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8화
5. 처음 같지 않은 사장(1)
1
정식 오픈일이었다.
오전 6시 30분부터 계속 쉬지 않고 일하는 중이었다.
이기철이 가게 앞에 트럭을 세워서 과일 나르는 것을 도와줬고, 그다음부터는 줄곧 혼자였다.
오전 중에 성분검사표가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우선 손질이 빨리 끝나는 과일부터 즙을 내리기 시작했다.
대망의 사과 손질이 나를 반겼다. 물로 1차 세척, 과일 세정제를 2차 세척, 마무리로 물로 헹구기 한 번 더. 그리고 칼질이 시작됐는데, 또다시 당황했다.
평소의 나는 사과 하나 제대로 깎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나 능숙하게 손질을 할 수 있었다. 껍질을 깎을 필요는 없었지만, 이 작업 자체를 수없이 많이 해본 것처럼 해냈다.
왼손에 사과를 쥐고 오른손에 쥔 칼을 슥 밀어 넣었는데, 칼날이 손바닥에 닿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딱 멈춰졌다. 그대로 돌려서 한 번 더 칼질을 하면 그대로 4조각이 나왔다.
씨 제거도 기가 막혔다.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쪼개진 사과를 딱 찍은 뒤 살짝 비틀면 씨가 있는 부분이 푱푱 튀어나왔다.
나는 혼자서 피식 웃었다.
“이 정도면 사과 손질 달인 같은 걸로 티비에 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순간 사과 손질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다 다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티비는 무슨. 사과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장사부터 잘돼야…….”
가오픈일의 매출은 총 23만9천 원. 자두즙 50팩들이 8박스를 판 것이었다. 사실 손님들은 더 있었는데, 물량이 부족했다. 챙겨줘야 되는 사람들한테 그냥 준 탓이었다.
오늘부터야말로 진짜 오픈빨을 받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즙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마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현재 제철인 주스용 자두가 1㎏에 4천 원. 20㎏면 8만 원. 자두 20㎏이면 현재 내 방식으로는 약 600팩이 나왔다.
600팩이면 50팩씩 12번을 팔았을 때 36만 원, 100팩씩 6번을 팔면 35만4천 원.
36만 원에서 자두 값을 빼도 28만 원이 남는다. 여기서 포장용 봉투 값도 빼야 하고, 종이박스 값도 빼야 하지만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종이박스의 경우 주문량을 늘리면 장당 20원씩 빼주기로 했다.
내 기준에서는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한 금액이었고, 월 임대료 55만 원에 관리비도 1만 원씩 꼬박꼬박 나간다. 그 외에 전기세, 수도세도 꽤 나갈 테고.
전부 계산기를 때려 봐도 마진율 자체는 괜찮다. 마진을 위해 과채류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초기 투자비용을 전부 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걸릴 테지만.
벌써 오픈시간이 넘어가 있었다. 나는 잠시 장갑을 벗어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문을 열고, 환상적인 필체로 쓴 영업 중 표시를 해뒀다.
다시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정득이었다. 녀석은 씩 웃으며 커피를 들어 보였다.
“이제 열었어?”
“어, 10시부터 영업이야.”
“뭐 하고 있었어?”
“일하고 있었지.”
“그래? 도와줄까?”
“아니, 됐어. 거의 다했어.
“그럼 잠깐만 쉬었다가 해.”
오정득이 커피를 내밀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뺐다.
“앉자.”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자마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으로 또다시 마진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야, 야.”
오정득의 목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무슨 생각해? 사람이 넋이 빠졌어?”
녀석의 말에 나는 마진에 대해 얘기를 늘어놨다. 내가 운을 떼자마자 녀석은 자세히 설명을 듣길 원했다. 나보다 숫자에 훨씬 강한 데다가 담당 회계사이기도 하니까. 그래봐야 지금은 기장을 맡아주는 정도지만.
얘기를 전부 들은 오정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호…….”
“나쁘지 않지?”
“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그래?”
“응, 문제는 얼마나 팔리느냐겠지만.”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계산 빼먹은 게 있어.”
“뭐?”
오정득이 나를 가리켰다.
“너.”
“나?”
“그래. 네 인건비.”
그랬다. 무엇보다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나의 노동력이었다. 매출이 올라도 언젠가 일손이 부족해 사람을 쓰게 된다면? 인건비는 늘어나고 마진은 줄어들게 된다.
“뭐, 당분간은 몸으로 때워야지.”
내가 씩 웃어 보였다.
“그래. 파이팅이다 인마!”
“근데 너는 이렇게 맨날 돌아다녀도 괜찮냐?”
“이제 짬 좀 찼으니까. 바쁜 시기도 지나갔고. 그리고 맨날 야근에다가 집까지 일거리를 가지고 다니니까 그렇지.”
“고생이구먼.”
나는 남은 커피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정득이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야, 왜 그래?”
나는 새로운 라텍스 장갑을 꺼내 끼면서 대답했다.
“휴식시간 끝. 일해야지.”
“이야, 엄청 부지런하네.
“잠도 못 잔다.”
“야, 그렇게 장갑 끼니까 무슨 수술 들어가는 외과 의사 같다.”
오정득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지랄…….”
“그런데 보통 고무장갑 끼지 않냐?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잖아.”
“이게 더 편해. 그리고 일회용이라서 위생적으로도 좋아. 그리고 나는 옛날부터 고무장갑 끼고 음식 만지는 게 싫더라.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야.”
“하여간 유별나다니까. 그래도 위생적으로는 좋으니 괜찮겠다.
“그러니까.”
오정득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그럼 나도 가봐야겠다.”
“바로 가게?”
“내가 있어봤자 일에 방해밖에 더 되겠냐?”
“즙이나 몇 개 챙겨 갈래?”
“됐어. 무거워.”
“아니, 누가 다 준대? 말 그대로 몇 팩만 챙겨 가라고.”
오정득이 하하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알았어, 줘봐.”
나는 즙을 종류별로 여러 팩 챙겨주고는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라.”
“응, 또 들를게.”
녀석이 몸을 틀어서 나가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야, 배웅 안 나올 거야?”
“배웅은 무슨 배웅이야.”
“아, 빨리 나와봐아아아.”
오정득이 목소리가 울리도록 거세게 팔을 저으며 떼를 썼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
“이런 미친…….”
“빨리이이이이이이.”
“죽일까……?”
“아, 장난이고, 빨리 나와봐.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나가긴 하는데, 또 그러지 마라. 역겨우니까. 즙 짜기 싫으면 하지 마라?”
오정득은 코웃음을 쳤다.
“즙 짜는 건 너잖아.”
“앗, 아니, 아, 이런 씨.”
눈물 빼준다고 농을 던진 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나는 귀찮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묻힌 채 밖으로 향했다.
“왜 자꾸 나오래?”
가게 앞에는 1.5m 정도 되는 나무 하나가 있었다.
“개업 축하한다! 대박나라!”
오정득이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이건?”
내가 씩 웃으며 가게 밖으로 향했다.
“이게 뱅갈고무나무라는 건데, 개업 축하로 많이들 준다더라. 그리고 이게 풍요와 장수를 의미한대. 여기에 딱이잖냐.”
오정득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수차례 끄덕거렸다.
“맞네, 그러네. 진짜 고맙다.”
“고맙기는. 요즘 화환은 안 한다고 해서 이걸로 준비했다.”
“잘했네. 고맙다.”
“그럼 진짜 가볼게. 고생해라. 많이 팔아.”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나는 화분을 들어서 옮기는 와중에도 계속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생전 식물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나팔꽃이랑 강낭콩 키워본 게 전부였는데,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은지.
2
벌써 점심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 빡세네.”
사과는 자두나 포도, 토마토처럼 바로 추출을 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먼저 분쇄기에 넣어서 갈아낸 뒤 추출해야 수율이 높아진다. 손질부터 분쇄기에 한 번 갈아낸 다음 추출기로 옮겨서 포장까지 거쳐야 한다.
사과 한 종류 늘어났는데 일이 너무 많아졌다.
어제의 내가 와서 오늘의 나에게 사과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엄청나게 비싼 값을 주고 들였다. 사과는 온라인에서 소매로도 10㎏에 1만 원 미만인 제품이 있었다. 당연히 내가 산 것보다 품질은 떨어졌다. 하지만 영양분은 똑같고, 당도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평이었다.
지역이 멀기에 배송료가 붙을 것도 생각해야 되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 2배 이상을 주고 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쓴맛만큼 즙은 더 달고 효능이 좋길 바란다.
효능.
이게 중요했다.
내가 취급하는 먹을 것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건강식품이라는 점이었다.
즙이라는 것이 50팩, 100팩을 사가서 맛있다고 하루에 10팩씩 먹고 그러는 식품이 아니다. 보통 하루에 한 팩씩 먹게 마련이다. 많아야 2, 3팩.
즉,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지속적인 판매가 가능했다.
대신 건강식품에서 오는 이점은 바로 꾸준히 먹는다는 것이었다. 먹고 나서 체감을 할 정도로 효능을 본다면, 매일매일 꾸준히 먹게 된다.
내게는 필승법이 있는 셈이었다.
최상의 품질은 당연하고, 고객에게 가장 필요한 즙으로 판매를 하면 효능을 보고 또 찾아오게 돼 있다.
3
수많은 양파를 깨끗이 씻은 다음 토막 내어 추출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25㎏씩, 한 번에 대략 500포 이상을 뽑아낸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었다.
달이는 데 4시간, 뜸을 들이는 데 또 4시간. 그리고 숙성을 하기 전에 30분가량 살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미 추출 과정에서 충분히 살균은 됐지만, 다시 한번 살균을 하면서 동시에 농축이 되어 더 진한 양파즙이 된다.
생전 처음 해보는 과정이었지만, 나는 당연한 일처럼 양파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단 기다리면 됐다.
기계들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사용했던 대야들과 분쇄기 세척을 하고 난 다음에는 눕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와, 장난이 아니네.”
할아버지는 대체 이걸 어떻게 했지? 할머니는 사람도 안 쓰고 혼자서 어떻게 했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스스로 기운을 내고자 포도즙을 한 컵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 어떤 첨가물도 없이 정말 깨끗하게 만들어서인지 벌컥벌컥 잘 넘어갔다.
바로 기운이 넘치고 눈에 번쩍 뜨였다. 그냥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진단하고 필요에 의해서 마신 것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피부 톤 자체도 달라졌고, 필요 없는 지방이 빠지며 이목구비도 또렷해지고 있었다. 살에 가려져 있던 턱선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티셔츠에 눈이 갔다. 즙을 내리면서 일을 하느라 땀도 흘리고 이리저리 뭐가 튀어서 많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앞치마랑 작업복을 따로 사야겠네.”
갈아입을 옷은 많았다. 전에 살던 방을 빼면서 필요한 짐은 대부분 옮긴 상태였으니까.
화장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세면을 한 뒤 나름대로 깔끔한 반팔 셔츠를 하나 걸치고 나왔다.
“엇?”
잠깐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온 사이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 와 있었다. 짙은 눈썹에 기다랗고 높은 콧대와 크고 각진 턱을 가진 중년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무심한 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
“사장이 카운터를 딱 지키고 서 있어야지.”
올해로 48세인 작은아빠였다.
“왔어?”
“그래, 왔다 인마.”
고모도 작은아빠도 워낙 가까운지라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쓴다.
아직까지도 작은아빠보다 삼촌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다. 그렇다고 삼촌, 삼촌거릴 수는 없으니 호칭 자체를 잘 안 부른다. 작은아빠라고 하는 게 어색해서.
“얼굴 좋아졌다?”
작은아빠가 물었다.
“그치?”
“어, 지난번에 봤을 때는 무슨 띠동갑이 아니라, 진짜 나랑 동갑 같더니. 그래, 그렇게 관리 좀 해. 너무 삭았었어.”
“그 정도는 아니었지.”
“아니야, 너 그랬어. 아오, 진짜 못 봐주겠더라.”
작은아빠는 끔찍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가게 내부를 눈으로 슥 훑고는 말했다.
“가게 잘해놨네.”
“괜찮지?”
“응. 장사할 거면 연락해서 좀 물어보지. 업자도 소개해 줄 수 있었고.”
“바쁘신데 내가 또 어찌 일을 만들어드리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혼자서 해내야 되니까, 처음부터 알아서 했어. 갑자기 결정한 거라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그러게. 어쩌다 할머니가 하던 걸 그대로 할 생각을 했냐? 다 뜯어고쳐서 완전히 새 가게이긴 하다만. 즙은? 내렸어?”
“이쪽으로 오십쇼!”
나는 주방으로 안내했다. 작은아빠는 기계들을 슥 훑어보고는 물었다.
“기계도 싹 다 바꿨네?”
“그랬지.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즙 하나 줘봐.”
“잠깐만요오.”
“자두, 토마토, 포도 있는데 어떤 걸로 드시렵니까?”
“포도. 달달한 게 땡긴다.”
곧바로 포도즙을 한 컵 따라서 내밀었다.
“얼음을 띄워와야지.”
작은아빠가 장난스레 핀잔을 줬다.
“포도즙도 컵도 다 냉장고 안에 있던 거라 차가워.”
“그래?”
작은아빠는 포도즙을 한 모금 먹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 놀라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는데,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뭐야? 왜, 왜 그래?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