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4 - 인터리그 -->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군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와 이번 시즌 최고의 타자의 대결이죠.]
최고와 최고의 대결.
유성이 타석에 들어서고 준비가 끝나자마자 커쇼는 그를 최고로 만들어준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팡!
[초구 155KM가 나오는데요.]
[커쇼는 투심이 조금 더 빠른 편인데 여기서 포심 구속까지 올린다는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2구째는 커브였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게 떨어지는 그 움직임에 볼이 아니었다면 유성은 헛스윙을 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1S-1B의 볼 카운트가 만들어지자 커쇼가 먼저 투구판에서 발을 빼며 잠시 한숨을 돌렸다.
유성이 공 1개 차이로 볼이 되는 커브를 가만히 지켜보았다는 점을 복기하며 다음 공을 차분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방금 체인지업까지 꺼낸건 내 실수였군.'
물론 그 볼카운트와 그 상황에서 무키 베츠를 잡을려면 체인지업을 꺼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모든 패가 공개된 상황에서 유성을 상대하게 된 커쇼지만 그렇게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국 녀석도 인간일뿐이니깐."
오늘 커쇼의 컨디션은 매우 좋았다.
비록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연속 안타를 맞았기에 대기록을 노리기는 힘들어졌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은 위대한 타자들이 전성기 상태로 오더라도 자신의 공을 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커쇼는 오늘 자신의 공에 대해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때 커쇼는 왠지 모르게 1루로 공을 던져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쇼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감각은 생각보다 적중률이 높았고,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1루로 견제를 시도했다.
팡!
"...아웃!"
[아! 여기서 견제사가 나옵니다!]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주자를 신경 쓸 여유까지 있는 커쇼입니다!]
[베닌텐디는 지금 망연자실한 그런 표정인데요.]
[지켜보던 저희도 생각 못했을 정도로 예상 외의 견제였거든요.]
- 진짜 귀신 같이 잡았네...
- 이러면 커쇼는 부담이 줄어들어서 더 편하게 할 수 있지.
1사 1,2루의 상황이 2사 2루로 바뀌며 1방을 맞더라도 3점이 아닌 2점만을 내주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성은 제법 널널하게 잡고 있던 배트를 새로 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커쇼의 158KM에 달하는 강속구에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팡!
[여기서 다시 한번 투심을 꺼내들었네요!]
[구속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는건 커쇼는 이제 부담감이 하나도 없습니다. 2루 주자든 타자든 딱 1명만 잡으면 되거든요!]
- 설계 지렸다
- 또 뭔 설계?
- 일단 연속 안타를 허용한건 커쇼 입장에서는 예상 외였을껀데 역으로 투심, 체인지업을 꺼내서 무키 베츠를 삼진으로 처리했음.
- 아하 3구종 중 하나를 노리고 있었을텐데 예상 외의 2개가 나와서 썰렸다는거지?
- 거기에 박유성을 상대하기 전에 투심과 체인지업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박유성은 3구종이 아닌 5구종을 신경 써야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헛스윙이 나온거지.
- 그래서 결론은?
- 결론만 말하자면 삼진 아웃인데 타자가 박유성이라서 확신을 못하겠다.
그 분석은 제법 정확했다.
커쇼의 목적도 결국은 삼진이니 말이었다.
*
"3할 6푼에 30-30 클럽이라고?"
"그래. 아메리칸 리그 팀들은 박유성을 못 잡아서 울상이라더군."
"첫 시즌부터 그 정도라..."
"벌써부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50-50 클럽 달성자로 유력하다고 하더군."
"그녀석을 잡아내면 재미 있겠지?"
"재미? 너다운 대답이군."
커쇼는 이전까지 최고라는 실감을 아직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지난 시즌인 18시즌이 시작 되기 전에 무엇인가 깨닫기라도 한듯 시범경기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커쇼는 2018시즌을 역사에 남겼다.
모든 기록을 커리어 하이로 만들며 수십년만의 다저스 25승부터 1.5 이하의 방어율, 250이닝에 350K까지 유일한 흠이 포스트 시즌에 다시 부진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시즌 중의 압도적인 포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이고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른 투수들에 비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왜 월드시리즈에 못 갔냐고 물어본다면 투수진은 여전히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타선이 챔피언십 시리즈에 들어와서 급격한 부진을 보이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 시즌에 커쇼가 보여준 역대급 시즌과 악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포스트 시즌 성적을 기반으로 다저스는 이번 시즌에 2년만의 월드시리즈 진출과 함께 31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커쇼는 2S-1B의 볼카운트에서 가장 효과적인 공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석으로 생각한다면 가장 빠른 공을 보여주었으니 가장 느린 볼을 보여주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구종은 커브나 체인지업인데 커브는 이미 사용했고, 체인지업은 18시즌부터 꾸준히 퀄리티를 올려서 나름 쓸만한 수준이 되었지만 투심을 비롯한 4구종에 비해서는 떨어진다고 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타자도 아닌 유성을 상대로는 결정구로 쓰기에는 그 커쇼라고 해도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
결국 고민이 길어질듯하자 커쇼는 과감하게 포수를 마운드로 불렀다.
"왜 그래?"
"어떻게 잡을지 막막해서."
"하긴... 볼은 거의 다 무시해버리고 실투 같은건 다 날려버리니 막막하기는 하기는 하네."
"그래서 뭐가 좋을꺼 같아?"
"저정도 괴물이라면 니 체인지업이 다른 구종에 비해 떨어진다는걸 알고 있을꺼야. 그러면 남은건 슬라이더인데 그 정도는 또 저녀석이 예상하겠지."
"그러면..."
"포심 아니면 투심 그것도 힘의 대결로 밀고 가야지."
"너랑 만난건 내 선수 생활에서 최고의 행운인것 같아."
"너무 띄워주지는 마."
의견 교환이 끝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덕아웃쪽으로 물러나서 마찬가지로 다른 선수들에게 여러 정보를 얻어내고 있던 유성도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제법 길었던 회의인데요.]
[그렇기에 이번 공이 마지막 공일 확률이 높습니다. 마침 2S-1B의 카운트라서 대충 하나 정도만 결정하면 됩니다.]
[어떤 결정인가요?]
[간단하게... 승부 할 것인가 말것인가.]
다저스 배터리의 결정은 승부였고, 그들이 정한 공은 포심이었다.
커쇼는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였고 이내 공을 던졌다.
그런 커쇼의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유성은 순간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커쇼는 유망주 시절에 100마일을 던질줄 알았다.'
팡!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161KM가 나왔습니다! 커쇼가 자신의 최고 구속을 지금 작성합니다!]
[정말 대단한 피칭이었습니다. 무사 1,2루로 경기를 시작했지만 삼진, 견제사,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며 결과적으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게다가 투구수도 레드삭스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덤비다보니 2안타를 허용하였음에도 10구 밖에 안 던졌어요.]
- 잠깐 10구?
- 와... 투구수 관리 쩌는거봐라.
불안한 시작과 달리 감탄이 나오는 마무리 덕분에 다저스는 약간이나마 기세를 가져온 상태로 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다저스에게 불행한 것은 올해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 크리스 세일이 상대라는 점이었다.
팡!
[헛스윙 삼진!]
[첫 타자부터 160KM를 기록하며 삼진을 잡아내는 크리스 세일.]
[에이스가 해야하는게 바로 이런거죠. 넘어갈뻔했던 분위기를 단번에 돌려 놓습니다.]
"선두 타자를 막으면 일단 뒤가 편하지."
"커쇼가 터무니 없어서 그렇지. 세일도 뒤지지는 않아."
선두 타자를 돌려 세운 세일은 다음 타자를 기다리며 뒤에 서 있는 키스톤 콤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빠르게 끝내고 다시 공격하러 가자고."
"물론 그래야지."
"왠지 부담 되는데..."
"저녀석이 첫 타석에 못 쳤으니깐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더 편해질껄?"
"하긴... 유성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
그 사이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보고 마운드에 돌아온 세일은 이내 다시 160KM 안밖의 강속구를 앞세워서 다저스 타자들을 막아냈다.
딱!
[중견수가 전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진해 있던 중견수가 안전하게 타구를 잡아내며 이닝 종료. 2개의 삼진을 포함하여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크리스 세일입니다.]
[삼자범퇴인데 투구수가 11구네요.]
[이런 장면들을 보면 커쇼가 괜히 최고라고 불리는게 아니기는 하군요.]
[그렇죠. 투구수 관리부터 해서 삼진 능력 그리고 오늘 보여준 100마일까지... 분명 나이를 따지면 정점에 해당하기는 한데 참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죠.]
1회가 무실점으로 마무리 되었고, 경기는 2회 초로 넘어가게 되었다.
[커쇼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로는 100마일을 던져본 적이 없는데요.]
[네. 마이너에서는 던져봤던걸로 아는데요. 메이저에서는 최고 97마일 정도였죠.]
커쇼도 데뷔 초기에는 제구 문제가 제법 있었는데 제구력을 얻기 위해서 구속을 낮춘 것이 최근까지 유지된 것이었다.
그런 커쇼가 지금 다시 구속을 끌어 올린 것은 유성처럼 뛰어난 타자를 상대 하기 위해 필요한 무기라고 생각한 것도 있으나 결국 우승을 위한 선택이었다.
'넌 메이저리그 최고라 평가 받는 20-80 스케일에서 80점 만점 구종을 3개나 가지고 있어. 다른 2개도 65점에 75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나지.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계속 막힌다면 구속을 올려보는건 어때?'
'구속을? 하지만 난 제구 때문에 구속을 낮춰서 더 빠른 공을 안 던져본지 오래야.'
'걱정마. 내가 도와줄테니깐.'
그게 바로 지금 홈플레이트에 앉아있는 차세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로 꼽히고 있는 알렉스 한이었다.
그가 입단한건 2017 드래프트였다.
드래프트 순위 자체는 그나마 쓸만한 선수가 간간히 나오는 30라운드 안에도 못 들어갈 정도였는데 이 부분은 그의 학력은 고졸이지만 리틀야구 시절 이후로는 선수 경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에서는 하위라운드로 갈 수록 팀 레전드의 자식이나 지인을 픽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순수하게 다저스 스카우터의 평가를 받고 30라운드 이후의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 된 것이었다.
아무튼 17 드래프트로 입단한 그는 루키 리그에서 예상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며 18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싱글 A에서 시즌을 시작하였고, 단 2달만에 메이저리그에 도달하였다.
마이너에서 그를 따라 잡을 선수가 없는 것은 물론 메이저에서도 그가 통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즌 시작 2달만에 메이저에 도달한 그는 투수진을 각성 시켰다.
"이렇게 믿을만한 포수가 있는데 우승 못하면 큰 일이지."
파워를 빼곤 답이 없다는 평가 받던 타격도 크게 개선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포지션에도 적절한 보강이 이루어졌다.
이번 시즌 레드삭스가 터무니 없는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다저스는 우승을 차지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커쇼는 2회 초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 작품 후기 ==========
사실 0시 17분 예약 걸려고 했는데
중간에 잠깐 잤다가 일어나니 새벽 4시...
멘붕해서 딴짓 좀 하다가 이제야 올리네요.
*
새로 알려드릴 소식으로 다음주부터 주말 2일 중 하루는 무조건 휴재입니다.
11월의 슬럼프를 경험하면서 선택한 사항이고, 나머지 6일간 꾸준히 1,2편씩 올리기 위해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완결은 2월로 넘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