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 - 2017 WBC BIG4 -->
오늘 2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영규는 1회처럼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듯 침착하게 투수의 공을 기다렸다.
[이제 2번째 타석이기에 앞타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하거든요?]
[게다가 확실한 찬스가 있는만큼 어떻게든 점수를 뽑아야하거든요.]
기본적으로 1번 타자는 출루에 집중을 해야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주자가 있을때는 확실하게 불러들이고, 자신도 출루를 해야한다.
다른 타자들이라면 몰라도 이영규는 이런 상황에서도 안타를 치고 나갈 능력이 있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몰리나도 신중한 피칭을 이어가기로 했다.
'하긴 2할 타자라도 갑자기 잘 치는 날이 있으니...'
1루 주자를 확인한 몰리나는 발 빠른 3루 주자를 좀 더 신경 쓰기로 했다.
설사 더블 스틸로 홈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3루 주자만 잡으면 점수를 줄 일은 없다.
발이 느린 1루 주자를 2루로 보내는 것 정도는 감수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베스트는 병살타로 단숨에 이닝을 마무리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서 쉽지 않아 보였지만 몰리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몰리나 입장에서는 머리가 복잡해질 수 밖에 없네요. 지금 상황에서 베스트는 병살타인데 이영규 선수가 그리 쉽게 당할 선수는 아니란 말이죠.]
[경기 초반이라서 또 아쉽네요. 경기 후반이면 대주자로 기회를 연결했을텐데...]
[일단 이영규 선수가 안타를 쳐주기를 빌어야겠죠.]
이영규는 공을 차분하게 지켜보고 또 커트하면서 투구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투구수가 늘어날수록 푸에르토리코 배터리는 곤란함을 느꼈다.
1,2회에 아껴놨던 투구수를 3회에 다 내주게 생겼기도 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출루를 허용하든 힘이 빠져서 뒷 타자에게 맞든 안 좋은 흐름으로 가는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투구의 모든 수를 써도 안된다면 여기서는 수비가 더욱 활약을 해줘야한다.
그래서 몰리나는 수비진 전체에 사인을 보냈다.
'외야와 2루, 유격수는 전진, 1,3루수는 후진'
사인이 들어오자 푸에르토리코의 내야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성이 상대였다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지만 이영규가 상대였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이건..."
"외야 깊은 타구는 버렸군."
"대신 내외야 사이에 떨어질법한 타구는 막히게 됬어."
다만 1,3루가 후진을 한 것은 예상 외의 움직임이었는데 이러면 스퀴즈를 노릴 수도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카운트가 몰려서 함부로 번트를 할 수 없어. 이런 상황을 노리고 준비했군."
"영악하군요."
"그래도 1점 승부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린 이 찬스를 놓치더라도 수확이 생기게 돼."
WBC는 보통의 경기보다 더욱 머리 싸움을 해야하는 대회였다.
바로 투구수 제한이라는 룰 때문이었는데 푸에르토리코 선발의 투구수가 이미 40개를 넘기고 있었다.
[수비진에 움직임이 생겼네요.]
[이건 실점을 막겠다는 의도죠?]
[네. 1점에 연연하는건 안 좋지만 지금처럼 1점 싸움이 된다면 오히려 이렇게 틀어 막는게 더 좋겠죠.]
- 작년 포시부터 해서 투수전 엄청나네.
- 그래도 박유성이라던가 있으니깐 점수는 잘 뽑고 있잖아. 오늘 경기는 고비인거 같다만...
- 솔직히 지금처럼 메이저리거들이랑 붙어봐야 알 수 있다고 보는지라. 박유성은 여기서 못하면 메이저는 아직 멀었다는걸로...
- 야 그러면 우린 50-50 하는 괴물을 계속 봐야하는거잖아.
- 어찌되었든 박유성은 메이저 가야한다.
그때 이영규가 타격을 시도했다.
그에 앞서 1루 주자가 먼저 도루를 시작했는데 이영규의 컨택을 믿고 스타트를 시킨 것이었다.
딱!
[주자 뜁니다!]
[쳤습니다! 타구가 유격수 잡아서 2루! 그리고 1루!]
[세이프! 2루에서는 아웃이지만 1루에서는 세이프! 그리고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선취점을 가져오는 대한민국 대표팀입니다!]
[자, 지금 푸에르토리코 감독이 올라오는데요.]
[WBC에는 비디오 판독이 없지만 일단 푸에르토리코 감독이 올라올만한 상황이니깐요.]
병살로 이닝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이 없는만큼 판정이 뒤집어지기는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리플레이에서 세이프처럼 보이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 여기를 보시면 세이프네요.]
[그렇네요. 2루는 확실히 아웃인듯 하고, 1루는 세이프네요.]
- 드디어 점수 났다!
- 게다가 주자도 있으니 계속 흐름을 이어갈 수 있지.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으나 푸에르토리코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미안. 결국 실점해버렸네."
"괜찮아요. 아직 1점이고, 우리 타선이라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으니깐요."
"좋아. 이제 2아웃이니깐 주자는 무시해. 타자만 처리하자고."
"네."
몰리나가 투수, 투수 코치와 회의를 하고 있을때 유성은 서건수, 김태곤과 볼배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형이 여기서 나가면 제 차례일테고 주자 2명이 있을 확률이 높으니 여기서 한방 치는게 베스트니깐요."
"유성이한테 넘긴다고 생각하면 빠르게 치는게 좋아. 3구 그리고 2스트라이크 전에 치는게 중요해. 몰리면 커터가 올테니깐."
"그럼 1,2구를 노려야한다는건데... 뭘 쳐야하지?"
"일단 둘 중 하나는 직구가 올꺼에요. 커터를 생각하면 당연히 쓰겠죠."
"50% 확률로 오는 직구를 노리라는건가... 14시즌처럼 미친듯이 치던 시절이면 해보는건데 지금은..."
"뭐가 되었든 최대한 리드를 벌릴려면 지금이 기회에요."
이외에 몇가지 더 이야기 했지만 핵심은 전부 이야기했다.
그래서 서건수는 자리에 일어났다.
"...좋아. 갔다올게."
푸에르토리코 감독의 항의로 생긴 시간을 통해 푸에르토리코와 대한민국 모두 다음 타석에 대한 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 서로의 작전 중 누구의 작전이 더 뛰어난지 겨루어볼때가 되었다.
[자, 다시 경기가 재개됩니다. 2사 1루 상황에서 서건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데요.]
[바로 뒤가 박유성 선수인만큼 어떻게든 출루를 해야하는데요.]
[1점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푸에르토리코 타선을 생각하면 불안한 리드죠.]
[그렇죠. 하지만 박유성 선수라면 확실하게 리드를 벌려줄 능력이 있으니깐요. 서건수 선수는 어떻게든 출루를 하려고 할겁니다.]
- 살아나가면 까방권 줄게.
- 200안타 치던 그 감으로 때려라!
초구부터 서건수는 스윙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 변화구가 날아왔기에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직구를 노리나?'
그렇다면 일단 하나 뺀다.
스트라이크를 잡았기에 불리한건 없다.
일단 상대의 의중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성은 몰리나를 주시했다.
뒤에 자신처럼 뛰어난 타자가 있다면 상대는 그 앞 타자를 막기 위해 모든 수를 사용할테니 자신은 그것을 보다가 자신의 타석때 한번에 정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럴려면 서건수의 출루가 필수적이지만 일단은 운에 맡길 뿐이었다.
"후..."
2구째를 겨우겨우 참아냈다.
너무 직구를 노린다는 인상을 줬던건지 2개 전부 변화구가 들어왔다.
김태곤이 말한 3구째가 바로 다음 공이었다.
아마 다음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들어올 것이고, 그 다음은 볼것도 없이 커터일 것이다.
'역시 직구를 노리나 보군. 그렇다면 커터를 꺼내볼까.'
'다음은 직구일 확률이 높으니 휘두른다.'
그렇게 이어진 3구째 커터에 서건수는 놀랐으나 스윙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역으로 더욱 힘을 실었다.
빡!
[쳤습니다! 배트 부러지고, 아! 공이 배트 맞고 튕겼습니다!]
[뒤늦게 잡아서 1루로! 하지만 주자는 이미 들어와있습니다!]
"어우 겨우 살았네."
"수고했다. 뒤는 녀석들이 알아서 해줄꺼야."
"그래야죠."
행운이 겹치며 이제 2사 1,2루의 찬스에 타자는 유성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네요. 배트가 부숴졌는데 하필 공이 그 부숴진 배트로 향한 덕분에 공이 튕겨서 주자 올세이프가 되었습니다.]
[린도어의 수비가 정말 좋았습니다. 발이 느린 타자였으면 아웃을 당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말이죠.]
[3루의 코레아가 원래 유격수인데 린도어 때문에 3루로 갔을 정도니깐요.]
그 사이에 유성이 배트를 들고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첫 타석에는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지만 이후 공을 지켜보면서 투수를 어떻게 공략할지 답을 찾아온 유성은 몸을 가볍게 풀며 타석에 들어섰다.
- 드디어 왔다!
- 갓유성님 이번에는 칠 수 있죠?
[야구팬들이 기다리던 그 선수가 드디어 타석에 들어서네요.]
[이번 대회에서 6경기 7홈런에 타율이 7할이 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대회 첫 삼진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 7홈런에 7할 치면서 단 1삼진
- 진짜 사람이냐...
모두가 감탄하고 있는 가운데 몰리나는 한숨이 나왔다.
가장 만나기 싫던 찬스 상황에서의 박유성을 만나게 되었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잡아야하나..."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덤벼. 아니면 고의사구로 거르던가."
"...좋아. 승부해주마."
갑자기 유성이 말을 걸어와서 순간 움찔한 몰리나였지만 유성이 영어가 가능하다는 점을 떠올리고는 승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성이 상대라면 어중간한 공을 던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투수도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유성은 초구가 아슬하게 빠지는 직구인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몰리나의 프레이밍이라면 스트라이크가 될 확률이 높았다.
실제로 가만히 지켜본 초구가 프레이밍으로 인해 스트라이크가 되면서 유성은 고민에 빠졌다.
2구째도 아슬한 공을 던져서 프레이밍으로 처리할테니 차라리 과감하게 타격하는게 더 좋아보였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2구째에 유성은 망설임 없이 스윙을 시작했다.
딱!
[쳤습니다! 이 타구는! 크게 그리고 저 멀리 날아가면서! 국민들의 염원에 보답하며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박유성의 쓰리런!]
분명히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지는 공이었는데 유성은 그것을 그대로 때려버렸다.
저 멀리 날아가는 공을 보며 몰리나는 허탈감을 느꼈다.
괜히 괴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지켜보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확신했다.
"후... 1억불로는 모자라겠어."
"그러게. 다저스나 양키스 같은 곳에선 2억불을 꺼낼지도 모르겠어."
유성의 쓰리런으로 1대0의 스코어가 4대0으로 바뀐 가운데 여전히 대한민국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음... 할말이 생각 안 나니 이번 후기는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