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02화 (102/176)

흑막

나는 옷장 바깥의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타릭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꺼내든 권총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 제발··· 끄억!”

타릭은 팰러스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 목을 조른 손을 풀어주었다.

팰러스가 토할 것처럼 기침을 해대는 가운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봐, 그간 날 꼭두각시 취급하며 재밌었나? 응?”

“무, 무슨···.”

“네놈의 이능!”

팰러스가 눈을 크게 떴다.

발버둥치며 타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 그간 아주 재미를 많이 본 것 같은데···.”

“타릭, 오, 오해가···.”

“오해?”

타릭의 눈동자에 광기가 어렸다.

“다친 네놈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거든.”

“···.”

“내가 아는 ‘팰러스 님’은 나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빛나 보였는데.”

타릭의 커다란 손이 다시 팰러스의 목을 잡았다.

“이 비루 먹은 말처럼 축 늘어진 인간이, 과연그 팰러스가 맞는지.”

“크··· 커억!”

나 또한 부상당한 팰러스를 처음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어쩌면 추측이긴 하지만···.

‘컨디션이 멀쩡하지 않은 상황에선 이능의 위력도 약해지는 것 아닐까.’

그것이 패시브 형태라면 더더욱 말이다.

팰러스의 몸이 벌벌 떨리는 가운데, 타릭이 말을 이었다.

“근데 네놈이 그렇게 물고 빨고 하던 칼 대공 각하께서 친히 알려주시더군.”

“가, 각하가···.”

“네놈이 세뇌의 이능자라고!”

“!”

“그러니 나는···.”

타릭의 두 손이 팰러스의 목을 옭아맸다. 팰러스의 눈이 서서히 뒤집어졌다.

“네놈을 내 손으로 끝장내지 않고서는 열 받아서 견딜 수 없다, 이 말이지.”

팰러스가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채 의식을 잃기 직전.

나는 나도 모르게 옷장에서 뛰쳐나갔다.

“누구냐!”

타릭이 소리치며 돌아본 순간.

창!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아다만티움 검을 꺼냈다.

“너는··· 세자르?”

그의 눈에 의문과 충격이 떠오른 것도 잠시.

타릭의 손에 불꽃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죽어라!”

놈이 씨익 웃으며 화염구를 쏜 순간!

···순식간에 집중력을 끌어올린 나는 ‘그림자 보법’으로 발을 내디뎠다.

무게가 없는 듯 온몸이 가벼워지고, 중력이 내게만 적용되지 않는 기묘한 감각이 찾아온 동시에.

목전의 광경이 사라지고, 그다음 순간-

타릭의 경악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죽는 건 너다.”

어느새 그의 코앞에 선 나는 곧바로 검을 치켜세웠고.

훤히 드러난 타릭의 목을 향해-

푸욱!

망설임 없이 찔러넣었다.

“···끄윽···.”

뜨거운 피가 튀었다.

놈의 눈이 뒤집어지고, 소름 끼치는 떨림이 검날을 통해 전해졌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몸의 떨림이 멈추고 나서야, 숨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서야.

“···.”

나는 그의 목에서 검을 빼냈다.

···허무할 정도로 손 쉬운 죽음이었다.

‘타릭.’

방금 전만 해도 살인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타릭은 피투성이가 되어 내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 채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이 힘들 뿐.’

브렉을 죽였을 때와는 달리 비교적 덤덤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우만이 들어왔다.

“저쪽 창고에서 들것을 찾았··· 이건 대체.”

방 안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우만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필요한 것만 설명했다.

타릭이 대공에게 세뇌 이능의 정체를 들었고, 이에 분노해 팰러스를 목 졸라 죽이려 했다고.

“그리고 나는···.”

어째서 굳이 뛰쳐나가서 타릭을 죽였는지, 마땅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그런 내 얼굴을 우만이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

바닥에 쓰러져 있던 팰러스가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깜짝 놀란 우만이 다가가 팰러스를 일으켰다. 천천히 눈을 뜬 팰러스가 우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만, 내 소중한 가신···.”

우만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팰러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널 믿었는데, 널 믿었는데··· 너 역시 날 배신했지.”

팰러스는 눈앞의 우만을 환상으로 여기는 듯했다.

혼잣말, 혹은 헛소리에 가까운 말을 이어나가더니 어느새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세자르? 네가 어째서 여기에···.”

“팰러스, 정신이 좀 드나.”

하지만 팰러스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임종을 앞둔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한 단어 한 단어 뱉어냈다.

“아니, 너는 세자르가 아니야. 세자르는··· 이런 아이가 아니었거든.”

세자르가 아니다.

그 말에 나는 못 박힌 듯 굳어버리고 말았다.

팰러스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내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너 역시 세자르가 아니잖아 안 그래? 아버지는 날 단 한 번도 아들로 여기지 않았으니까···.”

그 또한 로건 공이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던 걸까.

“칼 각하마저도 나를, 모두가 나를···.”

팰러스의 눈이 나와 우만을 넘어 어딘가 머나먼 허공을 응시했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지 않는 왕좌’를 가리키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잔뜩 갈라진 입술 새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 바로 앞에 왕좌가 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손이 툭, 하고 떨어졌다.

나는 그의 숨이 끊어졌음을 직감했다.

“우만.”

옆에 주저앉은 우만의 몸 또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차마 그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어깨 너머로 말했다.

“나는 잠시 나가 있겠다.”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바로 다음 순간.

와아아아아!

귓전을 세차게 때리는 함성이 창문 너머로 들려왔다.

복도에 난 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자, 열린 성문으로 물 밀듯 밀려드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레핀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갑주 차림의 병사들이었다.

‘성공했구나.’

그 순간.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도전과제 ‘페어웰’ 달성! - 숙적 팰러스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숙적 팰러스의 죽음.

그것을 필두로 몇 가지 과제가 연달아 달성되었고, 덕분에 보상이 상향 조정되었다는 메시지 또한 나타났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하군.;

도전과제를 달성하고도 이렇게 기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 * *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된 지 얼마 후.

나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검 결과, 직접적 사인은 독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나와 우만은 팰러스의 사망 원인이 악화된 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 오전에 타릭이 팰러스에게 가져다준 스프.

그 안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스프 그릇에 묻어 있던 음식물에서 동종의 독이 검출되었습니다. 당장 목숨을 잃게 하는 형태의 맹독은 아닙니다만···.’

왕궁의는 체력이 많이 약해진 환자의 경우, 생명을 빼앗을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덧붙였다.

···타릭이 독을 썼다라.

‘왠지 그놈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걸.’

살인에 독을 쓰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첫째,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꺼릴 때.

하지만 타릭은 어떠한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화염구를 아무렇잖게 터뜨릴 정도로 죄책감이 없는 사이코패스일 뿐더러.

‘종국에는 팰러스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러니 이것과는 연관이 없을 거고.

둘째, 살인범의 정체를 감출 필요가 있을 때 독을 쓰곤 하는 건데···.

“칼 오프러스 대공?”

우만의 입에서 돌연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다.

“역시 그렇게 생각해?”

“타릭은 독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거든.”

우만의 요지는 간단했다.

-궁지에 몰린 타릭이 접촉할 수 있는 인물이라곤 칼 오프러스 대공 외에는 없으며.

-대공은 암살과 음모의 전문가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결국 대공은 팰러스를 이용하다가 쓸모없는 패가 되자 버리기로 마음먹은 셈이군.’

그것도 제 손을 더럽히는 대신, 바로 곁에 있는 타릭을 써서 말이다.

···우만의 말마따나 음모 전문가다운 방식이다 싶다.

‘어쩌면.’

리아나 부인 또한 대공이 계획적으로 레핀 공작에게 접근시킨 일종의 첩자가 아니었을까.

사실 레핀 공작에게서 그들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대를 잇지 못하는 몸이지만, 작위를 위해 자식을 이어야 하는 남자에게 미혼의 몸으로 임신한 여인이 나타났다고?’

그리고 그 여인과 대번에 사랑에 빠지다니.

리아나에게 ‘매혹의 이능’이 있다는 점을 대공이 알고 있다면, 그녀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지 않다.

‘일견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추측이 맞다면.’

칼 오프러스 대공은 이 모든 음모를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어쩌면 이언 왕세자나 2왕자의 죽음이나, 그 외의 수상한 사건들도 사실은 공국의 소행이었던 게 아닐까.

“우만, 오프러스 공국과 우리 에스닐의 사이가 어떻지?”

우만은 뭘 그런 기본적인 걸 물어보느냐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순순히 대답했다.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

에스닐과 공국은 수차례의 영토 분쟁을 겪었고.

선왕 유스톤 3세가 이끈 전쟁에서 패한 공국은 국토가 절반에 가깝게 줄었다는 거다.

“지금 벡카드 가문이 소유한 로안 강 지대 있지? 곡창지대일 뿐 아니라 광산이 많아 병장기 생산량도 높은 알토란 같은 땅을 빼앗겼으니까.”

“그렇다면 공국은 어떻게 해서든 그 땅을 되찾고 싶겠군.”

···벡카드 가문을 구슬려서라도 말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순간.

“세자르 공자님.”

카얀이 나를 찾아왔다.

그가 내게 온 이유가 대충 짐작되었다.

“아버지는 아직 칩거 중이신 건가?”

“몸이 영 안 좋으신 듯합니다.”

총관은 내가 본인 대신 공작의 상태를 확인해주길 바라는 거였다.

나는 곧바로 공작의 침실로 향했다.

“아버지.”

해가 훤히 떴건만 커튼으로 가려놓아 침실은 어두침침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침대로 다가섰다.

“아버지, 몸은 좀 어떠십니까.”

공작이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며칠 안 되는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얼굴이 보였다.

“세자르···. 와줬구나.”

“늘 아버지 곁에 있었습니다. 얼른 떨쳐버리고 일어나시지요.”

“이상하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구나.”

서릿발 같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버리고, 바람 빠진 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바로 어제, 공작을 진찰했던 주치의 버논은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단언했다.

‘굳이 진단을 내리자면, 마음의 병이라고 해야겠지요.’

시체가 되어 돌아온 팰러스를 처음 본 날.

공작은 큰 충격을 받은 채 침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의 방에서 한동안 짐승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키운 정이 있다는 거겠지.’

그가 보기와는 달리 마음이 약하고 잔정이 많은 사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공작은 아직 환갑이 채 안 된 나이이지만, 이 세계의 평균 수명이나 건강 수준을 고려하면 노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간은 무인의 기개로 강건히 버티고 있었지만, 연달아 충격을 받으며 무너져내린 것 아닐까.

나는 그의 주름진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또 오겠습니다. 버논이 탕약을 준비시켜놓았다니 잊지 말고 드십시오.”

“그래,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공작의 방을 나왔다.

문가에 걱정스레 서 있던 카얀에게 말했다.

“카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게나. 심신이 많이 지치신 것 같군.”

“알겠습니다.”

나는 내 집무실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아, 4차원 주머니에 고이 넣어뒀던 것을 꺼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책처럼 생겼지만.

‘무려 3개의 도전과제를 동시에 달성하고서 보상으로 받은 것.’

[특수과제 ‘일타삼피’ 달성!!! - 특수보상이 해금됩니다.]

[보상으로 ‘특별외전’이 주어집니다.]

특별외전이라.

유난히 낡아 보이는 표지에는 <후일담 - 미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왕좌에 앉은 후의 정세에 관한 내용인가.

‘안 그래도 불안해하던 찰나인데 잘되었군.’

나의 수많은 개입으로 흐름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주인공 팰러스가 죽은 시점에서 이미 이곳은 원작인 <왕도의 대가>와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었으니.

공국이 벡카드 가문과 헬리오스 가문의 뒤에서 손을 써가며 후일을 도모할 것까지는 예상이 가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특별외전은 내게 무척 중요한 정보를 알려줄지도 모른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표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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