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11화 (11/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1화

3. 예비 사장(3)

살면서 체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흔한 증상이기에 눈길을 거두려고 했는데, 할아버지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았다.

식당의 종업원인 중년 여자도 신경이 쓰였는지 인상을 찡그린 채 다가섰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가슴을 두드리고 문지르던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아, 괜찮아. 그냥 좀 얹힌 거 같네.”

“물 좀 가져다드릴까?”

“여기 물냉면 먹고 있는데 물은 무슨, 됐어.”

이내 중년 여자는 근심 어린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본인의 일에 집중했다.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젓가락을 집었다. 그러다 다시 젓가락을 놓고는 가슴을 문지르며 인상을 구겼다.

일흔은 훌쩍 넘어 보였다. 젊은 사람이라도 급체는 위험한 상황까지 번질 수도 있다.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에 치달을 가능성이야 희박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막 나가던 시절에도 그랬다. 어른들한테 눈알을 부라리며 대들기도 했는데, 노인들에게는 유독 약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란 탓이겠지.

“어구구…….”

할아버지는 주먹 밑동으로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결국 지켜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 속 많이 답답하세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냥 좀…….”

“제가 봐 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기 바늘이랑 실 그리고 라이터 하나만 갖다 주세요. 물수건도 하나 주시면 좋고요.”

중년 여자가 내가 말한 것들을 전부 가져다줬다.

“손 따드리게?”

“글쎄요.”

나는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윗배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퍼어!”

할아버지가 역정을 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손만 가져다 댔어요. 아직 누르지도 않았는데 엄살이 심하시네.”

“아, 진짜 아파서 그래애!”

“알겠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살살 누를게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복부를 살폈다.

“꽉 체하셨네.”

나는 바늘을 라이터로 달궈 나름대로 소독을 했다. 바늘 겉면이 까맣게 탔다.

“여기요.”

중년 여자가 소독약을 묻힌 멸균 거즈를 내밀었다.

“아, 준비해 주셨구나.”

바늘을 닦아낸 뒤 실로 할아버지의 왼쪽 엄지손가락 아래를 칭칭 감았다. 고개를 숙인 채 열중하고 있는 나를 향해 할아버지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 살살해. 손가락 떨어져 나가겄어!”

“조금만 참으세요. 따끔합니다.”

왠지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체하면 할머니가 손을 따주곤 했는데.

내가 누군가의 손을 따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수백, 수천 번을 해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소상혈. 엄지손톱의 안쪽에 위치한 하얀 부분인 조반월. 그곳의 바로 아래, 마디보다는 위쪽을 바늘로 콕 찌르는 게 아니라, 대고 옆으로 끊어내듯 피를 냈다.

“아이고! 아파!”

즉각적으로 들려오는 엄살에 웃으며 거즈를 댔다.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가 아프다는데!”

나는 그냥 슬쩍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 있죠?”

“무야 많죠. 맨날 냉면 위에 고명으로 올리는데.”

“무 좀 갈아서 주시겠어요?”

“얼마나요?”

“한 컵 나오게요.”

그리고 바로 할아버지의 신발을 벗기고 양말을 당겼다.

“뭐야, 그건 왜 벗겨?”

“너무 꽉 체하셔서 여기도 따야 돼요.”

“뭐? 발을? 발을 왜 따!”

“여기 엄지발톱 아래 보이시죠? 발의 가장 안쪽 부근요. 여기가 은백혈입니다. 여기를 따야 위에 효과가 바로 갑니다.”

“아, 그럼 손가락은 왜 땄어?”

내가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어르신 빨리 속 편해지시게 해드리려고요.”

“엇…….”

할아버지는 당황한 듯 버벅거리다 갑작스레 눈을 크게 떴다.

“근데 자네 저기, 시장 밖에, 할머니 혼자 하던 건강원 손자 아니여? 맞지?”

나는 물수건으로 할아버지의 발을 슬슬 닦으며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저희 할머니 아세요?”

“알다마다. 내가 장례식도 갔었잖아.”

“아, 오셨었어요? 못 알아봬서 죄송합니다.”

“손님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 거기서 내가 홍삼도 몇 번 해 먹었어. 그래서 내가 지금도 정정하잖아. 그 할멈은 너무 남들 건강만 챙겼어. 본인부터 챙겨야― 아이고!”

내가 할아버지의 엄지발가락을 땄다.

“말을 하고 해야지!”

“따는 건 이제 다 끝나셨어요. 스스로 여기 좀 주무르세요. 지압하면 도움 되니까.”

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위치한 합곡혈을 주무르는 시범을 보였다.

“아, 거기야 알지. 내가 안 주물러봤을까 봐?”

“지금은 또 다르죠. 일단 주무르고 계세요. 양말이랑 신발 다시 신으시고요. 다른 곳들까지 지압할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때마침 중년 여자가 무를 갈아낸 걸 컵에 담아서 가져왔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걸 곧장 할아버지에게 들이밀었다.

“이거 드세요.”

열심히 손을 주무르고 있던 할아버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체한 사람한테 먹으라고?”

“무가 소화에 좋은 거 아시잖아요.”

“그거야 소화 잘되라고 먹는 거지, 체했을 때 들이붓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저 믿고 한 번 드셔보세요. 한 번에 마시는 건 힘드실 테니, 자요.”

나는 수저 하나를 뽑아서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의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지금 상태를 살펴보고는 씩 웃으며 물었다.

“속이 아까보다 많이 편해지셨죠?”

할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는 괜히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거기서 거기 같은데 뭘. 비슷비슷해.”

“그래요? 그럼 무도 빨리 드세요.”

그는 숟가락으로 무 간 것을 퍼서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역정을 내던 게 다 거짓말인 양 한 컵 가득했던 무를 금세 다 먹어치웠다.

“좀 어떠세요?”

“생각보다 잘 들어가긴 하는데, 그렇다고 체한 게 내려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잠시 실례 좀 할게요.”

나는 할아버지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주먹을 가볍게 쥐어 손바닥 쪽으로 등을 팡팡 두드렸다.

“뭣, 꺼어어억.”

할아버지는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는 자기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많이 편해지셨죠? 댁에 가셔도 오늘은 가능하면 식사하지 마시고요. 드시더라도 미음이나 흰죽 같은 거만 조금 드세요. 매실차나 생강차 드시면 도움이 좀 될 거고요.”

내가 말하자 할아버지는 여전히 놀랍다는 듯 제대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알았네. 이거, 허, 참. 효과가 좋네.”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의사라도 되나?”

나는 피식 웃었다.

“의사면 손 안 따죠. 소화제 처방해 드리지.”

“그럼 한의사?”

“아니요. 아까 말씀하신 건강원, 거기 제가 이어서 하기로 했어요. 이제 공사 들어가거든요. 한 2주 지나면 오픈할 거 같습니다. 나중에 한 번 들러주세요.”

“아, 그래? 꼭 가야지. 내가 꼭 갈게. 이 동네 영감들한테 알려줘야겠구먼.”

“하하,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내가 고맙지, 고마워.”

그때 중년 여자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핀잔을 줬다.

“치료해 주는 사람한테 계속 역정이나 내시고.”

“아, 그때는 아프니까 그랬지. 자네도 한 번 꽉 체해봐. 당장 내가 죽겠는데 어떻게 말이 부드럽게 나가?”

할아버지는 여전히 목소리가 컸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웃음기가 묻어났다.

“그럼 난 먼저 가야겠네. 여기 계산.”

할아버지가 카운터 앞으로 향했고, 중년 여자가 웃는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냉면 한 그릇 먹으러 왔다가 뭔 난리인지. 하지만 뿌듯했다. 누군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게 보람차고 좋았다.

낯선 사람을 돕고,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던 게 언제였는지. 오랫동안 잊고 살던 기분을 능력을 얻은 뒤로 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봉사에 삶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일까? 예전에는 아예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은 그 기분의 일부분 정도는 알 것 같다.

어쩌면 이게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걸지도.

그래,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그래서 계속 건강원을 했구나.

그때 내 앞으로 물냉면이 나왔다.

“물냉면 나왔어용.”

딱 봐도 양이 많았다. 반으로 가른 삶은 달걀도 2개였고.

“이건 내가 주는 써비쓰으.”

중년 여자가 만두를 테이블 위에 놨다.

“예? 괜찮은데…….”

“먹어요. 우리 단골손님 살려냈으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

“그냥 급체한 거 좀 봐 드린 건데요 뭐.”

“노인네들은 급체도 위험해요. 우리 아부지도 정정하셨는데, 한 번 잘못 넘어지시고 일주일 만에 떠나셨거든.”

“예, 예. 그렇죠.”

“아무튼 많이 먹어용.”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나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다 먹어치웠다. 맛있었다. 원래 밥통은 큰 편인지라 억지로 먹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카운터 앞으로 가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여기 계산이요.”

“그냥 가시면 돼요.”

“예?”

“아까 할아버지가 계산하고 가셨어요. 만두는 제가 서비스로 드린 거고.”

“네? 아, 이거 참…… 감사히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네에, 또 오세용.”

냉면집을 들어가기 전보다 몸은 더 무거워져 있었지만, 마음과 발걸음은 더 가벼워져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기분만 좋은 게 아니어서 더 좋았다. 이렇게 밥도 공짜로 실컷 먹었으니까.

게다가 내 능력에 대해 또 다른 면모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치료하면서 손을 대고 진단을 했다.

그냥 시늉만 한 게 아니라, 필요한 과정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체한 것임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로 심한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즉,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수차례 능력을 활용해 보니 대략 정리가 됐다.

바로바로 병명이 나오는 건 보통 가볍거나 파악하기 쉬운 질환이었는데, 그 정도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바로 병명이 나오지 않고, 특정 부위가 조금 안 좋다는 진단은 면밀한 검사가 필요했다.

혈압은 혈압만 재면 알 수 있지만, 감기 증상을 보일 때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진짜 감기일 수도 있고, 알레르기나 폐병 혹은 더 심각한 병일 수도 있다.

여전히 기적의 능력이지만,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다. 그 노력이, 노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노력이긴 했지만. 그냥 과정이 조금 늘어난다는 정도라고 하는 게 알맞은 표현이겠지.

6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

나는 자주 가게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도 들를 때마다 음료수 하나라도 사서 왔더니 인테리어 업자도 반갑게 맞이해 줬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 이상으로 깔끔하고 예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건강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올드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나 역시도 그랬고. 하지만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하다 보니 요즘은 색다른 시도를 한 가게들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가게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말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인테리어 업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들어가세요!”

그렇게 몸을 돌려서 나오는데,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숏컷에 긴 앞머리를 넘기고 있었고,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다홍색 치마 그리고 검은 구두를 걸친 모습이 무언가 그럴싸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눈을 피하고 걸음을 옮기려고 했는데, 여자가 길을 막아섰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요?”

내가 묻자 여자가 위쪽을 가리키고는 되물었다.

“여기 사장님이세요?”

간판을 가리킨 거였다.

[행운 건강원]

아직 철거 및 교체를 하지 않아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 네. 새로 들어서는 가게 사장입니다.”

“그러시구나. 역시이. 업종도 그대로이신 거죠?”

길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질문을 던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잠재적 고객이었다.

“네, 업종은 같은데요, 좀 상호명은 행복 건강즙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가게 분위기도 많이 바뀔 거고요. 다음 주 금요일에 오픈할 예정이니 한 번 들러주세요.”

여자는 초승달을 눕혀놓은 듯한 눈으로 생글생글 웃었다.

“제가 사장님께 아주 좋―은 제안을 드리려고 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