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10화 (110/176)

눈치는 밥 말아먹었어도

경비병들이 그를 둘러싼 채 한 걸음씩 다가오자.

수도사가 와락 소리쳤다.

“어찌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에게 날붙이를 들이대는가!”

그의 일갈에 경비병들이 잠시 움찔한 사이.

수도사가 테레사뿐 아니라 모두에게 다 들릴 정도로 외쳤다.

“왕께서 진정 이 나라를 위하신다면, 어찌 타락한 교단이 거짓된 호도와 선동으로 백성들의 영혼을 갉아먹게 놔두는 것입니까!”

수도사의 두 눈이 광기로 흉흉하게 빛났다.

테레사의 마음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대로 뒤돌아 도망치고, 아니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모두가 날 보고 있다.’

그녀의 등 뒤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백성들의 시선이.

왕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내 자질을 저울질하는 눈빛들.’

그 사실을 되새기며 테레사는 작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냈다.

“타락의 여부는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예?”

“아무리 신의 뜻을 전하는 자일지언정 그대 또한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 아닌가. 또한, 여기서 그대가 하는 행위가 선동과 다를 것이 무어가 있지?”

그 당당한 태도에 군중 사이에서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수도사가 당황해 우물쭈물한 순간, 테레사는 한 손을 들어올렸다.

어느새 경비병들이 그를 포위한 것을 눈치챈 수도사가 돌연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위대한 주신 알레스시여, 여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에게 부디 권능을 허락하시어···.”

경비병들이 ‘기도 중인 사제’를 차마 체포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순간.

테레사의 눈이 커졌다.

두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수도사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나왔고.

그것이 그녀의 전신을 덮쳐들려는 순간!

‘이건···!’

무형의 방패가 그 힘을 튕겨내는 듯한 감각.

그것을 느낀 것은 테레사와 수도사뿐이었으니.

“어, 어째서 안 되지?”

당황한 수도사의 말에 테레사는 곧바로 눈치챘다.

···저자 또한 일종의 이능자이며, 세자르가 준 이 목걸이야말로.

‘폐하의 몸을 지켜드릴 물건입니다.’

저자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모종의 힘을 지닌 성물이라는 것을.

하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경비병! 저자를···.”

테레사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

수도사가 품이 큰 겉옷을 벗어던졌고.

···그의 온몸을 칭칭 휘감은 폭탄이 드러났다.

도화선을 잔뜩 감아 폭발 시간을 조절하는 고전적 형태의 시한 폭탄이었다.

“포, 폭탄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악!”

“도, 도망쳐!”

인파로 가득한 거리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려는 순간.

탕! 타타탕!

경비병들의 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크윽!”

수도사가 신음하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이미 폭탄에는 불이 붙은 상황.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경비병들이 외쳤다.

“폐하를! 폐하를 대피시켜라!”

그러나.

혼란에 빠진 인파 때문에 가마를 움직이기란 역부족이었으니.

테레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순간.

어디선가 키 큰 청년과 아기가 나타났다.

“왕자님, 조심하세요!”

[앙!]

청년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아장거리며 다가와 수도사를 붙잡았고.

총알 세례에 목숨이 끊어져가던 수도사가 중얼거렸다.

“아기 천사님이··· 강림···.”

[부앙!]

동시에 아기와 수도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눈이 커진 것도 잠시.

그다음 순간-

콰과과과광!

귀를 먹먹하게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폭, 폭발이다!”

“왕실 숲인가?”

그 말대로 숲이 자리한 쪽에서 새카만 연기가 치솟아올랐다.

그 진동이 얼마나 강력한지,

숲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여파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테레사가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상황을 파악하려던 순간.

급히 뛰어왔는지 세자르가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던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그대로 혼절했다.

“폐하! 폐하!”

귓가에 맴도는 세자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테레사는 의식을 잃었다.

* * *

나는 곧바로 그녀를 부축한 뒤, 망토를 벗어 그 위에 눕혔다.

사색이 된 경비대장에게 국왕을 맡기고는 주변을 둘러싼 경비병들에게 명령했다.

“거리를 봉쇄하고, 수상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예!”

“여인이나 어린아이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품이 큰 옷을 걸친 자들은 반드시 몸 수색을 하도록!”

다행히 경비대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빠른 대처 덕분에 큰 추가 피해 없이 상황이 정리되는 가운데.

나는 마른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농농이가 왜 안 돌아오지.’

오늘 행사에 대비해 농농이와 롯, 3형제가 이 근처를 돌며 지난번처럼 기척을 파악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살기를 품은자를 따로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수도사들에게선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단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품은 것은 광기이지, 살기가 아니었으니까.

어쨌거나 나의 가신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노력했으나.

경비병들이 여인들에게는 몸 수색을 강요하지 못한다는 허점을 파악해, 수도사들이 여인으로 변장하고 들어올 줄은 예상 못했다.

게다가.

‘이능을 지닌 것으로도 모자라.’

···몸에 자살 폭탄을 두르고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농농이는 자신이 저자를 사람이 없는 곳에 데려다두고 오겠다 했다.

혼자서 암살자들을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해낼 정도이니 능히 해내겠지 싶어 맡겼는데.

“농농이가 왜 안 돌아오지?”

“그러게요, 돌아올 때가 됐는데.”

불안감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앨빈의 얼굴에도 걱정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혹시 폭발을 피하지 못한 건가.’

그 생각에 심장이 덜컹한 순간.

농농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머리카락 끝이 타들어 뽀글뽀글해진 머리를 하고서.

[옹옹··· 빠···.]

“농농아!”

나는 곧바로 농농이를 껴안았다.

농농이는 내 품에 안긴 채 연신 빠빠거렸다.

‘나를 보며 또 아빠를 찾는 건가.’

한동안 그런 말을 안 했는데.

위기에서 벗어나니 가족 생각이 나나 보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농농이를 꼭 안아주었다.

[빠, 바뿌, 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려던 가운데.

어느샌가 다가온 앨빈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농농이가 뭐라고 하는 거지?”

앨빈은 조금 곤란해 보이는 얼굴로 통역했다.

“날 물로 보냐, 인간. 그런 표정 좀 하지 말라고. 좀만 더하면 울음 터뜨리곘다 아주?”

“···너 그 통역 확실해?”

“그, 맞는데요.”

머리 긁적이며 앨빈이 설명했다.

“노움어로 ‘빠’는 ‘날 우습게 보냐’ 혹은 ‘내가 만만해 보이냐’라는 의미라서요.”

“···.”

“보통 노움은 외모가 어려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을 어린애로 대하는 상대에게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하더군요.”

···가끔은 모르는 게 나은 것들도 있는 법.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번 농농이를 꽉 껴안아줬다.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옹옹, 앙.]

나중에 앨빈에게 들은 설명으로는,

폭탄이 금방 터질 것을 대비해 인적이 드문 근방 숲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다시 순간이동해서 도망칠 것을 대비해, 기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결론만 말하자면 농농이도 은근 브레인이었다는 것.

어쨌거나 시기적절한 대처 덕분에 사망자는 범인 외에는 없었고, 우왕좌왕 도망치는 인파에 휩쓸리다 발생한 부상자만 나왔으며.

강화된 검문에서 십여 명의 트리니다드 수도사들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

나는 농농이를 데리고 왕궁으로 향했다.

* * *

테레사가 깨어난 것은 혼절한 지 꼬박 하루 만이었다.

다행히 몸에 이상은 없었고, 푹 자고 일어난 덕분인지 오히려 머리가 개운했다.

‘두통이 없는 것도 오랜만인걸.’

그러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두 눈을 감으면 어제의 광경이 고스란히 재생됐다.

광기에 사로잡힌 채 기도문을 읊던 탁발 수도사.

‘목걸이의 보호가 아니었더라면.’

이윽고 드러난 그의 전신을 감싼 폭탄들.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그를 데리고 사라지지 않았다면.’

폭탄은 수도 한복판, 자신의 눈앞에서 폭발했을 거다.

그로 인한 사상자의 규모는···.

“으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밀려왔다.

테레사가 천천히 심호흡하며 침착을 되찾는 와중, 시종이 들어와 세자르의 도착을 알렸다.

“들라 해라.”

잠시 후.

늘 여유를 잃지 않는 평소와 달리.

“폐하, 좀 어떠신지요.”

오늘 따라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한 얼굴의 세자르가 나타났다.

그런 반응이 싫지 않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려던 순간, 그 옆에 서 있는 작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짐은 괜찮네. 헌데 이 아기는···.”

세 살쯤 되었을까.

똘망똘망한 얼굴이 몹시 귀여운 아이는 어제 봤을 때와 달리 머리가 뽀글뽀글해져 있었다.

[앙, 부앙! 앙옹···.]

“이 아기가 어제 사람들을 구한 일등공신인 ‘농농이’입니다.”

그 말에 테레사의 눈이 커졌고.

세자르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뒤에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그러니까··· ‘순간이동’의 이능자라는 말인가?”

“···네. 그뿐 아니라 암살자들의 기척을 파악하는 재주까지 있습니다.”

세자르가 눈짓을 하자, 아이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폐하께서 괜찮으시다면 농농이가 여기 머물며 폐하의 곁을 지키게 하심이 어떨까요. ···일종의 경호원 격으로.”

그 말에 테레사는 아기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

동글동글한 눈망울, 통통한 뺨, 토실토실한 팔다리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이 아기가 나를 지켜준다고?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제 앞에 다가와 두 팔을 벌리는 농농이를 보자.

“···귀여워.”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며 아기를 꼭 껴안고 말았다.

테레사의 모습을 보던 세자르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음, 그 녀석이 생각보다 좀 음흉한데.”

“세자르 공, 이렇게 어린 아기에게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대체?”

테레사는 제 무릎에 앉아 꺄륵거리는 농농이를 사랑스러워하는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이어지는 세자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폐하.”

나를 걱정했구나.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눈빛에 테레사의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고맙네.”

어쩐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대답하는데.

“그건 그렇고.”

“응?”

세자르의 눈길이 그녀의 목에 머물렀다.

“다 쓰셨으면 돌려주심 좋겠는데.”

“···.”

테레사는 말 없이 목걸이를 풀어 세자르에게 돌려줬다.

···부드럽게 요동치던 심장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순간이었다.

* * *

‘잘 부탁한다, 농농아.’

[앙, 빠빠, 옹··· 부앙···.]

‘걱정 붙들어매라니까, 나 물로 보지 말랬지? 폐하는 내가 지켜드리겠다.’

농농이에게 폐하를 잘 지키라고 신신당부한 뒤 왕궁으로 데려갔고.

다행히 국왕은 농농이를 곁에 두겠다고 흔쾌히 약속했다.

잊지 않고 무효화 목걸이까지 돌려받고 나오는 길.

‘그녀 앞에서는 평정을 가장했지만.’

내심은 어제 이후로 내내 불안한 터였다.

지난번 트리니다드 수도원에 잠입해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은 후 줄곧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그 뒤로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길래 다소 긴장을 늦췄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무리 원작과 달라졌다고 해도.’

위험요소, 혹은 갈등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팰러스가 원작에서 세 치 혀로, 혹은 협상을 통해 구슬렸던 과격파 신앙집단은.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할 팰러스라는 통로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오히려 원작보다 한층 과격하게 나왔으니.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입안이 몹시 쓴데.

“폐하를 만나뵙고 오는 길인가요?”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오던 중, 국왕의 어머니 안느 드 노바스와 마주쳤다.

나는 예법에 맞춰 인사를 올린 뒤 고개를 들었다.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요. 이런 상황에 세자르 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군요.”

안느는 간단한 안부말을 한 뒤, 화제를 돌렸다.

“그것이··· 폐하께 빌려드렸다던 목걸이인가요?”

“아, 네.”

그녀가 목걸이 얘기를 할 줄 몰랐기에 당황한 순간.

안느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가만 보면 세자르 공은 정치에는 능해도 여인의 마음에는 둔하군요.”

“···네?”

“헌데 뭐랄까.”

그녀의 눈매가 휘어져 반달을 그렸다.

“어미의 입장에선 눈치가 너무 빤한 것보단 둔한 사내가 되려 마음에 드는군요.”

···어미의 입장이라고?

오싸아아악! 등 뒤로 소름이 쫙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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