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민간요법 치료사 1화
1. 상속(1)
1
―우리 강아지 혼자 남아서 어떡하나, 딱해서 어떡해. 애미 없이 자라면서 고생만 했는데, 아직 색시도 못 만나고…….
아직도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뱉은 탁하고 뜨끈한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그 걱정스러운 눈빛은 영정사진 속에서마저 그대로인 듯하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고, 장례비는 카드빚으로 남았다.
발인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약해져 가는 할머니 옆에서 줄곧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이겠지. 언젠가 헤어지는 순간이 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슬픔은 겪어볼 만큼 겪어보기도 했고.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어릴 때 어머니가 죽었다.
당시에는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를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즙을 서럽게 짜냈던 기억이 난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 다 잃는 거다. 어머니가 그랬고, 아버지도 그랬다.
내가 철이 들 무렵 시작된 아버지의 투병기간은 지독히도 길게 느껴졌다.
시한부를 선고받고 나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환자의 마지막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아름답지 않다. 다큐멘터리에서조차 그 혹독함을 전부 담아내지는 않는다.
세상에 질병이라는 게 아예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건강하다면 좋을 텐데.
아버지가 떠난 뒤 내게 남아 있는 건 할머니와 건강 염려증 그리고 약 달이는 냄새가 밴 건강원뿐이었다. 그 세 가지 중에서 소중한 건 할머니뿐이었다. 그런 할머니마저 내 곁을 떠났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까지도 붙들고 있던 건강원.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인데 왜 이렇게 황량한지.
아직 6월 초인데도 제법 후텁지근하다.
벽에 붙어 있는 선풍기의 줄을 당겼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요란하게 돌아가는 선풍기는 대가리를 가만히 둘 줄을 모른다.
“참……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일을 했대.”
할머니 생각에 중얼거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팩으로 포장된 즙이 양동이에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미지근한 포도즙 하나를 집어 들고는 할머니가 자주 앉아 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즙의 모서리를 이빨로 물어 찢었다. 그리고 쭈쭈바처럼 쭉쭉 빨았다.
건강원 안에는 내가 즙을 빨면서 내는 소리만이 쓸쓸하게 울렸다.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2
나쁜 일은 양아치 운전과 비슷하다.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온다.
이제 완전하게 혼자가 됐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세상은 돌아간다. 결국 나 역시 세상에 맞춰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6일이 지났다.
제일 먼저 정리한 것은 내가 독립한 뒤로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이었다.
200에 25. 서울에 있는 집이라 믿기 어려운 가격.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지하 단칸방, 습기를 머금고 얼룩덜룩한 벽지에 곰팡이, 타일로 된 부엌 바닥, 싱크대 옆의 씻는 공간, 화룡점정으로 공동사용인 화장실.
나도 이 집에 살았었으니 잘 알고 있다. 여름엔 사우나 같고 겨울엔 입김이 나오는 화장실.
집을 정리하고 손에 쥐고 있는 거라고는 청소비용을 뺀 보증금 190만 원과 옛날 앨범 몇 권뿐이었다.
집을 빠져나오면서도 몇 번이나 되돌아봤다. 과거에 내가 오랜 기간 살았던 곳이기도 했고, 할머니가 지내던 곳이니까.
내가 취직을 하면서 얻은 집도 분리형 원룸이다. 그래도 화장실은 실내에 있다. 그게 어디인가.
누추한 집에서라도 할머니를 모시려고 했지만, 건강원 때문에 안 된다고. 돈도 안 되는 건강원이 뭐라고.
집에 돌아와서는 라면을 끓인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완벽하게 끓일 수 있다. 냄새만 맡아도 무슨 라면인지 알 수 있다.
그만큼 익숙하고, 지나친 익숙함은 질린다. 다른 대안이 없기에 청소기가 되어 라면을 넘긴다. 맛을 느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배를 채우기 위해 집어넣는다.
후루룩 후루룩, 소리만큼은 맛있다.
그러다 문득 겁이 나면서 젓가락질을 멈췄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인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라면만 먹다가 어디 병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누가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돌봐주기는커녕, 병실에 누워 있는 걸 들여다볼 사람도 없다.
왼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에 뉴스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48년 동안 삼시세끼 라면만 드신 할아버지의 건강]
호기심에 불을 제대로 지폈다. 기사의 내용인즉, 아흔이 넘도록 똑같은 라면만 먹고 산 할아버지가 여전히 건강하게 산도 오른다는 것이었다.
역시 뭐든 운빨이다. 포브스에서 선정한 미국 400대 부호들도 큰 성공을 이루려면 운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게도 운이 좀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운이 따르기는 따랐다. 불운.
후루루룩! 세차게 라면을 빨아들였다.
기사를 보기 전보다 라면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결국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속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는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걱정도 사라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탄내 나는 행복회로를 돌리는 게 전부 다.
이제 큰 행운은 바라지도 않는다.
불운만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빌어먹을 인생아, 제발 좀 평온해라.
3
“건희 씨, 이거 오늘까지 끝내줄 수 있지?”
과장이 자재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 안에 끝낼 수는 있다. 문제는 정상적인 퇴근 시간은 훌쩍 넘겨야 한다. 야근을 해도 추가수당 따위는 없다. 그래도 나는 “네.”하고 대답한다.
“그래, 조금만 수고해줘.”
과장은 조금도 미련 없이 창고를 벗어났다.
언젠가 마룻바닥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자재들을 나르고 또 날랐다. 과장이 말한 일을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 10시가 다 돼 있었다. 저녁도 거르고 쉬지 않은 결과였다.
그래도 내일은 주말. 과장이든 차장이든 부장이든 사장이든 누구든 나를 부르지만 않으면 쉴 수 있다. 제발 나 부르지 말고 골프나 치러 가라 인간들아.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내 연봉은 6년하고도 7개월째 동결 상태. 그런데 사장은 새로운 골프채로 스윙 연습을 하고, 외제 차는 벌써 3번 바뀌었다.
조만간 꼭 때려치우리라 결심을 하지만 쉽지 않다. 그만두고 나면 당장 막막해질 테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초등학교를 야간으로 나와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만큼 단순하고 비전이 없는 노동이다.
그런 내가 회사를 때려치운다? 그다음은 눈을 감고 생각해야 한다. 깜깜하니까.
제대로 된 경력이 없는 36살인 나를 받아줄 회사는 없을 테고, 있어도 지금보다 조건이 좋을 가능성은 낮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향한 곳은 집이 아닌 할머니가 운영하던 건강원.
“이걸 다 어쩐다…….”
협소한 건강원을 가득 채울 만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가게를 빼야 됐는데, 할머니가 생전에 미리 만들어둔 즙이 문제였다. 낡은 기계들도 중고로 처분해야 됐고.
전부 중고 사이트에 등록은 해뒀지만 문의가 오는 일은 없었다.
즙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청소를 좀 하다 보니 차가 끊길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기에는 멀었다.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지.
그냥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자. 어차피 내일 출근도 안 하는데 뭐.
한쪽 구석에 돗자리와 박스 그리고 신문지까지 깔아서 나름대로 잠자리를 갖췄다.
썩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 잘 것도 없었다. 그렇게 누웠는데 한참을 뒤척거렸다. 평소의 나는 창고의 차가운 바닥 위에서도 뒤통수만 붙이면 잠이 들곤 했는데.
어쩌면 건강원이라서 그럴지도. 너무 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할머니가 없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건강원 특유의 냄새는 콧속 점막을 통해 두뇌 어딘가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을 자극했다.
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한여름에 약을 달이다가 몸빼바지에 알록달록한 앞치마를 한 채 가게 앞으로 나와 고무장갑을 벗고는 땀을 훔치던 그 모습이 생생하다.
건강원 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곧 기억이 잔뜩 담긴 이 가게를 다시 볼 수 없게 되겠지. 이 냄새도 다시 맡을 수 없겠지.
킁킁. 그렇게 지긋지긋했던 건강원 냄새를 맡았다.
왠지 모르게 관자놀이에서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며 잠에 들었다.
4
“일어나! 아, 일어나라니까!”
누군가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고정이 안 되는 벽걸이 선풍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건강원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꾸며진 응접실 같은 곳이었다.
“이쪽으로 앉게.”
뒤쪽에서 울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홱 돌렸다.
상하의를 흰색 개량 한복으로 빼입고 머리를 옆으로 넘긴 말끔한 남자가 큼지막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너머의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라니까?”
얼떨떨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일단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남자의 맞은편에 조심스레 앉으며 물었다.
“대체…… 누구십니까? 그리고 여긴 어딥니까?”
“나 모르겠냐?”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남자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누구…… 신지…….”
“잘 봐봐. 진짜 모르겠냐?”
미남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닮아 있었다. 지금의 망가진 내가 아니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의 가장 보기 좋았던 때의 나.
“나……?”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목소리를 내자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하하!”
그러고는 갑작스레 꿀밤을 먹였다.
“에라이! 네 녀석 눈에는 내가 너처럼 보이냐? 지금 거울 보는 거 같아?”
나는 짜증나는 통증만큼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사람을 칩니까? 그리고 왜 아까부터 반말이에요? 당신이 누군데요?”
따지고 드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에 기인해 있었다.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눈앞의 남자는 누구인지, 이게 현실이긴 한 건지.
남자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히죽히죽 웃다가 기차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큰 목소리를 냈다.
“할아버지다,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