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61화 (161/176)

루치오의 비밀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한 앨빈이 얼른 본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2백 년 전, 대륙 전체를 휩쓴 광기의 마녀 사냥 사건으로.

“잠깐, 여기서 말하는 ‘마녀’가 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여자들만 잡은 건가?”

“아닙니다.”

앨빈은 고개를 젓더니 자신이 가져온 보고서를 내밀었다.

“여자들의 수가 많긴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적든 많든 마법을 쓰는 이들은 모두 교리에 어긋나는 ‘이단자’로 규단하고서 처형했습니다.”

“이단자라.”

“죄목은 사람마다 달랐지만, 정확한 기준이나 규범도 없었어요.”

그 말에 나는 내가 살던 세계의 마녀 사냥을 떠올렸다.

양상은 많이 다를지 모르지만, 정확한 규범도 없이 교단의 이해득실에 따라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다는 것만큼은 다르지 않다.

“···마법 사용자였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었다고 할까요.”

앨빈이 덧붙인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마법?”

“네. 지금이야 ‘마나’라는 개념이 아예 사장되었고, 역사 속의 이야깃거리로 치부되지만 그때는 전문 마법사들이 꽤 있었다고 하더군요.”

미래를 예지하는 마법사.

동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법사.

자연의 원소를 움직여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마법사 등.

‘마치 이능자들의 능력을 보는 것 같군.’

다양한 종류의 마법사가 존재했으며, 이들은 권력자들이 가신으로 삼고 싶어하는 1순위였다는 거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이 마녀 사냥의 대상이 된 거지?”

“한마디로 말해 알레스 신이 허용하지 않은, 소위 ‘악마의 힘’을 쓴다는 거죠.”

···악마의 힘이라.

나는 그 말을 읊조리며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화형이나 교수형에 처해진 이들 뿐 아니라 고문을 받다 숨진 이들까지 합한다면, 피해자의 규모는 거의 몇 만 명에 이르렀다.

우리 세계의 역사와 그리 다를 것 없는 학살의 역사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 대대적인 마녀 사냥이 끝난 후, 알레스 교단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신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라는 결말 아니야?”

“어, 어떻게 아셨죠?”

너무도 전형적인 수법이라, 대답 대신 한숨만 내쉬었다.

그때 앨빈이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 대륙 국가 중 마녀 사냥이 제일 극심했던 곳이 바로 에스닐이었는데요. 당시 에스닐 국왕이었던 파이슨 2세는 누구보다도 마녀 사냥에 앞장선 대가로 로안 동부지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로안 동부지대.

에스닐과 오프러스 공국 사이에 몇 번이나 오간 탓에 분쟁 대상이 된 지역이 아닌가.

그 시작점이 바로 이때였나 보다.

“그 후로도 에스닐은 승승장구하며 대륙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는데, 여기에는 교단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했죠. 때문에 파이슨 2세는 생후에 ‘신실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말이 좋아 ‘신실’이지, 결국은 마녀 사냥을 도운 대가로 먹음직스러운 떡을 받은 거래가 아니겠는가.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걸.

“여기까지가 제가 조사한 내용이고.”

앨빈은 카렌이 조사했다는 것 역시 보고했다.

“루치오 추기경 말입니다. 에스닐의 빈민가 출신에서 벼락 출세를 한 인물이라더군요.”

“에스닐의··· 빈민가 출신?”

“네. 그 자체도 신기한 일이지만 젊은 나이엔 검객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중년에 들어서야 이능을 발현해서 이능 신관이 되었다고 하네요. 여러모로 유능한 인물이었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으로도 모자라, 가장 엄격한 관료제나 다름없다는 성직자 사회에서 맨몸으로 추기경직까지 올라간 불세출의 인물.

그것이 루치오를 대변하는 신화였지만, 언제부턴가 루치오 추기경은 잊힌 인물이 되어버렸다.

“정확히 따지자면 20년 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무려 ‘파문’을 당한 뒤에 말이죠.”

그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란 ‘이능자를 만드는 약물’의 제조에 관련된 것일 테고 말이다.

···이제야 무언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대충 감을 잡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앨빈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루치오란 인물을 만나본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랑!”

“···네?”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 했을까.

루치오는 무려 대공 아래서 ‘이능자 육성기관’의 책임자로 일하지 않았던가!

“그랑이라면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얘기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하긴 그렇겠네요!”

“좋아. 루치오에 관한 정보는 그랑을 통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보고서를 한 번 더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이 마법이란 개념 말이야, 지금은 아예 사라진 건가? 직접 쓸 줄은 몰라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없다뇨, 제일 가까이에 두고 계시면서.”

“뭐?”

앨빈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농농 님 말입니다. 농농 님이 쓰시는 능력을 고대 종족들은 ‘마법’이라고 불렀으니까요.”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앨빈이 얼른 덧붙였다.

“농농 님을 바로 모셔올까요?”

* * *

며칠 만에 본 농농이는 어쩐지 광이 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자세히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 옷을 입고 있다. 그냥 어린애 옷도 아니고, 완전 고급 천에 금사로 자수까지 새긴 최고급 옷을.

“···옷은 누가 사준 거야?”

내 질문에 농농이는 까륵, 하고 웃더니 뭐라 뭐라 대답했고.

앨빈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을 옮겼다.

“공작 각하께서 사주셨다고 하는군요. 요즘 각하께서 매일 농농 님과 시간을 보내시더니, 선물을 아끼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어쩐지 손주 타령을 하더라니, 애한테 아주 단단히 빠졌구나.

“세자르 님더러 긴장하시라고 하는데요? 이러다 이 레핀 가문을 이어받는 것은 농농 님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든가.”

“농담이니까 화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이 없다는 듯 농농이를 마주 보자.

농농이가 두 눈을 반달처럼 휘며 눈웃음을 지었다.

[까륵!]

저 자식, 가만 보면 괜히 도발하고는 은근 눈치를 본다니까.

“농담은 그 정도 하고.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지.”

“아, 그건···.”

앨빈이 오는 길에 이미 얘기를 마친 터인지, 농농이가 청산유수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옹, 앙옹, 부아, 바구바구···.]

“제가 얘기했던 것처럼, 순간이동 역시 마법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금화를 만들어내는 것, 생명체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 역시 노움족이 쓰는 마법의 일종이라고요.”

호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후에도 농농이의 설명과 앨빈의 통역이 좀 더 이어졌는데, 그것을 종합하여 내린 결론은 대략 이랬다.

‘내가 판타지 소설 등을 통해 알고 있던 마법의 개념과는 좀 다른 개념인걸.’

주문이나 술식 같은 것은 없다.

마법의 사용자가 어떤 종류의 마나를 타고 났는지에 따라 마법의 발현 방식이 결정되며.

노움족은 보통 저 세 가지 중 하나만을 쓸 수 있지만, 농농이(본명 ‘빛처럼 빠른 자’ 아이다페올트)는 왕족인데다 마법에 뛰어난 편이라 세 가지를 모두 쓸 수 있는 거라 한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고 세자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자다, 라고 하십니다.”

“···앨빈, 그냥 네가 좀 알아서 필요한 말만 적당히 옮겨주면 안 될까?”

어쨌거나.

마법과 마나 개념에 관한 설명을 들을수록, 내가 아는 기존의 어떤 개념과 몹시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거 말야.”

그러한 의심을 확인받고자 화두를 던졌다.

“너희가 보기엔··· 이 마법이란 게 ‘이능’과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네?”

“무, 무슨 그런 불경한 말씀을!”

앨빈이 눈이 동그래졌다면, 평소 미신을 신봉하는 발닉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의 사고관으로는 ‘신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능을 감히 다른 무엇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도련님, 그런 말씀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천벌 받을 얘기를···.”

알레스 신이 전부 다 보고 계신다며 발닉은 다시는 그런 말도 꺼내지 말라며 거듭 당부했다.

앨빈도 정도는 달랐지만,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자르 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시는 건 좋습니다만··· ‘이능’을 의심하셔서는 안 됩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묻자 발닉은 또다시 기함했지만, 앨빈은 침착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이능을 의심한다는 건 곧 알레스 신의 신성을 의심한다는 의미이니까요.”

“···.”

세자르 레핀이 된 지도 몇 년이 지난 지금, 이제 웬만한 일로는 문화 충격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신앙 문제에서만큼 이들은 내가 아는 중세인의 사고관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이만 들어가 봐. 그리고 그랑을 좀 불러와줘.”

멀어지는 발닉과 앨빈, 농농이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도 시야 한켠에 남아 있는 도전과제 달성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했다.

[도전과제 ‘감춰진 역사’ 달성! - ‘만들어진 역사’의 진실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보상 ‘두루마리의 열쇠’를 수령했습니다.]

두루마리의 열쇠.

여기서 말하는 ‘두루마리’란 단 하나뿐이다.

나는 품속에 넣어두었던 가죽 두루마리를 꺼냈다.

···바로 얼마 전, ‘루치오 추기경의 금지된 연구 조사’와 ‘던전 입장’, ‘칼 오프러스 대공 포획’을 달성해서 받은 보상이었다.

두루마리에 달린 자물쇠가 절그럭거렸다.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집어넣자 안으로 쏙 들어간다.

봉인을 풀자마자 곧바로 두루마리를 펼쳐보았고.

‘이건···.’

그것은 다름 아닌 에스닐의 어느 가문 족보였다.

···무려 이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 * *

앨빈의 전언을 듣고 세자르 공의 집무실로 향하는 길.

그랑은 자꾸만 뒤돌아 도망치고 싶은 자신을 붙잡았다.

‘지금까지 아무 지시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공작저에서 지내기 시작한 것도 어느새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

처음만 해도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제법 오해를 샀지만, 소년은 어느새 이곳의 따뜻한 분위기에 잘 녹아든 터였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롯과 3형제가 가교 역할을 해준 것이 가장 컸으며.

‘네가 엇나가면 나까지 욕 먹을까 봐 그렇거든.’

늘 툭툭 쏘아뱉듯 말하긴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소년을 제일 먼저 챙겨주는 카렌도 한몫을 했다.

세자르가 별다른 임무를 주지 않는 사이, 그랑은 그녀 아래서 전문적인 밀정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덕분에 소년은 이제 제 이능을 쓰지 않더라도 제법 실력 있는 밀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세자르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자신의 성장을 알아봐주기를 간절히 기다렸건만.

‘막상 그분과 독대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아무래도 대공을 위해 일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일까.

소년은 세자르를 대하는 것이 묘하게 껄끄럽고 불편했다.

쿵쿵, 쿵쿵.

긴장한 탓에 세차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자.

“들어와.”

언제나처럼 무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랑은 용기를 내며 세자르의 앞에 가 섰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얼굴이 좋아 보이네.”

“···다 세자르 공의 은혜 덕분입니다.”

“이젠 빈말도 제법 할 줄 아는데? 그새 많이 컸어, 그랑.”

“···.”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랑이 어쩔 줄 모르며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세자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웬일로 바짝 얼어 있어? 나한테 삿대질하던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지?”

“그 얘기는 이제 그만···.”

“뭐 물어볼 게 있어서 부른 거니 긴장하지 말라고.”

그 말에 마음이 좀 편해진 동시에, 그랑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세자르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칼 오프러스 대공 각하랑은 달라도 너무 달라.’

공작저 사람들 말도 그렇고 제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소탈하기 그지없는 공자님이다 싶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순간, 세자르가 돌연 질문을 던졌다.

“너 역시 ‘이능자 육성 기관’에서 훈련받았나?”

이능자 육성 기관.

전혀 예상치 못한 화제에 그랑은 흠칫 놀랐다.

간신히 진정된 심장이 이제는 좀 다른 이유로 쿵쿵거리며 박동하기 시작했다.

“맞다면 그곳에 관해 자세한 경험담을 좀 들려줬으면 좋겠는대, 그리고···.”

이제 그랑은 제 표정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표정 관리는 둘째 치고 온몸이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온몸을 잠식하는 불안감, 숨통을 죄어오는 듯한 공포감!

“루치오 전 추기경을 알고 있나?”

‘루치오’라는 이름이 들려오자, 고조되던 긴장감이 일제히 폭발함과 동시에.

‘그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 듯하다.

그 순간 눈앞이 빙글 하는 기분과 함께 그랑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어? 왜 그래? 그랑!”

그랑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당황한 세자르의 외침이, 이미 의식을 잃은 소년의 귓전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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