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7화
2. 확신(3)
“엇, 씨……?”
생각도 못한 금액에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장이 입에 거품 물고 지랄할만했다.
남들한테 10원 한 닢 쓴 것까지 생색을 내는 치사한 짠돌이가 갑자기 수천만 원을 토해내야 하니 속이 얼마나 쓰리겠는가. 아마 한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겠지.
개처럼 일한 보람이 있었다.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수당을 다 챙겨 받았으면 지난 6년 7개월이 보다 수월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적금을 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갑자기 목돈이 생기니 소변이 마려운 듯 하반신이 간질거렸다.
삶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업자금이 생겼다.
6
건강원은 벌써 다 뜯어져 예전 모습을 잃은 상태였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약 달이는 냄새도 시멘트 냄새에 가려졌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가만히 서서 정석용을 기다리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이미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0분 가까이 지난 상태.
늦어진다는 연락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은행 앱 알림이었다.
[토이마루 34,094,700원 입금했습니다.]
사장이 지불해야 될 돈 전부를 입금했다. 질질 끌까 봐 마음이 쓰였는데 의외로 깔끔하게 끝났다.
직원들 등쳐먹어서 손에 쥐고 있던 돈이 꽤 되니 이 정도야 바로 지불할 수 있었겠지. 워낙 사실관계가 분명해서 버텨봤자 방도가 없으니 바로 입금한 걸 테고.
“강 사장.”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정석용이 씩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강 사장. 얼굴이 더 좋아진 거 같네?”
“사장님도요. 그리고 제가 사장은 무슨 사장이에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래도 이제 곧 사장이 될 거잖아?”
“그렇긴 한데…….”
정석용이 내 등을 탁 쳤다.
“사장 맞잖아.”
“예, 그러네요. 곧 사장.”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정석용이 다 부서져 엉망인 건강원 안으로 들어섰다.
“이게 기계들 들여놓고 하려면 배선 작업이랑 그런 걸 감안해서 해야 되더라고요.”
“그래, 그렇겠지. 전에 하던 대로 하면 안 되나?”
“기계가 달라서요. 배선 다시 해야 될 거예요.”
“그럼 알려만 줘. 그 부분은 내가 업자랑 얘기해서 끝내놓을 테니까.”
“제가 아직 기계를 다 안 알아봤어요. 규모도 어느 정도로 할지 정해야 되고요. 그래서 며칠 정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용적인 문제도 있고요.”
정석용은 눈을 크게 뜨며 손을 저었다.
“아이, 이 사람아. 자네가 여기 안 들어와도 원래 할 공사였지 않은가. 당연히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하지, 자네한테 돈을 받겠나?”
“예? 그렇게 해주신다고요?”
“아, 그러엄. 그리고 자네 할머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건물 관리할 때부터 쭉 여기 계셨잖은가. 보증금이랑 월세 올리는 것도 미안한데, 나 그렇게 야박하고 치사한 사람 아니야.”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그걸 떠나서 시작이 좋다는 게 기뻤다. 운이 따르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긴,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은 순간부터 운이 트였지.
나는 기쁜 마음을 내색치 않고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하셔도 괜찮은가요?”
“아, 그러엄.”
“그럼 혹시 며칠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기계들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서 공사를 진행하고 싶어서요. 참, 이거부터 말씀드려야 했는데. 여기 내부공사 진행하기로 한 업자가 있잖아요?”
“그렇지?”
“아예 저도 계약을 같이 진행해서 공사를 한 번에 싹 다 들어가면 어떨까 했거든요. 물론, 전부 사장님께서 허락을 해주셔야 가능한 거지만요.”
정석용은 잠시 고민하는 듯 시선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며칠 시간이 좀 걸리겠네? 인테리어도 어떻게 할지 짜야 되고, 아까 말한 기계 문제도 있고. 그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기계 정해서 규격이랑 대수만 알면 바로 시공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는 조금 생각해봐야 되는데, 기계 들이면 남는 공간이 크지는 않으니까요.”
“여기 공사 맡은 업자가 내 고향 후배야.”
“아, 예.”
“실력도 좋고, 아마 비용적으로 많이 절감을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확실히 해줘야 돼.”
“어떤 걸요?”
“자네가 여기서 건강원을 한다는 거나, 인테리어를 진행할 거라는 거, 그런 게 확실히 해야지.”
정석용은 오른손을 입 높이로 들어 올리더니 새 부리를 흉내 내듯 빠르게 움직였다.
“이걸로만 해서는 소용없거든. 뭐 구두계약도 효력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펜대를 굴려야 확실하지 않겠나?”
그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이마를 자랑하듯 눈썹을 치켜올린 채 말을 이었다.
“자네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확실히 할 건 해야 되는 거니까.”
“아, 예. 그럼요. 확실히 할 겁니다. 마음 굳혔습니다.”
“그럼 내일이라도 와서 계약서 쓸 텐가?”
“예, 바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업자까지 불러서 계약 진행하지.”
“예.”
그렇게 건강원을 빠져나와 정석용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고 할 때였다.
어라?
며칠 전에 처방해준 것과는 다른 민간요법이 떠올랐다. 지금 정석용에게 가장 필요한 민간요법이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물었다.
“사장님,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고 계세요?”
“어, 어. 지금 술도 안 마시고 사과식초 그거 물에 타서 마시고 있어.”
정석용은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인 채 스읍 소리를 내고는 말을 이었다.
“시더라고. 그래도 그건 금방 익숙해지는데, 우리 집 마나님이 쐐기랑 질경이로 차 해주고 있거든? 어우우우, 그건 맛대가리 더럽게 없어가지고 환장하겠대?”
“그럼 이제 쐐기, 질경이는 그만 드세요. 사과식초는 점심이나 저녁 식사 전에 한 번만 드시고요.”
“어? 왜? 먹어야 좋은 거 아니야?”
“지금 사장님께서 드시기에 더 효능이 좋은 게 있어서요.”
정석용이 깜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어떻게 알았는가? 처음에는 진짜 먹자마자 좋아지는 느낌이 드는 거 같았는데, 오늘 아침부터는 약빨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았거든.”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진단이 됐다. 변화는 있었다. 일단 지난번보다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순식간에 지방간과 고지혈증이 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그에게 가장 효과적인 민간요법이었다.
정석용이 의아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냈다.
“저번에 알려준 게 제일 좋은 거 아니었어?”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바뀌어서요.”
“그게 바뀌기도 하나?”
“병원에서도 약을 바꿔가면서 쓰잖아요?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 좋고요. 이것도 마찬가집니다. 어느 정도 효과를 봤으니, 다른 방법으로 더 끌어내는 거죠.”
민간요법의 종류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같은 증상이나 질병을 호전시키기 위한 것으로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상황에 맞는 처방이다. 같은 사람에 같은 질환이라도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게 달라질 수 있었고, 나는 그걸 진단하는 게 가능했다.
내가 처방하는 민간요법은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하게 공급하여 면역력과 자가치유력을 증진하여 호전시키는 거였다.
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를 냈다.
“이제부터는 미나리랑 오미자차를 매일 드세요.”
“미나리랑 오미자차?”
“예. 미나리가 지방간에 좋습니다. 속에 탈이 났을 때도 좋고, 무기력증에도 좋아요. 혈압 좀 있으시죠?”
“조금. 아무래도 고지혈증이 있으니 혈관이 뭐, 썩…….”
“미나리가 고혈압에도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오미자차도 혈액순환에 좋습니다. 기억력에도 도움을 주고, 시력을 개선하며 입 마름에도 좋죠. 그리고…….”
나는 조금은 능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남자한테 좋습니다.”
“그, 그래? 얼마나?”
“또 압니까? 늦둥이 보실 수 있을지.”
“예끼, 이 사람아!”
정석용은 손바닥 가운데를 오목하게 만들어 내 팔뚝을 펑 소리가 나도록 쳤다. 일부러 소리만 크게 내려고 한 것인지라 아프지 않았다.
“아이고, 거 참. 그 사람 거. 하하하하, 나 참. 재밌는 친구야.”
“아시겠죠? 미나리랑 오미자차를 꼭 챙겨 드세요.”
“알았네. 아주 척척박사네 그냥. 응? 근데 아예 몸에 좋은 것들을 싹 다 알려주면, 그것들 다 챙겨 먹으면 되지 않을까?”
“몸에서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것들이 다르거든요. 물론,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고 나쁠 일은 드물겠죠. 하지만 뭐든지 과유불급이잖습니까?”
나는 입가에 힘을 주고 말했다.
“사장님이야 언제든 저 보러 오실 수 있잖습니까? 제가 그때그때 알맞게 말씀드릴게요.”
“알았네. 고마워. 다음에는 우리 가족들도 데리고 한 번 와야겠어.”
“그러세요.”
“내가 이번에도 효과 좋으면 동네방네 소문 다 내줄게. 건강원 홍보 끝장나게 해줄게.”
“하하하하, 네, 감사합니다.
정석용은 쐐기랑 질경이를 잔뜩 사다 놓은 게 고민이라고 하면서도 새로운 처방을 받은 게 마냥 즐거워 보였다. 오미자차는 시원하게 마셔도 좋고, 미나리는 원래도 좋아하는 음식이라나.
정석용은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곧장 가까이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덕분에 능력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돼서 오히려 내가 고마울 정도라고.
7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것은 지식뿐만이 아니라, 공력을 통해 진단하고 치료 자체도 더 강력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치료는 단순히 민간요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민간요법만으로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고 빠르게 호전된다면, 지금처럼 의학이 발전하지 못했겠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건강원을 근처에 있는 시장을 가로질러 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바구니에 담긴 채소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걸 피해 가면서 판매 중인 중년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그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반짝했다.
고혈압.
당황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대체 뭐지?
그때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뭐 좀 드려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뒤로 물러나면서 여자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고혈압이 분명했다.
고혈압 증세로 인한 특징을 살펴본 것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순대를 썰고 있는 뽀글머리 아줌마는 장갑을 끼고 있고 신발을 신고 있어 손발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습진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맞은편에서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막걸리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는 전립선이 안 좋다.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나간 학생은 비염이 심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진단을 해야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얼굴만 봐도 병명이 딱딱 나오고, 신체 어디가 안 좋은지 훤히 보인다.
진단이라기보다는 스캔에 가까웠다.
안 그래도 엄청난 능력이 더 기가 막히게 됐다.
이 능력도 근육 같은 건가? 사용하면 할수록 발달하는 걸까? 아니면 할아버지의 공력이 내게로 옮겨져 오고 이제야 자리를 잡은 건가?
어느 쪽이든 좋았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보다 정확하고 쉽게 알 수 있는데 나쁠 게 없지.
새삼 기적의 능력임을 다시 느낀다.
내 능력으로 기적 같은 일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삶이 얼마나 기적적으로 변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