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9화
5. 처음 같지 않은 사장(2)
나의 물음에도 작은아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두 눈은 살짝 충혈돼 있었다. 그는 이내 손에 들고 있던 포도즙을 마저 들이키고는 컵을 내려놨다.
“삼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불렀다. 나도 모르게 삼촌이라고 했다. 이따금씩 하는 실수였다. 아직까지는 작은아빠보다 삼촌이라 부른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입에 붙을 수밖에.
작은아빠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한 잔 더 줘봐.”
곧바로 냉장고에서 포도즙을 꺼내 꼴꼴꼴 따랐다.
“반만 채워.”
작은아빠의 말에 포도즙이 든 병을 거뒀다.
“흠…….”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포도즙을 대했다. 코를 가까이 가져가 향을 맡고, 입에 살짝 머금은 뒤 혀를 굴리는 듯했다.
작은아빠는 와인을 맛보는 소믈리에처럼 그렇게 포도즙 반잔을 수차례에 걸쳐서 음미했다. 그리고 다시 컵을 내려놓을 때는 평소의 그처럼 조금 거칠게 탁 소리가 울리도록 놨다.
“어떻게 이러지?”
“왜? 뭐 문제 있어?”
“네 할아버지가 만든 거랑 맛이 똑같다.”
괜히 뜨끔했다. 나는 포도즙이 든 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포도즙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포도즙이 원래 먹으면 좀 텁터업―하거든? 근데 할아버지 거는 안 그랬어. 네가 만든 것도 그래. 깔끔해.”
“할아버지가 건강원 하던 시절에는 이런 기계들도 없었잖아?”
“그렇지. 어떻게 이러지? 분명히…… 참나.”
작은아빠는 계속 기가 막힌다는 듯이 몇 번이나 ‘하’ ‘참나’ ‘차’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받은 탓도 있겠지만, 만드는 과정 자체도 그랬다. 기본적으로 나는 할아버지의 지식을 활용하는 거니까.
요즘은 대부분의 건강원이 과채류를 추출할 때는 60~70도 정도의 저온 가열을 한다. 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요하지만, 특히 과일류는 가열 과정에서 비타민이 파괴되기 때문에 필수가 됐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비슷한 방법을 썼다. 특히 포도즙 같은 경우는 더 그랬다. 끓이는 게 아니라 데우는 수준의 가열 그리고 압착을 통해 즙을 짜냈다.
당연히 과정이 늘어나고 수고도 늘어났다. 심지어 생산량도 줄어들었다. 대신 맛도 훨씬 깔끔하고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포도즙이 나오는 것이었다.
“너, 이 장사 계속해도 되겠다. 아니, 하길 잘한 거 같다.”
작은아빠가 말했다.
“그래? 괜찮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못 들었냐? 옛날에 네 할아버지가 건강원은 맨날 사람들 줄 섰었어. 밤낮으로 찾아왔지. 뭐, 그때랑 지금이야 당연히 다르지만, 두고 봐라. 이거 포도즙 하나로도 입소문 나면 사람들이 계속 찾지.”
“다른 즙들도 맛 좀 봐줄래요? 할아버지가 만드시던 거랑 맛 비슷한지.”
“다른 건 먹어도 몰라.”
작은아빠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나도 그때는 몇 살 안 먹었잖냐. 포도즙이나 좀 달달―하니까 먹었지, 다른 게 먹고 싶었겠냐?”
“아하.”
“근데 네가 즙만 잘 만든다고 장사가 잘되는 게 아니야. 일단 건강원도 봐라, 요즘은 박사학위나 한의사, 한약사 같은 면허나 자격증 내걸고 한단 말이야. 솔직히 무슨 박사나 의사가 만든다고 해봐라. 훨씬 믿음 가지.”
“그렇겠네.”
“너도 기본적인 것들은 액자에 해서 깔끔하게 벽에 걸어놔. 이것도 먹는 거 파는 거라서 뭐 수료해야 되고 그런 것들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많았지. 그래야겠네.”
“그래, 그게 차이가 있다니까. 정식으로 허가받고 하는 거라는 걸 어필해야지. 안 그래도 건강원은 이미지가 안 좋아. 다 무슨 개소주 만들고 흑염소 고아가지고 팔고, 개구리즙, 붕어즙 이런 거 떠올린단 말이야.”
작은아빠는 가게를 슥 둘러보고는 다시 말했다.
“뭐, 돈 좀 들어도 가게 깔끔하게 한 건 잘한 거 같다. 인식부터 바꿔야 돼.”
나는 귀를 열고 경청했다.
작은아빠의 장사 철학은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으니까.
지금은 비록 빚더미에 깔려 있지만, 한때는 정말 크게 빛을 볼뻔했다.
작은아빠는 성실하고, 장사수완도 좋고, 나름대로 철학도 있었다. 전에 하던 식당은 꽤 잘 됐고, 가게 확장을 앞두고 내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절대 쭉 뻗어 나가지를 않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작은아빠는 착실하게 대출금을 싹 다 갚자마자 이혼을 하고, 사기를 크게 당해서 빚더미에 올랐다.
그래도 사람이 얼마나 괜찮으면 그 상태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작은 국밥집을 운영 중에 있었다. 이것 또한 빚이라면 빚이긴 하지만.
“뭐, 내가 지금 이런 소리 하면 네 귀에 안 들어갈 수도 있어. 내 장사 다 말아먹고, 구멍가게 같은 국밥집 하면서 얘기하니까.”
작은아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에이, 나도 뭐 뻔히 다 아는데. 진짜 맨땅에서 그 정도까지 가게 키웠었잖아. 사기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프랜차이즈 CEO 됐지.”
“됐어, 인마. 아무튼…… 성실해야 돼. 조금만 게을러져도 다 표가 나.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야. 바로 발길 끊긴다. 그러니까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돼. 네 몸이 힘든 만큼 사람도 돈도 붙는 거야.”
“알지 그럼. 그래야지. 그래야죠.”
“그리고 마진 높인다고 장난질하면 안 된다. 물 타고 그러면 안 돼.”
“당연하지. 안 그러지.”
“그래, 그거 돈 몇 푼에 빌빌거리고 남겨 먹겠다고 지랄하고 있지? 돈도 재수 없다고 안 붙어. 무슨 말인지 알아? 당장 눈앞에 얼마 건지려다가 훨씬 큰돈 다 날린다고. 잠재적 고객까지 다 날리는 거야.”
머리로 알고 있던 것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같은 얘기도 다른 시선을 알게 되기도 한다.
“알지, 알아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작은아빠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인마.”
“알았다니까. 포도즙 맛 봤잖아.”
“그래, 그거 먹어보니까 마음이 탁 놓이더라. 계속 그 맛만 유지해봐. 그럼 분명히 잘 될 거야.”
“알았어.”
“아, 하나만 더. 오픈빨에 넘어가지 마라.”
“오픈빨?”
작은아빠는 살짝 비뚤어져 있는 박스들을 가지런히 세우며 말했다.
“장사하면 둘 중 하나야. 처음 3개월에서 6개월 동안 적자거나 혹은 오픈빨로 손님 좀 몰리거나. 보통 초기에는 그게 감당이 안 돼. 그래서 금방 떠나가. 번 돈도 무슨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지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도 그랬었거든. 진짜 거짓말처럼 그렇게 돼. 그러니까 항상 염두에 두고 있으라고. 그리고 살도 좀만 더 빼. 네 나이에 뱃살 있으면 안 돼.”
작은아빠는 나이에 비해서 몸 관리가 상당히 잘 돼 있었다. 워낙에 사람이 부지런하고, 원래 운동도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눈썹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슴다.”
“말은 잘하지.”
작은아빠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제 가봐야겠다. 수고하고.”
“벌써 가시게?”
“그럼 가야지, 여기서 사냐?”
“그런 건 아니고.”
“이거나 받아라.”
작은 아빠가 봉투를 하나 꺼내서 내밀었다.
“이게 뭔데?”
“받아.”
돈이었다. 아마도 100만 원인 듯했다. 나는 당황하며 다시 내밀었다.
“이걸 왜 줘.”
“장사하려면 일단 생활이 돼야 돼. 기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야. 지금 이거 차린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썼을 거 아니야.”
“아, 됐어. 나 돈 있어요.”
내가 다시 돈을 돌려주려고 하자 작은아빠는 왼쪽 눈썹은 누르고, 오른쪽 눈썹 끝은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오픈해서 모르지? 아예 그럴 일이 없으면 좋은데, 손님 없고 잔고 비기 시작하지? 가게 시작할 때랑 같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냐? 맛탱이 가는 거 한순간이야. 그게 그냥 정신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실수도 하게 되고, 몸도 안 좋아져.”
“아니, 그래도…….”
“야, 줄 수 있으니까 주는 거야. 그리고 안정화되면 그때 갚으면 되지.”
나는 이내 돈 봉투를 양손으로 꼭 잡았다.
“알았어요. 감사히 받을게. 그리고 두 배로 갚겠습니다!”
“두 배는, 씨. 나중에 페라리나 한 대 뽑아줘라.”
“100만 원으로 페라리는 너무한 거 아니야? 대체 몇 배가 뛰는 거야?”
“그럼 좀 현실적인 타협으로 포르쉐 어때? 그 정도로 협의를 봐줄게.”
그렇게 농을 주고받다가 작은아빠는 진짜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다시 나를 홱 돌아봤다.
“그리고 농담 아니다. 나중에 포르쉐로 갚아.”
“그 정도 벌면 뭔들 못 해 드리겠습니까.”
문 앞까지 나가서 인사를 건넸다.
“들어가세요.”
“그래, 수고해.”
작은아빠는 오른손에 포도즙이 든 팩을 쥐고 힘 있게 걸어갔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는 있어 보였지만, 건강상태는 좋았다. 아마 포도즙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 작은아빠도 고모도 없는 형편에 용돈을 자주 쥐여주곤 했다. 어디 가서 기죽지 않게 브랜드 옷이나 운동화를 사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옷이나 운동화의 브랜드 따위가 뭐가 중요했나 싶지만.
당시의 작은아빠와 고모는 현재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조카를 위해 없는 형편에 그렇게 돈을 썼다.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나한테 조카가 있으면 그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먹고살기 어렵다는 핑계로 조카뻘인 사촌 동생들을 챙겨본 기억이 없다.
잘되고 싶다. 그리고 잘하고 싶다.
4
삶에 제법 풍파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도 못했고. 그래도 덕분에 나이에 비해서 다양한 경험이 생겼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내심도 길렀다.
무언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더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린다. 그러면 ‘그때보다는 지금이 낫지’ 같은 생각을 하며 버텨진다.
얼마 전까지 다녔던 회사, 중소기업이 아닌 그 망할 좆소기업에서도 그런 정신으로 버텼다.
건강원 운영은 신체적으로 편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평온해서인지 회사를 다닐 때보다 컨디션도 좋았다.
여러 민간요법으로 관리를 한 탓도 있겠지만. 작은아빠의 조언에 따라 짬을 내서 운동도 꾸준히 할 생각이었다.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니까.
가게를 오픈한 지는 딱 일주일째였다. 아직까지는 쉬는 날 없이 매일 열고 있었다. 현재는 가게에서 먹고 자고 다 하니 굳이 닫아놓을 필요도 없었다. 손님이 쉼 없이 계속 밀려드는 것도 아니었고.
2~3주 정도만 더 쉬지 않고 운영을 해본 뒤에 매출이 가장 적은 날을 휴무일로 잡을까 고민 중이었다. 아니면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영업시간을 짧게 하거나 혹은 탄력적으로 쉬는 날을 잡거나.
매출은 나쁘지 않았다. 오픈하고 3일째까지는 생각 이상이었다. 오히려 즙이 모자라서 팔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추출기를 24시간 내내 돌려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벌써 기계를 늘려야 되는지 행복한 고민까지 들었다.
하지만 4일째부터 손님의 수가 확 줄었다. 내가 노인들에게 준 도움으로 퍼진 입소문의 효력이 딱 이 정도까지인 듯했다.
즙을 구입할 사람은 다 구입했고, 빨리 먹어도 보름 이상은 걸리는 게 보통이니 재구매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벌써 오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정식적인 운영시간은 이미 끝난 셈이었다.
오늘은 토마토즙 50팩짜리 한 박스를 판 게 전부였다. 이건 문제가 있었다.
그냥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서는 안 됐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낚시도 떡밥이든 미끼든 루어든 뭐든 써서 살살 꼬신다. 물고기들이 많은 포인트에서 자리를 깐다.
마케팅이 필요했다. 뭘 어떻게 해야 손님이 몰릴까? 팩들을 앞에 늘어놓고 ‘골라 골라’를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효과만 있다면 하겠지.
하지만 내 가게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거니와, 모여드는 손님보다 멀어지는 손님이 더 많겠지. 옛날 약장수처럼 쇼라도 해야 되나.
막연한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일은 좀 낫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간판 불을 끄고, 가게 앞에 내놓은 화분도 안으로 들이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실루엣이 왠지 익숙한 중년 여자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 손을 잡고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하고 생각하려는 찰나였다. 거리가 가까워진 중년 여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박춘기 할아버지를 만난 냉면집의 종업원이었다.
중년 여자는 곧장 내게로 왔다.
“안, 녕하세요.”
빠르게 걸어오느라 숨이 찬 목소리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남자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녀석은 양 뺨이 붉게 물들어서는 조금 전까지도 울었던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충치 탓이었다.
그때 중년 여자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얘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네?”
“우리 애가 갑자기 이가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린데, 지금 치과는 다 닫았잖아요. 임시로 좀 안 아프게 할 수 없을까요? 이래서는 애가 잠도 못 잘 거 같은데, 오늘 밤만 좀 넘기게…….”
“아니, 그건…….”
나는 의사도 아니고, 여긴 병원도 아니다. 애가 이가 아프다고 찾아온 게 당황스러웠다. 그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치통에 대한 민간요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애도 애지만, 중년 여자도 조치가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문을 열며 손짓을 했다.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