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크게 불편한 곳이 없거나 혹은 자잘한 이유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크게 아파서 혹은 병원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서 오는 사람들도 많을 게 분명했다.
그런 사람들을 선착순으로 줄을 세우는 건 아닌 듯했다. 따로 대기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정득은 대충 알 것 같다는 듯이 말했다.
“또 그렇게 하려니 걸리는 게 있나보네.”
“응, 좀 그러네. 진짜 건강이 염려돼서 오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무슨 선착순에 줄 세우고 그런 건 또 아닌 거 같네.”
“작은아버님이랑 고모님은 그러라고 하셨어?”
“아니, 나보고 정하라고. 그냥 여러 가지 경우의 수들을 말해준 거지. 그래서 난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너랑 얘기하면서 정리해보니까 좀 아닌 거 같다.”
“그럼 일단 노쇼에 페널티를 주는 게 어때?”
“페널티?”
“응. 뭐 대놓고 ‘예약해놓고 안 오면 페널티가 있다’라고 하지는 않아도, 예약 받을 때 오늘 안 오면 뭐 다음 달이나 가능하다. 예약이 꽉 차있다는 식으로.”
“그거 괜찮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제일 손님 없고 나름대로 여유 있는 시간으로 딱 정해놓고 받으면 되겠다. 전화는 좀 자주 받고 해야지 뭐. 일할 때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잠깐만.”
오정득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새까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써.”
“이게 뭔데?”
“블루투스 이어폰. 그거 귀에 꽂아놓으면 과일 손질하다가도 살짝 눌러서 전화 받을 수 있으니까.”
“오오오오오……. 그런데 이거 나 주면 너는?”
“난 그거 있어도 안 써. 그러니까 가방에 들어 있었지. 거의 봉인돼 있던 거야.”
“완전 새 거 같기는 하다. 고맙다 야!”
“나중에 밥이나 사.”
“삼겹살?”
“소고기 사.”
“아니야, 돼지로 가자.”
“에라이, 씨…….”
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기며 말했다.
“그럼 해결됐네. 예약식으로 하면 되겠다.
“이야, 무슨 잘 나가는 대학병원 교수 같네.”
“지랄.”
“아예 온라인으로만 받으면 더 편하긴 할 텐데.”
“그건 안 돼. 아무래도 건강상담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은 연령대가 높아서 컴퓨터 잘 못 다루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야. 대신 부탁할 사람도 없는 경우도 있고.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돼.”
오정득은 곧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겠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반짝였다.
“병원. 그래, 병원.”
“뭐? 병원이 왜?”
“진단서나 뭐 진료확인서 같은 거 있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예약을 잡아줘야겠다.”
“오호.”
“그런 사람들은 진짜 병원 가도 안 되니까 대체의학도 찾아보고 그런 경우들이잖아. 아니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좋은 생각이긴 한데, 법적으로 문제는 없나?”
“인터넷에도 진단서나 처방 받은 거 관련해서 물어보려고 올리기도 하잖아. 꼭 이런 게 아니어도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그런 걸로 인증하면 되는 거고. 영리적 행위가 아니라서 괜찮아. 이번에 경찰서 갔다 왔잖냐.”
오정득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괜찮은 생각 같다.”
“그치?”
“그럼 다 해결됐네?”
“건강상담 관련해서는.”
“아, 맞다.”
“응. 직원을 뽑아야겠더라고.”
“같이 과채류 손질이랑 기계 돌리는 거 보조?”
나는 밖에 세워져 있는 슬러시 기계를 힐끗 본 뒤 말했다.
“슬러시 담당할 단기 아르바이트생도 한 명.”
“하긴, 저것도 은근히 많이들 사먹지?”
“응, 초가을까지만 하려고. 그때까지만 맡아줄 알바 구하려고. 점심에 잠깐. 일도 간단하니까.”
“같이 아침에 고생해줄 사람 구하는 게 문제지. 손도 빨라야 되고, 체력도 좋아야 하니까.”
“그럼 지금 바로 채용공고 올려. 알바문이나 알바헤븐 같은 데.”
“응, 그러려고.”
나는 오정득과 이야기를 해가며 채용공고를 작성했다.
[함께 건강즙 만드실 분 모집]
―주요업무 : 과채류 손질 및 설거지 등 건강원 보조업무
―지원자격 : 만 18세 이상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고, 건강상 이상이 없는 자
―과일 잘 깎고 자를 수 있는 분 우대
―근무 조건 : 월~금 주 5일 근무 / 오전 8시~오후 4시 (점심시간 포함)
―급여 : 월 210만 원 (식대 포함 / 3개월 지나면 220만 원)
―복리후생 : 월마다 당사 제품인 건강즙 1상자, 명절 선물용 건강즙
―체력 좋으시고 성실하신 분들의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건강 슬러시 판매 1개월만 일하실 단기 아르바이트생 모집]
―주요업무 : 건강 슬러시 판매
―지원자격 : 만 18세 이상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 자
―근무 조건 : 월~토 주 6일 근무 / 오후 4시~오후 8시 (4시간) (조정 가능)
―급여 : 시급 9,000원 (현 최저시급 8,350원)
―복리후생 : 선물용 건강즙
―컵에 슬러시만 담아서 주면 되기 때문에 일은 쉽습니다. 주로 학생들이 손님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 웃으시고 친절하신 분들의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나는 작성을 완료하고 오정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정도면 됐나?”
“일하는 시간에 비해 급여가 조금 높지 않나? 내가 이쪽 일은 몰라서 모르겠네. 원래 이 정도 주나? 그리고 왜 건강즙 보조는 주 5일이야?”
“슬러시 알바는 시간이 좀 짧으니까 주 6일이어도 그럭저럭 할 만한데, 저건 일이 조금 고되잖아. 나야 내 장사니까 맨날 붙들고 있는 거지, 그냥 직원이 그렇게 하나? 쉬는 날도 좀 있고 그래야 사람이 일할 맛도 나지. 워라밸 몰라? 워크 라이프 밸런스 인마.”
“그래도 점심시간 빼고, 쉬는 시간도 빼면 후한데? 좀 줄여도 충분히 사람들 지원할 텐데?”
“돈을 많이 준다고 무조건 유능한 직원이 오는 건 아니지만, 돈을 많이 주면 유능한 직원이 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거든. 돈 주는 만큼 일할 사람을 뽑는 건 내 몫인 거고. 사실 그렇게 많이 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내년에도 최저임금 상승할 거 생각하면 더욱. 해가 바뀐다고 무조건 급여 올려줄 건 아니니까.”
오정득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듯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 내가 이런 부분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건 아니니까. 말도 안 되게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사실 요즘 물가 생각하면 이 정도는 돼야지. 그래야 벌어서 먹고살지.”
“그래. 좋은 사장님이네.”
“딱히 좋은 사장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나쁜 사장님 소리도 듣고 싶지는 않다.”
지원 연락을 받고, 면접까지 볼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설렜다. 이제야 진짜 사장님이 되는 기분이었다.
13
여름휴가 3일째 오전.
“네, 그쪽에 달아주세요. 네, 거기요. 쪼오오오금만 옆으로요. 네.”
가게 벽에 TV를 설치하는 중이었다. 평소에 내가 보는 용도로도 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세상에 이런 일도’의 내가 출연했던 분량을 무한히 반복하기 위해서였다. 가게를 들어섰을 때 조금은 더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거 드세요.”
텔레비전 설치기사에게 즙 두 종류와 주스 하나를 건넸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나만 주셔도 되는데.”
“다른 곳에도 가실 텐데 힘내시라고요. 겸사겸사 홍보도 좀 드리는 거죠.”
“하하하하, 네, 잘 마시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영업용 전화는 아직도 자동응답기로 돌려놓은 상태였는데, 벌써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문의가 온 상태였다. 하나하나 답장을 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예 병원 홈페이지처럼 가능한 예약일자를 클릭해서 직접 할 수 있게 하면 좋을 텐데.
플랫폼 사이트를 통해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지출을 줄이고자 블로그를 만든 거였다.
방송효과가 지나가고 나서도 어느 정도매출이 안정화되고 확신이 들면 바로 홈페이지 제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더 나아가서는 언젠가 따로 전화를 받고 게시판 관리를 하는 직원을 뽑을 날도 오겠지.
자그마한 목표들이 하나씩 쌓이는 중이었고, 그것들을 하나씩 이뤄내면 큰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이렇게 삶이 희망으로 가득해서 찬란했던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르바이트 지원 연락은 생각 이상으로 많이 왔다. 어제 오전에만 11명의 연락을 받아서 잠시 채용공고를 비공개로 돌려야 됐을 정도였다.
오늘 오후 중에 차례로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반면에 직원을 뽑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이 생각보다 적었다. 아직도 채용공고가 올라가 있는 상태인데도 2명에게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방송을 탄 가게에서 사람을 뽑으니 업무강도가 높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 내가 일을 빡세면서도 까다롭게 하는 모습들이 방송에 그대로 나갔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2명도 금일 저녁에 면접을 진행하기로 돼 있었다.
예전에 회사 면접을 볼 때도 거의 긴장을 안 했었는데, 내가 뽑는 입장이 되자 괜히 떨렸다. 설렘에 가까웠지만.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으면 좋을 텐데.
즐겁게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3일째인데도 재고가 상당히 쌓여 있었다. 내가 생활하는 방 안에도 박스들을 쌓아 올려야 할 정도였다.
지독하게 일을 한 덕분이기도 했다. 과채류 손질을 쉬지 않았고, 기계는 24시간 풀가동 이었다. 2시간마다 알람을 맞춰서 자다가도 일어나 기계를 확인하고 다시 눈을 붙였다.
힘들었지만 즐거움이 더 컸다. 이 보람찬 기분을 좀 더 일찍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과거에 내게 있어서 일이라는 것은 그저 통장을 잠시 스칠 월급을 위해서,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를 보기 위해서 감내하는 고통일 뿐이었으니까.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슬슬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오늘 면접을 볼 사람들 중 하나일 것 같았다. 갑자기 면접을 보지 못하게 됐다거나, 시간을 조정하려는 그런 연락일 거라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그저께 뵀던 가예림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영상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릴 게 있다고 했었잖아요. 그거 때문에 연락드렸는데,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습니다.”
―일단 제가 편집 끝낸 영상 검수도 부탁드리고, 영상도 하나만 더 찍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영상을 하나 더요?”
―네, 저하고 둘이서만요. 영상을 찍는 시간 자체는 길어야 2시간? 넉넉잡아서 3시간 안에는 될 거 같은데. 그전에 끝날 수도 있고요. 사장님께 나쁠 건 하나도 없을 거예요.
“글쎄요……. 영상을 하나 더 찍는 건 조금…….”
―우선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간단하게, 빠르게 설명드릴게요.
“예, 일단 말씀해보세요.”
가예림은 새로 찍을 영상에 대해 설명했고, 얘기를 전부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흔쾌히 응했다.
“그런 거라면 나쁘지 않네요.”
―네, 그럼 혹시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은데.
“지금 바로요? 제가 오후 3시부터는 면접이 있어서요.”
―12시 안에 도착 가능해요.
“그럼…….”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예, 그럼 그렇게 하시죠. 말씀하신 내용은 1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제가 이미 다해서 사실 그렇게까지 또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럼 바로 찾아뵐게요.
“예, 그래요. 곧 봬요.”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길 시간은 없었으니까.
가예림은 얘기한 대로 오후 12시가 되기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저께 울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밝게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시간 뺏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이미 시작했으니 제대로 끝을 봐야죠.”
“영상 검수는 이따 보시고, 일단 바로 시작할까요?”
“네, 다 준비해놨어요. 저기 앞치마랑…….”
내가 몸을 틀며 물품들을 가리키려는데, 가예림이 테이블 위에 커다란 쇼핑백을 올려놨다.
“잠시만요.”
그녀가 새하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옷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입기 시작했다. 방사능 보호복 수준이었다. 가게의 완벽한 방역 및 위생을 강조하기 위해 보여주기식 쇼를 준비한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내가 말하자 가예림은 생긋 웃어 보였다.
“아직 검사는 안 받아봤지만 저는 보균자일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야죠.”
그녀는 아주 작정을 한 듯했다.
내 입장에서는 물론이고, 가예림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쇼맨십으로 보였다.
사후처리에 이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아이튜브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테니까.
잘된 듯했다. 실제로 우리 제품에는 아무 이상도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진실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잡음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법이고, 그걸 차단할 수 있다면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