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67화 (167/176)

두 번째는 없다

“모든 걸 다 알고 왔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루치오 페카툼.

마법사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는 나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내가 교황청에 들어가 금지된 약물을 제조해냈고, 그것으로 이능 신관을 대거 육성했으며.”

“파문당한 후에는 칼 오프러스 대공의 사냥개 노릇을 하며 에스닐의 왕자들을 암살했는지그 이유를 다 알 테니까!”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자 루치오는 피를 토하듯 말했다.

“에스닐, 빌어먹을 해로드 왕조야말로! 우리 가문의 숙적이라는 것 외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소!”

* * *

이백 년 전.

알레스 교단이 다른 모든 종교를 제압하고 대륙의 유일무이한 종교로 추앙받게 되었을 무렵.

교황은 교권이 각국의 왕권을 제치고 모든 나라의 머리 위에 우뚝 설 방법을 찾아냈다.

‘마법사들을 사냥하는 거다!’

당시 마법은 여전히 학문화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로, 일부 가문들 사이에서만 전해져 내려왔으나.

교단 입장에서는 ‘신성’이라는 것의 절대성을 의심케 하는 수상스러운 신비한 힘이었을 뿐더러.

일부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마법사들은 왕의 오른팔이 되어 전쟁이나 음모, 암살 따위에서 판을 뒤집는 역할을 했다.

‘마법사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대신 그 힘을 우리 교단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렇게 본격적인 마녀 사냥이 시작되었다.

교황의 주도로 교황청에서 시작된 이 전대 미문의 사냥은, 교황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에스닐을 시작으로 하여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심문의 방법은 다양한 동시에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몸에 돌을 매달아 물에 던져버려 익사시키거나, 혹여 뜬다고 해도 ‘마녀’로 낙인찍어 사형.

달궈놓은 철판 위를 걷게 하여 고통으로 죽게 하거나, 죽지 않는다면 ‘마녀’로 판별하여 사형.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찾아볼 수 없는 심문이었지만.

‘주변에 기이한 힘을 쓰는 마녀 혹은 마법사를 찾아낸 자에게 포상금을 준다.’

신고한 이에게 포상금을 줬을 뿐 아니라, 마녀 혹은 마법사로 판명된 이의 재산을 몰수하여 영주와 심문관, 교단이 사이 좋게 나눠가졌다.

피해자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가 수지맞는 ‘사업’이나 다를 바 없었던 마녀 사냥의 구조 때문인지, 그간 쌓여 있던 분노와 광기가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이웃집의 저 빌어먹을 계집이 사실은···.’

‘옆동네 푸줏간의 누구가···.’

‘우리 마을의 성주님이 밤마다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르는데···.’

평소 원한이 있던 누군가를 고발하는 것은 물론이요, 정적을 제거하는 데에 아주 훌륭한 구실이 되어주었다.

그리하여 ‘진짜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마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들을 비롯 십여만 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페카툼 가문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 들어서였다.

한때 대륙 최고의 마법사 가문으로 추앙받으며 대대손손 관련 지식을 전승해왔지만, 마녀 사냥 당시 구성원 대부분이 참수당했으며.

살아남은 몇몇 자손은 ‘마녀의 자식’이라는 오명 아래서 백정으로 강등당해 빈민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백정 일을 했던 그의 아버지는 어느 사창가 여인에게서 루치오를 보았다고 했다.

‘루치오, 잊어서는 안 된다. 너는 대륙에서 가장 위대했던 마법사의 후손이다.’

루치오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그는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마녀 사냥에 관한 끔찍한 기록들이 인위적으로 지워지고, 그 사건을 다뤘던 책들이 모두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산 자들의 머릿속에선 아예 없었던 일처럼 흐릿해졌을 시점 말이다.

‘마법사라뇨? 그게 대체 뭐예요 아버지?’

‘네 조상들은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다루던 분들이었지.’

‘이능 말이에요? 알레스 신의 기적이라 불리는-’

‘신성 따위가 아니야! 그딴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이란 말이다!’

루치오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이따금 보였던 기묘한 힘이, ‘이능’이 아니라 마력임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후 아버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조상들의 마도서가 숨겨진 비밀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네가 누구의 후손인지 잊지 마라.’

‘네가 이 힘을 이용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지 말아라.’

마력을 일절 타고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던 아버지는, 저와는 달리 재능이 있는 루치오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랐다.

···다름 아닌 마녀 사냥의 역사를 만천하에 밝히고, 교단과 에스닐에 피의 복수를 하는 것!

루치오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마도서를 읽으며 내 나름대로 마법을 익혀나갔소.”

“그 결과, 대륙에 있는 그 어떤 이능자들보다도 그 힘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

“마도서를 익히는 동안 용병으로 근근이 생활했던 나는, 마법을 다 익힌 후 본격적으로 교단에 접근했고··· 그다음은 당신이 아는 대로요.”

이능 신관으로 채용되었고 ‘기억 조작’의 힘을 이용해 승승장구했으며 결국에는 추기경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거였다.

가만히 루치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어딘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마도서를 읽으며 마법을 익혀나갔다라.’

판타지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몇 서클 하는 것처럼 학술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론적인 뒷받침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굳이 ‘이능자 약물’로 이능자 부대를 만들려고 한 것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자 놈이 곧바로 대답했다.

“아무리 추기경이라 해봤자 바닥에서 올라온 빈민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지. 내게 주어진 실질적인 권력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소.”

“내부 고발을 한다면? 그래도 당신을 지지하는 무리가 있었을 것 아닌가?”

루치오는 코웃음을 쳤다.

“뭐, 마녀 사냥로 인해 마법사들의 존재가 역사에서 지워졌다고 말이오? 퍽이나 그 말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있겠군.”

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첫째는 그 말대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해줄 ‘무력 집단’을 손에 넣고, 이들의 힘을 이용해 교단과 에스닐에 복수하기 위해.

둘째는···.

“이능이 신의 기적이 아니라 마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소.”

그렇게 가까스로 완성된 이능자 약물은 가장 신실하고도 빈곤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투입되었다.

절반은 사망했고, 나머지 절반은 미쳐버렸으며.

살아난 이들 가운데서도 소수만이 이능, 아니 ‘마력’을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교단의 훌륭한 재산이 되었소. 덕분에 교황청에서 내 지위는 점차 공고해졌지.”

거기까지는 순탄하게 흘러갔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평소 교황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 반 교황파들이 내게 밀정을 붙였고, 내가 교황의 허가 아래서 금지된 실험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지.”

“그 전만 해도 나를 전격 신임하던 제수알도 3세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단번에 나를 밀어냈소. ···한마디로 ‘꼬리 자르기’를 당한 것이지.”

“나는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파문 성직자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소.”

이후 루치오는 자신을 써줄 위정자를 찾아 헤맸으나 파문당한 성직자를 달가워하는 권력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그때, 칼 오프러스 대공을 기적처럼 만나게 되었지.”

대공과 그는 여러모로 목적이 같았다.

루치오의 복수 대상이 교단과 에스닐이라면, 대공은 에스닐에 여러모로 언짢은 것이 많았으니까.

“우리 두 사람이 합의를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거요.”

그때를 회상이라도 하듯 루치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에스닐의 이언 왕세자, 에르곤 왕자를 암살하라고 사주했던 게 과연 누구일 것 같소?”

마치 과거의 업적을 떠올리듯 얼굴 가득 미소가 완연한 중년 사내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그의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가는 광기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야.’

그러한 속내를 티내지 않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다니, 무슨 소리요?”

“칼 오프러스 대공이 당신의 마법에 현혹되어 그들을 암살했다고 여기냐는 거다.”

루치오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빤히 마주 보았다.

“그게 무슨···. 여태껏 내 마법에 걸려들지 않은 자는 당신을 제외하곤 없었소.”

“어쨌든 예외는 예외인 셈이지. 나 같은 자가 정말 나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하나?”

“···!”

루치오는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대공 또한···.”

“그래. 나와 마찬가지로 무력화 이능자다. ···너야말로 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의미이지.”

루치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절망감 때문일까. 잔뜩 주름진 얼굴은 아까보다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사내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세자르 공, 나를 법정으로 데려가주시오. 당신에게 얘기한 모든 것을 털어놓겠소.”

“···.”

“법의 심판 아래서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달갑게 받겠으니···.”

루치오는 등 뒤에서 손이 묶인 자세 그대로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나를 제발 살려주시오.”

이윽고 고개를 든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죽음을 각오한 담담한 얼굴이라기보다는, 내가 그를 죽이지 않고 무사히 ‘법의 보호망’ 속으로 데려다 주리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것을 보고 나니 다시금 확신이 들었다.

“아니.”

“···뭐라고?”

“널 죽이는 건 나다.”

루치오의 눈이 커졌다.

“법의 심판? 웃기고 있네. 네 속셈이야 뻔하지. 재판관들에게 마법을 쓰고, 그들의 정신을 오염시켜 네 권속으로 만들 생각이려나 본데. ”

“자, 잠깐···.”

나는 권총을 들어올려 그의 얼굴을 겨눴다.

“나는 널 놔줄 생각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려던 순간!

단검이 검집 째로 날아왔고.

캉!

그대로 내 손에 부딪치며 내가 쥐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건···.”

“네놈이 지닌 무력화의 힘.”

어느새 밧줄을 풀은 걸까.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루치오가 벽에 걸린 세검을 집어들었다.

“그건 그래 봤자 네놈을 대상으로 하는 마법에 한정된 것일 뿐, 내가 나를 향해 쓰는 마법까지는 무력화시키지 못할 거다.”

“···!”

바로 이거였구나.

아까 느낀 그 싸한 감각.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그 찝찝한 기분은···.

“설마, 마법사 가문의 후예인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이 고작 ‘기억 조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그가 다른 종류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밧줄을 풀고, 숨겨둔 단검을 꺼내어 쥐고 있었던 걸까.’

나는 아까 단검에 부딪힌 탓에 여전히 얼얼한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스릉-.

아다만티움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며 서늘한 소리를 냈다.

“이번만큼은 내 허를 찔렀음을 인정해주지. 하지만···.”

오랜만에 쥔 검의 촉감은 나를 안도시켰다.

오히려 나 또한 한 발의 탄환으로 상대를 즉사시키기보단, 검술로 저자의 목숨을 끝장내는 것이 이 기나긴 이야기에 더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거다. 그 점만큼은 약속하지.”

그와 동시에 내 검이 부웅- 하고 허공을 갈랐다.

한때 검술만이 유일한 밥벌이였던, 제법 이름난 검객이자 지금은 파문당한 미친 추기경.

전생에 검에 미쳐 살았으며 두 번째 삶 또한 검술로 덕분에 변곡점을 맞이한 최연소 궁내장관.

그 둘 사이의 진검 대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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