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 - 2017 WBC BIG4 -->
1회 말로 이어진 경기.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발을 꼽자면 장원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오늘 포수 마스크를 쓴 김태곤은 준비한대로만 리드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푸에르토리코가 1회 초에 보여준 퍼포먼스로 인해 부담감이 생기고 말았다.
"떨린다."
"나도 떨려."
"아니, 진짜 저 형 밖에 안 보여요."
"야, 니가 그러면 어떻게 하냐. 나도 지금 복잡한데."
"하암, 걍 맞아요. 알아서 잡아줄테니깐."
"응?"
둘이서 덜덜 떨면서 마운드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조금 늦게 나온 유성이 지나가면서 한마디를 남기고 외야로 떠나갔다.
갑작스러운 유성의 말에 당황했지만 주위 선수들을 보며 배터리는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로 준비해온 전략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박유성 선수가 지나가면서 뭐라고 한거 같은데요.]
[덕분에 미묘하게 표정이 풀렸어요.]
[그게 보이나요?]
[네.]
- 이와중에 박사장님 평범한 인간 수준을 넘어버렸다.
- 미묘한 표정까지 구분하네.
오늘 장원정의 공은 이전처럼 좋았다.
그래서 그들이 오늘 준비한 전략은 간단했다.
사용하는 구종을 줄이는 것이었다.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역으로 사용하는 구종을 줄인 것이었다.
'첫 타자는 직구 3개.'
보통때라면 불가능한 리드지만 푸에르토리코 1번 타자의 성향 덕분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초구를 90% 이상의 확률로 지켜보는 성향이었기에 초구를 직구로 스트라이크로 잡은 그들은 2구째도 직구를 던졌다.
딱!
이번에는 반응을 했지만 로케이션에 신경쓴만큼 파울이 되었다.
계획대로 2스트라이크를 잡아낸 그들은 이제 3구째를 던지기 위한 떡밥을 깔았다.
사인 교환이 잘 안된다는듯 계속 고개를 저으며 시간을 질질 끈것이었다.
보통 시간을 길게 끌면 투수에게 불리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이야기였다.
이것은 타자는 물론 상대 벤치는 물론 한국 해설진들까지 속이는 영리한 플레이였다.
'몰리나 정도 되는 선수를 속일려면 이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3구째 무려 3연속 직구에 모두가 놀랐고, 타자는 반응했다.
딱!
[쳤습니다! 이 타구가! 2루! 2루가 잡아냅니다! 그리고 1루에서 아웃!]
[서건수의 호수비로 좋은 시작을 하는 대표팀입니다!]
"후. 너무 쫄리는데?"
"나도 무서워..."
"니들 좀 평범하게 해라. 보던 내가 식겁했다."
1루에서 공이 빠질 것을 대비해서 배터리는 모두 1루쪽으로 움직이면서 1루수 이대오까지 합세하며 방금 상황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기선 제압을 당했으니 갚아줄려면 이정도는 해야죠."
"뭐, 결과가 좋으니깐... 확실하게 막아줄테니 잘 해라."
"네."
그렇게 선두 타자를 땅볼로 잡아낸 장원정과 김태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두번째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지금 정말 과감했는데요.]
[3연속 직구라니 제가 한창때였어도 상상하기 힘든 볼배합이네요.]
[하지만 3연속 삼진으로 넘어갔던 분위기를 어느정도 가져올 수는 있었습니다.]
앞서 3연속 직구를 던진건 뒷 타자까지 한꺼번에 공략하기 위한 안배였다.
사실 3구째를 건드렸을때 김태곤은 순간 철렁했지만 땅볼로 처리한 덕분에 계획대로 리드를 할 수 있었다.
직구 3개를 보여주었으니 이제 변화구를 보여줄 시기였다.
'슬라이더?'
'아니. 그건 좀 아껴두자.'
'그러면... 체인지업은 어때?'
'그거 재미있겠는데?'
사인 교환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2번 타자에게 초구부터 체인지업을 던지며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과감함을 보여주며 푸에르토리코 타자들을 놀라게 했다.
"체인지업?"
"대단하군. 과감성도 있고... 구속만 더 빨랐으면 류처럼 메이저에 왔을지도 몰랐겠는데?"
하지만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푸에르토리코 벤치에서 2번 타자에게 사인을 보냈다.
훌륭한 피칭을 펼치는 상대 팀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어야했다.
"애초에 저쪽도 4강까지 올라온 팀이야. 그것도 전승으로 말이지. 대충할 생각은 하지말라고."
"그 정도는 알아."
벤치의 사인을 받은 2번 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벌써 대책을 가져온건 아니겠지...?'
미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와서 작전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잠시 타임을 외치고 살짝 풀려있던 장비를 꽉 매면서 작전을 다시 검토했다.
일단 체인지업을 보여줬다.
덕분에 3연속 직구도 약간은 희석되었지만 만약 푸에르토리코 벤치에서 나온 사인이 직구를 노리라는 것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후... 침착하자."
포수가 흔들리면 투수에게도 영향이 간다.
굳이 따지자면 2년간 호흡을 맞춘 양의정이 더 편하겠지만 이번 WBC 성적만 본다면 자신과 호흡이 더 잘 맞았다.
게다가 양의정의 도움으로 확실하게 짜온 전략은 아직까지는 통하고 있었다.
'모로가든 아웃만 잡으면 되니깐.'
2구째는 직구.
팡!
"스트라이크!"
타자는 전혀 반응도 안했다.
그렇다면 변화구를 노린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2스트라이크를 잡았다면 지금부턴 장원정의 턴이었다.
다시 한번 과감하게 찔러 들어오는 직구에 타자가 반응했지만 파울에 그치고 말았다.
'아무리 변화구를 노리고 있어도 2연속 직구가 날아오면 직구를 노릴 수 밖에 없지.'
3연속 직구도 이 상황을 위한 안배였다.
한번도 안 그랬으면 모를까 한번 보여준 이상 타자는 3연속 직구를 의식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직구를 노리는 타자에게 최고의 구종이 있었으니 바로
[헛스윙! 삼진 아웃! 2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장원정 선수!]
[지금은 볼배합의 승리네요. 체인지업을 보여주고 2연속 직구로 카운트를 잡고 다시 체인지업. 이를 위해서 1번에게는 3연속 직구를 던졌고요.]
[2라운드 쿠바전때도 그랬지만 장원정 선수와 김태곤 선수의 호흡이 정말 잘 맞네요.]
사실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으로 지금의 모습을 포장하기는 힘들었다.
장원정은 경기 초반에 약한 모습을 보이던 투수였기 때문이었다.
- 베어스 온 뒤부터 장꾸준이라 불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알던 그 롤코 모습은 어디 갔냐?
- 야 다이노스 이길려면 김태곤을 영입해야하는거 아니냐?
- 다이노스 최고 선수는 알고보니 김태곤.
국가대표란 그런 것이었다.
평소라면 만들어지기 힘들었던 조합이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새로운 시너지가 발휘되는 것이었다.
[일단 두 타자는 잘 잡았는데요. 개인적으로 지금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앞선 타자들은 메이저와 마이너 사이라고 할 수 있는 타자들이었는데 지금부터는 확실한 메이저리거들이니깐요.]
- 본방은 지금부터라는 소리잖아.
- 코레아 삼진 당해주면 명예 한국인 시켜줄게.
- 홈런 치면 니탓.
"코레아라..."
메이저리그에서 20홈런을 때려내는 선수는 많지 않다.
지금 타석에 들어서고 있는 선수는 무려 2년 연속 20홈런을 때려낸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많지 않아요. 아시아 타자 중에서는 추신소 선수가 유일한 선수일정도로 말이죠. 타율이 비록 3할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 풀시즌을 치룬지 2년된 선수라고 생각하면 뒤에 들어설 벨트란, 몰리나와 함께 가장 경계해야할 타자입니다.]
- KBO에서는 20홈런 타자가 몇이나 되더라...
- 20명 넘었지...
- KBO에서 MLB로 갔을때 성적 떨어지는걸 감안하면 오자마자 30홈런 때릴 수 있다고 보면 되나?
- 좀 더 써서 35홈런 정도?
- 그럼 작년 기준 4명 밖에 없는데.
[리그 수준 차이라고 해야할까요.]
[좋게 말하면 리그 수준 차이고, 나쁘게 말하면 격의 차이죠.]
- 박사장님 직설적인거 보소.
- 그런대 사실이라는게 함정.
- 이대오만 봐도 성적 변하는게 보이니깐...
"지금부터는 경계 대상이니깐... 일단 직구 하나 보여주자."
들어와도 좋고 빠져도 좋다.
몰리나처럼은 아니라도 김태곤도 KBO에서 프레이밍이 괜찮은 편인 포수였다.
'몰리나처럼 하지는 못해도 조금씩 움직이는건 할 수 있어.'
애초에 몰리나가 사기수준으로 뛰어난것이기에 김태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초구는 볼이 되었다.
'죄송해요.'
'괜찮아.'
장원정도 몰리나의 프레미잉을 보았기에 김태곤의 프레이밍으로는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초구가 볼이 되었으니 다음은 스트라이크를 잡는게 좋았다.
선구안이 안 좋은 타자면 유인구를 적극적으로 쓰겠지만 코레아는 그런 유형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슬라이더 하나 보여주죠.'
'그래.'
장원정의 주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슬라이더가 제대로 들어가면서 볼카운트가 1S-1B로 맞추어졌다.
슬라이더의 등장에 코레아는 장원정의 구종을 떠올리며 다음 공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방금 공까지 9개 중 6개가 직구. 비율을 본다면 직구지만 볼 배합을 생각하면 체인지업의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직구 구속이 90,91마일 정도 나오는 투수였다.
직구와 체인지업의 구속 차이가 크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피드가 느렸다.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이건 느린 볼이지."
딱!
[빠져나가는 타구!]
[우익수 앞 안타가 됩니다.]
[체인지업이 잘 떨어졌는데 잘 받아쳤네요.]
- 저걸 치네.
- 코레아 아까 구속 보고 웃던데.
- 느려서 미안하다...
2사에 주자를 내보낸 대한민국 대표팀.
주자는 1루에 멈추었기에 뒷 타자를 잡아낸다면 괜찮았다.
문제는 그 타자가 보통 타자가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이 타자는 코레아보다 더 위험해.'
원종헌, 오승훈처럼 150이 넘는 강속구를 보유한 투수들이 나왔다면 막아낼 수 있겠지만 장원정의 최고 구속은 145 정도였다.
5KM는 마일로 환산하면 3마일 정도가 된다.
KBO에서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막상 5KM가 모자라게 되자 김태곤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팡!
"스트라이크!"
직구와 슬라이더는 오늘 최고 수준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다.
체인지업도 둘보다는 못해도 괜찮은 모습이었다.
문제는 아직 꺼내지 않은 커브였는데 커브도 나쁘지는 않지만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아낄 수는 없었기에 1스트라이크로 카운트를 잡은 지금 사용하기로 했다.
[헛스윙! 커브에 속아넘어간 벨트란입니다.]
[지금은 운이 좋았네요. 직구, 체인지업, 슬라이더 중에 뭐가 오든 때릴 수 있는 타자지만 커브는 아직 본적이 없으니깐요.]
운이 따라주면서 2스트라이크를 잡아낸 김태곤은 다음 공을 고민하려다가 외야를 잠시 보았다.
"심심하다."
마침 유성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방금 타구도 우익수 방향인걸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하품이 더 크게 나고 있었다.
"...심심한가보네."
유성 덕분에 결정을 내린 김태곤은 직구 사인을 보냈다.
맞아도 좋다.
외야에 있는 저 선수가 무조건 잡아줄게 분명했으니깐
그래서 날아간 직구를 벨트란은 그대로 맞추었으나 어느새 펜스 근처까지 물러나 있던 유성이 잡아내며 1회 말은 0점으로 마무리 되었다.
[중견수 플라이로 벨트란을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무리 하는 장원정 선수입니다.]
똑같은 결과가 나온건 아니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흐름이 넘어가는 것은 막아냈다.
========== 작품 후기 ==========
1회 초랑 말로 2화 분량 채운거 사실입니까
편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WBC 챕터를 나눠야겠습니다.
다음화는 낮에 올라갑니다.
새벽에 써도 되지만 새벽에는 글이 잘 써지는 대신에
귀찮음도 강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