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Chapter 2 - 비하인드 스토리 -->
그 당시 다이노스의 돌격 대장이자 유성의 베프나 다름 없던 민병의 이야기였기에 유성도 뭔가 느끼는 것이 많았다.
"14시즌은 나도 첫 풀타임이기도 해서 신경을 덜 쓰게 되었는데... 집에 얹혀살던게 그쯤이던가?"
"아마 그럴껄?"
"아, 그러고보니 박유성 선배님이 한국에서 쓰던 집이 당시에는 기숙사였다면서요?"
"거기 아직도 쓰는 사람이 있나?"
"형식이랑 다른 후배 2명이 쓰고 있지."
"아, 그녀석이라면 뭐..."
- 그런대 아파트를 그냥 빌려주는거냐. 임대로 빌려준 준 상태냐.
- 이런거 법적으로 까다롭지 않냐?
"아 그 문제는 제가 미국 갈때 아파트를 걍 구단에 팔았어요."
"응? 그랬어?"
"구단 입장에서도 구장과 가까운 아파트니깐 잘 받아가더라고."
"허허..."
역시 유성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민병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두가 잘 아는 테임즈라는 외국인 선수는 14시즌부터 다이노스에 합류했다.
"얼마 전에 2년 계약 발표 했지?"
"그래. 얼마 전에 연락하니깐 나이가 있어서 그게 마지막이라더라."
"한국에는 안 온다냐?"
"외국인 자리 없지 않나?"
"아, 여기도 드디어 규정이 바뀌었어."
유성이 떠난 이후 KBO에선 용병 제한을 1,2명씩 늘리며 질적 향상을 유도했다.
그리고 다가올 새 시즌부터는 2군에서도 5명의 용병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며 범용성을 더욱 늘리도록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리그 개편도 이루어졌는데 2군 리그 외에도 공식적이 3군 리그를 창설한 것이었다.
"1군 30인, 2군 25인, 3군 25인에 별도로 10명까지 65인 엔트리가 90인 엔트리로 크게 확장 되었지."
"그래? KBO도 많이 컸네. 선수협은 어때?"
"많이 바뀌었지. 이번 외국인 확대도 FA 연한을 딜로 받아왔거든."
"FA도 바뀌었어?"
"그래. 2025시즌은 아쉽지만 26시즌부터는 4년만 뛰어도 포스팅이 가능해지고, 고졸 7년, 대졸 6년이면 FA 자격을 얻게 되었어."
"엄청나게 바뀌었네?"
"그만큼 고생 많았지..."
2018,2019시즌 다이노스의 주장은 손시한이었다.
FA때 2년 계약을 맺었던만큼 당연한 것이기도 했지만 2020시즌부터는 꽤나 고민이 되는 문제였다.
박선민이 유력한 후보였으나 김강문 감독은 과감하게 모창모에게 주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2022시즌이 되고 모창모가 FA 자격을 얻으며 팀은 다시 변동을 주게 되었다.
"올해도 내가 주장을 하면서 다이노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주장을 한 선수가 되었어."
"오... 이 참에 종신 주장해봐."
"가능하면 해야지. 그래서 너 언제 국내 복귀할꺼냐?"
"일단 1년에... 장기계약 1번 더 생각하고 있는지라... 8년짜리 1번 더 하겠지."
"그럼 9년인가? 할만하네. 9년 뒤에 너한테 주장 자리 주고 은퇴하면 되겠다."
"왜 9년 뒤로 정해지는건데?"
"그럼 거기서 은퇴하게?"
"그건 아니지."
"들었죠? 한국에서 은퇴한답니다. 포스팅으로 나갔으니 다이노스에서 해야겠죠. 다들 기록해둬요."
- 메모장 켰다!
- 다이노스 존나 부럽네. 박민병 은퇴하면 박유성이 옴.
- 이게 왕조의 힘인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테임즈 한국 왔을때."
"아하... 재미 있었지. 첫번째 시즌이 치열함의 정점이었다면 두번째 시즌은 여유라는걸 처음 느껴봤지. 전력이 워낙 압도적이다보니깐 말이야."
첫번째 시즌이 기적이라면 두번째 시즌부터는 명백하게 실력 차이였다.
첫 우승 이후 10년 연속 우승은 이렇게 차근차근 만들어낸 우승기록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15시즌은 더욱 압도적이었지."
"144경기로 늘어나자마자 100승 찍어버렸으니깐."
"저도 딱 그때부터 다이노스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뛰고 있네요."
"팬은 언제나 환영이야."
"하하하. 박유성 선배님 돌아오실때까지 계속 우승 해야겠네요."
"아니지. 준우승이나 더 낮은 순위도 한번 해봐야지. 내가 가면 또 연속 우승을 해야할테니깐."
"오... 자신감 충만한데?"
다이노스는 15시즌부터 19시즌까지 5년 연속 100승을 돌파하며 10년 연속 우승과 함께 대 기록을 같이 작성하기도 했다.
유성이 18시즌 이후 메이저리그로 가면서 5년을 모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같이 뛰던 4년간 누적된 경험은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거대한 전력이 빠진 영향이 제법 컸기에 19시즌 이후 범성마저 메이저리그로 떠나며 20시즌부터는 100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면... 20시즌부터 25시즌까지 6년째 100승 못하고 있는거야?"
"어쩌다보니..."
"뭐, 나쁘지 않아. 돌아가면 우승하는 김에 100승도 해봐야지."
이쯤되니 유성이 무서워질려는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포스팅 덕분에 돌아와도 다이노스로 돌아온다는 점이 그들을 안도하게 만들지만 타팀 입장에서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 돌아오면 기념으로 100승이라니...
- 진짜 신 그 자체네.
- 메이저 경력 최소 15년에 다이노스에서도 레전드면...
"그러고보니 내 번호는 어떻게 됬어?"
"니 번호? 그러고보니 없는 동안 임시로 쓰라고 했다며? 아쉽게 그동안 1명도 안 썼다."
"준영이도 안 썼어?"
"그래."
"준영이 정도면 써도 괜찮은데..."
유성과 범성의 위상이 다이노스에서는 엄청나다보니 그 둘의 번호는 임시결번으로 비워진 상태였다.
둘 다 사용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선수들이 먼저 고르지 않을 정도로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다이노스 최초의 영결은 내가 가져가야겠다."
"범성이형이 먼저 가져가지 않을까?"
"어..."
확실히 8,9년은 더 있어야 한국에 돌아갈 생각인 유성과 달리 범성은 그보다 빨리 다이노스로 돌아갈테니 최초의 영결은 범성이 유력했다.
"하다못해 2번째 영결이라도..."
"다른 형이 먼저 은퇴하면? 예를 들어 재후형이라던가..."
"...이제 나도 모르겠다."
민병은 어느덧 12시즌부터 25시즌까지 다이노스에서 14년이나 뛴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었다.
1군 풀타임으로 따지면 14시즌부터이기에 12년으로 줄어들지만 다이노스에서 2번째로 긴 것은 변함 없었다.
첫번째는 당연히 이재후였다.
1군 첫 시즌인 13시즌부터 토종 에이스 역할을 해왔던 그는 어느덧 13년 연속 1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FA 대박도 한번 기록한 상태였다.
다승 기록만 보더라도 KBO 역사상 7번째 150승 투수이기도 했다.
"선감독님도 못한 150승을 했으니 영결은 확정이라고 봐야지."
"순위 따지면 내가 3번째 정도일려나?"
"대충 그렇겠지."
현재 다이노스에서 10년 이상 뛴 선수는 얼마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말년에 팀을 떠난 선수도 있고, 조기에 은퇴를 한 선수도 제법 많았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선수들도 해킹 이후로는 6년을 뛴 선수는 단 1명도 없었다.
"10년 채우거나 넘긴 형들은 많은데 구단에서 영구결번 기준을 높게 잡았나봐."
"어느 정도길래?"
"자료를 보면 되잖아."
"응? 아, 고마워요."
다이노스 구단에서 준비해준 영구결번 기준은 아래와 같았다.
커트라인 같은게 아닌 단순한 기준이기에 별도의 조건이나 팬들의 인기도에 따라 변동이 있겠지만 일단 기준은 이러했다.
기본적인 조건은 단 1가지였다.
타팀에서 뛰었을 경우 다이노스에서 15년 이상 뛰어야하고, 다이노스에서만 뛰었을 경우 10년 이상 뛰어야했다.
"시작부터 장난 아닌데? 최소가 10년이네."
"솔직히 영구결번이라고 할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하니깐."
"하긴... FA 기간 줄어들고 하면 이것도 어려워지겠지."
투수 150승, 1500이닝, 150홀드, 200세이브, 1500삼진, 통산 WAR 25 이상
"이거 공개해도 되나요?"
"네. 박유성 선수처럼 특별한 케이스는 100% 적용 안 할꺼니깐요. 애초에 박유성 선수는 특별 케이스로 안 봐도 영결 1순위지만요."
"하하... 6년 뛰고 영결 1순위라니."
- 기준보소.
- 저거 도달한 선수가 몇이나 있냐?
- 임상민도 200세이브는 못했는데.
- 그건 김진호, 원종헌도 마찬가지야.
단디4나 4천왕 같은 별명으로 불리던 선수들 중 3명이 영결 조건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이노스 내부에서도 그들의 위상이나 상징성을 생각해서 많은 고민을 했으나 기준과의 차이가 크다보니 결국 실패하였다.
"결국 지금 투수쪽 영결에 가장 유력한게 재후형이라는거지?"
"그 다음이 민오형인데 이 형은 또 200세이브 넘겼으니깐."
18시즌 기준으로 임상민은 33세였다.
안 그래도 유성의 공백을 생각하면 개선해야할게 많았던 다이노스였기에 과감하게 당시 25세이던 이민오에게 클로저 자리를 넘겼다.
이 선택은 적중해서 이민오는 이후 7년간 평균 30세이브씩을 거두며 어느덧 KBO에서 200세이브를 돌파한 6번째 마무리 투수가 되어 있었다.
- 기록 이야기 나오니 또 말 길어진다.
- 그런대 KBO에서 다이노스처럼 체계적인 팀이 히어로즈 정도 밖에 없으니깐.
"사실 제일 아쉬운게 종헌이형이었는데..."
"150홀드는 됬는데 10년을 못 채웠네."
"부상 때문에 아쉬웠지."
6명이나 되는 200세이브 마무리 투수와 달리 150홀드 중간 투수는 원종헌까지 단 3명에 불과했다.
그런 원종헌도 다이노스에서 8년 밖에 못 뛰었기에 영결에 포함되지 못한 아쉬운 선수로 남게 되었다.
"투수만으로도 이런 상황인데 타자쪽으로 가면 대체..."
"안 그래도 타자쪽은 투수보다 더 복잡해."
"그러면 일단 뒤로 넘기고... 이닝은 재후형도 그렇고 선발들은 거의 다 가능하지 않나?"
"그렇지. 삼진도 다들 삼진 잘 잡으니깐 문제 없고."
"WAR 25는 왜 있는거지...?"
- 정보 KBO 투수 중 WAR 25가 넘는 투수는 80명도 안된다.
- 40년 넘는 역사에서 80명도 안되는 괴물들이 WAR 25 이상이라는 소리네.
"타자쪽은 하도 널널해서 WAR 35 이상이라네요."
"너무 높은거 아니야?"
"타고투저가 지금까지도 지속 되었으면 오히려 적절하지."
"형은 진작에 40도 뚫었더구만."
유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30,40 수준이 아니라 이미 유성은 역대 WAR로 따졌을때 3손가락 안에 들어갔다.
단 6년만에 말이었다.
"아무튼 이제 타자쪽은 유성이 널 기준으로 하면 너 말고는 다 불가능하니깐 범성이형이랑 나 정도가 기준이야."
"범성이형이랑 민병이형 수준이면..."
10년 혹은 15년을 다이노스에서 뛰는건 변함 없었다.
이론상 범성은 다이노스에 돌아오고 3년, 유성은 4년을 뛰어야했다.
1500경기, 3할, 2천안타, 200홈런, 1천타점, 300도루, WAR 35
이것이 타자 기준이었는데 범성의 경우 타율, 홈런, 타점에 해당했고, 민병은 경기수, 타율, 안타, 도루, WAR가 해당했다.
"너나 범성이형은 포스팅이라는 점이 있으니깐 메이저 성적까지 고려해야지. 특별 케이스가 딱 너랑 범성이형이거든."
"아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다이노스에서는 저 기록을 달성할만한 선수들은 제법 있었다.
하지만 모든 기록을 전부 달성할만한 선수는 전무했다.
민병은 홈런이 모자랐고, 다른 선수들도 컨택이 떨어지거나 주력이 모자란 경우가 많았다.
유성이나 범성도 사실 1500경기를 채우는것이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다.
KBO 역사상 1500경기를 뛴 타자가 60명을 겨우 넘기는 것을 보면 알만했다.
- 그런대 언제까지 기록 이야기하냐?
- 한참 남았음.
- 박유성 별명 중에 하나가 기록 덕후거든.
- 안되에에에에!
팬들의 절규는 둘째치고 그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 작품 후기 ==========
2025시즌이 끝난 시점이면 별에 별 기록이 다 나왔을테니 기록 이야기도 한번 풀어봤습니다.
다음화에 외전 챕터2를 끝내고 챕터3으로 넘어가보록 하죠.
레드삭스의 마지막 시즌, 새로운 팀, 메이저리그 기록 결산까지가 외전 챕터3에서 다룰 내용들입니다.
단 7년만에 명전급 커리어를 만들었기에 길게 할 이야기는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