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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29화 (29/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29화

7. 산불 (4)

“그래요? 다행이네요. 어르신들께 말씀드렸던 것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부글부글 끓으며 튀어 오를 것 같던 마음은 금세 잔잔히 가라앉았다.

날뛰는 기쁨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차분해졌다.

“생각보다 차분하시네요? 예상하고 계셨던 겁니까?”

박성민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이게…… 너무 기뻐하기도 좀 그런 것이, 제작진 분들의 경우 몸이 안 좋은 게 확정된 거잖습니까? 그런데 너무 기뻐하기도 좀…….”

“하하하하, 이거 참. 그것도 그렇네요. 그래도 다행히 말씀하신 대로 큰 문제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관리를 안 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요.”

“다행이네요. 그럼 어르신들은…….”

“네, 다 호전되신 상태랍니다. 정밀검사 받으신 분들은 전부 사장님께 건강상담을 받기 전에 병원기록이 있으신 분들이거든요. 혈압이든 간수치든 혈관 상태든 뭐든 다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합니다.”

나는 입가에 깊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네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오정득은 자기가 더 신나서는 내 팔뚝을 강하게 잡고 흔들었다.

“이야, 너 진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의사네, 완전 의사야!”

“아파 인마. 왜 이렇게 세게 잡고 난리야.”

“야, 내가 힘이 세면 얼마나 세다고. 그런데 너 팔뚝이 왜 이러냐? 왜 이렇게 탱탱해? 근육 장난 아니네?”

“원래도 이랬어.”

회사에 다닐 때도 힘을 쓰는 일이 많았다. 술과 인스턴트식품으로 두둑하게 적금을 들어둔 뱃살은 넉넉했지만, 팔뚝만큼은 근육이 상당했다. 옛날에 운동 좀 했던 가닥도 있고.

“아니, 차원이 다른데? 살도 쫙 빠져가지고. 요즘 관리 좀 하나봐?”

오정득이 능글거리며 말했다.

갖은 민간요법으로 몸 관리를 하면서 바른생활을 하는 영향이 있는 듯했다. 게다가 과채류가 잔뜩 들어 있는 대야를 들었다 놨다, 즙이 든 박스들을 옮기고, 물건들도 받고, 단련이 될 수밖에.

“여유 좀 생기면 따로 운동도 좀 다니고 해야지.”

내가 말하는데, 박성민이 카메라를 들고 목소리를 냈다.

“자, 자. 지금 이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촬영 좀 이어가죠. 이런 텐션이 사라지기 전에 촬영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 네네. 그럼 온라인 판매 얘기 하던 거 계속 이어서 하면 될까요?”

“아뇨, 아뇨. 그전에, 그거부터 가죠. 어르신들과 제작진들 병원 검사 결과에 대한 거부터요. 제가 질문을 하면, 그때 답해주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박성민은 카메라를 잠시 조작하는 것 같더니 이내 손으로 신호를 보낸 뒤 입을 뗐다.

“병원 검사 결과 사장님 말씀이 모두 맞았습니다. 제작진들의 안 좋은 곳이 전부 그대로 나왔고, 예전부터 앓는 질환이 있던 어르신들은 전부 호전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기분이 어떠세요?”

“좋은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네요.”

“왜 씁쓸하세요?”

“어쨌든 제작진 분들의 몸이 안 좋다는 게 확정된 거니까요. 제가 틀렸더라도 아픈 곳이 없었더라면 그게 더 좋은 소식이죠.”

“크…… 멋지십니다.”

박성민이 엄지를 세워 보였다.

“이건 개인적인 표현인데요. 감히 기적이라는 말을 써도 될 것 같거든요? 정확히 원인을 찾아내시고, 그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주신다는 게 정말 굉장한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음…….”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기적이라는 게 어쩌면 모든 게 기적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기적적인 거잖습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지금 이런 상황까지 다다른 거잖아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제가 하는 것보다 대단한 건 애초에 건강을 잃지 않고 지키는 겁니다. 모든 분들이 기적적으로 존재하며, 항상 기적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계시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정말로 소중한 거거든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아휴, 아닙니다.”

박성민은 거기서 잠깐 컷을 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조금 착잡한 얼굴로 잠시 감정을 추스르는 것 같더니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내가 묻자 박성민이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작년에 저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거든요. 그냥……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네요. 돌아가실 때는 눈물 한 방울 안 났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지……. 투병을 오래하셨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준비할 시간도 길었고, 간병도 힘들었고.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내 카메라를 내려놓고는 내게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쉬었다가 갈게요.”

갑작스레 확 가라앉았다. 나와 오정득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박성민은 마른세수를 하며 잠시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도 잠시 먼저 떠난 가족들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할 때도 있었다. 한 번 그 기분에 빠져들면 그날은 하루 종일 축 쳐졌다. 그게 싫었다. 안 그래도 서러움 많은 인생에 서글픔을 더하는 게 싫었다.

요즘은 모두를 떠올려도 전보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여전히 슬프고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래도 좀 나았다.

할아버지와의 만남 덕분에 모두 저승에서 잘 있을 거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좀 더 당당해져서 그랬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언제나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가슴과 어깨를 펴고 똑바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7

박성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일에 임했다. 프로는 프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일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나와 오정득은 정말 괜찮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다채롭게 화면에 담겼다. 심지어 오정득의 한마디가 씨가 되어 팔뚝 근육까지 자랑했다. 과채류 손질로 단련된 근육이라나.

방송이랍시고 손으로 사과를 쪼개고 으깨는 것까지 선보였다. 당연히 즙을 이런 식으로 짜는 건 아니니 오해 말라는 자막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정득과는 온라인 판매에 대해 얘기하는 걸 담아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온라인 판매에는 크게 두 가지 루트가 있었다. 하나는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픈마켓에 등록을 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고맙게도 오정득이 세세하게 다 조사를 해와서 비교는 쉬웠다.

“당장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면 비용 소모가 만만치 않을 거야. 그리고 사이트 유지보수도 사람 써야 되고. 직접 관리하는 건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 아예 손을 떼고 있으라는 게 아니라, 네가 직접 해야 되는 일들이 많으니까.”

오정득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럼 당장은 오픈마켓에서만 시작을 하는 게 낫겠네? 수익적으로 손해가 좀 있어도?”

“그렇지. 상품당 등록 수수료 자체는 얼마 안 하는데, 문제는 판매 수수료가 보통 8~10%나 되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고 봐야지. 순이익이 좀 떨어지는 거지, 계속해서 소모되는 비용이 커지는 건 아니라서 손해는 별로 없어. 상품 사진 같은 거 촬영하는 데 돈이 또 좀 들겠지만.”

녀석은 더 커다란 숲에 멀리 있는 곳까지 내다보고 얘기했다.

“일단 이렇게 판매하다가 나중에 판매자 쇼핑몰에도 연결되게 하면 되거든. 적립금 같은 걸로 유도하면 사람들 좀 붙을 거야. 이미 주기적으로 사서 먹는 사람들이 있으면 말이지. 그때 플랫폼 파워링크 같은 것도 돈 주고 걸고 하면 될 거야. 사이트 오픈 기념 이벤트도 때리고.”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방송에 전부 나갈 리는 없었다. 손님들이 늘어나 온라인 판매도 시작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오정득이 가고, 제작진 몇몇이 돌아왔다.

늦은 오후가 되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늘도 김민지는 슬러시 판매를 도맡아야 했다. 찾아온 손님들 중 80% 이상은 건강상담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촬영 중이라는 것 그리고 병원에 가서도 내 진단이 옳았으며 처방도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가 산불처럼 번진 탓이었다.

오후 8시면 가게를 닫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후 9시가 되도록 건강상담을 마칠 수가 없었다.

박성민은 이것도 촬영거리라며 반겼다.

나는 계속해서 건강상담 그리고 즙과 주스를 팔아야 했다. 잠시도 쉬지 못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말하는 것도 계속하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8

“내일이면 촬영 끝이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성민이 웃으며 내게 소주를 한 잔 따랐다.

“뭘요. 피디님이 고생 많으셨죠.”

나도 박성민의 잔을 채웠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받은 이후로 처음 마시는 술이었다.

술을 완전히 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마시게 될 줄이야.

합리화가 아니라 적당히 마시며 절제하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전에는 알코올중독까지는 아니어도 알코올의존증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박성민의 술자리 제안에 응하며 다짐한 것이 바로 ‘특별한 날에만 마시자’였다.

사랑과 술은 잘하면 명약이고 잘못하면 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명약으로서 활용하면 되겠지.

“자, 짠하시죠.”

박성민이 잔을 내밀었다.

나는 건배를 하며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순식간에 넘어갔고, 혀끝에는 단맛이 돌았다.

“술 잘 드시네.”

박성민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냥, 좋아합니다.”

“그래요? 자주 드세요?”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자제하고 있어요.”

“그쵸, 적당히 마셔야죠. 저도 예전에는 매일 마셨는데, 우리 늦둥이 태어나고 나서는 자제 중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네. 큰 녀석은 이제 중3인데, 한창 말 안 듣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도 본성은 착한 녀석이라……. 그런데 작년에 딸이 생기면서 자제 중입니다. 녀석이 다 커서 시집가는 것까지 보려면 오래 살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좀 줄였죠. 하하하!”

그때 가게 문을 열고 김민지가 들어섰다.

“좀 늦었죠? 장사 엄청 잘 되더라고요? 어라? 벌써 시작들 하셨네?”

그녀가 들어오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졌다. 시장에서 통닭과 족발, 곱창에 회까지 각종 안주들을 사온 것이었다.

나는 테이블에 차려지는 음식들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셋이서 먹는데 뭐 이렇게 많이…….”

그러자 김민지가 웃음 섞인 핀잔을 줬다.

“사장님 의외로 손 작으시네에. 저녁식사 겸 먹는 건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죠.”

“그렇습니까? 그래도 좀 많은 거 같아서.”

“아, 부족한 것보다는 낫죠.”

“하긴, 민지 씨는 많이 드셔야죠. 밖에서 고생하셨는데.”

“그러게요, 알바비 받아야 될 거 같아요.”

“하하하하, 챙겨드려야겠네.”

“아, 또 챙기긴 뭘 챙겨요.”

원래는 박성민과 둘이서 먹을 계획이었는데, 얘기를 들은 김민지가 자진해서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일 촬영 준비한답시고 들어갔다. 아마 몇몇은 자기들끼리 또 술자리를 가질 거라고.

“이 친구가 아주 말술이에요.”

박성민이 하하 웃으며 김민지를 가리켰다.

“아니에요, 저야 적당히 마시는 정도죠.”

“적당히 두 번 먹었다가는 씨름선수도 쓰러지겠어.”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과 가지는 술자리였다. 대화의 주제도 방송 위주보다는 그저 술자리답게 가벼운 이야기가 주였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빈 소주병들이 늘어났을 즈음이었다.

“왤까요?”

김민지가 갑작스레 한마디 툭 던졌다.

“뭐가 왜야?”

박성민이 되묻자 김민지가 다시 물음으로 받아쳤다.

“왜 저한테 켜지는 그린라이트는 진짜 신호등밖에 없을까요? 연애세포가 다 죽어가는 거 같아요.”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을 늘어놨다.

“민지 씨가 눈이 높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니면 누가 신호를 보내는데 모르고 계신다거나…….”

그때 김민지가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아아아! 와아아아! 재미없어!”

“네? 앗, 음…….”

“사장님도 여자친구 없으시죠? 그린라이트가 비추다가도 금방 깜빡거리겠네.”

뜬금없이 두드려 맞으니 당황스러웠지만 그저 웃었다. 진짜로 웃기기도 했고.

그때 박성민이 말했다.

“김 작가. 김 작가가 왜 남자친구가 없는 줄 알아?”

“왜요?”

“웃을 때 까마귀 소리 내서 그래. 맨날 웃을 때 깍깍깍깍거리잖아. 크크크크.”

그는 자신이 말하고도 웃기다는 듯 낄낄거렸다. 그러다 또다시 김민지의 웃음소리를 흉내 냈다.

김민지가 눈썹을 찡그렸다.

“피디님은 웃을 때 꺽꺽거리잖아요. 숨넘어가실 거 같아서 맨날 걱정되거든요?”

“내가? 내가 언제.”

“그러시거든요?”

나는 두 사람이 티격대는 걸 보며 한참 웃었다.

그렇게 즐거운 술자리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취기도 꽤 올랐고, 시간도 벌써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김민지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나저나 뭐 궁금하신 거 없으세요?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박성민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깊게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아도 연예인들 가십 중에서 뭐가 진실인지 궁금한 건 있었다. 하지만 전부 예의가 아닌 질문들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촬영하시면서 특이한 경우는 뭐가 있어요? 아니면 뭐, 주의할 점이나 이건 꼭 이렇게 한다, 촬영대상 1순위, 그런 것들 있으세요?”

“음…… 우선 아이들이나 동물에 대한 경우는 제보가 들어오면 바로 움직입니다. 이게 시청률이 가장 높아서라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요. 시간이 지나면 그 제보가 들어왔던 부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사람처럼 말하던 개가 다시 평범하게 짖는다거나.”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그리고 뭐든 수집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네, 알죠.”

“보통 수집만 실컷 해놓고, 정리는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어느 정도 자기가 알아보게끔 정리한 경우는 좀 나아요. 촬영에 쓰기에 애매한 거라서 저랑 제작진들이 직접 정리를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아예 본인이 수집한 걸 어디에 뒀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박성민은 잔뜩 몰입해서는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한 번은 제가 물건을 찾았는데, 출연자 분께서 그게 뭐녜요 글쎄. 어디서 난 거냐고, 자기한테 넘기라고.”

“하하하, 진짜 여러 가지로 고생이시네요.”

“그렇죠. 제일 골치인 건 출연자하고 트러블이 생길 때입니다. 심하면 방송 못 내보내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

박성민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이렇게 사장님처럼 마음이 잘 맞아서 술자리까지 갖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는 거죠 뭐. 그 분들이 꼭 나빠서가 아니라, 성향이랑 생각이 좀 달랐던 거죠.”

그는 졸고 있는 김민지를 힐끗 보고는 다시 말했다.

“이제 슬슬 자리 접어야 할 거 같은데 하실 말씀 있으세요? 내일 마지막 촬영인데.”

“아,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좀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보셨다시피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네네, 그렇죠.”

“이게 언제까지나 계속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잠깐 검색어 효과 때문이겠죠. 하지만 분명히 방송이 나가면 한동안은 또 몰릴 거 같거든요.”

박성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분명히 그럴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릴지,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정말 그럴 거예요.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들 오실 겁니다.”

“그래서 그런데, 방송에서 건강상담을 위해 오시는 분들은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하셔야만 된다는 내용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할까요?”

“아, 당연히 되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그러시죠.”

박성민과 나는 먹은 것들을 함께 치웠다.

“제가 그냥 치우면 되는데.”

내가 말하자 박성민이 손사래를 쳤다.

“같이 하면 금방 끝나잖아요.”

그렇게 정리를 다 마칠 때까지도 김민지는 졸고 있었다.

박성민이 김민지 작가를 살짝 흔들었다.

“김 작가. 일어나. 가야지.”

“안 잤어요!”

김민지는 눈을 번쩍 뜨며 손으로 입가를 빠르게 슥삭 훔치고는 잔을 잡으려는 듯 양손을 뻗어 빈 테이블 위를 저었다.

“어? 다 어디 갔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와 박성민은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김민지는 잠이 덜 깬 듯 머리를 긁적거리다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웃음이 번지는 밤이 깊어갔다.

비슷한 행위도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혼자 들이붓던 술은 취하기 위해서였다. 가혹한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이란 지우개로 뇌 주름을 문지르는 것이었다.

지금은 즐거움을 위해 적당히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웃으며 술을 마신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할수록 내 삶이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말 그대로 삶이 나아졌음을 뜻하기도 했지만, 내가 스스로의 삶을 좋아할 수 있게 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모든 인생이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인생은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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