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4화
4. 소문난 즙쟁이(2)
“저기, 저기 나와 있네!”
할아버지는 나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다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어, 그래. 잘 지냈나?”
“예예. 어르신은요?”
“보다시피! 그때 아주 고마웠어.”
“별말씀을요.”
“그래서 내가 손님들 좀 데려왔지.”
할아버지는 자신 있는 얼굴을 한 채 엄지로 뒤쪽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셋과 할머니 둘은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걸 어쩌죠? 공사는 끝났는데, 아직 가게가 제대로 오픈하지를 않았거든요. 모레 가오픈하고, 글피에 정식으로 개업합니다.”
살아오면서 갖가지 일을 다 해봤는데, 개중에는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도 다수 껴 있었다.
예전에는 시급도 짜고 남는 것도 없는데 일은 그리 편치 않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써먹고 있었다.
“뭐어? 아직 안 열었어?”
할아버지는 인상을 찡그리며 큰 목소리를 냈다.
“네, 어쩌죠? 글피에 다시 오시겠어요? 그때는 여러 가지 즙도 준비해놓고 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웃는 낯으로 얘기했다.
그때 뒤에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툴툴거렸다.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박춘기 저 영감탱이 맨날 허풍만 떨고, 아직 열지도 않은 가게에 데려오지를 않나, 참나아…….”
맥주거품처럼 새하얗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한 할머니도 말을 보탰다.
“그리고 저렇게 젊은 사람이 보긴 뭘 봐. 기계로 즙이나 내리는 거지. 저짝에 나 아는 한의원 있어. 거기나 들르자고.”
박춘기 할아버지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 노인네들이 속고만 살았나! 내가 무슨 맨날 허풍을 떨어? 아, 진짜라니까!”
“아, 알았으니까 가자고! 힘들어 죽겠네! 날도 푹푹 찌는데 이게 뭔 고생이여!”
아수라장이었다. 진정을 시키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노인들의 언쟁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날도 더운데 잠시 들어가시겠어요? 별건 없지만 안에 시원하거든요.”
내가 이 말을 내뱉은 순간 노인들의 언쟁이 멈췄다. 그리고 박춘기 할아버지는 먼저 가게를 향해 앞장섰다.
“그럼 얼른 들어가자고.”
다들 연세도 지긋한데 어쩜 그렇게들 움직임이 빠른지. 지팡이도 딱히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냥 패션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여, 문 열어! 노인네들 더워서 다 뒤지겄어!”
박춘기 할아버지의 호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예, 예.”
열쇠를 돌리자마자 박춘기 할아버지가 바로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이어서 다른 노인들도 기차처럼 연결된 양 줄지어 들어갔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문 옆에 서 있었다.
그렇게 생각지 못한 손님들을 받게 됐다.
4
“아따, 건강원이 겁나게 예뻐버리는구마잉. 이불 펴고 자도 되겄소. 우리 집보다 나아부러.”
통통한 할머니가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얼굴을 한 채 말했다.
“건강원이 예뻐서 어따 써?”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나무랐다.
“아, 자네는 남의 가게에 뭔 불만이 그렇게 많은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못 들어봤는가?”
“건강원이 먹는 거야? 경우가 다르지.”
“아, 여기서 먹는 거 만들잖어.”
“됐어, 말이 안 통하네.”
그러자 박춘기 할아버지가 인상을 팍 구기면서 모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입들 좀 닫어어! 좀 살만해지니까 아주 입들만 살아가지고!”
당연하게도 노인들은 조용해지기는커녕, 저마다 불평을 냈다.
그 가운데서 나는 애써 웃으며 서 있다가 평균보다 커다란 종이컵에 얼음부터 넣었다. 그리고 노인들 앞에 컵을 하나씩 놓고는 물었다.
“지금 물이랑 오렌지주스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노인들은 저마다 원하는 걸 말했다.
지팡이를 손에 쥔 할아버지는 분명히 내 얘기를 들었을 텐데도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매실차 따위를 찾았다.
“지금은 물이랑 오렌지주스밖에 없네요.”
“그럼 물이라도 줘.”
“예.”
스스로가 그리 착한 사람이라 생각지도 않고, 오히려 어릴 때는 성질이 더러운 편에 속했다. 그리고 그 성질이 어디 가나.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꾹꾹 누르면서 참고 사는 거지.
충분히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억지로 참고 있거나 하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 자라서 원래 노인들에게는 친절한 면도 있긴 했지만, 그런 차원을 벗어나 있었다.
이렇게까지 둥글둥글해진 나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노인들이 툴툴거리기는 해도 정말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은 표정부터가 다르니까.
이 정도는 귀엽게 받아줄 수 있었다.
가장 심하게 툴툴거리는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여지가 있었다.
다른 노인들은 전부 나이를 생각한다면 건강상태가 양호했다. 특별히 자세하게 진단을 해야 될 필요를 못 느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팡이를 쥐고 있는 할아버지는 가능하면 내가 살펴보고 싶을 정도였다. 머리와 혈관 쪽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무슨 질환인지는 몰라도 관리가 시급한 건 알 수 있었다.
“저기요, 총각.”
머리가 새하얗고 뽀글뽀글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네, 네.”
“총각이 그렇게 아픈 곳을 잘 본다던데, 정말 그래요? 옛날에 건강원 원장들은 사실상 그 동네 의사들이었거든. 근데 그게 오래 수련을 해서 그런 건데, 총각은 나이가 너무 젊어서.”
그때 박춘기 할아버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진짜라니까! 사람 말을 왜 그렇게 못 믿어?”
할머니는 인상을 찡그리다가 내게로 시선을 옮기고 조심스레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럼 나도 좀 봐줄 수 있으려나……?”
“아, 그게…….”
내가 조금 당황하는 찰나, 박춘기 할아버지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야, 이 염치도 없는 할망구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지금 에어컨 바람에 주스까지 얻어 마시면서 그러면 써? 여기 제대로 장사할 때 와서 즙이라도 한 상자씩 사면서 봐달라고 해야지. 옛날에도 다 진찰받으면 공짜로는 안 받았어!”
“아이, 알았어! 거, 되게 뭐라 그러네!”
나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뭐 의사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르신들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시도록 몇 가지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봐 드려야죠.”
“진짜아?”
할머니가 화색을 띠는 순간, 박춘기 할아버지는 눈을 흘기며 혀를 끌끌 찼다.
“다들 자리에 앉아 계세요. 제가 차례로 봐 드릴게요.”
나는 박춘기 할아버지를 비롯한 노인들의 상태를 차례차례 살폈다.
저마다 작은 문제들은 있었지만, 조금만 관리를 하면 금방 좋아질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노인들이 이렇게까지 건강하기도 힘들 텐데.
하지만 언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었기에 말을 꼭 덧붙였다.
“이것만 챙겨 드시는 게 아니라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 해마다 검진도 받으시고 해야 돼요.”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 통계가 적었다. 그리고 더 깊이 진단이 필요할 때도 있고, 호전된 상태일 때나 잠복기일 때까지 잡아내기는 어려울 걸로 보였으니까.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또 자네 찾아오면 되지 뭐.”
박춘기 할아버지는 나를 맹신한다는 듯 여유롭게 껄껄 웃었다.
“겨우 급체였잖아요. 그럴 일은 없어야 되지만,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알았어. 무슨 말인지 다 알아.”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마지막 차례는 지팡이를 손에 쥔 할아버지였다.
“어디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툭 던지듯 대답했다.
“맞춰봐.”
“네?”
“자네가 그리 용하면, 척 보면 알아야지. 안 그래?”
나는 애써 웃었다.
“용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건강에 도움이 되는 민간요법을 남들보다 좀 더 아는 수준입니다.”
“그럼 별로 쓸모도 없겠네. 됐어, 난 일 없어. 그냥 비타민 보충을 위해서 즙 같은 거나 괜찮은 거 있으면 사러 온 거였어.”
그때 옆에서 통통한 할머니가 말했다.
“아, 허구한 날 어지럽다고 했잖소. 병원 가도 못 고친다고, 의사들 다 돌팔이라고 욕해쌌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봐야 될 거 아니요?”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는 인상을 팍 쓰며 역정을 냈다.
“아, 거!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목소리를 더럽게 크네!”
“그쪽 목소리가 더 크요! 아따, 날도 허벌나게 더워서 짜증 나는디, 와 저런다냐.”
나는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평소에 자주 어지러우세요?”
그때 뽀글머리 할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그 양반 맨날 어지럽다고 난리에요. 지팡이도 무릎 아파서가 아니라, 어지러워서 짚고 다니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짜증을 내려다가 그냥 양손으로 지팡이를 꼭 쥔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증상을 들으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뒤로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할아버지의 후두부 쪽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어디에다 손을 대?”
또다시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이번에는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같이 역정을 내며 싸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능청을 떨었을 뿐.
“어르신, 자꾸 그러시면 진짜 안 해요?”
“뭐, 뭐? 누가 해달래? 하지 마!”
“날 더운데 여기까지 오셔서 진짜 그냥 물만 드신 다음 가시게요?”
“아니, 그건…….”
“그리고 소리 좀 그만 지르세요. 저도 목소리 커요. 목청 자체가 더 신상인데 그렇지 않겠어요?”
할아버지는 구시렁거릴 뿐,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었다.
“제가 잘 봐드릴 테니까, 잠시만 가만히 계세요.”
나는 할아버지의 후두부와 뒷목을 차례로 짚었다. 그리고 엄지로 척추 라인을 따라 쭉 손을 움직였다.
순간 머릿속에 박하사탕이라도 녹아내린 듯 눈구멍까지 시원한 느낌이 퍼지면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당연히 그보다는 훨씬 깊고 큰 무언가라고 확신했다.
아쉽게도 그 감각에 젖어 있을 틈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묘한 감각이 진단과 치료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가진 질환은 기본적으로는 혈관 문제였다.
“할아버지, 혈압 좀 있으시죠?”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럼 혈압이 있지, 없나? 혈압이 없으며 죽게?”
“한마디도 안 지시네. 알겠어요. 혈압이 좀 높으시죠?”
“어어.”
“MRI나 CT 같은 거는 찍어보신 적 없으시죠?”
“그럴 돈이 어딨어? 검사 한 번에 얼마씩 하는지 알아?”
할아버지는 시종일관 짜증을 냈지만,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몸에 문제를 느끼면서도 검사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가난의 슬픔과 고통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마 병원이라고 다닌 곳들은 전부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병원이었겠지. 돌아오는 대답은 큰 병원 가서 검사해 보라는 말이었을 테고.
“그렇죠. 너무 비싸죠. 그래도 몸에는 아끼시면 안 되는데. 병원에서 의사 진단으로 검사를 받게 되는 건 실비보험도 적용되거든요.”
내가 말하자 할아버지는 또다시 짜증을 냈다.
“아, 누가 그걸 몰라? 실비가 없으니까 그렇지!”
“아, 네. 아무튼 지금 관리를 열심히 하셔야 될 때에요.”
할아버지의 증상을 깊이 알면 알수록 짜증을 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상황에서 오는 짜증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될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어지럼증까지.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척추 동맥이 좁아져서 어지러운 거예요. 혈액순환이 안 좋다는 거죠. 고혈압도 있으시고요. 생활습관 몇 가지 바꾸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거 챙겨 드시면 좋아지실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말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홱 돌렸다. 놀란 얼굴이었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고칠 수 있다고?”
“무조건 낫는다는 보장은 못 드리지만, 좋아지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일단 생활습관을 싹 바꾸셔야 합니다. 일단 담배 끊으세요. 절대 과식하시면 안 되고요. 매일 규칙적으로 많이 걸어주셔야 돼요. 힘들어도 꾸준히 하셔야 됩니다.”
흡연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담배 냄새가 풀풀 풍겼으니까.
할아버지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것만으로 될 거면, 이렇게 어지럽지도 않았겠지.”
“안 해보셨잖아요. 일단 해보세요.”
“……저것만 하면 안 어지럽다고?”
“더 있습니다. 마늘 드시면 좋고요, 영지를 달여서 아침저녁으로 드세요. 그리고 산수유차도 좋아요. 정확한 양은 써드릴게요. 식사는 그냥 현미 같은 건 소화가 잘 안 되니까, 발아 현미랑 찹쌀이랑 찰흑미 같은 거 있죠? 섞어서 드시면 좋아요. 서리태랑 찰기장도 좋고요. 붉은 고기보다는 등 푸른 생선을 드시고요. 고등어 같은 거.”
“그거면 된다고?”
나는 확신으로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예, 저를 믿고 한 번만 해보세요.”
그리고 마늘과 영지의 양, 달이는 방법을 쓴 종이를 내밀었다. 그때 노인들 모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목소리를 크게 울린 것은 통통한 할머니였다.
“오메에! 내가 글을 잘 못 읽는디 자네가 글씨를 기가 막히게 잘 쓰는 건 알겠구마잉!”
노인들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배운 사람이구먼, 배운 사람이여.”
“옛날이었으면 과거시험 장원급제했겠어.”
박춘기 할아버지도 껄껄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아주 이거야, 이거.”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칭찬들 속에서 내 귀에 가장 길게 맴도는 건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가 중얼거리듯 하는 말이었다.
“잘 쓰긴 잘 썼네.”
예상치 못한 손님들은 생각 이상으로 까다롭고 내 혼을 쏙 빼놓았다. 체력적으로만 힘들었느냐? 금전적으로도 소액이지만 마이너스였다. 인건비까지 친다면 더 늘어나겠지.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투자고 영업이라 생각했다.
박춘기 할아버지만 봐도 어쨌든 나를 신뢰하며 지인들을 데려왔다. 언젠가는 구매력이 있는 손님들도 몰려오는 날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그저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