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을 부수는-211화 (211/300)

<-- Chapter 40 - 2017 한국시리즈 -->

2회 말로 넘어온 경기.

이재후는 최영우라는 상대를 앞두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애초에 무사 주자 없는 상황이기에 홈런만 안 맞으면 되지만 단순히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

에이스로써의 자긍심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이재후의 최고 구속이나 다름 없는 143KM의 직구가 정확하게 존 안에 들어오며 이재후는 여전히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갈꺼냐?"

"원하시면 패턴을 바꿀 수도 있겠죠. 하지만... 토종 에이스 매치라는게 걸린게 꽤나 많아서 말이죠. 덕분에 저도 선배님을 잡기 위해 수십 가지 패턴을 지금도 구상하고 있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짜증나네."

"훗, 선배님도 잘 아시잖아요? 포수라는 위치가 그런 위치인거?"

"잘 알지."

한때 포수로 활동했던 최영우였기에 더욱 잘 알았다.

김태곤의 말도 들었기에 잠시 가만히 생각하던 최영우는 이내 타격 자세를 다시 잡았다.

"덤벼."

"얼마든지요."

곧 바로 날아든 2구째의 정체는 서클체인지업.

이재후를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만든 마구나 다름 없는 구종.

초구에 143이나 되는 직구를 보았기에 당황할법도 했지만 최영우는 어찌어찌 걷어내는 것을 성공 시켰다.

체인지업의 구속이 125KM가 나왔기에 18KM의 차이였음에도 말이었다.

'괜히 시간 줬네...'

덕분에 김태곤은 속으로 한숨을 쉬어야만 했다.

최영우에게 괜히 시간을 주었나 싶지만 아직 여력은 있었다.

이재후의 공이 조금씩 그리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거... 말로만 듣던 퓨처스 이재후가 나올려나?'

퓨처스 이재후.

12시즌 다이노스가 2군에 있을 당시 이재후가 기록한 터무니 없는 기록으로 인해 많은 기대를 받았다.

퓨처스에서 15승 1점대라는 터무니 없는 기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의 이재후는 슬라이더, 커터와 같은 구종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구종들을 잃어버린 지금의 이재후는 3점대 중반의 방어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실력을 전부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투 피치의 한계가 있기도 하고 말이지...'

아무리 이재후의 직구와 서클체인지업의 조합이 최고의 호흡을 보인다지만 결국 구종이 2개라는 단점은 감추기 힘든 것이었다.

2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상태에서 상념에 빠졌던 김태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직구 사인을 보냈다.

지금의 이재후라면 투 피치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3구째 다시 한번 서클체인지업을 걷어낸 최영우는 이어진 4구째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헛스윙 삼진! 지금 구속이 무려 145KM까지 올라갔습니다!]

[정말 엄청나다는 말로도 모자란 투수전이네요.]

- 재후가 145라고? 실화냐?

- 개꿀잼 몰카는 아니지?

- 오늘 재후 진짜 노히트 하던 모습으로 각성한거 같은데?

- 문제는 양현정도 각성함.

최영우라는 산을 넘었으니 다음은 쉽다고 할 수 있다.

나지원, 이범오로 이어지는 클린업이 상대였으나 흐름을 타기 시작한 이재후는 아무도 못 말렸다.

[나지원과 이범오를 전부 삼구 삼진으로 처리하는 이재후!]

[양현정 선수가 2이닝 5K 23구를 기록하자 이재후 선수는 2이닝 6K 20구로 응수하네요.]

[투구수 3개를 더 절약하면서 삼진을 하나 더 잡았군요.]

[미묘하게 이재후 선수가 조금씩 이득을 가져가는 모양이네요.]

- 지금 둘 페이스 어떻냐?

- 어떻고 자시고... 둘 다 최소 완투하겠는데?

- 운 따라주면 대기록까지 나올겠네.

2회까지 단 한번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고, 단 한번의 출루마저 허가하지 않은 두 투수는 3회에도 공격적인 피칭을 그대로 이어가며 3회도 무실점으로 마무리 지었다.

양현정 3이닝 7K 35구

이재후 3이닝 8K 35구

그야말로 접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투수전.

이재후의 경우 아쉬움이 있었는데 8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냈으나 9번으로 나선 타격 2위의 작은거인 김석빈이 공을 건드리며 삼진 기록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동시에 8구까지 이어지는 승부를 펼치며 이재후가 조금씩 이득을 보고 있던 투구수를 동률로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생각해?"

"최고 97마일이 나오는 좌완 쓰리쿼터 투수와 최고 90마일이 나오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의 대결에 대해?"

"당연한거 아니야? 이렇게 둘 다 한꺼번에 각성하는걸 보는건 흔히 볼 수 있는게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나저나... 한쪽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해외 진출을 시도할 경우 FA로 풀리고, 다른 한쪽은 박유성 때문에 빨라도 2년 뒤에나 포스팅을 도전 할 수 있군."

"어디가 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지?"

"아무래도 기본 가치는 좌투쪽이 더 높지. 게다가 97마일을 한번 찍은 이후로 꾸준히 93마일에서 95마일의 구속을 유지하고 있으니..."

WBC때 양현정의 가치는 연 400만불 정도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퍼포먼스라면 그것의 2배를 받고도 남았다.

연 800만불.

나이를 감안하여 5년 이상의 계약은 무리라도 3년 정도만 되어도 2500만불의 계약이 가능할 것이다.

"사이드암은?"

"투 피치로 KBO를 정복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인건 알겠어.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격이 다르니깐."

"제 3의 구종이 있다고 가정하면?"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럴 경우 저 좌투 이상의 금액도 가능해."

통산 방어율이 3점대 후반인 양현정과 통산 방어율이 3점대 중반인 이재후.

양현정의 경우 어릴때 손해본 일이 많았다는걸 감안해야하겠지만 어찌되었든 보이는 성적은 그러했다.

"진심이야? 좌투쪽은 최근 4년 평균 5.8의 WAR를 기록했고, 사이드암은 최근 4년간 평균 4.5 정도였다고?"

"나이를 고려해야지."

"...겨우 2살 차이인데?"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어찌되었든 경기나 계속 봐."

타순이 1바퀴 돌아서 다시 1번 타자의 타석이 돌아온 4회 초.

위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양현정은 여기서 패턴을 바꾸었다.

앞선 3이닝에 150이 넘는 직구 중심으로 타자들을 찍어누르던 투수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양현정은 4회에 변화구 중심의 피칭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직구를 완전히 망각해서도 안되었다.

잊을만 하면 150KM의 직구가 날아와 타자들의 허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패턴이 바뀐 덕분에 이번 이닝에 삼진을 1개도 헌납하지 않은 다이노스 타자들이지만 대신 단 10구만에 이닝을 마무리하게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걸로 양현정은 4이닝 45구..."

"이재후는 어떨려나..."

재후도 패턴에 변화를 주어야하는 시기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꼈다.

오늘 그는 시즌 중 그 어떤날보다 여유가 넘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신인왕 2위에 머물렀던 13시즌이나 노히트를 기록하던 14시즌보다 더욱 그러했다.

5년이라는 경험은 이재후를 한번이 아닌 두번 진화 시켰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140 초중반의 구속이 유지되는 직구와 120 초중반의 체인지업이 날카롭고 그리고 현란하게 변화하며 미트에 들어왔다.

투구수에서는 양현정에 비해 손해를 보았지만 이번 이닝에도 2개의 삼진을 추가한 이재후는 4이닝만에 10K라는 압도적인 닥터K의 힘을 과시했다.

"재후형 기세 좋네... 덕분에 내가 심심하지만."

외야에서 중얼거리는 유성은 무시하고, 4이닝 49구로 이닝을 마무리한 이재후는 양현정의 5회 피칭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는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억지로 끌고 가듯 지금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회에 마운드에 오른 양현정은 유성을 2번째로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성이라는 상대를 의식하여 초구부터 다시 155KM의 강속구를 뿌렸다.

'다시 155? 여력이 넘치는 지금은 힘으로 찍어누를 생각인가...'

그렇다고 유성이 이전 타석처럼 힘에서 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공보다 더 무거운 공을 유성은 몇번이고 경험해보았다.

다만 이전처럼 갑자기 각성할 경우를 대비해서 2구째 스트라이크를 감안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팡!

"스트라이크!"

그러자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듯 과감하게 다시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내며 2스트라이크로 유성을 몰아 붙였다.

이 공을 본 유성은 양현정의 직구를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을 마쳤다.

하지만 각성한 양현정은 이 순간만큼은 유성을 압도하였다.

이어진 3구째.

그 공의 구속은 145KM.

앞의 피칭과 차이가 있다면 그 구종이 슬라이더라는 것이었다.

슬라이더라는 것을 능력을 통해 알았음에도 유성은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헛스윙 삼진 아웃!]

[4할 타자 박유성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양현정!]

- 실화냐.

- 적극적으로 치려고 하다가 삼진 당하는걸 꽤나 봐서 그렇게까지 놀라운건 아닌데 슬라이더 상태가?

- 오늘 진짜 끝장 승부인가 보네.

'직구 뿐만 아니라 슬라이더도인가...'

완벽하게 당했다.

유성의 야구 인생에서 데뷔 첫 시즌 오승훈에게 힘으로 박살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재미 있었다.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게 된 유성은 덕아웃으로 향하며 웃었다.

60-60을 기록하며 KBO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마지막이 될 다음 시즌은 그 어떤 시즌보다 더 재미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우선 저 범부터 잡아야겠지만..."

지금의 기세라면 3번째 타석이 돌아올 7회나 8회까진 어쩔 도리가 없다.

게다가 이 팽팽한 흐름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쪽의 에이스도 제대로 각성했다.

"내 타석이 다시 올때까진 이 흐름이 이어지겠군. 그렇다면 타시 내 타석이 오는 8회에 승부를 봐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덕아웃에 돌아온 유성을 삼진으로 잡아낸 양현정은 거칠 것이 없었다.

스크럭스를 무려 1구만에 처리하더니 박선민도 4구만에 삼진을 잡은 것이었다.

[이번 이닝에는 아예 8구만에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2개의 삼진을 추가하며 5이닝 무실점 9K 53구를 기록하는 양현정!]

양현정이라는 에이스가 유성을 다시 한번 물러나게 만들면서 이제 공은 또 다른 에이스에게 향했다.

========== 작품 후기 ==========

이제 5회 초 끝난게 실화인가라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4차전 끝날려면 최소 3화는 더 가야한다는게 함정.

*

원래 4시에 올릴려고 했는데

추석이 다가오다보니 이리저리 굴려질곳이 많아서

저녁쯤에 3편째가 올라갈듯 하네요.

만약 저녁에 3편째가 안 올라가면 내일 또 3연참을 도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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