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2화
3. 예비 사장(4)
좋은 제안이라.
과연 내게 좋은 제안일까?
본인에게 좋은 제안일 거라는 강한 느낌을 뒤로하고 일단 물었다.
“좋은 제안이요?”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아마 사장님께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건강원은 처음 운영해 보시는 거죠?”
“저희 친할머니께서 하시던 걸 이어서 하게 됐습니다.”
“어머, 그러시구나. 그래도 역시 예전 그대로 하는 건 아니신 거 같은데, 맞죠?”
“예, 뭐…… 보시다시피 공사 중입니다.”
나는 가게를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들어 만지작거렸다.
“건강원을 운영하시는 목표가 어떻게 되세요?”
여자의 물음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다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야 복합적이죠. 하실 말씀이 뭡니까? 본론까지 너무 멀리 돌아가는 거 같은데요?”
핀잔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게 아니라 건강원 사업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려고요.”
“아,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무슨 프로그램이니 커리큘럼이니 관심 없습니다. 그럼 이만.”
바로 몸을 돌리려는데 여자가 곧바로 따라붙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그런 게 아니에요. 요즘 건강원은 전문직이나 다름없어요. 아직까지 인정해 주는 자격증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명칭도 이제 바뀌어야죠. 건강식품 전문점이라고 말이죠.”
전문직을 들먹이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내 걸음을 멈출 만큼 커다란 떡밥이었다.
“전문직이요?”
내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는데, 여자는 눈을 부릅뜨고 콧구멍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네에! 건강원이 뭐예요?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강, 식품을 제공하는 거잖아요. 지역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맡아야 해요. 따라서 각종 건강지식을 두루두루 섭렵하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도 필요하고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교육 같은 거에는 관심 없습니다.”
“어머어, 지금 사장님께 무슨 교육을 받으라느니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저희는 아카데미 같은 곳도 아니고요.”
“그럼 어디신데요?”
이제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까보다는 까칠하게 말이 나갔다. 하지만 여자는 아주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오히려 더 웃어 보였다.
“제가 너무 한 번에 많은 걸 말씀드리려다 보니까 이것저것 건너뛴 것 같네요. 일단 저도 건강식품 전문점을 운영 중인 사람이랍니다.”
“아, 예. 그런데 저한테 무슨 제안을 하시겠다는 건지…….”
“일단 사장님께서 공사부터 싹 하시는 게 제 눈을 사로잡았어요. 많은 분들이 건강원은 인테리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죠. 실제로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근처에만 가도 약 달이는 냄새와 뜨겁고 습한 기운이 마구 몰려오잖아요?”
나는 눈썹을 살짝 들썩인 뒤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그건 아주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에요. 말 그대로 건강원을 기준으로 하는 얘기죠. 과거에는 건강원을 이용하는 주 고객의 연령층이 60대 이상이었어요.”
여자는 손을 바삐 움직여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식품 전문점은 4, 50대는 물론이거니와 2, 30대 손님들도 많답니다. 아무래도 성장, 피부, 다이어트 쪽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니까요. 정력증진 쪽이야 예나 지금이나 항상 수요가 있고요.”
여자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사장님께서는 이미 그런 시장을 노리시고 계신 거라 생각하는데요. 맞나요?”
“예, 맞습니다. 다 생각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살짝 던져본 걸 덥석 받아먹을 줄은 몰랐는지 여자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예에. 하하. 역시 우리 사장님, 남다르시네. 아무튼 핵심은 이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건강원을 운영 중에 있어요. 그리고 지난달 매출이 1300만 원을 넘었어요.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마진율이 50% 이상 떨어지는 거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마진이 조금 낮아요. 다른 건강원들에 비해 12%? 13% 정도? 하지만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죠. 그것도 기계는 하루에 한두 번만 돌리는데 말이죠.”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어떻게 하신다는 거죠?”
“저희 대표님 물건을 받아서 팔거든요. 보증이 된 제품들로.”
“프랜차이즈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아니요오오오, 저희는 일반적인 프랜차이즈하고는 달라요. 일단 프랜차이즈면 지금 이렇게 진행하고 계시는데 사업 제안이 어렵죠. 상담에 심의도 확정하고, 계약한 다음 상권 분석에 들어가죠. 점포 임대와 교육, 공사도 정해진 대로, 개점까지 전부 같이해야 하죠. 기계도 전부 정해진 걸로 들어가고요.”
여자는 코를 찡긋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죠. 프랜차이즈는 이다음부터는 별다른 지원책이 없어요. 로얄티를 퍼센트든 고정비든 받아 챙기죠. 요즘은 대부분 물류 마진으로 챙기겠지만요. 돈도 많이 들였고, 나한테 떨어지는 마진도 줄어드는데, 딱히 지원받는 건 없으니 얼마나 별로예요?”
“그쪽 사장님께서 제안하시는 것도 비슷한 거 아닌가요?”
“에이, 그런 거면 제가 이렇게 좋은 제안이랍시고 말씀을 안 드렸죠. 일단 그 시스템 자체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납품을 받아서 판매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저희 대표님 제품은 이미 검증이 됐어요, 맛부터 효능까지 전부. 또 아까 말씀드린 피부나 다이어트에 좋은 것들이 많아서 수요가 많죠.”
그녀는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지 핸드백에서 팸플릿을 빼 들었다.
“아까 제가 운영하는 매장 매출 말씀드렸었죠? 마진이 조금 낮으면 손해 아니냐고요? 기계를 안 돌리잖아요. 그냥 좋은 물건만 받아서 팔면 되니 훨씬 이득이라고 볼 수 있죠. 실제로 시간적 여유도 많이 생기고요.”
“그러니까 결국 저한테 완성품 즙을 납품하고 싶으시다는 거죠? 여기서 팔았으면 좋겠다고?”
“그렇죠. 만약 사장님 제품도 팔고 싶으시다? 아무 상관없어요. 함께 파셔도 돼요. 하지만 결국에는 저희 대표님 제품만 파시게 될 거예요. 제가 그렇거든요. 실제로 지금 저희 매장에는 과채류 기계 하나랑 포장용 하나밖에 없어요. 가끔 즙 내려달라고 오는 손님들 거, 그냥 용돈벌이로 해주느라고.”
나는 건네받은 팸플릿을 힐끗 쳐다봤다.
풍성한 파마머리에 위아래를 아이보리 정장으로 빼입은 여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품을 홍보하다 못해 거의 찬양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제품들은 조금도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기적의 포도즙, 기적의 배즙, 기적의 양파즙, 기적의 가시오가피.
기적이라. 진짜 기적이 뭔지 몰라서 갖다 붙이는 말이다.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목구멍 아래로 꾹 눌렀다.
여자의 열정적인 설명이 잠시 그럴싸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제품을 판매하면서 같이 팔아도 된다는 점에서 흔들렸다.
일단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게 한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닐까? 나름대로 검증이 된 제품이라면, 그게 미끼상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그렇게 쉬운 길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다 저거 팔아서 부자 됐겠지.
“제가 만약 물건을 들인다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데요?”
내가 물어보니 여자가 화색을 띠었다.
“보통 시작은 종류별로 1000포씩 가져가세요. 근데 금방 다 파시고 재주문하시죠. 일주일도 안 돼서 재주문하는 분들도 계세요. 아, 구기자 진액은 좀 더 들이셔도 괜찮을 거예요. 이게 변비에 좋은 거라서 진짜 잘 나가거든요.”
“그래요? 얼마씩 남아요?”
“제품마다 마진이 조금 달라요. 그리고 가격도 꼭 정해놓은 건 아니에요. 사장님께서 책정한 금액이 중요하죠. 조금 높게 판매하신다면 마진율이 올라가겠죠? 마진을 조금 낮추시고 박리다매로 판매하실 수도 있고요. ”
얘기를 하면 할수록 확신에 확신을 거듭하게 됐는데, 여자가 쐐기를 박았다.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말씀 안 드렸네요. 저희는 꾸준히 지원을 해드린다고 했잖아요? 가장 중요한 마케팅에서 많은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지역에 따라 그쪽 고객님들을 소개해드리기도 하고요. 저희는 전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거든요.”
네트워크. 마케팅. 물건을 호구처럼 사들이고, 상호구나 개호구를 찾아 더 비싼 값에 팔고.
다단계였다.
다단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군대 선임이 오랜만에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그 이유가 다단계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던 경험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그때 죽통 돌렸어야 됐는데.
“근데 제가 물어본 건 제 마진이 아니에요.”
내가 말하자 여자는 고개를 살짝 틀면서 “예?” 하고 되물었다.
“저한테 그렇게 즙 수천 포씩 넘기면서 얼마 남겨 먹냐고요.”
“네, 네? 남겨 먹긴 누가 뭘 남겨 먹는다고 그래요?”
“그럼 아무 수당도 없이 영업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 뭐, 아예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지만요. 전 정말 좋은 조건이라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제품은요?”
“예?”
“그렇게 좋은 제품이면, 일단 제품부터 한 번 보게요.”
“지금은 없고, 제가 나중에 가져다드릴게요.”
“아니요, 됐어요. 그냥 안 할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없어요. 놓치면 후회하세요. 정 못 미더우시면 저희 본사로 함께 가셔서 설명을 들어보세요.”
여자의 말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지금 이제 저녁 6시 다 되어가는데요?”
“밤에도 설명회 잡혀 있어요. 그리고 즙 외에 다른 제품들도 많고요. 저희 대표님만 잘 나가시는 게 아니에요. 저희 회사 회원들은 다 계급이 있는데, 다이아몬드 회원들은 기본 연봉이 억대라고 보시면 돼요.”
이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같은 레퍼토리다.
“회사가 혹시 가락시장 쪽이에요? 아니면 교대역?”
“교대역 쪽이요. 저희 회사 아세요?”
“예, 아주 잘 압니다. 다단계 관심 없으니까 가세요.”
“예? 제 말 끝까지 들어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그리고 설명회에 참석해 보시면―”
더 이상 친절하게 대할 마음이 없었기에 말허리를 싹둑 잘랐다.
“관심 없다고요. 그리고 변비에 좋은 제품을 파신다는 분이 본인 변비는 치료를 못 하시면 믿음이 가겠어요?”
“네, 네? 누, 누가 변비에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얼굴을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굳이 더 말해야겠어요? 그리고 아까 팸플릿 보여주신 것도 그렇고, 가격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고, 전부 불법이에요. 아세요?”
“뭐가 불법이라는 거예요?”
“소비자를 기만하는 과대광고에 가격도 마음대로 해서 차별하잖아요. 전부 법에 걸립니다.”
“걸리긴 뭐가 걸려요, 이거 전부 합법이거든요? 그리고 뭐, 증거 있어요?”
여자는 팸플릿이 구겨지든 말든 황급히 핸드백에 쑤셔 넣었다.
“예, 있죠.”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서 화면을 보였다. 녹음이 되는 중이었다. 처음에 여자가 접근해 와서 얘기를 시작했을 때,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든 문서나 파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입증이 된다. 구두(口頭)로 하는 것도 효과는 있다지만, 입증하기가 어려우니까.
지난날의 바보 같던 나에게서 배운 교훈이었다.
여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새빨개지는 얼굴은 두꺼운 화장으로도 가리지 못했다.
“또 보는 일 없도록 하죠.”
내가 한마디 툭 던지자 여자는 몸을 홱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조그만 장사 하나를 하려고 해도 여기저기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끼어든다더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이 상황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본다.
수많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된 과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
다단계인 것도 알아챘고, 만약을 위해 녹음을 하는 치밀함도 갖췄다. 이번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노력 중이었고,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편한 지름길은 없다는 것도 다시금 머릿속에 새겼다.
7
인테리어도 후반 작업에 들어섰고, 포장지의 디자인의 기본 베이스도 나왔다.
포장지는 해당 과채류에 맞는 빛깔의 불투명 배경에 문구와 포인트가 되는 그림을 넣기로 했다.
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심플하게 갔는데, 글씨는 내가 직접 쓴 걸 그대로 인쇄해서 옮겼다.
웃겼던 게 인테리어 업자는 내게 글씨를 크게 쓸 수 있냐고 물었다. 농담이 아니라 내가 직접 쓴 글씨를 간판으로 해도 좋을 거 같다고.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디자이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적당한 크기로 쓴 다음 스캔해서 컴퓨터로 사이즈만 키우면 되는데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냐고.
간판에 검은색과 금색을 사용하여 좀 더 고급스럽고 무거운 느낌도 생각했는데, 아직은 그런 걸 강조할 때가 아니라 여겼다.
지금 내 여건에서 세일즈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야 했다.
시장 안은 아니지만,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주위에는 슈퍼마켓과 목욕탕이 있는 건물 그리고 여러 빌라와 주택들.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서기 좋은 친근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설치 끝났습니다.”
박종만이 면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닦은 다음에 바로 시운전 들어가시죠.”
그는 기계 뚜껑을 열고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새 기계여도 처음에 싹 닦아줘야 되거든요? 스펀지랑 세제 준비하셨죠?”
“네, 저기 있습니다.”
“같이 후딱 해치우죠.”
“같이 하시게요?”
“그래야 시운전을 할 거 아닙니까?”
나는 당황하면서도 웃었다.
“아니, 사장님은 설치만 하시면 되죠.”
“이제 거래 트는데 그렇게 하면 섭섭하잖아요. 같이 하면 금방 끝나니까 빨리 끝냅시다. 그리고 팔팔 끓여서 한 번 돌려서 소독 겸 기계 확인하는 거죠.”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종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기계를 닦고, 작동법까지 상세히 알려줬다.
추출기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기계들을 눈으로 슥 훑고는 박종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조용하네요?”
“아, 그럼요. 제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어서,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크흐흐.”
“이야, 진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간을 너무 뺏은 거는 아닌지…….”
“아휴, 아닙니다. 확실하게 해드려야죠. 이거 완전히 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그럼 기계 돌아가는 동안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박종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좋죠.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그냥 짜장이면 됩니다.”
“그럼 짜장면이랑 탕수육 시킬까요?”
“예, 좋죠.”
“간짜장이나 삼선짜장으로 시켜드릴까요?”
“그런 건 됐고, 그럼 곱빼기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그렇게 건강원 안에서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 이 집 잘하네.”
박종만은 짜장면을 후루룩 먹고는 가게 내부를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가게 진짜 예쁘게 하셨네. 제가 살면서 본 건강원 중에서 예쁜 걸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가게 내부는 카운터 안쪽과 바깥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하얀색에 나무선반 등을 이용하여 깔끔함을 더했고, 한쪽 벽은 민트색과 청록색 중간쯤 되는 톤으로 편안한 느낌을 줬다.
테이블이 있어서 상담이나 시음을 하기에도 좋았다. 지금처럼 식사를 하기에도 충분했고. 제품들이 진열되고 나면 더 그럴싸해질 거라 생각했다.
카운터 뒤쪽으로는 바닥이 타일로 된 주방이었다. 현재는 기계가 6대만 설치되어 있었지만, 장사가 잘되기만 한다면 몇 대 더 늘리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가벽 뒤쪽으로는 자그마한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당장 여기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했고, 공간도 내 기준에서는 그리 작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작았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기계가 아무 이상 없이 돌아가는 걸 확인한 박종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잘 먹었습니다.”
“별것도 아닌데요, 뭘. 다음에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대접을 하면 제가 해야죠. 제 고객님인데.”
“즙을 좀 팔게 되면 제 고객님도 되는 거잖습니까?”
“하하하하, 그것도 그러네요.”
그렇게 박종만이 자리를 뜨고 가게에 혼자 남았다.
나는 한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도 전부 바뀌었다.
더 이상 할머니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쓸쓸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내일이면 인테리어도 마무리 될 예정이었고, 며칠 뒤면 장사를 시작해야 됐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충분히 생각했다.
내가 이걸 얼마나 갈망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될 일이었다.
테이블에 걸치고 있던 양팔을 옮겼다. 양손 깍지를 꽉 끼었다. 손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도 꽉 깨물었다.
여기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