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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부수는-298화 (에필로그1) (297/300)

<-- Epilogue Chapter - 귀환 -->

2035년 인천국제공항에는 수 많은 기자들이 몰려있었다.

2019년 한 야구선수가 한국을 정복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그는 미국마저 정복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온다!"

그곳에는 무려 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부인과 함께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기자들을 불러 모으게 한 주인공은 유성이었다.

"박유성 선수 이제 한국에서 생활 하시는건가요?"

"다이노스와 어떤 이야기가 되어 있나요?"

"자, 다들 진정하시고 제가 나중에 따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그때 와주시길 바랍니다."

"박유성 선수!"

미리 공항에서 인원을 준비해둔 덕분에 유성은 순조롭게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고 16년만에 돌아온 유성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며 야구팬들은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의 업적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

메이저리그 2019년 ~ 2034년(16년)

월드시리즈 우승 14회,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총액 4억불(포스팅 포함), 역사상 최초의 1000-1000 클럽(한미) 등등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이 이루어져 있었다.

워낙 압도적이면서 최초라는 상징성까지 갖춘 기록들을 보유한 상태이다보니 유성이 한국으로 돌아올때 그가 8년씩 뛰었던 레드삭스와 샌디에이고는 영구결번을 준비 중이었고, 명예의 전당도 유력한 상태였다.

*

얼마 후 유성은 기자들을 마산으로 불러모았다.

이 곳에서 그의 귀환과 함께 계약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국가대표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과 연관된 적이 적다 보니 각 언론에서는 바쁘게 유성에 대해 기록하기 바빴다.

"이제 완전히 한국에 복귀하시는건가요?"

"네. 그동안 이야기해왔던대로 다이노스에서 은퇴를 하기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번호는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요?"

"놀랍게도 단 1명의 후배를 제외하면 아무도 사용을 안 했다길래 이참에 받아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성의 번호를 사용하던 후배 선수는 데뷔한지 5년이 된 선수였는데 처음 3년간은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최근 2년간 부진을 겪고 있었기 유성의 상징인 10번은 순조롭게 인계될 수 있었다.

"앞으로 몇년을 더 뛰실 생각인가요?"

"포스팅 규정을 보면 FA 규정과 달리 4년을 뛰어야 FA가 가능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4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4년이라는 제법 명확한 시간이 나오자 기자들은 질문을 다시 선별하기 시작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유성이 KBO에서 이룰만한 기록이 더 많아지기 때문인데 이때 누군가가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KBO에서 300-300 클럽, MLB에서 900-900 클럽을 달성하셨습니다. 혹시 메이저 단독 1천 클럽에 대한 욕심은 없으셨나요?"

"왜 없겠어요. 900 클럽 달성했을때 한 2년만 더 뛸까하고 고민했었을 정도였거든요."

"그럼에도 돌아오셨는데 어떤 심정이신가요?"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최근 2년간은 50-50 클럽만 기록하면서 이전보다 성적이 떨어진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끝을 낼때가 되었다는걸 알았죠."

어느덧 유성은 한국식으로 42세가 될 정도로 노장이 되었다.

그런 선수가 아직도 50-50 클럽을 기록한다는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기에 KBO에선 환영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박유성 선수를 두려워하는 구단들이 많을텐데요."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50-50 클럽 정도를 할 체력은 있으니 두려워하는게 맞죠. 한국에서도 500-500 클럽 정도는 완성하고 은퇴할 생각입니다."

한미 통산 1400-1400 클럽을 달성하겠다고 유성은 지금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것은 16년만에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1위와 최다 도루 2위를 기록한 선수다운 발언이기도 했다.

한참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중 유성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2021년생의 박유성 2세를 시작으로 2024년, 2028년, 2029년생으로 이루어진 4명의 아이들은 2남 2녀라는 이상적인 비율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중 한국식으로 15살인 박유성 2세는 큰 관심을 받았는데 벌써부터 아버지인 유성에 근접할 정도로 큰 키를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아들도 야구를 하나요?"

"하죠. 정확히 따지자면 축구나 농구에 테니스도 합니다만... 슬슬 하나에 집중해야겠지만 야구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유성은 그랬다.

자신이 야구를 배울때는 다른 것을 배울 여유가 없었지만 그의 아이들은 달랐다.

"하긴 16년간 벌어들인 돈만해도 5억불이 넘어가니..."

"게다가 앞으로 들어올 금액도 많으니깐 편한거지."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유성이 생각보다 적은 금액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성이 활약한 2020년대를 생각하면 오히려 충분한 값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고액 연봉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유성과 오타니 이후로 3억불 이상의 금액에 계약한 선수는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준영마저 FA가 되었을때 30 중반의 나이였기에 큰 금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선수 분석은 한층 더 치밀해졌다.

그로인해 선수보다는 전력분석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구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치세는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그 금액이 줄어들고 있었다.

"신들이 물러나니 이제 시대가 바뀌는군."

"사실 오타니는 신이라기에는 박유성에게 큰 차이로 밀렸지만 말이야."

"역사적인 커리어를 남긴건 사실이니깐."

오타니의 경우 유성과 달리 새로운 팀을 찾아서 떠났다.

그래도 2,3년 정도만 더 하고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했기에 유성보다 늦게 명전에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별 다른 걱정은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50승, 300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내가 알기로 최초니깐."

"우린 그 위대한 선수들의 시대를 직접 보았고 말이지."

비록 야구가 미국에서 미식축구나 농구보다 인기가 떨어진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 4대 스포츠였기에 샌디에이고는 아직도 유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끝이 다가오자 장소를 빌려주었던 다이노스 구단이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기자회견이 끝나갈쯤 유니폼을 가져왔다.

유성의 상징인 10번의 유니폼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유성의 연봉은 무려 50억으로 정해졌다.

달러로 환산하면 500만불로 얼핏보면 별것 아닌것 같지만 현 시점에서 KBO 리그 최고 연봉자가 30억 밖에(?) 못 받는다는걸 생각하면 역대 최고 수준의 금액이었다.

그래서인지 유성은 이후 이 금액이 KBO 최고 연봉이라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했다.

다만 팬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렸는데 유성의 네임드나 인지도는 인정해도 나이가 있다보니 50-50 클럽을 껌처럼 달성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과 유성이 다이노스 시절에 이루었던 괴물 같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올드팬들의 전폭적인 찬성표였다.

-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 그 나이에 여전히 50-50 하는 타자를 연 50억 정도에 쓰면 혜자지.

- 니들 33 WBC만 봤어도 알텐데?

- 아...

바로 2년 전에 있었던 2033 WBC에서 유성은 5할이 넘는 고타율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팀의 우승을 다시 한번 이끌어냈다.

올림픽에서 야구 종목이 다시 폐지가 되고 말았으나 그 전의 2031 프리미어12에서도 마찬가지로 파괴력을 과시했었기에 하다못해 포스트시즌에서 큰 역할을 해줄것이라는 의견들이었다.

"그나저나... 저 형은 진짜 은퇴해버렸네."

자신의 백넘버 2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들고 그는 유성이 복귀하기 전에 은퇴를 선언했다.

유성보다 1년 빨리 입단했으나 1군으로 한정하면 22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현역으로 활동했던 것이었다.

물론 나이가 있다보니 백업으로 밀려있던 상태지만 10년 넘게 팀을 이끌어 오던 주장의 은퇴를 유성의 복귀로 해결한 다이노스였다.

당연히 주장 자리도 샌디에이고에서의 경험이 있던 유성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제 나이가 있다보니 불안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여전히 4번 중견수로 활약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럴것입니다. 팬분들은 전설을 다시 한번 보실겁니다."

"이번에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예상 못한 사람이라 반가워서 좋기는 한데...아무튼 놀랍네요."

다이노스는 그동안 3명의 감독이 거쳐갔고 이제 4번째 감독이 합류한 상태였다.

1대 감독인 김강문 감독이 13년부터 22년까지 10년, 2대 감독인 최일헌 감독이 23년부터 27년까지 5년, 3대 감독은 28년부터 지난 시즌인 35년까지 8년간 팀을 지휘했었다.

1대 감독인 김강문 감독 시절의 다이노스는 10년간 모두 우승을 거두는 역사를 작성했다.

2대 감독의 시대에서도 6년 모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3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3대 감독의 시대에서 다이노스는 1번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1번의 우승을 거두었지만 포스트 진출 실패가 5번이나 되었다.

"8년간 포스트 진출 3회에 우승은 1번..."

"어떻게 보시나요?"

"메이저리그 차원에서 본다면 괜찮은 감독일지도 모르지만 여긴 KBO이고, 하필 다이노스는 앞선 감독들이 보통 커리어를 쌓아둔게 아니다보니 다이노스 입장에서는 아쉬운 감독이죠."

게다가 전임 감독은 베테랑들을 과감하게 해치우며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재편했는데 이로인해 수 많은 우승 주역들이 은퇴하기도 했다.

그나마 주장인 민병과 투수조장인 장형식 정도만이 마지막까지 버텼을 정도였다.

그리고 새롭게 부임한 4대째 감독은 바로 범성이었다.

- 박유성이 아직도 현역인것도 놀라운데 나범성이 벌써 감독을 할때라는것도 놀랍다.

- 은퇴한지 좀 되었으니 프렌차이즈 우대하는 다이노스 특성상 할때가 되기는 했는데 타이밍 참 절묘하네.

범성의 경우 유성처럼 메이저에서 적절한 활약을 펼쳤으나 KBO로 돌아오고 단 1년만 뛰고 은퇴를 했었다.

그것이 불과 2031년에 있었던 일이었고, 겨우 4년만에 다이노스 감독에 부임한 것이었다.

"나중에 만나봐야겠지만 이야기할게 많겠네요."

"뭘 나중에 봐?"

"어? 형이 왜 거기서 나와?"

========== 작품 후기 ==========

계산해보니 연도가 안 맞아서 오타 수정하는 느낌으로 앞편을 수정했습니다.

진짜 연도만 바꾼거라 다시 안 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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