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을 부수는-139화 (139/300)

<-- Chapter 28 - 2016 한국시리즈 -->

[제 1구.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습니다.]

[바깥쪽 꽉차게 들어왔는데요.]

[여기서 나범성 선수를 출루 시키면 뒤에 박유성 선수가 있으니깐요.]

[어떻게든 막아야하니 전력으로 던지고 있는거죠.]

- 제발 출루 좀 해라.

- 오늘 출루하면 미미라고 안 부를게.

이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범성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손꼽힐 정도로 침착하게 승부를 하고 있었다.

"후..."

그래도 제구력이 좋은 장원정이다보니 역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좋은 공이 들어왔다.

하지만 범성은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자신이 이정도 부담을 받을 정도라면 베어스 배터리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말이었다.

'빠르게 가자.'

'네.'

2구째도 다시 스트라이크를 잡을 생각으로 공을 던진 장원정은 2구째가 아슬하게 볼이 되자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초고속 카메라로 잡아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순간적인 것이었지만 극도로 집중을 하고 있던 범성은 볼 수 있었다.

'흔들린다.'

그런 얼굴을 본 이상 범성은 3구째를 과감하게 지켜본다는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범성의 인내에 보답하듯 3구째는 다시 볼이 되었다.

[1S-2B로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기 시작한 나범성 선수입니다.]

[4구째가 어떤 공이 되느냐에 따라 이 승부가 갈릴텐데요.]

'침착해.'

'후...'

과연 국가대표 투수와 포수는 폼으로 얻는 것이 아닌지 금방 냉정을 찾은 베어스 배터리는 4구째를 과감하게 존 안에 들어가는 유인구로 던지며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범성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범성에게는 지원군이 있었는데 대기 타석에 쭈그려 앉아서 공을 지켜보고 있던 유성이 일어나서 스윙 연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등을 지고 있기에 볼 수 없는 양의정과 달리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장원정은 그 존재를 확인하고, 순간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제구를 유지한 장원정이었으나 5구째가 볼이 되면서 풀카운트가 만들어졌다.

[자, 풀카운트가 되었는데요.]

[공 하나의 결과에 따라 박유성 선수 앞에 주자를 2명 놔두냐 3명 놔두냐가 결정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사인 교환이 길어지고 있는데요.]

범성이 왠만한 공에는 안 속는 것을 확인했기에 베어스 배터리 입장에서는 가장 확실한 공을 골라야했다.

'이건 2번이나 안 속았잖아.'

'그럼 이건?'

'오늘 이건 감각이 안 좋아.'

둘의 사인 교환이 길어지자 범성은 타임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대기타석의 유성에게 향했다.

"유성아. 다음 공 뭐가 올꺼 같냐?"

"음... 범성이형이 변화구를 다 참아낸 덕분에 저쪽도 선택지가 줄어들었어."

그렇게 말하며 잠시 베어스 배터리를 본 유성은 다음 공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직구가 올거야. 그걸 커트해도 좋고, 안타를 때려도 좋아."

"...좋아."

유성에게 다음 공에 대한 조언을 들은 범성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어린 후배에게 물어보는게 부끄럽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후배가 역사상 최강의 타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애초에 자신보다 어린 선수에게 조언을 받았다고 부끄러움을 느낄 선수는 다이노스에 없었다.

그렇게 타석에 들어선 범성은 유성의 말대로 6구째 직구를 노렸다.

그리고 유성의 예상대로 베어스 배터리의 6구째는 직구가 날아왔다.

딱!

[쳤습니다! 2루수 따라가서 잡... 잡지 못했어요!]

[뒤늦게 잡지만 그 사이에 주자 올 세이프! 드디어 무사 만루의 찬스가 만들어지는 다이노스!]

"미안."

"아니, 괜찮아. 승부를 질질 끌고간 내 잘못이지."

한편 베어스 벤치에서는 유성을 거를것인지 말것인지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거르죠. 2,3점 정도는 타선이 어떻게든 뽑아줄겁니다."

"아니요. 오늘 다이노스는 작정하고 전부 투입할겁니다. 단 1점도 쉽게 줘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승부하면 저녀석은 분명 못해도 2점은 뽑아낼겁니다."

"음..."

유성이라는 타자는 너무나 두려웠다.

그들이 현역일때도 본적 없던 유형의 타자였기에 더욱 유성은 경계해야하는 타자였다.

[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데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만루 찬스에 타격 기회를 얻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이번에도 베어스가 거를것인가가 관건인데요.]

[거르면 1점을 주게 되지만 뒤를 막을 확률이 높고, 반대로 승부를 하면 0점으로 막을 확률도 있습니다만 4점을 내줄 확률도 있습니다.]

- 이번에는 승부 해라.

- 더 추해지기 전에 걍 얻어맞고 쓰러져라.

"그냥 붙으라고 해."

"감독님."

"저녀석을 5경기씩이나 묶어 놨는데도 3승 2패로 밀리고 있어. 애초에 다이노스가 강했다는 이야기지."

"하지만..."

"게다가 내년이 있으니깐."

그렇게 무사 만루의 상황에서 유성을 상대하게 된 베어스 배터리는 이전 타석보다 더욱 집중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막는다.'

'일단 인사부터 하자고.'

유성이 초구를 대부분 지켜보는 데이터에 따라 초구로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으며 승부를 하겠다고 유성에게 알렸다.

[초구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이 공의 의미는 확실하죠. 승부를 하겠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렇죠. 5차전까지만 해도 초구부터 볼을 던졌는데 이번에는 드디어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던졌습니다.]

"드디어..."

나름 감동한 유성은 2구째를 가만히 지켜보고 3구째를 커트해내며 2S-1B의 카운트를 만들었다.

"어째 느낌이 쎄한데..."

다만 이로인해 베어스 배터리는 유성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홈런이네."

"응? 아직 공도 안 던졌는데?"

"감이라는게 있어."

그 말대로 4구째 바깥쪽 존 밖으로 빠지면서 볼이 될려는 공을 유성은 스윙을 했고, 그것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딱!

[쳤습니다! 이 타구는 모두가 짐작하는대로! 담장 밖으로! 멀리! 날아갑니다!]

[그랜드 슬럼!]

[6차전 시작부터 다이노스가 리드를 잡아냅니다!]

- 드디어 승부했더니 홈런으로 보답하네.

- 박유성이 얼마나 사기캐인지 알 수 있는 장면.

1회 말 4점의 리드를 얻어낸 다이노스는 2회부터 더욱 기운을 올려서 베어스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스튜어트도 베어스 타선을 차례차례 무너트리며 이닝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저 홈런이 단숨에 경기를 기울게 만들었고, 동시에 다이노스 타선을 깨웠네요.]

[1회 4점, 2회 1점, 3회 2점으로 단 3이닝만에 7점을 뽑아낸 다이노스입니다.]

[결국 장원정 선수는 2.2이닝 6실점을 기록하고 강판 되었습니다.]

- 이겼다 이건

- 7대0이면 볼것도 없지.

완벽하게 경기가 기울어진 가운데 베어스 선수들도 경기를 반쯤은 포기했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이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경기는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딱!

[쳤습니다! 5회 초 드디어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는 베어스!]

[4이닝동안 잘 막던 스튜어트가 5회 들어와서 흔들리기 시작했는데요.]

[승부가 기울어지다보니 긴장이 풀린거 같죠?]

[아무래도 그런 감이 있죠.]

득점권에 주자를 보낸 상황에서 기세가 오른 베어스 타선을 막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스튜어트는 단 1점만을 허용하는 환상적인 피칭을 펼치며 5이닝 1실점으로 등판을 마쳤다.

[1차전 7이닝 무실점, 6차전 5이닝 1실점. 합해서 12이닝 1실점의 환상적인 피칭을 펼친 스튜어트가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베어스는 진작에 불펜을 가동했는데요. 그래도 2.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어떻게 희망을 살려두기는 했습니다.]

- 애들 뭐 잘못 먹었나?

- 지고 있으니깐 잘 던지네.

- 다이노스 빠따가 식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5회가 끝난 시점에서 스코어는 7대1.

완벽하게 다이노스가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6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6회 초 다이노스의 2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선수는 구청모입니다.]

[이번 시즌에 좋은 피칭을 펼쳤죠?]

[네. 덕분에 다음 시즌에 더욱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요.]

- 차근차근 막자!

문제는 그가 아웃 카운트를 2개 밖에 잡아내지 못하고 2점을 허용한 상태에서 주자를 2명 더 놔둔채 강판을 당하고 말았다는 점이었다.

[5회 초를 시작으로 베어스 타선의 기세가 제대로 불타올랐습니다. 어느새 스코어 7대3으로 추격을 하고 있고 2아웃에 주자가 2명 더 나와있는 상황인데요.]

[여기서 잘해야합니다. 까딱하면 단숨에 1,2점차까지 추격을 당할 수도 있어요.]

이어서 등판한 투수는 김진호였다.

김진호의 경우 다이노스 불펜진 중 유일하게 100K를 달성할 정도로 뛰어난 삼진 능력을 과시했었는데 시즌 막판에 체력이 떨어져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고, 지금도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딱!

[안타!]

[3루 주자는 홈에 들어오고, 1루 주자는 2루 돌아서 3루... 아! 미끄러졌어요!]

[3루 승부! 아웃! 1점을 더 내주었지만 이닝을 마무리하는 다이노스!]

- 와 슬슬 점수 뽑아내야겠는데...

- 3이닝 남았으니깐 2,3점 정도는 뽑아야 안심하겠는데...

6회 말로 접어드는 가운데 7대4의 스코어를 본 다이노스 타자들은 다시 한번 집중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베어스가 죽기살기로 덤벼들고 있는만큼 다이노스도 맞대응하듯 승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출루만 해봐."

만루 홈런을 친 뒤에 안타를 하나 때려낸 유성은 5경기동안 하도 고의사구를 당하다보니 이제는 고의사구가 어디로 날아갈지 예측하는 경지에 올른 상태였다.

그렇기에 유성은 다른 타자들에게 출루를 주문했다.

"걱정마. 어떻게든 다시 채워줄테니깐."

그렇게 말하며 박민병은 몸에 맞는 볼로 출루에 성공하였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대타 이종박이었다.

1회 만루 홈런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았기에 지금 자신이 해야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던 그는 새로 올라온 베어스 투수의 공을 끈질기게 건드리면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어갔고, 기어코 안타를 때려내며 출루에 성공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자 일부 관중들은 1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 이거 또 만루 만들어질꺼 같지?

- 오늘 범성이 타격감 좋으니깐 쉽게 덤비기도 힘들테니...

"볼! 포볼!"

[결국 다시 만루가 만들어지고 맙니다! 심지어 만루 찬스를 잡은 타자는!]

[1회 만루 홈런을 때려냈던 박유성입니다!]

경기는 점차 클라이막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전작의 선작을 뛰어넘었네요.

과연 선작 2천의 벽을 넘길 수 있을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