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세 방만
* * *
나와 디터는 아이들을 한 명씩 들쳐업고 원장실을 뛰쳐나왔다.
아이들은 다행히 눈치 있게 우리의 등에 딱 달라붙어 있었지만.
···이런 소란을 바깥에서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다들 잡아라! 퍼킨스 자작 부부가 탈출한다!”
우리 앞뒤로 무기를 든 수도사들이 잔뜩 포진했다. 이들은 대부분 정식으로 무예를 배운 전투 수도사들로, 개개인의 실력만 따지면 웬만한 상비군 병사보다 낫다고 들었다.
‘그러니 섣불리 덤벼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좁다란 복도 안에서 포위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택한 방식은.
“디터, 내가 앞을 맡을 테니 네가 뒤를 맡아라.”
“네.”
···강행돌파였다.
“막아!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검을 들고 달려오는 수도사에게-
탕!
나는 그대로 ‘절대 빗나가지 않는 권총’을 쐈다.
“크악!”
···단, 다리나 발만 노려서.
‘이 권총은 사용 조건이 여러모로 까다롭지.’
일단은 나나 내 아군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에게만 쏠 수 있는, 일종의 방어용 무기라는 것.
상대를 죽일 경우 사흘간 기절하게 된다는 페널티도 붙어 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 아냐?’
내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크억!”
“악!”
다리나 발에 총을 맞은 수도사들이 신음하며 주저앉았지만.
총을 쓰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총성, 화약 냄새, 비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뒤에 선 디터에게 외쳤다.
“디터, 좀만 버텨!”
하지만 버틸 힘을 내야 하는 건 디터가 아니라 다른 쪽이었던 것 같다.
“무, 무슨 여자가 이렇게···.”
“괴물, 괴물이다!”
디터의 몽둥이가 붕붕 소리를 내며 공중을 가를 때마다 수도사들의 비명이 들려왔으니까.
그렇게 거진 대부분의 수도사들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며 복도 끝에 다다랐다.
‘이건 좋지 않은데.’
나는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슬쩍 내밀어 동태를 살폈다.
탁 트인 공간에 수도사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파악한 듯했다.
‘좁은 곳에서는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탁 트인 곳에서 포위된다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잠시 대기하는데.
파앙! 펑!
저 반대편에서 아군의 신호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만들이 성공했군.’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우리와는 달리, 저 바깥의 수도사들은 화들짝 놀랐지만.
“무슨 소리냐!”
웅성웅성.
수군거림이 커졌을 때, 바깥에서 보초를 서던 수도사 하나가 황급히 뛰어왔다.
“큰일났습니다! 왕실군이···.”
“뭐?”
“왕실군이 수도원을 포위했습니다!”
수도사들 사이에서 경악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홀에 가득 모여 있던 이들이 우르르 정문을 향해 몰려갔다.
‘리암들도 잘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 광경을 보며 나와 디터가 동시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다시 10분 전.
트리니다드 수도사들 사이에 섞여들어간 세 사람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이동했다.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으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 덕분에.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했다.
‘여기인가.’
우만의 속삭임에 다른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인질이 붙잡혀 있는 지하감옥이었으니.
계단으로 내려가자 햇빛이 아예 들지 않는 공간이 나왔다. 눅눅한 곰팡내가 코 끝을 찌르는 가운데, 거대한 석문이 세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길 어떻게 들어가야···.’
롯이 의문을 표한 순간.
우만이 그녀와 발닉의 손을 붙잡았고.
···그대로 석문을 통과했다.
‘헉!’
‘꺅.’
우만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둘의 손을 놔주었다.
문 너머에 앉아 감옥을 감시하던 수도사가 세 사람의 등장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 어···.”
“롯, 처리해라.”
롯이 즉시 날린 마비침에,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발닉이 얼른 달려가 그의 품을 뒤지는 가운데.
롯은 아직도 헉헉거리는 우만을 돌아보았다.
“두 명에게 동시에 이능을 쓰느라 힘드신 거죠?”
“···신경쓰지 마.”
“우만 님은 어째서··· 세자르 님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그 말에 우만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너는?”
“제게 세자르 님은 오빠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니까요.”
자신은 이유가 확실하다는 롯의 대꾸에 우만은 헛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
“세자르 덕분에 동생의 복수도 했고, 무엇보다···.”
우만의 눈동자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비쳤다.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으니까. 이 정도면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롯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어차피 의미도 없는 목숨이다. 그럴 바엔 뭐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편이 낫겠지.”
“저, 감상적인 대화는 나중에 더 나누시고.”
발닉이 제가 찾아낸 열쇠 꾸러미를 흔들며 씩 웃었다.
“인질부터 구출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수도원의 지하감옥에 잡혀 있던 인질은 총 서른 명. 싸울 힘이 없는 노인과 여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저희를··· 풀어주시는 건가요?”
수도사 복장을 한 우리의 모습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했지만.
에스닐 왕실에서 보낸 특수부대원들로 당신들을 구하러 왔다고 하자, 영지민들은 감읍하는 모양새였다.
“그럼 줄을 서서 조심히 따라오십시오.”
그들을 데리고 지하감옥에서 1층으로 올라왔을 때.
발닉은 준비해온 물건을 창 밖으로 던졌다.
“신호탄입니다.”
폭죽 같은 생김새의 물건은 한참을 날아가 저 멀리서 터졌고.
파앙! 펑!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함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신호탄이 터진 근방에서 소란이 이는 듯했다.
그 틈을 타 우만들은 얼른 인질들을 암문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롯과 발닉이 앞에서 이끌고, 우만이 후방을 맡았다.
‘누군가 알아채고 오기 전에 얼른···.’
수도사 무리가 작정하고 덤벼온다면 이 인원으로 인질까지 보호하며 싸우기는 무리다.
우만은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쿵덕거렸지만, 다행히 그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했고.
암문으로 수월하게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으나.
거기서부터 평지에 닿는 게 문제였다.
“여기를··· 내려가라고요?”
젊은 여인 하나가 두려운 기색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파르게 만들어진 계단.
그 양옆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네, 조심해서 내려가야 합니다.”
우만은 저 위쪽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망루에 보초를 서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조용히 가지요.”
소리를 내면 위험하다, 라는 말에 영지민들은 입을 합 다물었다.
여인들이 노인들을 부축하며 내려갔다.
몇 없는 남정네들이 어린 아이들을 업거나 안은 채 내려갔고.
우만 일행이 그들을 엄호하며 뒤따라갔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그들은 최대한 침묵을 지키며 계단을 내려갔다. 혹시라도 큰 소리가 나면 누군가에게 발각당할 위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으악!”
중간에서 내려가던 사내 하나가 넘어질 뻔하며 비명을 질렀고.
그 주변에 있던 이들 또한 그에 놀라 큰소리를 낸 순간.
“누구냐!”
저 위 망루에서 보초를 서던 수도사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왔고.
···암문 밖으로 줄줄이 빠져나가는 이들을 보며 깜짝 놀라 활을 들었다.
매겨진 화살이 시위를 떠남과 동시에-
‘살려둬선 안 된다.’
탕!
우만 또한 몸에 지녀온 권총을 들어 발사했다.
“크윽!”
저 위에서 새된 비명이 들려왔고.
피유우웅!
우만을 향해 날아온 화살이 그의 몸을 비스듬하게 비껴갔지만.
“읏···.”
날아온 화살을 피하려다 무심코 발을 헛딛고 말았고.
“우만 님!”
···그의 몸이 허공으로, 뒤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새파란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데, 아까 들었던 롯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글쎄.
그건 자신도 딱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결말도 나쁘진 않겠군.’
이미 자신은 오래전에 죽은 거나 다름없던 목숨이 아니었던가.
그나마 무언가 하나 의미 있는 일을 해내고 죽는다면 나쁘지 않겠지.
···어쩐지 제 몸이 무척이나 천천히 떨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앙!]
제 눈앞에 돌연 사랑스러운 아기가 나타났고.
[옹!]
다음 순간,
풀밭 위로 자신의 등이 사뿐히 내려와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자, 그런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농농이와 앨빈이 보였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앙?]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자 앨빈이 설명을 덧붙였다.
“농농 님이 시기적절하게 순간 이동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떻게?”
“바바의 이능 덕분이죠.”
앨빈은 이렇게 설명했다.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하기 바로 전날, 세자르는 바바를 불러들였고.
‘이번 작전에서 누가 가장 위험해질지 알려줘.’
바바의 이능은 그것이 다름 아닌 우만으로, ‘실족’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리하여 세자르는 앨빈과 농농이를 따로 불러내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우만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 수 있으니 너희가 각별히 신경 쓰도록.’
더불어 이번 작전에서 실족할 만한 위험이 있는 곳은 암문으로 향하는 계단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으니까.
“···.”
우만은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데.
“우만 님!”
“우만 님, 괜찮으십니까?”
비명을 지르듯 달려오는 롯과 발닉을 필두로 하여.
뒤따르는 영지민들 또한 “다행이야, 살아계셨어!” 같은 말을 하며 안도하는 것이 보였다.
“···농농 님이 날 구해주셨다.”
[앙, 빠빠!]
“역시 농농 님이 최고십니다.”
“아이다페올트 왕자님···.”
롯과 발닉의 찬탄하는 눈길에 농농이가 잔뜩 기고만장해 있는 가운데.
우만은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그런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롯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이젠 의미없는 목숨이라는 얘기는 안 하실 거죠? 농농 님 덕분에 건진 목숨이니까.”
우만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안 하다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무사히 평지로 내려온 영지민들이 소리 없이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쾅! 콰과광!
벼락 같은 폭발음이 들려왔고.
뒤이어 지면이 흔들리며 둔중한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깜짝 놀라며 발닉이 뒤를 돌아보자, 앨빈이 나서서 대꾸했다.
“공성포예요.”
앨빈은 리암과 3형제가 세자르의 사병대를 이끌고 성문에서 공성전을 벌이고 있으며.
공성포로 성문을 무너뜨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공성포···?”
우리 부대에 그런 것도 있었나? 하고 발닉이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는데.
앨빈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제가 얼마 전에 만들었거든요.”
“···앨빈 님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영혼 빙의의 이능’으로 금속의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대장장이 유리겔에게 접신했으며.
“아세요? 유리겔 님은 드워프 장인들에게 직접 사사한 분이라.”
···이른바 드워프식 공성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시각, 트리니다드 수도원 정문.
무시무시한 크기의 거대한 대포가 성문을 향해 불을 뿜었다.
“대포가 하나뿐인 게 아쉽군요.”
지휘관의 말에 리암이 고개를 저었다.
“저건 그냥 대포가 아니라 사상 최강의 대포거든요.”
“사상··· 최강이요?”
며칠 전, 앨빈이 대장장이에 빙의한 채 포 제작을 마친 직후.
세자르가 했던 말을 리암은 잊을 수 없었다.
‘리암, 기억해라. 단 세 방만 쏘면 끝이야.’
‘단 세 방이라니?’
‘과거 드워프들이 만들어냈다는 전설의 공성포. ···어떤 성문이라도 단 세 발만에 뚫을 수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 했다면 허풍이라고 코웃음을 쳤을 말이겠지만, 세자르가 한 말이 아닌가.
리암은 세자르의 말이 여태 빗나가는 걸 본 적이 없었고.
“네. 그러니 한 방만 더 쏘면 될 겁니다.”
“···.”
그의 확신 가득한 어조에 지휘관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명령을 내렸다.
“포병들! 발사!”
콰앙!
세 번째 포탄이 발사됨과 동시에.
‘역시!’
···성문이 무너지는 걸 보며, 리암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휘관이 소리 높여 외쳤다.
“전군 진격!”
수도원 앞에 대기하던 병사들이 물밀처럼 성문 안으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