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Chapter 2 - 비하인드 스토리 -->
"일단 10년 뛴 선수들은 많지. 나부터 해서 성옥이도 그렇고..."
"그러고보면 창모형은 아쉽네."
과거 와이번스에서 뛰던 경력으로 인해 10년 넘게 뛰었음에도 그는 영결의 기본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
애초에 통산 커리어가 모자라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었다.
"그럼 지금 팀에 영결 후보가 몇명인거야?"
"나랑 너랑 범성이형. 다른 선수들은 솔직히 통산 성적이 아슬해."
"그래? 이 친구는?"
"주전도 못 잡았는데 되겠어?"
"아, 그래? 아직 주전 아니야?"
"네. 그렇게 됬네요."
- 주전이 목표인 후배...
- 힘내라.
"왜 갑자기 제가 격려를 받고 있는거죠?"
"그거야..."
"후배니깐?"
"니가 다이노스 남을지 다른팀 갈지 모르겠다만 내가 돌아왔을때도 남아있으면 잘 굴려주마."
"...살려주세요."
"죽지는 않을꺼야. 대신 짬밥에 안 맞게 구르겠지."
아무튼 후배를 대충 처리한 유성은 우연히(?) 구단을 찾아왔다가 들린 몇몇 선수들을 만나게 되었다.
장형식, 김준영이라는 다이노스 4선발과 주전 포수였다.
"내가 왜 4선발이야."
"외인 둘에 재후형이 있으니깐."
"...쳇."
"준영아. 드디어 60홈런 쳤다면서?"
"에이, 선배님보단 못하죠."
"그래. 나보다 못하기는 했지?"
"...자신감 넘치네."
입단 시기로 따지면 민병이 최고참이지만 활약을 시작한 것은 유성이 먼저였다.
13시즌이 유성의 시즌이었다면 14시즌은 민병의 시즌이었고 16시즌과 18시즌은 각각 형식과 준영이 뜨기 시작한 시즌이었다.
"그래... 그러고보면 니들도 나중에 영결은 되겠네."
"솔직히 말해서 지금 팀에 들어오는 후배들은 몰라도 초기 선수들은 좀 쉽죠."
"주전 자리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들이 이득본게 많았으니깐."
물론 운이 좋았다고 해도 실력이 없었다면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KBO에서도 재능 있는 선수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며 5명으로 늘어난 방송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누군가의 흑역사를 이야기하거나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순식간에 3일째의 방송도 끝을 향하였다.
그럼에도 아직 이야기 소재가 남아있다는 점에 놀라며 그들은 4일째 방송을 기약했다.
*
"대충 4일이면 되겠지?"
"솔직히 슬슬 몸이 뻐근해."
"하긴 4일 연속으로 하면 좀 힘들기는 하지."
유성이나 민병이나 전문 방송인이 아닌 운동선수였기에 4일 연속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경력이 제법 되었음에도 꽤나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수 많은 이야기를 한 덕분에 기자들은 싸늘한 윈터시즌에 많은 기사 소재를 얻기도 했다.
"내년은 FA 때문에 무리일테고, 이런 큰 소재는 자주 오는게 아니니깐."
"내일은 무슨 이야기 할려나?"
"좀 큰거 터트려주면 좋겠는데..."
"사실 저 멤버로는 딱히 터트릴만한 소재가 없지. 김준영이 오늘 해외 진출 이야기라도 했으면 몰랐을텐데 말이야."
실제로 유성도 3일이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할 이야기가 바닥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박찬오처럼 아예 말을 못했다면 모를까 유성은 언어 부분에서 타고 났을 정도였다보니 처음부터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오늘은 썰이나 풀어봐."
"무슨 썰?"
"누구한테 들었다 같은 그런 썰 말이야."
"음... 딱히 없는데."
"진짜?"
"어."
"에이, 재미 없게."
"그나저나 준영이 넌 미국 생각 없냐? 미국물 먹는거랑 안 먹는거랑 꽤나 차이 크다?"
"갈꺼면 진작에 갔겠죠..."
"하긴..."
- 소재가 드디어 떨어졌나봐.
- 아무리 박유성이라도 투머치토커보다는 못하였다.
- 그런대 마지막 날이 너무 허무하게 끝나게 생겼는데.
"뭐... 혹시 모르니 메이저리그 썰을 조금 더 풀죠. 생각해보니 이야기 못했던게 조금 있더라고."
"그거 좋은 이야기네. 덕분에 시간은 잘 가겠어."
"넌 날 뭘로 생각한거냐..."
"어차피 다이노스에서 뼈를 묻을 생각인데 따지면 내가 연차 더 길잖아?"
"상은 내가 더 많지만 말이야."
가볍게 형식을 놀려준 유성은 아직 남아있다던 메이저리그 이야기를마저 진행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준영은 무엇인가 느낀게 있었는지 유성에게 질문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유성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선언하였다.
"역시 한번 해보는게 좋겠죠?"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이 방송을 통해서 선언합니다. 이번 시즌 끝나고 메이저리그 도전합니다."
"...???"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요?"
"이놈이 3년만에 우승하더니 정신을 못 차렸나..."
뜬금 없는 선언에 유성은 물론 다른 선수들도 혼란에 빠졌고, 방송을 보던 다이노스 팬들까지 눈이 커질 정도였다.
덕분에 방송을 보던 기자들은 좋은 소재를 얻게 되었는데 다이노스도 갑자기 주전 포수가 1년 뒤에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진짜?"
"네."
"아니... 내가 잘못한건가."
"네. 아무 생각 없던 녀석에 미국 생각을 넣어버렸으니깐요."
"그걸 또 직격으로 꽂아버리네."
아무튼 준영이 정말 메이저리그로 향한다면 2026시즌이 끝나고 향하게 되는데 문제는 유성이 FA로 나오는 시기가 또 2026시즌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유성은 만약 넘어온다면 내셔널리그로 넘어오라며 떡밥을 던졌다.
"나 FA때 내셔널리그로 넘어갈꺼야. 그쪽 구단들도 생각 있으면 8년 연속 우승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선수를 잡고 싶을테니깐 말이야."
"그때 경쟁 상대로 만나거나 같은 팀에서 뛰거나... 말이죠?"
"그렇지."
사실 유성은 내셔널리그 15개 구단 모두와 협상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는데 내셔널리그 15개
팀 중 애틀란타, 워싱턴, 컵스, 신시네티,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까지 6개 구단에서 10번이 영구 결번 상태이기에 실제로 15개 구단 중 9개 구단과 협상이 가능한 상태였다.
지난 7년간 유성이 10번이라는 번호에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유성이 다른 번호를 사용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10번이라..."
"레전드가 이미 고인이 된 팀도 있고, 본인이 허락해도 어려운 번호도 있으니..."
"그건 어디야?"
"세인트루이스의 10번."
"그쪽이면... 아, 본인이 허가해도 어렵겠군."
아무튼 준영이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결정을 내리면서 방송은 준영의 기자회견 아닌 기자회견이 되고 말았다.
덤으로 유성도 FA를 앞두고 가볍게 이야기를 더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길었던 4일간의 방송이 끝을 향했고, 다이노스 구단은 마지막 게스트를 모시기로 했다.
"또 있어?"
"응? 범성이형은 아닐테고..."
"투수쪽은 아닐껄? 지금 창원에 없는 사람도 꽤 되거든."
"그러면... 야수가 유력한데 모르겠다."
4일간의 방송의 마지막 게스트는 바로 김강문 감독이었다.
이번 방송은 기본적으로 박유성을 중심으로 한 방송이었기에 본인의 시선과 동료의 시선을 확인했다면 이제 마지막은 코칭스태프의 시선을 볼때였기 때문이었고, 가장 오랫동안 유성을 보아왔다고 할 수 있는 김강문 감독이 간만에 다이노스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아니, 감독님... 이게 몇년만입니까?"
"아마 결혼할때 이후로 처음이지?"
"그러면... 6년만이네요."
"그정도였나? 오래 되기는 했구나."
- 헐. 달감독님이라니
- 몇년만에 보시는거냐.
- 은퇴 이후로 쭉 안 보이셨으니 거의 3년만에 오셨네.
지금도 다이노스팬들은 물론 야구팬들 사이에서 김강문 감독의 10년은 많은 이야기와 함께 회자되고 있었다.
나범성이라는 박유성 다음가는 다이노스 최고의 스타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 시켰고, 박유성이라는 야구사를 바꾼 괴물에게 이호중이라는 베테랑 타자 대신 4번을 맡기며 박재후 이후 17년만의 신인 30-30 클럽을 달성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박민병, 김성옥, 김준영, 이재후, 장형식, 구청모까지 베어스 시절의 경험과 김강문 감독 특유의 선수를 보는 눈을 통해 배출한 선수들만 해도 터무니 없었다.
다만 10년 중 전반 5년간 투수 혹사 논란이 많았지만 후반 5년간은 투수 운용마저 구단이 개입하는 뒷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뀌며 이호중을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과 박유성, 나범성이라는 코어들이 줄줄이 빠져나갔음에도 연속 우승을 쭉 이어가기도 했다.
그렇기에 김강문 감독은 다이노스는 물론 KBO 역사상 가장 뛰어난 3대 감독 중 1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두 감독은 김응영, 김인신 감독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감독님은 진짜 생각도 못했네요."
"그러냐? 넌 한국에 있을때보다 표정 많이 좋아졌는데? 정확히는 결혼한 이후로 쭉 그랬지만."
"절 계속 보셨어요?"
"우리팀 4번을 내가 안 보면 누가 봐?"
"하긴... 아니 그런대 그 이야기가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암튼 중요한건 감독님이 오셨다는건 마지막은 감독의 시선에서 본 유성이겠네요."
"민병이가 눈치가 빨라서 좋아."
"제가 좀 좋긴하죠."
적당히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김강문 감독은 유성을 보며 여러 표정을 순간적으로 보여주었다.
유성을 보자마자 여러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유성이는... 솔직히 말해서 정말 어려웠어. 이 박유성이라는 선수를 어떻게 평가를 해야하는가 또 어떤 길을 알려줘야하는가. 이런게 다이노스에 있을때 정말 많은 고민이 됬거든."
"그럼 저 미국 간 뒤에는요?"
"나머지 녀석들 때문에 골치 아팠지."
"흐흐흐. 유성이랑 다른 선수들이랑 비교하면 어느쪽이 더 골치 아프셨나요?"
"당연히 다른 애들이지. 숫자부터 몇명이냐? 심지어 유성이 나가서 편해지나 했더니 준영이 들어오니깐 또 머리가 아파.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유성이랑 다른 스타일의 만능형이랄까? 다행스럽게 이후로는 그쪽 학교에서 자원이 얼마 안 나왔다만..."
유성이나 준영이나 김강문 감독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역 시절에 보아왔던 이만순이나 장조훈 같은 선수들과 동급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성은 모두가 알듯 30-30 클럽을 시작으로 매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70-70 클럽이라는 역사를 작성했고, 준영도 KBO 역사상 2번째 60홈런을 달성하면서 포수로써의 능력도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아무튼 유성이는 괴물이나 신같은걸로도 모자라다고 생각해. 그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야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너무 띄워주시는거 아니에요?"
"아니지. 난 그저 보고 느낀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 '더 베이스볼' 지렸다.
- 하긴 미국에서도 7년만에 400-400 찍으면서 깽판 치고 있으니...
김강문 감독의 나이를 고려해서 짧은 시간만 배정했기에 이야기는 길지 않았으나 마지막 날 김강문 감독의 이야기는 많은 야구팬들에게 알려졌다.
그렇게 이날 유성의 별명 목록에 더 베이스볼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외전 챕터3으로 넘어갑니다.
후속작은 메이저 분량을 빼던가 해야지 원...
메이저 분량 없으면 어쩌냐고요?
아마추어 시절을 넣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