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2화
1. 상속(2)
나는 잠시 넋이 나간 듯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진짜 모르겠냐? 그럼 앨범 보고 다시 와라.”
“예?”
되묻는 순간 정수리부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면서 눈앞이 일그러졌고 이내 잠에서 깼다.
건강원이었다.
나는 상반신만 일으킨 채 눈만 몇 번 끔벅거리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 정신이 들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깔고 누웠던 신문지가 발에 걸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급하게 움직이며 신문지를 걷어차듯 털어내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5
건강원, 뜀박질, 택시, 다시 뜀박질, 헛구역질 그리고 집.
조금도 피하지 못하고 직격으로 처맞은 세월과 적금 대신 모아뒀던 뱃살은 못 속인다.
듣기에도 답답하고 거친 호흡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할머니 집에서 챙겨온 앨범을 펼치는 순간에도 비닐 소리가 울리도록 후욱후욱 입으로 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의 사진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흑백이라서 눈에 확 띄었다.
“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꿈에서 본 남자의 사진이 앨범에 분명히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할아버지와 똑 닮아서 인물이 좋다고 했다.
그때는 대충 흘려들었다. 사진도 있는 건 알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에 딱히 정이랄 게 없었으니까.
진짜였다. 개꿈 따위가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개꿈으로 치부했다면 앨범을 확인하려고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뛰지도 않았겠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왜 갑자기 꿈에 나타난 거지? 로또 번호라도 알려주려고 그러나?
할아버지 꿈은 대체로 길몽이라던데. 웃고 있었으니 확실하다.
그래도 평생 남한테 피해는 안 주고 살았는데, 드디어 복이 오려나.
휴대폰을 꺼내 ‘돌아가신 할아버지 꿈’이라고 검색을 했다. 꿈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자면서 꿈은 꾼 게 아니라 조금 전에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했다.
역시나 길몽에 가까운 거로 보였다. 키포인트는 웃음이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질문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최소 초인이나 식물신, 어쩌면 태양신의 답변을 받을 수 있겠지.
질문 글 작성을 마치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이놈의 만성피로.
그래도 바로 자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죽어라 뛴 탓에 땀을 흘렸기에 간단하게 씻고 난 뒤에야 침대에 누웠다.
6
잠에 빠져든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 눈구멍에 바람이 들어오는 듯했다. 그 이질적인 감각에 눈을 뜨니 또다시 응접실 같은 곳이었다.
몸을 일으키자 할아버지가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와서 앉아라.”
나는 걸음을 옮겨 할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만히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게 단순히 그냥 꿈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나는 은근히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제 할아버지세요?”
“알면서 뭘 물어?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모르냐?”
“알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이해한다. 나도 신기하니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너 갓난아기 때 이후로 처음이구나.”
진짜 할아버지라니.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게 있었다.
눈앞에 있는 또래 혹은 더 젊어 보이는 남자를 자연스레 할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 번 마음을 여니 위화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나와 가족들을 줄곧 지켜보고 있던 걸까? 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어머니가, 아버지가, 할머니가 아플 때 도와줄 수는 없던 걸까?
머릿속으로 피어오른 의문들을 날것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돌려서 물어볼 것들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할아버지는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여긴 저승인가요?”
“저승은 아니지만, 저승 비슷한 곳이긴 하지. 내가 저세상 사람인 건 맞다.”
“그럼 할아버지는 천국…… 같은 곳에 계신 건가요?”
나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껄껄 웃은 뒤 대답을 내놨다.
“왜, 지옥에 있으면 여기 못 올 거 같아서?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야. 그래도 보다시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거라.”
“그럼 할머니는요?”
할아버지는 눈썹을 살짝 들썩거리고는 대답했다.
“아직은 못 만났어. 하지만 곧 만나게 될 거다.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어머니랑 아버지도요?”
“둘은 잘 지내고 있다.”
“저도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할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할아버지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평온한 목소리를 냈다.
“언젠간 보게 될 거다. 더는 묻지 말거라. 너와 나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면 해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단다.”
“이미 충분한 대답을 들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한 듯했다. 하물며 산 사람들을 보살필 수는 없었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잘 지내고 있다니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입장이 더 괴로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들까. 어쩌면 그게 지옥 아닐까.
“그래도 잘 커 주었구나.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나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몰골은 왜 그 모양이냐?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보니까 말이 아니구나. 얼굴은 푸석푸석하니 곰보 자국에 때깔도 나쁘고, 사지는 허술한데 배는 맹꽁이처럼 툭 튀어나와 가지고.”
“사는 게 바빠서 관리를 못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외모 지적이 당황스럽기만 했고, 그저 쓴웃음만 지어 보였다.
“제일 중요한 게 뭐 같으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예?” 하고 되물었다.
“제일 중요한 거. 돈, 명예, 권력 등 뭐가 제일 중하다고 여기느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내놨다.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 다 잃는 거니까요.”
할아버지가 흡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렇지? 억만금이 있어도, 말 한마디로 천 명을 부릴 수 있어도, 건강하지 않으면 다 부질없는 법이지. 아무 의미가 없어.”
“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건희야.”
“예.”
“강건희!”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뺀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그에 맞춰 큰 목소리를 냈다.
“네!”
“넌 지금 전부를 잃어가고 있어.”
“예?”
“알고 있잖니. 지금 썩 좋은 상태는 아니야.”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금 그렇죠.”
“조금이 아니야.”
“그렇…… 습니까?”
“아까 몰골에 대한 얘기도 단순히 껍데기를 말한 게 아니야.”
“그럼요?”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소변이 마려운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좋은 얘기를 해주러 온 게 아니었나? 혹시 나한테 무슨 큰 병이라도 있는 건가?
어느새 로또 당첨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이대로 살면 앞으로 큰 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 정도 경고에서 그치길 바랐다. 아무리 봐도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지금 네 건강이 나쁘다는 얘기지.”
“……그런가요.”
“왜 그렇게 풀이 죽고 그래?”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대답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전부 지병으로 세상을 떴잖습니까. 지금 저도 그렇게 될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하하하, 고놈 참…….”
할아버지는 씩 웃으며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듯 고개를 앞으로 살짝 내밀고 말을 이었다.
“병이 무서우냐? 죽는 게 두려우냐?”
“안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내가 소원 하나를 이뤄준다면 무슨 소원을 빌래?”
눈이 번쩍 뜨였다.
“소원이요? 뭐든지요?”
“그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반짝였고, 끝까지 번쩍번쩍 발광하고 있는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 빛이 흔들리지 않는 건 바로 건강이었다.
“건강이요.”
나의 대답에 할아버지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건가앙?”
“예,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는 거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세상에 모든 질병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지?”
“병이 주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아픈 사람도, 그 주변 사람도 너무 괴로우니까요.”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스럽지만, 그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소원 들어준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할아버지의 말에 당황하며 “예?” 하고 되물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질병을 없앨 수도 없고, 다른 소원을 빌었어도 못 들어줬다고.”
할아버지가 능구렁이 수십 마리는 삼키고 있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편리한 거 말고 노력을 좀 해보는 게 어떻겠냐?”
“어떻게요?”
“네가 직접 세상 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거지. 나도 그건 도와줄 수 있겠는데.”
“제가요? 저는 의사도 아니고 뭣도 아니에요.”
“내가 도와준다니까.”
“어떻게…… 엇!”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내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할아버지, 뭐 하시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봐라. 반가워서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시간이 없어서 그래.”
할아버지가 양손으로 우악스럽게 내 머리를 움켜쥐었다.
나는 양손으로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 아아아악! 아파요!”
“손끝으로 마구 짓누르는데 당연히 아프지!”
“왜 이러시는 건데요?”
“아, 고개 숙이고 가만히 좀 있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전수해 줄라니까!”
“예?”
“내가 지금껏 쌓은 공력까지 전부 들어갈 테니 효과가 아주 끝내줄 거다! 조금만 참아라!”
그 순간 머리에 뜨끈한 무언가가 스며들어왔다. 눈이 절로 크게 뜨이고 입이 쩍 벌어졌는데, 그 안쪽에서부터 바람이 부는 듯했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조금만 참아!”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뭉개버릴 기세로 더 힘껏 짓눌렀다.
더 이상 통증은 없었다.
대신 두 눈앞에 엄청난 속도로 온갖 약재와 음식들이 번쩍거리며 지나갔고, 입에는 모터가 달린 듯 민간요법과 진단법이 거의 한 음처럼 빠르게 흘러나왔다.
눈이 1,000개의 모니터가 되고 입은 1,000개의 스피커가 된 듯했다.
머리에 전해지는 뜨끈한 느낌이 서서히 걷혔고, 할아버지의 양손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 됐다.”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개를 들자 후련한 듯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몸을 일으켰다.
“하, 할아버지! 머리가……!”
할아버지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이거?”
할아버지는 이마에 주름이 지도록 눈썹을 들썩이고 눈알을 위로 굴렸다. 그리고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낄낄 웃었다.
“머리 좀 하얗게 세면 어떠냐? 안 빠졌으니 다행이지. 똑바로 앉아라.”
안 그래도 심한 어지럼증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크게 휘청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느껴지느냐?”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느껴집니다.”
“어떠냐?”
“……엄청납니다. 아직은 정리를 좀 해야 될 거 같긴 하지만.”
“차차 나아질 거다.”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할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감사할 거 없다. 그걸 제대로 안 쓰면 도로 가져갈 거니까.”
“아, 예…….”
“돼지한테 진주를 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 넌 돼지가 아니지?”
“아닙니다.”
“그래. 너도, 다른 사람들도, 전부 건강하고 웃을 수 있게 만들어봐라.”
“네!”
“그래, 또 보자.”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정수리부터 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익숙한 감각이 들었다. 눈앞이 흐려지며 일그러졌다.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입가에 깊이 드리운 미소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7
“허억!”
잠에서 깨어났을 땐 집이었다.
“할아버지…….”
펼쳐진 앨범에는 흑백사진 속 할아버지가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를 따라 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머릿속으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민간요법과 진단법이 떠돌았다.
나는 곧바로 팬티만 빼고 옷을 모두 벗어던진 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스스로를 진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