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26화
7. 산불 (1)
1
살다보면 때로는 안 좋은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좋은 일도 일어난다. 그래서 삶이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지금도 그랬다. 나는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런 곳에 왔더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마 아직 20대일 때,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애인과 왔었겠지.
그리 긴 인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에는 강렬했다. 헤어진 이유 때문이었다.
미래가 불안정한 사람과 계속 만나는 건 시간낭비 같다나.
지금 생각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7, 8년은 지난 얘기인데 지금 열 받아서 뭐하냐…….
그러다 헛웃음을 칠 뻔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넘길 줄도 알던 사람이었나.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을 때였다.
“진동벨 울려놓고 막상 갔더니 줄을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좀 늦었어요.”
SBC ‘세상에 이런 일도’의 보조 작가 김민지가 쟁반 위에 커피 두 잔을 받아서 가지고 왔다.
나는 바로 벌떡 일어났다.
“아, 감사합니다.”
“앉아계세요, 앉아계세요.”
김민지가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죄송해요. 원래 제가 직접 찾아봬야 하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가까운 데서 보자고 하신 건데요 뭐. 오히려 작가님께서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시고…….”
“그래도 더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저처럼 보조작가들은 원래 쉬는 날이 없답니다. 절대 사장님 때문에 일을 더하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오히려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마시면서 일할 수 있어서 좋네요.”
김민지는 커피를 가리키며 생긋 웃었다.
“편하게 드시고요, 혹시 또 뭐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네, 유선상으로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눠서 알고 계실 텐데요. 지금 저희가 사장님께 관심을 갖는 게 바로 건강상담이거든요. 이게 지금 어떻게 진행이 되고 계신 거예요?”
그녀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민감한 부분이라 조심스러운데, 최근에 또 논란의 중심이 되셨었잖아요? 당연히 결백하셨고요.”
“하하, 사람들 다 아는 사실인데 너무 조심하실 거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당한 부분이고요.”
“그럼 몇 가지 좀 여쭐게요. 현재 사람들의 건강상담을 해주시면서 금전적인 수익은 전혀 없으신 거예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건강상담 자체로 돈을 받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지만, 건강상담을 위해 오셨다가 저희 제품을 구매하시는 경우는 있으시죠.”
“그럼 건강상담을 위해 즙이나, 주스 같은 걸 사야 되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건강상담만 받고 가시는 경우가 더 많아요.”
“왜 그렇게 건강상담을 해주시게 됐어요?”
“그건…….”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세상에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요? 건강을 잃으면 말 그대로 다 잃는 거고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알았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걸 잃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 그래서…….”
“예. 진심으로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시작한 일입니다. 당연히 저 역시 건강하고 싶고요.”
김민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다 입을 뗐다.
“제가 몇 가지만 더 여쭐 건데, 나쁜 뜻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정말 그런 뜻 아니에요. 그냥 정해져 있는 질문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 건 알겠는데, 보통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잖아요? 약이 필요하면 약국에 갈 수도 있고요. 그 외에도 여러 치료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플 때는 병원을 가는 게 맞습니다. 저한테는 아프기 전에 오셔야죠. 저는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몸이 조금 안 좋아지는 것 같을 때 관리하는 법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먹는 걸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저는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식습관이나 생활습관 등의 개선을 많이 알려드립니다. 그것만 해도 몸이 나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데요.”
김민지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말씀드리는 거 다 정해진 질문인 거 아시죠?”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그럼 이것도 일종의 봉사라고 할 수 있는데, 왜 무료로 이렇게 하시는지 좀 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저도 사람이니까 오시는 김에 뭐 하나 팔아주시면 감사하죠. 그런 마음도 아예 없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길 바라며 하는 일입니다. 만약 램프의 지니가 있어서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한 가지는 주저 없이 세상에 모든 질병을 없애달라고 할 겁니다. 정말 모두 건강하길 바라거든요.”
“와, 천사시네요. 천사.”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긴 건 천사와 전혀 안 맞는데 말이죠.”
“아니에요, 잘생기셨어요.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쭐게요.”
“네, 말씀하세요.”
“그렇게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 때문에 일에 지장은 안 생기세요?”
“보통 가장 바쁜 게 과채류 손질을 비롯해서 즙을 내리기 위해 일할 때인데요. 보통 이런 일들을 가게 오픈하기 전에 새벽에 마치거든요. 그리고 아직까지는 찾아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으셔서 크게 지장은 없는 상태입니다.”
김민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질의응답을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메모 중이었다.
“만약 방송을 보고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오시면 찾아와주시는 거에 감사해야죠. 최대한 열심히 상담해드릴 겁니다.”
김민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쭌 것들이 촬영을 진행하면서 피디님이 다시 물어보시는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그때에 맞게 바꿔서 대답하셔도 되는데, 지금 말씀하신 걸 다시 알려드릴 거예요. 사람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편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아, 네.”
“아마 촬영을 진행하면서 그나마 가장 무거운? 질문들은 다 끝났다고 보시면 돼요.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다 들으셨죠?”
“네, 3박 4일 동안 진행된다고…….”
“맞아요. 특별히 대본이 정해져 있지는 않고요. 피디님이 사장님의 하루를 카메라에 담아내실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물었다.
“그럼 다 끝난 건가요?”
“아,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이걸 깜빡했네요. 그때 전화로 못 여쭤봐서 오늘 꼭 여쭤본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씀하세요.”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손님들이 3박4일 동안 한 명은 있으시겠죠?”
“건강상담 받으러 오는 분들이 없으실까봐 그러는 거죠?”
김민지는 굉장히 안타깝다는 듯이 눈썹을 팔(八)자로 만들며 말했다.
“네에. 아무래도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서요. 피디님이나 제작진 중에서도 체험을 하겠지만, 원래 드나드는 분들이 나오셔야 하거든요.”
“그 부분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보통 짧으면 2, 3일…… 길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르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럼 바로 스케줄 잡아서 연락드릴게요. 아마 이번 주 수, 목, 금, 토 이렇게 4일이 될 것 같아요.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그럼 이거 출연 계약서 작성하시죠.”
A4용지 한 장밖에 안 되는 간단한 계약서였다. 방송이 나가기 전에 관련 내용을 비밀로 할 것 그리고 내가 담긴 녹화물이 쓰여도 괜찮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명을 마치고 자리를 마칠 즈음이었다.
“저기…….”
내가 입을 떼자 김민지는 생긋 웃으며 눈을 크게 떴다.
“네, 말씀하세요.”
“이거 여쭤보는 게 조금 그런데, 혹시 출연료도 있나요?”
“아, 그걸 말씀 안 드렸구나. 죄송해요.”
“아니에요,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요.”
“음, 저희가 따로 출연료는 없고요. 상품권을 드리고 있어요. 괜찮으신가요?”
공짜로, 아니, 상품권을 받으면서 공중파 방송에 가게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물론이죠.”
“그럼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그렇게 미팅을 마치고 카페를 빠져나와 김민지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나온 김에 어디를 갈까, 고민했는데 결국 다시 가게이자 집으로향했다.
2
“그래애? 방송 나온다고?”
고모가 웃는 얼굴로 거울을 통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응, 세상에 이런 일도 알지? 거기 나와.”
고모하고만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데, 파마를 말고 있는 중년 여자와 자꾸만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파마를 하면서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가게 차린 지 얼마 안 됐는데 출세했네에.”
“출세는 무슨.”
“그런데 거기 좀 특이한 사람들만 나오는 거 아니야?”
고모는 중년 여자의 머리를 다 말고는 파마기계를 끌어와 작동시키며 말을 이었다.
“네가 거기에 어떤 걸로 나오는 거야?”
“건강상담 해주고 그걸로 나오는 거지.”
“그거 때메 한바탕 난리더니, 덕분에 좋은 일도 생기네?”
“그러게 말이야. 공짜로 가게 홍보되고 좋은 거지 뭐.”
“촬영은 언제 해?”
“화요일부터.”
고모가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화요일부터? 촬영을 며칠 동안 해?”
“3박4일 동안.”
“그래애? 그걸? 그냥 대본대로 몇 시간 찍고 마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중년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어머어머, 그것도 장난 아니구나.”
고모는 슬슬 걸음을 옮겨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봉지들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이것들은 뭐야?”
“그냥 먹을 거 좀 이것저것 사왔어.”
“그래애? 뭘 이런 걸 사오고 그래. 너나 잘 챙겨먹지.”
“그 안에 애들 좋아하는 것도 있어. 통닭도 있고. 지금 다 식었겠다. 집에 에어 프라이어 있잖아? 거기에 돌려서 먹으면 맛있어.”
“그래? 아무튼 고맙다 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
“잉? 벌써 가려고?”
“그냥 생각나서 잠깐 들른 거야. 그것들 좀 전해주고. 고모도 방송 나오려면 한 번 들러.”
“얘는, 뭐, 너 찍자고 온 건데 그냥 나와지나?”
“나 과일 손질하는 거 좀 도와주면서 같이 나오면 되지.”
“그런가? 생각 좀 해볼게.”
“그럼 갑니다.”
고모가 나를 불러 세웠다.
“건희야.”
“예?”
“조금 있으면 인나 오는데 보고 가지.”
“다음에 보지 뭐.”
“그래 그럼.”
그렇게 몸을 돌리고 문을 열려는데 고모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건희야.”
“왜요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건강상담을 하는 거야? 그런 건 언제 공부했어?”
“아, 그거? 할아버지가 다 알려줬어.”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실이었다.
고모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허공에 손을 저었다.
“까불고 있어.”
“거짓말인 줄 아나보네. 진짜야.”
“진짜로?”
“몰라, 거짓말일 수도 있고.”
“야!”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있어요. 내가 공부머리가 아예 없는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또 이런 쪽으로는 괜찮게 되더라고.”
“그래?”
그때 중년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이제 알겠다. 그 얼마 전에 뉴스 나왔던 사람이죠? 경찰들한테 붙들려서. 맞죠?”
“네, 맞아요.”
“건강상담 같은 거 해주신다면서요? 저도 좀 봐주실 수 있나?”
나는 거울을 통해 중년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 거 줄이세요.”
“어머! 어머어머어머어머!”
중년 여자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 단 거 많이 먹는 건 어떻게 알았대? 완전 도사다, 도사.”
“그럼 가볼게요.”
나는 고모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씩 웃어 보였다.
“고모, 연락할게요.”
“그래애, 조심히 들어가. 그리고 이거 잘 먹을게. 고맙다아.”
그렇게 인사를 건네고 미용실을 빠져나왔다.
정말 별거 아니었다. 간식거리나 좀 사다준 게 전부였다.
예전에는 삶에 치이느라 이것도 못하고 살았다.
더 잘해야지. 잘 챙겨야지.
내게 가족이라고는 고모와 작은아빠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 덕분에 현재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항상 알고 있었지만,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다.
크지 않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웃을 일을 만들 수 있었다. 베푸는 게 행복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행복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조오오오오온나게 멀리 있는 거라고.
살다보면 가끔 웃을 일도 있긴 했다. 할머니와 고모, 작은아빠는 정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고.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가까운 곳에 군데군데 떨어져 있던 행복들을 찾을 줄 알게 됐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다.
3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SBC ‘세상에 이런 일도’를 총괄하고 있는 박성민 피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머리숱이 적고 금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강건희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