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7화 (17/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7화

4. 소문난 즙쟁이(5)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며 다가섰다.

할아버지가 씩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어디 갔다 왔나 보네?”

“아, 네. 이것저것 좀 사 오느라고요.”

“오늘부터 장사하는가?”

“네, 정식으로는 내일부터고요.”

나는 문을 열고는 손짓을 했다.

“들어오시죠.”

“어휴 시원하네에.”

“네, 잠깐 나갔다 오는 거라서 에어컨 안 끄고 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는 손부채질을 하며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봤는데,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때 그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지팡이는 안 가져오셨어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어지럼증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 지팡이 없어도 잘 돌아댕겨.”

“다행이시네요. 제가 말씀드린 대로 잘하고 계세요?”

“어어, 내가 거의 40년 만에 담배도 끊었어.”

“확실합니까?”

할아버지는 자신 있다는 듯이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세워 보였다.

“맡아봐, 담배 냄새 나는지.”

“그래도 아직 끊으셨다고 하기는 이르죠. 며칠이나 됐다고.”

“처음에는 끊을 생각이 없었는데, 자네가 말한 대로 끼니때마다 마늘 챙겨 먹고 그랬거든? 밥에도 서리태 꼭꼭 넣어서 하고. 고기 대신 고등어랑 갈치 같은 거 좀 먹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영지 달인 거, 그거 마시니까 진짜 어지럼증이 싹 가시는 거야. 오긴 왔는데, 그냥 견딜만하더라고?”

할아버지가 당시를 회상하듯 눈을 부릅뜨며 화를 내는 건지 뭔지 헷갈리게 말을 이었다.

“아, 그래서 그날부터 바로 지팡이 던져 버렸지. 그리고 담배도 있는 거 바로 다 꺾어서 버렸어. 그리고 지금 봐, 이제 지팡이가 필요 없어.”

그는 말을 마친 뒤에는 인자하게 웃었다.

“아주 좋아. 몇 년 만인지 몰라. 아침이 너무 상쾌해.”

“다행이네요.”

나는 짐을 정리하면서 할아버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당장 상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직접 체감하고 있다고 하니 좋은 사인이었다. 당장 처방에 변화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방심하시면 안 돼요. 계속 꾸준히 관리해 주셔야 됩니다. 많이 걸으시고요.”

“아, 그럼. 내가 그 어지럼증 때문에 소원을 몇 번이나 빌었어. 그냥 이것만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제발 좀 괜찮아졌으면 좋겠다고. 지팡이 없이 밖에 돌아다니는 게 소원이었어. 멀쩡하게 걷다가도 핑 돌면서 주저앉아버리니까.”

“정말 다행이십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삿대질 자체만 두고 본다면 긍정적인 제스처라 보기 어렵겠지만, 할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가 좋은 뜻임을 알렸다.

“자네가, 자네가 정말 사람 하나 살렸어.”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효과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사실 확인차 들렀어.”

“확인차요?”

“응, 나 좀 한 번 더 봐달라고. 그래 줄 수 있겠나?”

당연히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할 마음도 없었지만.

굳이 또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 마음이 편해지겠지.

나는 할아버지의 뒤로 돌아가서 지난번처럼 뒤통수와 목덜미, 등줄기를 손으로 짚으며 살폈다. 약간 호전이 된 것 같은 느낌 정도만 받을 수 있었다.

“조금 나아지셨네요. 그래도 아직은 더 지켜봐야 돼요. 평생 관리하신다고 생각하세요. 당분간은 식단도 철저하게 지키셔야 하고요.”

“알았어. 이제 지키지 말라고 해도 지키지.”

“약속하신 겁니다.”

“알았다니까. 아, 그리고…….”

할아버지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받어.”

“이게 뭡니까?”

봉투를 받아들었다. 안에는 1만 원짜리가 꽤 많이 들어 있었다. 못해도 20만 원가량은 되는 듯했다.

“아이고, 이걸 왜 주십니까.”

나는 질색을 하며 다시 봉투를 내밀었다.

“받어어! 고마워서 주는 거야!”

“아휴, 괜찮습니다. 이런 거 못 받습니다.”

“아, 받으라니까!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 오랫동안 못 고치고 있던 걸, 날 죽이고 있던 병을 고쳐줬는데, 이 정도밖에 못 줘서 미안하지.”

“마음만 받겠습니다.”

“예끼,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라서 뭘 모르는구먼.”

“예?”

“감사의 표시는 맨입으로 하는 게 아니야. 말만 해서 뭐해? 진짜 고마우면 뭐라도 줘야지. 자, 받어. 내 이름 윤정섭, 석 자 딱 걸고, 공짜로 뭐 받아먹고 산 적 없어.”

윤정섭 할아버지는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르신, 제가 진짜 받고 싶어도 못 받습니다.”

“아, 왜 못 받어? 손 없어?”

“그런 게 아니라, 법적으로 받으면 안 돼요.”

“그게 뭔 소리여?”

“저는 의사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치료행위를 하고 돈을 받는다? 그럼 바로 잡혀갑니다. 제가 어르신께 해드린 건 치료도 아니었고요. 저는 그냥 어디가 안 좋다고 하시니, 그럴 때는 뭐가 좋다더라―하고 먹을 걸 알려드린 것뿐입니다.”

윤정섭 할아버지는 꽤나 고민이 되는 듯 인상을 찡그린 채 잠시 허공에 시선을 뒀다. 그러다 다시 돈봉투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럼 내가 그냥 용돈 주는 거야. 받어.”

“하하하하, 말씀은 감사하지만 진짜 안 돼요. 못 받습니다.”

“흐으으으음…….”

그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 자두즙 박스를 보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거, 저거 주면 되겠네. 여기 돈 들어 있는 만큼 저거 줘!”

첫 만남 때부터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고집이었다. 봉투에 들어 있는 금액은 윤정섭 할아버지에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더 무겁게 와닿았다.

“자두즙을 수백 개 사서 어디에 써요. 그럼 한 박스만 사가세요. 그리고 이것도 저어어어얼대 저한테 치료받은 대가로 팔아주는 게 아니라, 필요하시니까 즙만 한 상자 구입하시는 거예요.”

“에잉…… 나보다 고집 센 놈은 처음 보네. 돈을 준대도 난리여.”

“법대로 살아야죠. 켕기는 게 있으면 마음 편하게 장사 못 해요.”

“이제 개업했으면서 말은. 원래 무슨 장사 했었나?”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윤정섭 할아버지는 내 팔뚝을 가볍게 밀쳤다.

“예끼, 이 사람아! 노인네 놀리면 못 써!”

“제가 언제 어르신을 놀렸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알았어. 자두즙 얼만데?”

“3만 원입니다.”

“자.”

주름진 투박한 손에 들린 3만 원을 향해 공손히 양손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지폐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내가 고맙지 뭐.”

나는 자두즙 한 박스를 챙겨 손잡이 쪽을 내밀며 물었다.

“들고 가실 수 있으세요?”

“그럼 이것도 못 들까 봐? 지팡이 짚고 다닐 때도 쌀 20㎏씩은 어깨에 메고 댕겼어.”

“어우, 그래요? 그럼 괜찮으시겠네.”

“아무튼 수고해! 열심히 허구. 나중에 또 올라니까.”

“아, 그럼요. 또 찾아주세요.”

“알았어. 수고!”

“아, 어르신은 자두즙 아침 공복일 때만 한 팩씩 드세요. 아니면 식간에요.”

“알았어!”

그렇게 윤정섭 할아버지가 떠났다.

손에 쥐고 있는 3만 원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러다 금고에 넣었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사 온 분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 덕분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맛있게 잘 들어갔다.

10

“네 작은아빠는 내일 들른대.”

고모는 뭐가 잔뜩 들어 있는 푸른색 비닐봉지를 의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나한테 전화를 하지, 왜 고모한테 말했대?”

나는 고모의 반대편 손에 있는 짐을 받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으응, 아까 잠깐 통화했거든. 아이구, 아이구 죽겠다.”

고모는 의자에 앉아서는 피곤한지 두 주먹으로 양다리를 통통통 두드렸다.

“이건 다 뭐야?”

짐꾸러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고모는 눈으로 짐을 훑고는 대답했다.

“아, 이거. 너 여기서 살 거라며. 그럼 밥도 챙겨 먹고 해야 되잖아. 그래서 김치랑 이것저것 좀 싸 왔지.”

“안 그래도 되는데. 이걸 무겁게 어떻게 다 들고 왔어?”

“고모네 가게 쪽 상인회장 아저씨가 역까지 태워다 줘서 금방 왔어.”

“그래? 그래도.”

“나라도 챙겨다 줘야지, 안 그러면 네가 제대로 먹고 다니겠냐?”

나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옆에 바로 시장인데 뭐. 요즘은 반찬 같은 것도 집에서 한 것처럼 잘해서 팔아. 맛도 괜찮고.”

“그래도 직접 해서 먹는 것보다 비싸지.”

“아,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그래도 고모 오는데 고생했잖아. 힘들게 뭘…….”

“힘들긴 뭐가 힘드냐? 네가 앞으로 할 일이 진짜 힘들지. 어휴, 예전에 할아버지가 시켜서 도라지 손질했을 때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아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렇게 힘들었어?”

“말도 마라 얘. 도라지가 얼마나 지독한 줄 알아? 처음에는 세척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꼭다리 제거하고 썩은 부분 발라내서 버리고, 눈알 빠져.”

“하하하하하! 도라지는 안 해야겠네.”

“그래, 잘 생각했다. 하지 마. 도라지는 하지 마. 어휴, 징그러워.”

“근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일을 많이 시켰어?”

고모는 콧잔등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이. 네 할아버지는 일 시키면 답답해하는 스타일이었어. 자기가 하는 게 더 빠르다고. 잘 시키지도 않았고. 그냥 할아버지 혼자서 다 하려면 너무 힘드니까 할머니랑 같이 도와준 거지.”

“그렇구나.”

“그 이후로 또 할아버지 꿈에 나왔어?”

“아니, 그 이후로는 아직.”

“그래? 너 잘하고 있어서 그냥 보고 계시는가 보다.”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시선을 내리깔고는 입꼬리를 들썩거리다 말했다.

“그런 거면 좋겠네. 아니, 그래야 할 텐데.”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고모 자두즙 마셔볼래?”

“그래, 한잔 시원하게 줘봐.”

나는 컵에 자두즙을 따라서 고모에게 건넸다.

“습, 어웃, 켁, 아우 셔!”

고모는 식초를 원샷 때린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렸다.

“못 먹을 정도야?”

내가 걱정스럽게 묻자 고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난 자두즙이라고 해서 되게 달 줄 알았지.”

“자두즙이 원래 그렇더라고. 그냥 내려도 달달한 건 포도즙이나 사과즙이 그렇고.”

“그래? 그럼 너도 그런 거나 하지 왜.”

“아, 포도즙은 있어. 한잔 줄게.”

나는 포도즙을 새로 따라서 내밀었다. 고모가 먹다 만 자두즙은 내가 단번에 들이켰다.

“이잉? 먹으려고 그랬는데?”

고모가 당황하는 목소리를 냈다.

“시다며.”

“시다 그랬지, 안 마신다고 하지는 않았잖아.”

“그건 그렇네. 이따 좀 챙겨줄게.”

고모는 피식 웃어 보이고는 포도즙의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즙은 이래야지. 난 맛없는 건 싫더라.”

“아, 내일부터 자두즙은 두 종류로 내려고.”

“두 종류로?”

“응, 자두랑 사과를 같이할 거야. 비율을 75%는 자두, 25%는 사과를 넣으려고. 그럼 맛이 신맛이 좀 잡힐 거 같아.”

“오홍, 괜찮겠다. 그런데 사과는 힘들 텐데? 사과 씨가 안 좋은 거라서 다 골라내야 돼.”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 그렇지. 당연히 다 손질해야지.”

“그나저나 자두에 사과 섞는 건 어떻게 생각했어? 나름대로 비법이네?”

“그냥 괜찮을 거 같더라고.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면 되는 문제니까.”

고모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겠다.”

“벌써?”

“어어, 잠깐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한테 가게 맡겨놨거든. 다시 가봐야 돼.”

“아, 진짜? 그렇게 바쁘면 나중에 오지.”

“아니야, 겸사겸사 왔어. 올 만하니까 왔지.”

나는 황급히 냉장고에서 미리 사뒀던 과일이랑 간식들을 꺼내 쇼핑백에 담았다.

“이거 가져가.”

“됐어, 뒀다가 너 먹어.”

“아니, 고모랑 작은아빠 오면 내놓으려고 산 건데.”

“됐다니까. 수고해.”

“알았어, 고모. 조심히 들어가요.”

“그래애.”

그렇게 고모가 문을 밀고 나서는 순간이었다.

익숙한 얼굴의 노인들이 가게로 오고 있었다.

박춘기 할아버지를 비롯해 노인 9명이었다.

“앗,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박춘기 할아버지가 말했다.

“윤 씨는 아까 먼저 와서 사 갔다며? 그 머리 뽀글뽀글한 할멈은 며느리가 와서 사 갔대서 안 왔어. 어제 그 모자 쓰고 있던 영감은 내일 와서 포도즙이랑 토마토즙 살 거라나 봐.”

“아, 네, 네. 그런데 못 뵀던 분들도 계시네요?”

“소문 듣고 온 거지.”

“그렇군요.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당연히 개업하는데 와야지. 그런데 혹시 떡은 없나?”

“아, 떡이요?”

그러다 고모와 작은아빠가 오면 내놓으려고 했던 과일과 간식이 떠올랐다. 그중에 떡도 몇 팩 있었다.

“있죠, 있어요. 어서들 오세요.”

고모는 나를 힐끗 보더니 손님들이 몰려온 걸 보고 안심이 된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미소를 유지한 채 노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주들 오세요. 많이들 찾아주세요. 과일 진짜 좋은 걸로 한 거예요.”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간다.”

“응, 고모. 연락드릴게.”

그렇게 고모가 가는 동시에 노인들이 가게로 들어섰다.

나는 과일과 간식거리들을 테이블 위에 차리고, 모자란 자리를 위해 보조 의자를 가져와 펼쳤다. 그리고 박춘기 할아버지를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어르신은 떡 자제하세요.”

“뭐어? 왜?”

“또 급체하시면 어떡해요.”

“안 그래. 요즘은 매실차도 틈만 나면 마셔.”

“그럼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셔야 합니다.”

조금 피곤한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가오픈이더라도 무조건 손님이 있는 게 좋았다. 시작부터 썰렁하면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역대급으로 자영업자들이 힘든 요즘인데, 참으로 용감하게도 일을 벌였다. 이렇게 찾아와준 노인들을 보니 운이 따르는 듯하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일이 찾아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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