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4화 (4/174)

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4화

1. 상속(4)

“지금 뭐라고…….”

사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연봉 천만 원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아니면 그만두겠습니다.”

옆에 있던 과장이 바짝 다가와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숨소리가 섞일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야, 너 인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쳤어? 엉?”

“안 미쳤습니다. 그리고 과장님한테 물어본 거 아닙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토마토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부장이 입을 열었다.

“강건희 씨.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연봉 인상을 원한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지. 그걸 지금 이런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

부장은 침착하고 냉정하며 객관적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말의 내용과는 달리 얼굴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목소리에는 분노로 인한 떨림이 묻어났다.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안 그러나?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규범이라는 게 있는 거고, 그전에 연장자에 대한 예의라는 게 있는 거네. 자네는 지금―”

내가 그의 말허리를 싹둑 잘랐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부장님께 여쭌 거 아닙니다. 제 연봉에 대한 결정권은 사장님께 있잖습니까?”

나는 말을 마치며 사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허, 참…….”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러다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는 발로 비벼 껐다.

나는 바닥에 짓이겨진 꽁초를 내려다봤다.

줄곧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었다.

금연 중인 사람 앞에서 연기를 뿜어대는 것도 싫고, 그 꽁초를 치우게 하는 것도 싫었다.

사장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예?”

“안 하던 짓 좀 하지 마라. 어설프게 그러지 마. 갑자기 무슨 헛바람이 들어가지고 뭔 같잖은 협박을 하고 있어? 뭐? 그만둬? 그만두면 갈 데는 있고?”

“그만두고 뭘 하는지는 제가 걱정할 문제입니다.”

“하, 참나. 이것 봐라? 끝까지 센 척하네?”

사장은 같잖다는 양 실실 쪼개다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섭섭했냐? 100만 원 올려줄게. 됐지?”

그는 발끝으로 꽁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바닥 청소만 하고 들어가. 내가 오늘 기분 좋으니까 그냥 넘어갈게. 내일은 웃는 얼굴로 보자.”

“월 100만 원 올려준다는 겁니까?”

“뭐? 연봉 얘기하다가 무슨 월급이야?”

“연봉 천만 원이라고 했잖습니까. 안 되면 그만두겠습니다.”

사장은 이내 얼굴을 구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 진짜 미쳤어? 그만두겠다고? 지랄하고 있네, 내가 짜르는 거야! 나가 새끼야! 너 말고도 일할 사람들 줄 섰어!”

“예, 알겠습니다. 그동안…….”

나는 사장과 부장, 과장의 얼굴을 차례로 훑어보고는 다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고마운 게 하나도 없네요. 또 보는 일 없도록 하죠. 오늘까지 일한 급여랑 퇴직금 14일 내로 입금하십시오. 그럼.”

곧바로 몸을 틀어 가려는데 사장이 소리쳤다.

“퇴직금은 뭔 퇴직금이야? 네놈이 갑자기 나가면서 생기는 손해는? 오히려 내가 보상을 받아야 될 판에 퇴직금은 뭔 퇴직금? 헛소리하지 마 인마!”

“조금 전에 말했잖아요? 자르는 거라고. 본인이 잘라놓고 무슨 내가 나가서 생기는 손해를 운운합니까? 헛소리하지 마시고 14일 내로 입금하세요.”

“너 이 새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줄 거 같아? 너 같은 놈한테 줄 돈 없어!”

사장이 치를 떨며 소리쳤지만, 나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래요? 노동청에서도 그렇게 판단하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그러고 보니 여기 근무한 지도 6년 반이 됐는데, 아직까지 근로계약서 한 장 없네요.”

“지금 협박하는 거냐?”

“협박이라뇨. 제 권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너, 너……! 오늘만 사냐? 앞으로 일 안 할 거야? 너 이쪽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을 끊었다.

“당연히 일해야죠. 근데 당신 때문에 일 못 할 일은 없을 겁니다. 14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고, 법이 그래요.”

말을 툭 던지고 곧바로 전진하자 세 사람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치며 길을 텄다.

나는 바늘처럼 따갑고 시커먼 분노로 물든 시선이 꽂히는 걸 느꼈다.

하지만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번질 정도였다.

따갑긴 따가운데, 체해서 손을 딸 때의 따가움이었으니까. 그 따가움 직후 시커먼 피를 보고 나면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게 마련이다. 지금 내 마음처럼.

12

나는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다. 학업이나 먹고살기 위해 익혀야 할 기술을 연마하는 데 게을렀을 뿐이다.

능력이 없어 부당한 걸 알면서도 꾹꾹 참아왔다.

드디어 터뜨렸고, 왜 이제까지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후련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사장은 하루 만에 퇴직금을 입금했으니까.

850만 원.

내 연봉에 알맞은 금액이었다.

퇴직금 계산기로 정확하게 두드리면 수십만 원 정도 모자랄 수는 있지만, 그걸로 상관없었다.

아직 끝이 아니니까.

지금까지 못 받은 야근수당도 모조리 받아낼 계획이었다. 아마 지금쯤 회사에 내용증명이 도착했겠지.

증거와 증인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하다.

회사에서 나를 챙기지 않는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보험을 들어놨다.

야근을 할 때면 꼭 사진이나 동영상 따위를 찍었다. 누가 내 밥그릇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머리가 굵어질 즈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지난 6년 7개월 동안 입사했다가 뭐 같다며 그만둔 사람들의 연락처도 알고 있다.

자주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는 못해도 사이는 괜찮다. 누군가 얼마나 가깝냐고 묻는다면, 내 근무시간에 대한 증인이 되어줄 만큼은 가깝다.

평일 오전인데도 탱자탱자 누워서 쉬고 있었다.

얼굴에는 머랭 팩을 올리고 있었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게 보였다.

식단 조절도 철저하게 한 덕분인지 며칠 만에 배도 많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얼마나 뛰어날까? 스스로에게 하는 만큼 효과가 좋을까?

상황에 따라서, 사람마다 효과가 상이할 것으로 예상됐다.

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이미 기적과 같은 일을 겪었고, 겪는 중이었다.

할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삶이 달라지고 있었다.

13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묻자 머리숱이 적고 마른 체구에 까무잡잡한 중년의 남자는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하, 거참…… 진작 얘기를 해야지. 벌써 공사일정 다 잡고 계약금까지 냈는데 갑자기 이러면 어떡하나?”

건강원이 있는 건물주 정석용은 인상을 찡그린 채 혀를 찼다.

“안 한다고 하면 위약금도 줘야 되고, 이건 원래 옛날부터 하려던 공사라서 미루기가 좀 그래.”

건강원이 있는 곳의 내부 공사를 한다는 얘기였다. 뒤쪽으로 임시창고 같은 거로 쓰이던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함께 싹 고쳐서 임대를 할 예정이라고.

“공사가 얼마나 걸릴 예정입니까?”

내가 묻자 정석용은 잠시 허공에 시선을 뒀다가 대답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해서 한 2주 정도 걸릴 거야.”

“……그럼 공사 끝나고 제가 들어오는 건 어떨까요?”

“자네가? 업종은?”

“건강원이요.”

“계속 이어서 하려고?”

“그렇긴 한데, 상호도 바꾸고 할 거니 사실상 신장개업이라고 봐야죠.”

정석용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을 껌벅였다.

“요즘 같은 때에 공실 없이 바로 들어온다고 하면 나야 좋지. 자네야 옛날부터 많이 봐서 믿을 수 있기도 하고.”

“저도 사장님은 믿을 수 있으니까 계속 여기 이어서 하고 싶은 거거든요.”

“근데 공사비도 들어가고, 평수 자체도 더 넓어질 거야. 지금 여기가 10평인데, 아마 공사 마치면 13.5평? 그 정도 될 거거든? 그래서 월세도 한 5만 원 올리고, 보증금도 500 정도 더 줘야 될 거 같은데, 괜찮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 값인데 당연히 제가 지불해야죠.”

“그래도 여기가 권리금이 적긴 해도 있기는 있거든. 그만큼 목이 나쁘지 않은 곳이야. 이 조건에 이만한 곳도 없어. 아, 오해는 하지 마. 권리금 달라는 소리는 아니니까. 자네가 할머니 가게를 물려받아서 재오픈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그럼요. 알고 있죠.”

“그래, 그럼. 조만간 계약서 쓰자고.”

“예, 예. 일단 제가 상속 쪽 정리를 해야 되거든요. 그거 끝나면 계약하시죠.”

“그러자고. 그런데 안에 짐들은 어떻게 할 건가?”

나는 기계들과 엄청나게 쌓여 있는 즙을 슥 둘러본 뒤 대답했다.

“주중에 싹 빼겠습니다.”

“그래, 부탁하겠네.”

내가 가진 능력을 살려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쉬지 않고 고민했다.

지금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의대나 한의대 등을 가는 건 말도 안 됐다. 내 머리로는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나의 진단법과 처방, 민간요법을 써먹을 수도 없을 테고.

불법 진료소를 차릴 수도 없었다. 차린다고 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랐고.

그나마 떠올렸던 업종 중 하나라면 바로 요양원이었다.

문제는 이 또한 설립하기 위해 따라붙는 조건들이 있었다.

의사나 한의사 등에 비하면 훨씬 쉽지만, 여전히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했다.

그러다 떠오른 게 건강원이었다.

할머니로부터 상속받는 유산이었고, 할아버지가 몸담았던 일이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알맞은 즙이나 건강식품을 판매할 수도 있고, 도움이 되는 민간요법을 알려줄 수도 있었다.

의사, 한의사나 요양원 설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데다가 비용도 적게 들었다.

여러 가지로 내게 완벽한 일이었다.

이보다 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럼 연락하게. 내가 먼저 할 수도 있고.”

정석용이 씩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리려고 했다.

“사장님.”

내가 부르자 정석용은 그대로 멈췄다.

“응? 왜?”

“혹시 요즘 많이 피곤하지 않으세요?”

“어? 피곤하기야 하지. 뭐, 안 피곤한 사람도 있나.”

“복통은요?”

“복통?”

정석용은 스스로의 복부를 살짝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가끔 소화 안 될 때? 가끔씩 쿡쿡 찌르듯이 아프고 그러지 뭐.”

“제가 좀 봐 드릴까요?”

“자네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좀 살펴볼게요.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하시면 확실히 호전되는 걸 느껴질 겁니다. 어떻게, 시간 한 번 내주시겠습니까?”

정석용은 조금 미심쩍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다가도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뭘 어떻게 봐주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 해봐.”

그는 자신을 보라는 듯 양손을 허리에 얹고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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