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25화
6. 냄새 나는 제안들 (3)
“얼른 그 손들 못 놔아아?”
박춘기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을 아우르는 녀석들도 단합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요, 슬러시 아저씨가 얼마나 착한데.”
“잘못한 것도 없다는데 왜 잡아가요?”
이에 노인들도 또다시 호통을 쳤다.
융단폭격이 쏟아지자 형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얼른 물러들 나세요. 일단 저희랑 서에 가서 얘기하고, 아무 문제없으면 풀려날 겁니다. 당당하면 이 분이 서에 가서 물어보는 거에 답변하면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 다른 형사가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하는 거야? 휴대폰 안 내려? 찍지 마!”
한 남학생이 모든 과정을 휴대폰에 담아내고 있었다. 항상 사과 맛 큰 사이즈를 먹는 녀석이었다.
“지금 행복 건강즙 사장님을 체포하시는 건가요?”
단발에 안경을 쓴 고등학생이 목소리를 냈다.
형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네가 무슨 상관이니? 가서 공부나 해라.”
그러고는 내 팔을 잡아 이끌려고 했다.
그때 고등학생이 말했다.
“제가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는데,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체포가 아니라 동행이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그 말인즉슨 임의동행 요청이라는 건데, 여기 사장님께 거부할 권리가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처럼 억지로 잡아끄는 건 불법일 텐데요?”
양옆의 두 사람은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 순간 쌍꺼풀이 짙은 형사가 작게 중얼거리는 걸 분명히 들었다.
“하아…… 미치겠네.”
그의 탄식이 내게는 승리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지금 내 편을 들어주는 고등학생도 기억이 난다. 가끔 슬러시를 사러 오던 학생이다.
심부름으로 즙을 사러 온 적도 한 번 있고. 인사는 꼬박꼬박 했지만, 특별히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저렇게 똑 부러지는 애였구나.
자신감이 붙은 나는 형사들의 손을 쳐내듯 팔을 뺐다.
그러자 덩치 큰 형사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나지막이 냈다.
“지금 사람들이 이런다고 그러시면 공무집행―”
그때 똘똘한 고등학생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하여 성립되는 겁니다. 지금처럼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아요. 오히려 사장님이 거부하면서 경미한 상해를 입힌다고 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너, 너는 대체 뭐야?”
“미래의 변호사요.”
“나 참…….”
형사들은 이내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분위기가 더 확실해지자 사람들이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내가 형사들을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두 사람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대체 제가 무슨 불법 의료 행위를 했다는 겁니까? 확실히 하고 가시죠. 안에 CCTV 다 설치돼 있으니까 보고 가세요.”
형사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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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이시죠?”
내가 묻자 쌍꺼풀이 짙은 형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예, 금품을 받은 경우도 없고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경우는 보이지 않는 거 같네요.”
“지금 녹취 중인 거 알고 계시죠?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럼 CCTV 끝까지 다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녹음 어플을 켠 휴대폰을 카운터 위에 올려둔 채 CCTV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손님이 왔을 때만을 집어서 보여주면 되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박춘기 할아버지를 비롯한 몇몇 노인들은 뒤쪽으로 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형사들이 저지하려는 것을 내가 막았다.
나는 당당했다. 그러니 증인도 많을수록 좋다고 여겼다.
어느새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형사들이 오기 전에 방문했던 여자의 모습이 CCTV 화면에 담겼다. 그녀가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봉투를 내미는 걸 내가 거절하는 것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그걸 다시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저때든 다른 때든 돈을 받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돈을 안 받기를 정말 잘했다.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살렸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기, 김 원장네 간호사 아니여?”
“그르게. 그런 거 같은디?”
내가 고개를 홱 돌리자 할머니 한 분이 화들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구, 깜짝이야!”
“앗, 죄송합니다.”
나는 곧바로 다시 말했다.
“그런데 방금 화면에 나온 게 누구라고요?”
“저기, 시장 윗길에 있는 한의원 간호사라고.”
“그래요? 확실해요?”
“어디 한 번 다시 봐봐.”
형사들도 조금 놀란 얼굴로 살짝 물러났다.
내가 CCTV 화면 시간을 다시 조정했고, 여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왔다. 노인들이 이구동성을 냈다.
“맞네, 맞아.”
“응, 맞아. 정 간호사.”
“제대로 봤네.”
“아이고, 저 영감은 눈도 좋아.”
“내가 아직 눈은 몽골 사람들 뺨 쳐.”
뭔가 퍼즐이 맞춰져 갔다. 내가 일을 거절했던 한의원 간호사가 굳이 이곳에 와서 상담을 받고 돈을 건네려고 했다? 그 직후에 바로 신고가 들어갔고?
냄새가 났다. 처음에 제법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꼴을 보니 까보지 않으면 모르는 구린내를 품고 있던 듯했다.
나는 두 형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형사님들,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조사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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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였다.
한의원 원장은 쓴물이라도 들이킨 얼굴로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게 찾아왔던 간호조무사인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그들 옆으로는 서울 건강원 협회 동부지부장 정성기가 앉아 있었다.
얘기는 이랬다. 협회 가입을 거부한 나는 당연히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보복을 하려 했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장 안쪽에 10평 내외의 건강원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었는데, 그곳은 정성기의 먼 친척이 차릴 것이었다.
그 와중에 한의원 쪽에서는 당연히 새로 개업할 건강원에 내게 했던 제안을 그대로 할 예정이었다.
한의원 쪽에서는 내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최근에 환자가 확 줄어들었는데, 그 원인을 내가 운영하는 건강원으로 봤다.
사실이었다. 주기적으로, 어쩌면 습관적으로 한의원을 찾던 노인들의 대다수가 건강원으로 옮겨왔다.
비싼 약값도 들지 않고, 매번 진료비를 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려준 민간요법을 실행하며 즙을 먹기 시작하니 확실히 몸이 호전됐다. 덕분에 약을 더 이상 사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환불 요청까지 일어났다고.
가끔 침을 맞으러 갈 때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의원에 가지 않으니 원장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었겠지.
한의원 측에서는 내가 단순히 즙만 파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의료 상담을 한다는 걸 알고는 신고할 계획을 세웠다.
여기서 정성기와 한의원 원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정성기는 내가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족이 차릴 건강원이 잘되길 바랐다. 한의원 원장은 내가 없어지길 바랐고. 그렇게 판을 짠 것이었다.
“아니, 저는 아무런 죄가 없다니까요? 여기 원장이랑 직원인 여자 둘이서 한 거잖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정성기가 뻔뻔하게 말하자 땅만 내려다보고 있던 한의원 원장이 역정을 냈다.
“아니, 이 사람아! 당신이 하자며! 그쪽이 꼬드긴 거잖아!”
그때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형사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요? 조용히들 하세요!”
그러자 정성기와 한의원 원장은 합죽이가 됐다.
세 사람은 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여긴 듯했다. 걸릴 일도 없을 것이고, 걸리더라도 몰래카메라 정도의 개념으로 본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한 건 어떻게든 영업방해를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불법적인 의료 행위를 했을 거라 본 듯했다.
옛날에는 건강원에서 침을 놓거나 하는 일도 허다했으니까. 게다가 즙을 파는 대가로 의료 상담을 했다면 그것도 법에 저촉되는 행위였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하는 것은 의료 상담이 아니었다. 건강상담이지. 말장난 같지만 엄연히 달랐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 혐의가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의 입장으로 경찰서를 들어서고 나올 수 있었다.
정성기와 한의원 원장 그리고 여자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테고.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전수받은 능력에서 침술은 포함되지 않았다. 분명히 침을 놓을 줄 아는데도 그 부분은 내게 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부분까지도 예상하고 그랬던 건 아닐까?
나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분명히 지켜보고 계실 테니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일이 풀린 것은 전부 손님들 덕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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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힘드실까요?”
기자의 물음에 나는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별로 좋은 얘기도 아닌데 계속하고 싶지 않네요. 인터넷에 동영상 풀로 올라온 거 보셨잖아요? 그게 전부입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계속 이렇게 가게 앞에 계시면 조금 곤란합니다. 영업에 방해가 돼서요. 그럼.”
기자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러났고, 나는 문을 닫은 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 일이 생긴 뒤로 벌써 3일이 지났다.
그때 경찰들이 임의동행 요청을 하면서 다소 강압적인 행위들을 했던 걸 촬영한 학생이 그걸 동영상 플랫폼인 아이튜브에 그대로 올렸다.
요즘 스마트폰답게 화질도 음질도 죽여줬다. 그게 고스란히 인터넷에 올라갔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당연히 경찰 측은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원본 동영상은 현재 삭제된 상태지만 조회수 수십만 건에 달했다. 그리고 해당 영상을 다운받아 새롭게 올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엄청난 홍보효과를 보였다. 딱히 내가 의료 상담을 해준다거나 하는 소문까지 퍼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게 상호가 고스란히 노출됐고 억울한 피해자의 입장이었기에
이후로 들어오는 인터뷰는 모조리 거절 중이었다.
나에게 실수를 했던 형사들을 감싸고 싶은 마음까지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욕을 먹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형사는 얼굴이 다 공개되고, 이미 필요 이상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전 국민이 죽일 놈 취급을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두 사람은 벌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이런 능력이 주어진 것도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할 줄 알고, 더 착하게 살라고 주어진 게 아니겠는가. 그러니 조금은 더 넓은 마음을 가졌다. 불을 꺼주지는 못해도 더 기름을 부을 것까지는 없겠지.
이 일은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다. 심지어 ‘행복 건강즙’이라는 상호명도 잠시나마 검색어에 올랐다.
당연히 그로 인해 매출은 수직으로 상승 중이었고, 쌓여 있던 재고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다양했다.
그냥 호기심에, 불쌍해서 하나라도 팔아주려고, 우연히 봤는데 괜찮아 보여서 등.
가끔 빈말인지 진심인지 ‘사장님 화면보다 실물이 낫네요’ ‘사장님 너무 잘생겼어요’ 따위의 얘기를 들으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갔다. 그런데 왜 칭찬만 하고 개인적인 연락처 같은 걸 물어보는 일은 없는지. 참나.
옛말에 틀린 말 하나도 없다고, 위기가 곧 기회가 됐다.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계속 나아가면 뭐가 돼도 될 것 같았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주문량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과일을 손질하던 중이었다.
우웅.
휴대폰에 짧은 진동이 울렸다.
문자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SBC ‘세상에 이런 일도’ 김민지 작가입니다. 이번에 실검에 오르시는 등 일이 많으셨는데요, 누명을 벗으셔서 다행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장님께서 건강한 즙만 판매하시는 게 아니라, 오시는 손님들의 건강도 살펴주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혹시 편하신 시간에 잠깐 통화 가능하실까요?]
이번에는 확실히 단내가 풍기는 제안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