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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22화 (22/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22화

5. 처음 같지 않은 사장(5)

나는 명함을 손에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성기를 가만히 쳐다봤다. 진짜 협회 사람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무래도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령 제대로 된 협회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계심은 거두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리 된다. 뭘 믿고? 제대로 된 곳에서도 뒤통수 치고 벗겨먹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사장이네.”

정성기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 네.”

“젊은 사람이 어쩌다 건강원 할 생각을 다했대? 이거 힘든 일인데.”

은근히 말을 놓고 있었다.

초면에 존대가 기본이긴 하지만, 연세가 지긋한 사람들이 반말을 하는 걸로 크게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그랬다.

지금은 달랐다. 경계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지 이상하게 언짢았다.

그렇다고 그 기분을 내색치는 않았다. 우선 의중을 파악하는 게 먼저니까.

“그런데 어쩐 일로……?”

조심스럽지만 직구를 던졌다. 그러다 정성기는 웃음과 헛웃음 중간쯤 되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 이거이거 젊은 사람이 왜 그래? 협회에서 나와서, 명함 건넸으면 그게 뭘 의미하겠나? 허, 참. 허허.”

“아, 예.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면서도 하나하나 짚었다.

“그런데 협회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아, 많지요. 추출가공식품 제조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조사와 연구를 하고, 영업시설의 현대화, 품질 향상, 경영 및 가공기술 향상을 위한 제반지원 사업, 영업에 관한 분규의 조사 및 조정, 불량식품 제조 및 가공, 유통을 방지하는 등 뭐 일일이 다 말하려면 입이 아프지.”

지부장쯤 되니 보따리를 풀어놓은 듯 말이 술술 나왔다.

“그리고 건강원 이번이 처음이죠?”

“예, 처음입니다.”

“회원업소들은 이렇게 우리 같이 수십 년 동안 이 바닥에 있던 다른 회원들이 알려주고 그래요. 나중에 가게 커져서 직원들 교육까지도 도와주고. 따로 같이 모임도 가지고, 거래처들도 공유하고. 기본적으로 우리끼리 협력하고 정보도 공유하고, 각종 신고나 검사도 대행하고 관련 소식도 전해주고.”

정성기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듣기만 해도 장사하기 편해질 거 같죠?”

“예, 뭐…….”

“기본적으로 같이 돕고 살자고, 이 업계를 살려보자고 설립된 겁니다. 아무래도 이쪽 업계에 처음 들어와서 모르는 게 많을 텐데, 가입하고 도움도 받고 그러는 게 어때요? 괜찮지 않나?”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지만 굳이 물었다.

“가입 조건이 따로 있는 건가요? 아니면 건강원을 운영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나요?”

정성기의 태도를 보아하니 권유와 회유를 진득하게 할 것 같았다. 협회에 가입할 생각이 없더라도 척을 질 필요 또한 없었다.

누구든 무엇이든 적을 늘려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

“건강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면 다 가입할 수 있지. 서로 돕자고 설립된 거니까.”

“그럼 그냥 가입하면 되는 거예요?”

나의 물음에 정성기는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가입비는 30만 원. 그리고 월 회비는 6천 원, 또 1년에 한 번씩 각종 모임 및 행사에 참가비 겸 운영비가 12만 원. 도움 주고받는 거 생각하면 그냥 형식적인 금액이지 뭐.”

그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가며 말을 이었다.

“6개월에 한 번씩만 모임 참가해도 얻는 정보나 재료, 각종 소스들로 퉁 치고도 남고. 약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술도 좀 먹고, 보통 또 조금씩 돈을 모으기는 하는데, 잘 파는 사장님들이 통이 커. 응.”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아무튼 그쪽이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거야. 사실 원래 협회에서 활동하는 다른 사람들이 주로 움직이는데, 내가 마침 이쪽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보고 들른 거거든.”

정성기는 끌끌 웃으며 가게 바깥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밖에 슬러시는 아이디어 재밌대? 근데 돈은 얼마 안 될 거야. 그치? 내 말 맞지?”

“……예. 그렇죠, 뭐.”

“그래도 아이디어 좋아. 그래, 이제 건강원도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거든. 저런 거 보고 애가 와서 사먹다가, 그 엄마도 따라오고 아빠도 따라오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 따라와서 즙도 사는 거지.”

처음에 점잖아 보였던 정성기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말하는 톤만 봐서는 이미 막걸리 몇 잔을 마신 듯했다. 아마도 내가 건강원을 운영하는 사람치고는 상당히 어린 편에 속해서 이러는 걸까.

“말씀하시는 걸로 들어봤을 때…… 협회 가입이 의무는 아닌 거죠?”

“어?”

정성기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의무는 아닌데…….”

“의무는 아니군요.”

확인사살을 하자 정성기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뭐…… 그렇죠.”

“우선 말씀하신 부분들은 잘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못 정할 것 같고, 제가 생각해 보고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아니, 진짜 가입하면 도움이 되는데…….”

웃는 낯으로 단호하게 말하니 정성기는 어물쩍대면서도 쉽게 더 권유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렇게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무언가 떠올린 듯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아아아아, 여기도 전에 건강원이었던 거 알죠?”

“예, 알고 있습니다.”

“전에 여기 운영하던 사람도 협회에 가입했었어요. 그래서 도움 많이 받았지.”

“그래요?”

“아, 그렇다니까.”

“확실히 많이들 가입을 하기는 하나 봐요?”

내가 다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기색을 내비치니 정성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거의 다 하는 게 보통이지. 친하게들 지내면서 친척이나 진배없어. 서로서로 경조사 같은 것도 챙기고.”

할머니가 건강원 협회에 가입돼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건강원 일을 같이 한 것이 아니니 모를 수는 있지.

하지만 할머니와 살면서 협회 사람이랍시고 찾아온 역사가 없다. 건강원을 운영할 때부터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에 여기 계시던 사장님하고도 친하셨어요?”

“여기? 아, 그럼. 친했지.”

“그래요? 경조사 같은 것도 챙기시고요?”

“아직까지는 없었는데, 부르면은 당연히 가지. 그런데 갑자기 연락도 끊기고, 장사도 접어버렸네. 희한하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여기 사장님 돌아가셨어요.”

“에, 뭐? 응?”

정성기는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 사장님 돌아가셨다고요.”

“그, 그래요? 왜 나한테 연락이 안 왔지…….”

“친하셨던 거 아니에요?”

“아니, 뭐, 그게…… 내가 워낙 많은 사람들하고 이리저리 일이 있고 그러니까, 자주 연락은 못했지.”

나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터지려는 것을 뚜껑으로 짓눌러 막으며 참는 중이었다.

순수한 노인네 속여서 가입비 뜯어내고, 회비 뜯어내고 그랬던 거 아닌가.

“전에 여기 사장님이 저희 할머니세요.”

내가 한마디 툭 던지자 정성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

“뭐…… 여기서 계속 길게 얘기할 건 없는 거 같네요.”

“아니, 그 뭐시기다냐……. 하이고, 참. 거…….”

정성기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버벅거릴 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도 양쪽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날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 살펴 들어가세요.”

“흠, 흠흠. 뭐…… 아무튼 생각해 보고 연락주시고…….”

정성기는 몸을 돌리고는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다시 혼자 남은 나는 가게 문에 바짝 붙어서 점점 멀어지는 정성기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어디서 약을 팔아……?”

제대로 꼽을 줬으니 또 와서 귀찮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협회 소속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저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이 저러니 실망스러웠다.

설사 협회가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곳일지라도 가입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모든 일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린다.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진다. 그 누구도 그걸 덜어주지 않는다.

동종업계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게 마냥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긴 하다. 같은 고찰을 하며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런 걸 필요로 한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다. 이미 할아버지와 할머니, 작은아빠, 고모로부터 많은 답들을 받았으니까.

그래, 외로울 틈도 없다.

11

“아니, 얘기 조금만 더 들어보시면…….”

이 무더운 날에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꽤나 끈질겼다. 어쩌면 이 더운 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밖으로 나가는 게 싫은 걸지도.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됩니까? 괜찮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지금 권유가 아니라 강요를 하고 계십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면 미간을 살짝 찡그리자 남자가 움찔 놀랐다. 나도 모르게 옛날 표정이 나온 것 같다.

아니, 옛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이렇게 화가 날 때까지 참지도 않았으니까.

“사장님, 그래도 얘기 한 번만 더 들어보십시오. 진짜 좋은 기회입니다. 저희 황금명가는 한국건강협회이기도합니다. 자연히 협회에도 속하고, 웰빙에 착안한 새로운 건강원을 꾸미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협력으로 매출 극대화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즙만 팔아서는 안 되는 세상입니다.”

남자는 바깥의 슬러시 기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도 그래서 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신 거잖습니까? 저희와 함께 복합점포 시스템으로 불황을 타개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즙을 비롯한 다양한 식품 그리고 생활의료기도 함께 판매하시면 시너지 효과가 굉장합니다.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것이죠. 또한 저희만의 노하우도 전수해드립니다.”

그는 다소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건강원에 꼭 필요한 마케팅 전략과 저희만의 독특한 컨셉을 함께 가져가시죠. 진정한 웰빙 파트너를 꿈꾸는 황금명가입니다. 단순히 영리만을 목적으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로얄티 따위는 받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공급하는 물품이랑 재료에서 마진 수익을 내겠죠.”

“아니, 그건…….”

남자는 말문이 턱 막힌 듯 잠시 뜸을 들였다.

나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열도 많이 식히신 거 같은데, 그만 가시죠?”

“다음에 다시―”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대신 이어나갔다.

“오지 마세요.”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남자를 보냈다.

지난번에 정성기가 속해 있는 협회는 차라리 나았다. 그래도 전국적으로 퍼져 있고, 나름대로 가장 정식에 가까운 그런 집단이었다. 그 이후로 벌써 3번이나 협회랍시고 영업을 하러 오는데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흔들림은 없었다. 만약 단순히 돈만 바라보면서 이 일을 했다면 조금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돈 욕심도 있다. 많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단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되새기며 나아갈 뿐이다.

절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다. 자꾸만 욕심이 난다. 욕심도 건강할 수 있다. 더 나아지려는 욕심, 그에 걸맞은 노력과 근성이 있었기에 지금 세상도 있는 법이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띵도옹.

“네에에에에에에.”

벨소리에 곧장 밖으로 나가자 초등학생 4명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또 왔구나.”

가장 볼이 통통한 녀석이 씩 웃으며 5,000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아저씨, 사과 맛 세 개랑 포도 맛 하나요.”

“너 아까도 사먹었잖아.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

“이건 건강한 거니까 괜찮잖아요.”

“그래도 차가운 거 많이 먹으면 배탈 나.”

“괜찮아요. 저번에 아이스크림 3개 혼자서 먹었는데도 괜찮았어요.”

“그래? 알았어.”

나는 거스름돈을 건네주고는 슬러시 4개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자, 여기 있다.”

“감사합니다아아아.”

“안녕히 계세요.”

나는 씩 웃으며 장난스레 목소리를 냈다.

“그래, 또 와라아아아.”

슬러시도 큰돈이 아닐 뿐이지, 용돈벌이 이상은 됐다.

단골이 될 것 같은 손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괜찮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여기서 만족되지는 않았다.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갈 때였다. 사업은 천천히 불려나가는 거라지만, 초장부터 대박이 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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